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푸르 바크티아르

쿠리오 긴배 도프 공산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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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이란 제국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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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국 제36·37대 수상
샤푸르 바크티아르
Shapour Bakhtiar | شاپور بختیار
출생 1914년 6월 26일
이란 제국 샤레코르드
사망 1996년 5월 9일 (향년 81세)
이란 제국 테헤란
국적 이란
임기 이란 제국 제36·37대 수상
1979년 8월 20일 ~ 1990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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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시아파 이슬람교
소속 정당
의원 선수 8
의원 대수 ?
성향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 이란 국민주의

개요

이란의 제36·37대 수상. 1979년 이란 봉기 수습을 주도한 인물로, 민권법 제정과 복지제도 확립 등 각종 개혁정책을 밀어붙여 현재까지도 이란인들의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다.

생애

수상 이전

이란 수상

기자회견을 하는 바크티아르

중도 성향의 자유운동 측의 추천으로 수상에 임명된 바크티아르는 부패한 관료들과 인권 탄압을 자행한 공안 관련자들을 체포할 것을 팔라비 2세에게 요구하였고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팔라비 2세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또한 바크티아르는 민주화와 복지를 약속하며 성난 민심을 달래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팔라비 2세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정책 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전면적인 봉기의 영향으로 팔라비 2세가 홧병으로 쓰러지고 아들에게 양위하면서, 방해자가 사라진 바크티아르는 본격적으로 개혁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파라 황후는 정치적 감각이 떨어졌고 새로 즉위한 레자 팔라비는 아직 너무 젊었기에, 그에게 맞설 수 있는 세력은 봉기군 뿐이었다.

바크티아르는 진보 세력의 우상, 모하마드 모사데크를 의도적으로 언급하고 자신이 그의 노선을 계승하였다고 선전하여 진보 세력을 흡수, 좌익 계열 반군을 분열시켰다. 또한 주도적으로 부패 관료를 숙청해 팔라비 황조가 아닌 자신이 실질적 국가지도자라는 점을 보여주어 '팔라비 폭정 타도'라는 봉기군의 명분을 약화시켰다.

바크티아르는 제국근위대와 얼마 남지 않은 군 충성파를 규합해 봉기군 진압에 투입했고, 6월 7일, 테헤란 시내에서 봉기군을 가까스로 몰아냈다. 테헤란에서의 시가전이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고 민심이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작전 투입을 거부하며 사태를 관망하던 군이 다시 정부의 지시에 따르기 시작했다. 6월 19일과 28일, 봉기군의 거점이었던 쿰과 타브리즈가 차례로 함락되면서, 1979년 이란 봉기는 약 한 달 만에 일단락되었다.

이후 바크티아르는 봉기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는 동시에 팔라비 3세의 신임을 받으며 과거 자신이 공언했던 개혁정책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연금제도와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정치적, 사회적 통제도 점차 완화되었다. 한편으로는 도주, 은신한 봉기 주도자들을 체포하여 재판장에 세웠으며 투데당이슬람 혁명평의회를 해산시켰다. 하지만 봉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루홀라 호메이니는 체포하지 못했다.[1]

봉기가 진압되면서 이란은 안정을 되찾았다. 바크티아르는 팔라비 3세그의 부친와 같은 전제군주주의자는 아닐지 걱정하였으나 다행스럽게도 팔라비 3세는 의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였다. 바크티아르는 팔라비 3세와 함께 이란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기 위한 2차 백색혁명을 개시하였다. 이란을 현대화한 1차 백색혁명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정당활동이 자유로워졌고 언론의 비판 기능이 서서히 회복되는 등 2차 백색혁명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바크티아르는 옛 국민전선 소속 정당들을 모아 온건 사민주의 정당인 노동당을 창당하여 곧 있을 총선을 대비했다. 1986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 입헌당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바크타아르는 수상에 재취 바크티아르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수상 임명되었다는 정통성까지 거머쥐었다. 그는 4년 후 총선을 치룸과 동시에 은퇴할 것을 약속했고, 약속을 지켜 1990년 수상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은퇴 이후

평가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이란당 (국민전선) 1949 - 1979 정계 입문, 입당
무소속 1979 - 1988 탈당
1988 - 1996 창당

각주

  1. 호메이니는 프랑스로 도주했고 1984년 프랑스 낭트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실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