마오쩌둥
| 미합중국 제11대 농무장관 헨리 아거드 월리스 Henry Agard Wallace | |
|---|---|
| 출생 | 1888년 10월 7일 |
| 미국 아이오와주 오리엔트 | |
| 사망 | 1965년 11월 18일 (향년 77세) |
|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 | |
| 국적 | |
| 정당 | 공화당 (1909-1924) 진보당 (1912) 진보당 (1924-1932) 민주당 (1936-1947,1964-1965) 진보당 (1947-1950) |
| 서명 | |
| 재임기간 | 초대 총통 |
| 1933년 3월 4일 ~ 1941년 1월 20일 | |
| 학력 |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
| 종교 | 성공회 |
| 부모 | 아버지 헨리 C. 월리스 |
| 배우자 | 일로 브라운 월리스 |
|}
개요
미국의 정치인으로 제11대 농무장관이다.
선거 이력
|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 당선 여부 | 비고 |
|---|---|---|---|---|---|---|
| 1944 | 미국 대통령 선거 | 미합중국 | 민주당 | 17,936,585 (37.39%) | 낙선 (2위) | |
| 1948 | 미국 대통령 선거 | 미합중국 | 진보당 | 6,792,981 (13.92%) | 낙선 (3위) |
개요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 ||||||||
|---|---|---|---|---|---|---|---|---|
윌키 52인 (14.9%) ✔ (85.1%) 452인 쿠퍼
| ||||||||
| ||||||||
| 선거일시 | 1940년 11월 5일 | |||||||
| 투표율 | 62.5% ▲ 5.6%p | |||||||
| 선거 결과 | ||||||||
| 후보 | 민주당 |
공화당 | ||||||
| 홈스테이트 | 윌키 뉴욕 바클리 켄터키 |
쿠퍼 몬태나 반덴버그 미시간 | ||||||
| 승리 주 | 8 | 42 + D.C. | ||||||
| 선거인단 | ||||||||
| 79인 | 452인 | |||||||
| 전국 득표 | ||||||||
| 19,329,606 38.7% |
30,332,082 60.8% | |||||||
| 당선자 | ||||||||
| 공화당 게리 쿠퍼 | ||||||||
개요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배경
경선
공화당
| Worth Fighting For 싸울 가치가 있는 미국 2000 퀘일-스톡데일 티켓 슬로건 |
공화당 경선은 민주당과 달리 시작 전부터 사실상 승부가 정해져 있었다.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이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단독 후보로 경선에 임했다.
일부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퀘일의 재지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했으나, 현지 대통령에 맞서 당내 경선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수반하는 선택이었기에, 결국 이렇다 할 도전자 없이 퀘일이 압도적인 대의원 수를 확보하며 재지명되었다.
퀘일은 1996년 대선에 이어 제임스 스톡데일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다만 그가 매우 고령이라는 점이 지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쟁 영웅이자 명예훈장 수훈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정치에서의 대중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는 재임 4년 내내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당 일각에서는 새로운 얼굴로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퀘일은 그냥 무시하고 지명을 선택했다.
민주당
| Tomorrow Begins Today 미래는 오늘 시작된다 2000 케네디-브로 티켓 슬로건 |
퀘일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선거라고 보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일찍부터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는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인물이 존 F. 케네디 주니어였다.
케네디는 1994년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직후 부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젊고 호감형인 이미지로 인해 당선 직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순회 강연, 지역 당 조직과의 교류 등을 통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케네디에 맞선 주요 경쟁자로는 뉴저지주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조 리버만, 그리고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가 있었다.
케네디는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포함한 초반 경선 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을 조기에 종결시켰다. 슈퍼 화요일 이후 브래들리와 리버만은 잇따라 경선 중단을 선언했으며, 듀카키스 역시 뒤이어 완주를 포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네디는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
케니디는 부통령 후보로 루이지애나주 연방 상원의원인 존 브로를 지명했다. 뉴욕 상원의원이자 북동부, 도심 지역 기반의 진보적 이미지가 강한 케네디와 달리, 브로는 딥사우스 출신의 중도실용주의 협상가로서 오랜 상원 경력을 통해 초당적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지명은 케네디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남부 지역 기반과 국정 경험 부족을 동시에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