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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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が選擧し
국민이 선거하고


國民を代表し
국민을 대표하고


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민본은 "만약 일본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성공하였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민본
民本
장르 대체역사, 동아시아사, 일본사
연재자 제리코
시작일 2023년 9월 28일
(시작일로부터 +278일, 0주년)
상징 색 빨간색 (#b0313f)
저작권 CC-0

개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國民が選擧し, 國民を代表し, 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사이토 다카오, 1940년 2월 2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연설 중

제리코의 장편 대체역사 세계관.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일본 제국과 그로 인해 달라진 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본 세계관 제목인 민본(民本)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일본에서 'Democracy'를 '민본주의'로 해석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세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통해 보여준
일본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은
군홧발에 짓밟힌 채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전체주의의 길을 선택한 일본은
스스로의 폭주하는 힘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그 힘에 의해 자멸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말입니다.

일본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성공했다면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1927년(쇼와 2년) 3월 14일, 재무대신 카타오카 나오하루가 모종의 이유로 중의원 예산위원회 참여가 늦어지며 '쇼와금융공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본래라면 무너져야 할 와카쓰기 레이지로 내각이 유지되고, 국내적으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국외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온건한 외교 정책이 지속되게 된다. 한편, 중국에서는 국민당의 제1차 북벌이 일본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순조롭게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온건한 정책에 불만이 많았던 군부, 특히 관동군은 국민당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결국 1928년(쇼와 3년) 6월 4일, 관동군은 정부의 허가 없이 국민당을 피해 만주로 가던 장쭤린을 암살하며, 만주를 손에 얻고자 시도한다. (황고둔 사건) 그러나 장쭤린의 아들인 장쉐량이 오히려 국민당에 가담하면서 관동군은 만주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이에 정부는 '황고둔사건 해결문서'를 발표, 사건의 모든 책임을 군부에게 돌리며 군부의 힘을 크게 축소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1930년대에 일련의 군부의 불미스러운 시도들이 전부 실패로 돌아가며 군부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결국 1947년(쇼와 22년) 5월 3일, 시데하라 기주로 내각은 '군부혁신법'을 통과하며 군부의 정치 개입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냉전 시기 동안 핵개발과 경제발전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일본은 1989년(헤이세이 원년) 10월 29일,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전환,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국가

대일본국

임의 시대는 천 대에 팔천 대에

조선인민공화국

조선 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1932년 사쿠라다몬 의거 이후, 일본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던 중국은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압박을 가하게 된다. 결국 임시정부는 금방 힘을 잃으며 유명무실해졌고, 독립 운동의 주도권은 좌익 세력의 연합체인 조선건국동맹에게 넘어오게 된다.

조선건국동맹은 1950년에 조선 독립 전쟁을 일으키는 등 무력 투쟁을 통해 일본에 대항하였고, 일본은 이에 조선의 독립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이는 1960년에 발생한 4.19 혁명을 일본이 진압을 실패하며, 끝내 독립을 인정받고 50년만에 독립을 이루게 된다.

중화민국

삼민주의는 우리가 따를 길

1928년, 국민당의 북벌이 성공하며 중국 대륙 여러 곳에서 나눠져 있던 군벌들이 모두 국민정부 휘하로 들어오면서 통일하게 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여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게 되며, 폐쇠적인 국가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1972년, 서방과의 화해 이후, 중국은 서방 세계에 다시 문호를 개방하며 역사상 유례 없는 성장을 이루게 된다.

1975년, 장제스 사후에도 국민당의 일당독재는 지속되었다. 결국 1989년, 소위 '천안문 혁명'이라 불리는 대규모 민주화 운동으로 옌자간 총통이 사임하며 중국은 끝내 민주화를 이룩하게 된다. 그러나 2013년에 취임한 시진핑 총통이 다시금 과거 일당독재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며 중국의 민주주의에는 다시 무너지고 있다.

대만국

온갖 고생을 이겨내며 산림을 일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대만도 일본에 대항하여 독립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의 강압적인 진압에도 불구하고 독립 운동의 열기는 점점 커졌고, 결국 1972년에 중국과의 화해 분위기를 만들던 일본은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대만의 독립을 승인하게 된다.

그러나 대만 독립 이후, 리덩후이는 경제 성장과 안보 위기를 내세우며 독재 정치를 하였다. 이에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매년 시위를 일으켰고, 1989년에 중국에서 천안문 혁명이 일어나자 그 영향으로 2000년에 끝내 민주화를 이룩하게 된다.

월남국

늘 푸른 역사는 대단히 빛나는 전공이라

연표

영향을 받은 매체

여담

  • 한동안은 일본만을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