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Valdemaro Ligioni/4


관련 문서
[ 펼치기 · 접기 ]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 1205년 시점
  • 제4차 십자군 전쟁과 동로마 제국의 처참한 파괴
  • 베네치아의 최전성기
  • 병신같은 십자군 국가들
    • 서라틴제국

로마인의 황제를 참칭하며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라틴제국으로서 보두앵 1세의 제국이었으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동생 앙리가 서라틴을, 매부 피에르가 동라틴제국을 차지하며 갈라져버렸다, 서라틴제국은 아드리아노플과 콘스탄티노플, 그외 트라키아 지방을 차지하였다.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이다.

    • 동라틴제국

보두앵 1세의 매부 피에르가 재위하며 등장하였다. 콘스탄티노플 동편의 아나톨리아 연안과 니코메디아, 트로이, 미시아 등의 지역을 차지하였다. 수도는 니코메디아이다.

    • 아테네 왕국(공국)

아테네 공국은 오토 드 라 로슈가 아테네와 보이오티아 및 일련의 반도지역을 차지하며 생겨났다. 레온 스구로스를 패배시키는데 일조한 귀순자인 아테네의 대주교 미하일 호니아티스를 통해 무혈입성하였다. 다만, 오토 드 라 로슈는 가톨릭으로의 강제개종 정책과 이유모를 병으로 인해 물러나야 했고, 아들 기 1세를 두고 갔다. 하지만, 기 1세는 미하일 호니아티스를 제거하려는 도중, 음모로 인해 암살당하였고, 정교회로의 개종을 강제한 정책의 반발로서, 정교회의 국교를 선언한 미하일 호니아티스가 왕위를 찬탈하며 기 1세와 그 일가는 주변국인 모레아 공국에 팔려갔다.

대주교 미하일 호니아티스는 새로운 지배자로 레온 스구로스의 아들 가브리엘 스구로스를 세웠고, 아티카와 보이오티아의 데스포티스, 군주로서 봉해졌다. 이후 해군을 통하여 저항하였다.

    • 모레아 공국
    • 테살로니카 왕국
    • 코린토스 백작령

코린토스 백작령은 베네치아의 심복인 요하네스 마르골리오가 베네치아의 선임을 통해 봉해진 괴뢰국이다. 아테네 공국의 공격에 추후 시달리게 된다.

  • 동로마의 잔존국들
    • 이피로스 앙겔로스 왕조 (칭제)
    •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칭제)
    • 트레페준타 콤니노스 왕조 (칭제)
    • 크레타 두카스 왕조

스토리 라인

  • 일본은 패망의 길에 접어들며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격을 당하고, 이것으로 모자라 교토에까지 소이탄 폭격을 맞아 도시 반이 전소되며 처절하게 항복한다.
  •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상하이에 있는 비밀거처에서 밀서를 통해 임시정부 인사들을 향후 해방정국의 건국위원회에 반드시 고위직에 천거해주겠다 약속하고, 좌우합작을 제의한다. 당시 국무위원회 주석이었던 김구는 동의한다.
  • 한편, 한반도에선 해방이 알려지자 조선총독부는 생존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해방 이전부터 빌드업을 쌓아오던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공산당과의 좌우합작을 민족국가 이라는 대의적 기치아래 극적 합의를 이루어 통제되어 조직적으로 일어난 조선인들의 반란으로 경복궁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관사는 점령당한다.
  • 당시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는 세번 항복을 선언한다. 첫번째는 조선인들에게 둘러싸인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임시정부 관사에서 항복문서에 서명과, 육성녹음을 통한 일본의 패망과 항복을 강요받아 끝내 항복선언을 하였고, 공개적으로 미국에게 항복하였으며, 소련에게도 항복하여 세번의 항복 끝에 약 일주일간의 수감에서 풀려나 일본으로 귀국한다.
  • 38선 기준(세계관 기준 가상)의 이북에는 소련이 군정체제를 다지고 있었으나, 박헌영이 조선건준위를 옹호하자 소련은 군대를 물려주는 호의를 보였고, 미국이 남쪽을 점거하자 반미정서를 보이지 않고 겉으로 그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며 반미노선이 아님을 강조하고 미국의 호의를 이끌어냈다.
  • 미군이 부산에 사령부를, 소련은 평양에 사령부를 잡고 미묘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성(서울)에서 결국 치안을 장악하던 일본을 몰아내고 조선건준위가 치안을 장악하자 본격적으로 건국을 준비한다. 이때 총독부 건물은 이때부터 중앙청으로 불린다.
  • 때이른 시기에 양 군정청이 신탁통치를 한다는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대혼란을 빚는 위기를 겪는다.
  • 미국과 소련은 조선건준위를 인정한다는 물밑협약을 통해 양대강국의 호의를 얻는다. 이것은 향후 미국의 기밀문서의 기한이 지나 공개되어, 블라디보스토크 협정 으로 불린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시정부 자격으로 입국한다. 미리 합의된대로 입국하고, 우파의 주장에 따라 임시정부 환국환영회를 열고, 내각에 입각할 모든 인물들이 모두 중앙청의 강당에 모여 최고건국준비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렸다. 이 회의에서 내각이 결정되었으며, 미국과 소련의 외교관이 동참하여 건국선포 날짜까지 조절하였다.
  • 지방은 각각 소련과 미국의 협조로 일본을 몰아내고 장악하였다. 각각 합의에 따라 철수시 모든 행정과 통행, 치안의 권리는 향후 건국될 국가에 이양하기로 한다.
  • 1947년 5월 5일 전국선거로 "새로운 조선사람의 국가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을 찬성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전국 국민투표의 98% 이상 동의를 얻어 국민의 대의적 정통성을 얻었으며, 몇달여 뒤인 1947년 8월 18일 명칭이 개정된 수도 "한경(漢京)"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선언과 국헌제정, 국민대회를 열며 조선인민공화국은 건국되었다.
  • 다음날인 1947년 8월 19일에 행정부가 출범, 20일에는 내각이 모두 입성해 처음 국무회의를 가지며 건국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립해있는 당파와 좌우간의 세력갈등은 내재적인 큰 문제였다. 특히나 주석인 이승만은 행정부의 내각도 맘에 썩 들지 않았고, 언젠간 좌익과는 결별해야 한다 생각하였으며, 특히나 여운형은 몰라도 박헌영은 꼴보기를 싫어하였다. 게다가 주석이라는 자신의 직책명도 별로 탐탁치 않아하기도 하였다. 이는 훗날 명칭을 바꾸는 이유중 하나가 된다. 김구는 좌우합작이라도 민족국가를 세운것에 안도하였으나, 좌익세력을 결코 신용하지 않았다. 좌익세력의 빅텐트라 볼 수 있는 여운형은 중재자를 맡으려 했으나 실질적 좌익의 총수인 박헌영은 암투를 해서라도 주도권을 잡고 싶어하였다.
  • 다음해 1948년 1월 20일, 경무청이 설치되다. 십일 뒤 30일엔 조선인민공화국 국군이 건군되다.
  • 1948년 2월에 양원제로 구성된 의회의 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공고되다. 이때 등록된 정당은 다음과 같다.

★는 선거연대

    • 조선공산당 (박헌영) ★(사회동맹)
    • 조선민주당 (조만식)
    • 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애국동맹)
    • 한국독립당(김구)★(애국동맹)
    • 조선인민당 (여운형) ★(사회동맹)
    • 조선국민당 (-)
    • 민중동맹 (김규식) ★(민족전선)
    • 대한민주청년동맹(백의사) (염동진)[1]
    • 신진당 (김원용)
    • 인민공화당 (김원봉) *항일투쟁계열
    • 조선신민당 (김두봉) *항일투쟁계열
    • 사회민주당 (여운홍)★(민족전선)
    • 조선애국부인회 (박승호)★(애국동맹)
    •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허성택) ★(사회동맹)
    • 신한민족당 (권동진)
    • 호국불자회 (한용운)
    • 조선예수회 (장길석)
    • 대종회 (강일심)
    • 증산법동 (심인성)
  1. 향후 강제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