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Nwallbelllle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0월 6일 (금) 16:57 판
 

슈치퍼리
Shqipëri
알바니아 왕국
Mbretëria Shqiptare

1944년 - 현재
국가 깃발의 찬가
표어 Atdheu mbi të gjitha
( 무엇보다도 조국 )
수도 두러스
최대 도시
국왕/음브레트
1944년 ~ 1945년 스컨데르베우 2세
1945년 ~ 1973년 스컨데르 1세
수상/크뤼에미니스터르
부수상/저벤더스크뤼에미니스트리
알바니아 독립 선언 1912년 11월 28일
런던 조약 1913년 5월 30일
알바니아 공국 건국 1914년 2월 21일
알바니아 농민 봉기 1914년 5월 17일 ~ _월 __일
알바니아 침공 194_년 _월 _일
알바니아 내전 1944년 _월 _일 ~ _월 _일
왕국 선포 1944년 _월 _일
코소보 위기 1998년 2월
인문 환경
행정구역
정치
경제
경제 체제 혼합 경제
화폐 공식 화폐 레크 (L)
코드와 단위
ccTLD .al
국가 코드 008 AL ALB
국제 전화 코드 +355
단위 법정연호 서력 기원
시간대 CET (UTC+1)
DST CEST (UTC+2)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MD DMY

알바니아 왕국(알바니아어: Mbretëria Shqiptare 음브레터리아 슈칩타레) 혹은 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 슈치퍼리)는 발칸 반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북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위치하며, 동쪽으로 북마케도니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오트란토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가 위치한다. 법적공용어는 알바니아어알바니아인이 다수 민족을 차지하며, 동부와 남부에 세르비아인, 마케도니아인, 그리스인 등 소수 민족 및 소수 언어 화자가 존재한다. 수도는 두러스이며, 주요 대도시로는 티라나, 블로러, 스코페, 프리슈티나 등이 있다.

알바니아 왕국은 1914년 런던 조약의 결과로 건국된 알바니아 공국을 전신으로 한다.

알바니아는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단일 국가이다. 알바니아의 왕을 명목상의 국가원수로 하여, 하원인 알바니아 국민의회에서 선출된 수상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수상행정부로써 __명의 각료로 구성된 알바니아 각료협의회를 구성한다. 입법부양원제로써 상원인 알바니아 총평의회와 하원인 알바니아 국민의회로 구성된다. 상원인 총평의회의 이름은 1444년 구성된 레저 동맹을 당대 부르던 명칭에서 유래한 것으로 ___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총평의회는 19__년, 스컨데르베우 2세가 여러 지역 세력들과 결착해 만든 것으로, 세습적이고 종신적인 귀족 의원이 권한을 행사한다. 총평의회는 하원인 국가의회에 안건을 상정시킬 수 있으며, 하원으로부터 통과된 안건을 검토 및 심의하고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 할 수 있다. 상원의 권한은 하원에 대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 정도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지속해서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원인 알바니아 국가의회는 기본적으로 매 4년을 주기로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로 선출된 ___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국가의회는 건국 당시 국제 통제 위원회에 의해 3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이후 여러 차례의 개혁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국가의회는 정부를 구성하고, 법률안을 제정하고 통과시키며,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예산안을 편성하며, 국제 조약에 대해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법부대륙법계 헌법과 민법을 지녀 일반법원, 행정법원, 헌법원으로 나뉘어 각각의 최고 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밥법원은 삼심제로써 장로평의회, 치안법원, 항소법원, 왕립최고법원으로 구성된다. 장로평의회와 치안법원은 1심 법원으로, 장로평의회는 나히야에서의 소정의 소규모 사건을 재판하며 그보다 크거나 항소한 사건의 경우 치안법원이 재판한다. 왕립최고법원은 각각 5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13개의 재판부[1]로 구성된다. 행정법원은 3심제로 카자야행정법원, 산자크행정법원, 국가행정법원으로 구성된다. 국가행정법원는 사건에 따라 3-6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18개의 재판부로 구성된다. 헌법원헌법과 관련된 재판을 담당하며 하위 법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원은 8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1개의 재판부가 존재한다.

국명

알바니아의 국명은 공식적으로 "알바니아 왕국"(알바니아어: Mbretëria Shqiptare 음브레터리아 슈칩타레)이며, 주로 "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 슈치퍼리)라 부른다. 비공식적으로 Mbretëria e Shqipërisë라고도 사용한다. "슈치퍼리"는 1555년 발간된 메샤리에서 최초 문증된다. 17세기 무렵부터 그 이전에 사용하던 "아르버리아"(Arbëria) 혹은 "아르버네셔"(Arbëneshë)를 대체한다. 오랫동안 "슈치퍼리"의 어원은 독수리라는 뜻의 shqipe 혹은 shqiponjë에서 기원했다고 여겨졌지만, 알바니아어 동사인 "분명히 말하다"(알바니아어: shqiptar 슈칩타르) 혹은 "말하다"(알바니아어: shqiptoj 슈칩토이)에서 기원했다. "음브레터리아"는 왕을 뜻하는 "음브레트"(Mbret)에 국가, 영토 등에 붙는 접미사 -ëri가 붙은 정형 명사 단수형이다. "음브레트"는 속라틴어에서 지도자를 뜻하는 imperātus에서 기원했다.

역사

기원

구석기 시대중석기 시대 무렵에 알바니아 지역에 현생 인류가 정착하였다. 기원전 3000년 무렵에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인도유럽어족이 정착하여 청동기 문명을 이루어 남하한 일부 그룹은 미케네 문명을 이루었다. 고대에는 일리리아라 불리는 지역에 속했으며, 아르디에이라는 집단이 가장 번성하였다. 이후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7세기부터 슬라브족들이 남하하여 정착하였다. 9세기와 13세기에 불가리아 제1제국세르비아 대공국의 침략을 받았고, 세르비아 대공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아르바논 공국알바니아 왕국 등이 알바니아인의 최초의 국가를 이룬다. 14세기 세르비아 제국의 침공 이후 여러 공국으로 분열된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게 되나 1444년, 스컨데르베우 1세를 중심으로 항전하여 독립을 유지하였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된 이후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여러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쾨프륄루 메흐메드, 쾨프륄자드 파질 아흐메드, 무함마드 알리 등이 그들이다. 1870년 대부터 프리즈렌 동맹이 결성되어 민족 부흥 운동이 진행되었다. 카라르나메라 불린 강령이 발표되었고, 프리즈렌 동맹은 알바니아 지역의 여러 산자크들을 통합할 것 등을 요구했다. 베를린 회의에서 플라브, 구시네 등의 지역이 몬테네그로에 할당되자 무력수단을 동원해 막아내었으나 열강의 경고에 의해 철수하고 이후 오스만의 군대에 의해 분쇄되었다. 1912년, 다시 봉기를 일으켰고, 1912년 11월 28일, 이스마엘 체말리에 의해 독립을 선언한다.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고 런던 회의에서 알바니아의 독립이 인정받는다.

공국 성립 이전

1912년, 이스마엘 체말리를 주도로 알바니아 전역에서 대표들이 모여 전알바니아 회의가 개최된다.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승전국들은 알바니아를 분할해 점령하기를 원했고, 회의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을 위함이었다. 비록 코소보 빌라예트의 대표단이 군대에 의해 가로막혀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회의는 진행되었고, 제1차 블로러 회의에서 알바니아의 분할을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2월 4일 진행된 제2차 블로러 회의에서 알바니아 임시 정부와 1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원로회의(알바니아어: Pleqënia 플레처니아)가 선포되었다.

의욕적으로 출범한 알바니아 임시 정부였으나 외우내환의 상태에 빠진다.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그리스 왕국은 현재 알바니아 영토의 경계를 침범해 있었으며, 여러 토착 세력과 군벌들은 알바니아 임시 정부을 인정하지 않았다. 알바니아 임시 정부가 통치하는 지역은 블로러, 베라트, 피에르가 전부였다. 그러나 곧 런던 조약피렌체 조약의 결과로 알바니아의 경계가 확립되고, 이를 침범한 국가들에 대한 열강의 압박이 이어져 세르비아 왕국몬테네그로 왕국이 철수하면서 외부적인 위협은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알바니아 임시 정부에 등용되었던 에사드 톱타니가 사임하고 두러스로 가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해 반정부를 선언함과 동시에 중앙알바니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에 알바니아 임시 정부하산 프리슈티나엘바산으로 가 새 내각에서 에사드 톱타니에게 전쟁부장관직을 약속하는 대가로 타협하길 원하였으나, 이는 실패하고 결국 무력 충돌이 발생해 국제 헌병대가 개입해 충돌을 해산한다. 1914년 1월 9일에는 청년 튀르크당베키르 피카리아흐메트 이제트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반란이 발생하여 국제 헌병대가 진압하기도 하였다.

결국 알바니아 임시 정부는 사임하고, 에사드 톱타니국제 통제 위원회과의 타협으로 중앙알바니아 공화국을 해산하여 국제 통제 위원회런던 조약에 따라 알바니아 공국의 수립을 위해 그전까지 위임 통치하게 된다.

공국 성립과 농민 반란

자연 환경

정치

행정 구역

경제

국방

사회

문화

교육

외교

같이 보기

  1. 민사사건을 담당하는 9개의 재판부,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4개의 재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