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린트너 (치비스)

"Es ist besser, nicht zu regieren, als falsch zu regieren."
잘못 통치하는 것보다 통치하지 않는 것이 낫다.


독일연방공화국 연방총리

초대
콘라트 아데나워
제2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제3대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제4대
빌리 브란트
제5대
헬무트 슈미트
제6대
헬무트 콜
제7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제8대
앙겔라 메르켈
제9대 연방총리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연방공화국 제9대 연방총리
크리스티안 볼프강 린트너
Christian Wolfgang Lindner
출생
국적 독일의 기 독일
재임기간
제9대 연방총리
링크
상세정보 펼치기 ▾
부모 아버지 볼프강 린트너 (Wolfgang Lindner)
배우자 다그마 로젠펠트 (2011년 결혼; 2020년 혼인무효)
프랑카 레펠트 (2022년 결혼)
학력 본 대학교 (정치학 학사/석사)
종교 가톨릭 (냉담자)
정당 자유민주당
의원 선수 4 (하원)
지역구 비례대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경력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자유민주당 집행위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원
자유민주당 세대 간 문제, 가족 및 통합 대변인
자유민주당 사무총장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자유민주당 원내부대표
자유민주당 혁신, 과학 및 기술 대변인
제17대 독일 연방하원의원
가족, 이민자 통합 및 문화에 관한 실무 그룹 자유민주당 대표단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자유민주당 대표
제19·20·21대 독일 연방하원의원
자유민주당 원내대표
군사경력
복무 독일 공군 예비군 (2002년 ~ 현재)
최종계급 소령
최종보직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사령부 연락관

개요


독일연방공화국 제9대 연방총리 취임 선서

독일의 정치인, 제9대 연방총리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2021년 제20대 연방 총선에서 승리하며 자민당이 원내 제3당에 등극하자 캐스팅보드를 쥐게 되었고, 이례적으로CDU/CSU동맹 90/녹색당 3당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12월 8일 총리로 취임했다. 총리 취임 3년만인 2024년 12월 16일 연방 의회에서 불신임되었으나, 2025년 2월 23일 조기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생애

출생과 성장

1979년 1월 7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에서 출생했다. 부친 볼프강 린트너는 베르멜스키르헨 소재 시립 김나지움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1998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병역은 대체복무로 이행했다. 이후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1학기 만에 정치학 석사(Magister Artium)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시기에 독일 공군 예비군 장교로 임관했다. 2002년 예비역 중위로 진급했고, 2008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사령부 연락장교로 근무했다. 2011년 9월에는 예비역 대위로 진급했으며, 현재는 소령 계급을 보유하고 있다.

정계 활동

1995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1998년부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자민당 지도부 위원으로 활동했고, 2004년에는 주 사무총장에 선임되어 2010년까지 역임했다.

2000년 5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만 21세의 나이로 당선되며, 동 주의회 사상 최연소 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초선 이후 세대·가족·이민통합 분야 대변인을 맡았고, 2005년부터는 원내 부대표 겸 혁신·과학·기술 분야 대변인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2007년에는 자민당 연방 지도부 위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2009년 연방의회에 처음 입성했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자민당 연방 사무총장에 선임되어 귀도 베스터벨레, 이후 필리프 뢰슬러 대표 체제 하에서 당무를 총괄했다. 그러나 2011년 12월, 유럽재정안정기구 노선을 둘러싼 당내 유로회의론자 그룹의 압박으로 촉발된 당내 투표 국면에서 전격적으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2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주 자민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선거에서 자민당은 8.6%라는 예상외의 선전을 거두며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이 승리를 발판으로 주의회 원내대표에 올라 야당 생활을 이어갔다. 2013년 3월에는 자빈네 로이트호이서슈나렌베르거, 홀거 차스트로프와 함께 뢰슬러 대표 체제의 부대표단에 합류했다.

자유민주당 대표

2013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사상 최초로 5% 봉쇄조항을 넘지 못해 원외정당으로 추락하는 참사를 겪었고, 그 직후 책임을 지고 물러난 뢰슬러의 후임으로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자민당을 이끌고 있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는 네덜란드 총리마르크 뤼터와 함께 유럽자유민주동맹 내 후보 조율의 중재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5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에서 창업 실패 경험을 조롱하는 사민당 의원의 야유에 즉석에서 2분 30초짜리 반박 연설로 맞받아쳐 화제가 되었으며, 이 영상은 독일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2017년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자민당을 10.7% 득표로 원내 복귀시키는 데 성공,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그해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련·녹색당과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 협상에 돌입했으나, 4주간의 협상 끝에 자정을 넘긴 시각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판을 깼다. 이는 독일 현대 정치사상 가장 긴 연정 구성 과정으로 기록되었고, 결국 대연정(기민련-사민당)으로 귀결되었다.

2021년 총선을 앞두고 93%의 지지로 당대표에 재선되었으며, 총선 결과 캐스팅보드를 쥐게 되어 린트너 내각이 출범하게 된다.

독일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