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국/역사

유유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1월 26일 (일) 02:00 판 (→라란시대)

고대

열국시대

북동부에는 중국인이 넘어와 라란국(羅丹國)을 건국하였는데 기원후 1세기 이전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라란국은 동쪽의 무단(武丹)[1]을 속주로 편입하고 무강족과 충돌하였으며 주로 남쪽의 앙골족과 교류하였다.

한편 이보다 앞선 기원전 1세기에 김영평이 지금의 능강특별자치시 월영산 일대에 반월국(半月國)을 건국하고 그 주변을 정복하여 7개 성을 쌓았다. 반월국은 조월국(朝月國)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반월국의 북쪽에 있는 미라오국의 멸칭으로 불렀다가 미라오국에서 이 멸칭을 반월국이 미라오국을 신격화하였다는 의미로 개명하자 그것을 부정하고 반월국의 별칭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기원전 50년대경, 모신나강의 아들인 세마지[2]가 세씨로 개명하고 지금의 안강시 일대에 세라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시대

남고구려(문성국), 라란국, 세라국을 중심으로 한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위치하던 고구려가 멸망하고 유민들의 일부가 라란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며 살다가[3] 라란국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고 란주 동성을 공격하여 라란국 강왕을 죽이고 이를 발판 삼아서 남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남고구려는 무단을 복속하고 무강과 전쟁하는 한편 라란국과는 교류를 하고 라란국 사신단과 같이 중국에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다가 가끔씩 전쟁을 하기도 하였는데 남고구려가 라란국의 란주 동성을 함락하고 왕성을 공격하다가 철군한적도 있었다. 이렇게 전쟁과 교류를 반복하면서 지내오다가 결국 라란국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중세

전기 문성국시대

이 시대는 라란국의 말왕이 문성국 양명왕에게 항복한 시점부터 애명여왕의 부군(夫君)인 란경휘가 반란으로 라란국을 재건하여 후라란국이 성립된 시점까지를 이르는 시대이다.
라란국이 멸망한 직후 양명왕대부터 경선왕대까지 라란부흥운동이 일어났으며 란경휘가 애명여왕을 옹립하고 이후 후라란국을 건국하여 문성국은 잠시 역사에서 사라진다.

후라란국시대

애명여왕의 부군(夫君)인 란경휘가 반란으로 라란국을 재건하여 후라란국이 성립된 시점부터 후라란국이 멸망하고 문성국이 재건된 시점까지를 이르는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동강국이 후라란국과 전쟁을 했는데 이를 노려 후라란국을 멸망시키고 문성국을 다시 세운것이다.

후기 문성국시대

근세

중세 문주국시대

문주왕이 즉위한 시기부터 성종이 즉위하기 직전의 시대를 제1왕국으로 분류한다.

근대

근대 문주국시대

성종이 집권한 시기부터 일제강점기 직전까지의 시대로 제2왕국으로 분류한다.

현대

일제강점기

미군정 ~ 현대문주국시대

  1. 한반도 도래인과 무강족의 혼혈인이 대다수인 무강의 한 일파
  2. 본래 이름은 불명이나 부친인 모신나강이 모신씨였으므로 세마지 역시 모신씨였던 것으로 보인다. 복성인 모신씨를 신씨로 단성 표기한 것의 다른 표기라는 설도 있다.
  3. 대략 그 수가 약 30만 명으로 추측된다. 이는 고려로 망명한 약 20만 명의 발해 유민들보다 많은 숫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