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리좀)

Communist 1968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2월 13일 (월) 02:26 판 (→반응)
공산1968 리조니 Arrondissments 레스 어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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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 지배 없이 근대화에 성공해 이원집정부 체제를 받아들인 "동방의 불란서", 대한공화국의 여정을 다루는 대체역사·정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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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第17回 國民院 議員 總選擧
투표율 83.09% ▼ 2.21%p
선거 결과
16회 총선 결과.svg
정당 당수 의석수 비율 증감
조봉암 83석 44.2% 감소 31
하기락 80석
강량욱 68석
박헌영 152석 29.1% 증가 66
장면 109석 20.9% 감소 19
이기붕 21석 4.0% 감소 23
7석 1.3% 신생
2석 0.4% 보합

개요

1958년 8월 24일 치러진 대한공화국의 국민원 의원 총선거이다.

배경

1953년 압도적인 의석으로 집권한 사회당은 당내 좌우중도파의 계파 분쟁으로 몸살을 겪었다. 사회당의 3대 파벌은 다음과 같았다.

  • 좌파사회당 (비스탈린주의 계열 마르크스주의, 97명): 공산당과의 연대에 찬성하였으며,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본 딴 범좌파의 연립 구상을 추진했다. 김병식, 이계백, 강량욱 등이 대표했다.
  • 우파사회당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99명): 공산당과의 연대에 반대하였으며,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둔 점진적 사회 개혁을 추구했다. 조봉암, 김달호, 서상일, 조용수, 최석채 등이 대표했다.
  • 중도사회당 (반공주의적 급진사회주의, 60명): 공산당과의 연대에는 반대했지만,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에도 반대했다. 아나키스트, 트로츠키주의자, 민주사회주의자 등이 속해있었다. 박열, 정화암, 백정기, 하기락 등이 대표했다.

세 개의 계파는 비슷한 의원 수로 서로 각축을 벌였으며 조봉암 총리가 분란이 일어날때마다 중재를 벌였지만 1958년 총선에서는 서로 후보 공천이 합의가 되지 않았고, 결국 세개의 계파는 선거에서 각자 후보를 내는 것에 합의하게 된다. 일부 지역구에서 제한적으로 단일화가 있었지만 대다수의 지역구에서 좌익의 표는 세 갈래로 나뉘어질 수 밖에 없었고, 조봉암 총리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의 재집권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공산당은 이러한 사회주의 세력의 혼란을 틈타 대중적인 지지율을 확대했으며, 민주당은 신세대 정치인인 장면을 내세워 우익 진영의 재건을 노렸다.

결과

ㅇㅇ.svg
ㅇㅇ.svg
다이어그램을 누르면 선거 전후 의석 확인 가능.
제17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대한공화국 전역
기호 당명 득표수 의석수 증감[1]
당수 득표율 의석 비율 비고
1 한인사회당 로고 반전.svg 9,196,087표 231석 감소 25석
조봉암 48.82% 44.25% 여당
2 민주당 로고 반전 (리좀).svg 2,972,435표 109석 감소 21석
장면 15.78% 20.89% 제1야당
3 대한공산당 로고 반전.png 4,451,117 152석 증가 66석
박헌영 23.63% 29.11% 연립여당
4 자유당 투명.png 1,465,497표 21석 감소 18석
이기붕 7.78% 4.02% 제2야당
5 제헌동지회 401,222 7석 증가 2석
2.13% 1.34% 제4야당
- 무소속 350,363표 2석 감소 4석
1.86% 0.38%
유권자 수 23,280,204 투표율
83.09%
투표 수 19,343,522
무효표 수 506,800

조봉암 총리의 높은 지지도 덕택에 사회당은 48%에 달하는 표를 휩쓸었으나 정작 당의 극심한 분란으로 표가 갈리면서 득표율에 못미치는 의석을 획득, 사실상 패배하였다. 반면 공산당은 의석을 거의 2배로 늘리며 선전하였다.

우익 진영은 좌익의 분란에도 불구하고 조봉암 총리에 맞설만한 적절한 어젠다를 설정하지 못하며 완패했다.

총리 지명 투표

제26대 총리 지명투표
대한공화국 국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가
장건상(張建相) 96[2] 2위
한인사회당 로고 반전.svg 18.57% 결선 진출
1-나
박열(朴烈) 80[3] 3위
한인사회당 로고 반전.svg 15.47% 낙선
1-다
강량욱(康良煜) 205[4] 1위
한인사회당 로고 반전.svg 39.65% 결선 진출
3-가
장면(張勉) 59[5] 4위
민주당 로고 반전 (리좀).svg 11.41% 낙선
3-나
윤보선(尹潽善) 56[6] 5위
민주당 로고 반전 (리좀).svg 10.83% 낙선
4
허정(許政) 21[7] 6위
자유당 투명.png 4.06% 낙선
유권자 수 522 투표율
100.00%
투표 수 522
무효표 수 5
제26대 총리 지명 결선투표
대한공화국 국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가
장건상(張建相) 247[8] 1위
한인사회당 로고 반전.svg 50.41% 당선
1-다
강량욱(康良煜) 243[9] 2위
한인사회당 로고 반전.svg 49.59% 낙선
유권자 수 522 투표율
100.00%
투표 수 522
무효표 수 32

조봉암 총리가 선거 결과에 따라 재선 포기를 선언했고, 우파 사회당은 장건상을 총리 후보로 추대했다. 좌파 사회당과 중도 사회당도 각각 강량욱과 박열을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민주당 역시 구파가 윤보선을, 신파가 장면을 총리 후보로 추대하면서, 2개의 정당에서 5명의 총리 후보가 나오는 파란이 일어났다. 투표 결과, 중도파의 지지를 받은 장건상 후보가 극좌파의 지지를 받은 강량욱을 불과 4표 차로 재치고 총리로 당선되었다.

반응

사회당 내각은 사실상의 삼신할미 내각이 되었다. 외교는 귀신, 내무는 병신, 인사는 등신!
박헌영의 평가

우파 사회당, 중도 사회당이 내각에 불참하였고 민주당도 내각 참여를 거부한 이상[10] 장건상 내각은 절대적으로 소수 내각일 수 밖에 없었다. 장건상이 추진한 정책은 의회에서 모조리 부결되었고 1959년 정초부터 예산안을 문제삼은 중도사회당-좌파사회당-민주당 구파-자유당의 불신임 발의로 장건상은 총리 자리에서 쫓겨났고 조기 총선거가 치러진다.

극좌파, 급진좌익, 중도좌익, 중도우익, 우익이 대립한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은 대한 제2공화국의 정치적인 혼란만을 가속화시켰으며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정치학자들은 이 때를 기점으로 2공화국이 사실상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이 당시 총리 후보로 추대된 인물들의 대중적인 지지도가 대부분 낮았으며[11] 이는 대중과 정치판의 괴리를 불러와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2공화국의 내각제에 신뢰를 잃도록 하였다.


  1. 선거 직전 의석 대비.
  2. 한인사회당 93표, 제헌동지회 1표, 무소속 2표
  3. 한인사회당 80표
  4. 대한공산당 147표, 대한사회당 58표
  5. 민주당 57표, 제헌동지회 2표
  6. 민주당 51표, 제헌동지회 4표, 무소속 1표
  7. 자유당 20표, 무소속 1표
  8. 한인사회당 131표, 민주당 97표, 자유당 10표, 제헌동지회 7표, 무소속 2표
  9. 대한공산당 150표, 한인사회당 93표
  10. 다만 장면의 민주당 신파는 내각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장건상 내각을 신임하기로 하였다.
  11. 비교적 신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호감도가 높았고 장건상은 인지도가 낮아 호감 비호감을 따질 수 있는 인물조차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