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안 왕국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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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올리비안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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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니치 하파시 | 리바이 하파시 | → | 코스타 1세 | |
| 올리비안 왕국 2대 국왕 리바이 하파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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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호 | 리바이 Levi |
| 출생 | 1824년 10월 11일 |
| 포르투갈 제국 리스본(Lisbon) | |
| 사망 | 1896년 4월 10일 (향년 72세) |
| 오이리일라 왕국 오이리(Oiri), 마뮤트(Mammut) | |
| 묘소 | 마뮤트 사원 |
| 재위기간 | 올리비안 왕국의 왕세자이자 대행 |
| 1882년 2월 11일 ~ 1883년 1월 1일 | |
| 제2대 올리비안 왕국 국왕 | |
| 1883년 1월 1일 ~ 1896년 4월 10일 |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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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제2대 올리비안 왕국의 국왕이다. 1881년에 통과된 개헌안(초기 올리비안식 입헌군주제)을 토대로 왕실의 대부분 행정적 업무를 내각으로 이전한 이후에 즉위한 첫 번째 국왕인데, 상당한 정치적 분쟁에 휩싸였던 와중에 사랑하던 딸이 사고로 사망해 업무에 소홀해졌다. 위궤양으로 사망하였다.
평가
그는 아버지를 따라 리스본 대학을 졸업하여 훌륭한 학력을 보유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는 왕위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가 왕을 고집했을 때에는 그는 오히려 반대 의사를 내비쳤는데, 대학 시절 자유주의 사상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1883년, 즉위 당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다음 해의 환갑 잔치에 무려 당시 가치로 120억을 사용하였으며, 어릴 적 자유주의 사상에 빠졌던 것에 반하여 되려 왕실의 기능을 내각에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등 사치적이고 권위적인 삶을 누렸다. 그러나, 동시에 무관학교 설립, 근위대 설치, 대외적인 관계 조정 등 국방 및 외교 분야에서는 상당한 능력을 보였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금광 개발권을 왕실에 유리한 조건으로 매각 제의하였을 때 이를 거절하는 등 이권을 보호하는데 힘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유일한 늦둥이 딸마저 프랑스에서 사고로 사망하자 국정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시종을 막대하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스트레스성 위궤양이 뒤늦게 발견되었으나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 ↑ 포르투갈 재력가 딸이었으며, 시어머니와 다르게 왕실의 의무와 격식을 중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