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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먹은 익평군, 근대화 성공한 대한제국이라는 뻔한 스토리
신미양요로 개항
개항하니까 나라 개판됨
개판인 상태에서 익평군 사망
이재성이가 서자꼬리표 때려고 개화파 지원
척사파 반란->당연히 실패
외지의 메이지 유신
청"점마 뭐하노" 조"알빠노", 한청전쟁->지겠노?
1차대전-신나는 독일 땅 뜯기(feat 다이닛혼제고쿠)
적백내전 연해주 압수
대공황과 신나는 개판5분 전
2차대전과 일본의 발광
리틀보이 2대와 승전(+ 신나는 대마도 압수)
국공내전이 공산당 북경 먹은채로 내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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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1910년대
- 이개똥이 1852년 8월 28일 태어난지 하루만에 사망하다.
- 강화도령으로 불리었던 불쌍한 철종 장황제가 1864년 1월 4일 승하하다.
- 같은날 목종 초황제 익평군이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1871년 6월 1일 신미양요가 터지다. 조선군이 역대급 대패를 당하다.
- 같은해 7월 3일 조선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수백년간 닫혀있던 항구가 마침내 열리다.
- 목종의 건강이 악화되다. 결국 경은군 이재성이 세자로 책봉되다.
- 조선이 헬게이트가 되다. 이런 상황에서 1872년 8월 14일 목종 초황제가 승하하다.
- 같은날 세자였던 이재성이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하다.
- 익조가 개화파를 지원하는 행보를 보이다. 프랑스, 일본, 영국, 러시아에게 차례대로 문을 열다.
- 1875년 4월 19일 최익현을 비롯한 척사파 관료들의 반란모의가 노출되다. 척사파가 대거 숙청당하다.
- 같은해 12월 9일 을해유신이 선언되다. 대대적인 근대화 작업에 돌입하다.
- 을해유신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보이자 익조의 자신감으로 1879년 5월 29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제로 칭제하다.
- 청나라가 칭제건원에 반발하여 한국에 조서를 보내다. 하지만 씹히다.
- 1880년 5월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철도인 경부선이 개통되다.
- 제1차 대한제국 국제가 1880년 6월 29일 반포되다. 이유원이 초대 의정총리대신에 임명되다.
- 1881년 최초의 민의원 선거가 한성에 한정되어 치뤄지다. 결과적으로 수구파가 승리를 거두다.
- 1882년 5월 경인선이 개통되다. 같은해 11월 경평선이 개통되다.
- 개화당과 광무제의 내각 흔들기에 이유원 의정부가 붕괴되다. 직후 열린 총선에서 김옥균의 개화당이 승리하다.
- 1885년 1월 10일 김옥균이 의정총리대신에 취임하다.
- 같은해 4월 29일 최초의 근대적 은행인 제국은행이 설립되다.
- 1886년 김옥균이 더욱 안정적인 근대화 추진을 위해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의회를 해산하다. 결과적으로 개화당이 다시한번 승리하나 오히려 의석이 줄어들어 이에 책임을 지고 김옥균이 의정총리대신에서 사임하고 1886년 3월 15일 홍영식이 의정총리대신에 취임하다.
- 1890년 제3대 민의원 선거가 치뤄지다. 최초로 전국적으로 시행된 총선에서 개화당이 아슬아슬하게 승리하다. 하지만 1년 뒤 홍영식이 괴한 김병수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으면서 이를 대신해 박영교가 총리에 취임하다.
- 1892년 1월 온건개화파들이 자유당에 대항하기 위해 단일대오를 형성하여 제국헌정회를 창당하다..
- 같은해 2월 총리 박영교가 의회를 해산하다. 헌정회에 유리하게 흘러간 선거전과는 달리 황제의 선거개입으로 개화당이 다시 한번 승리하다. 요양하고 돌아온 홍영식 전 총리가 재취임하다.
- 홍영식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다. 결과적으로 개화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홍영식 총리가 과로로 인하여 쓰러지면서 부총리였던 김옥균이 총리에 취임하다.
- 1895년 8월 한청전쟁이 발발하다. 1년 동안 지속된 전쟁끝에 대한제국이 압승하고 남만주를 차지하다. 남만주에는 임시적으로 군정이 실시되나, 1897년에 완전한 영토로 귀속되다.
- 한국이 남만주 먹는것도 빡치는데 직접 귀속시키려하자 러시아가 국경분쟁을 일으키다. 허나 영국이 개입하면서 일단락되다. 한영동맹의 시발점이 되다.
- 총리 김옥균이 의회를 해산하다. 하지만 헌정회가 개화당에게 전쟁광 프레임을 씌우면서 제국헌정회가 예상 못한 승리를 거두다. 김홍집이 총리로 취임하다.
- 김홍집의 전후복구 정책의 실패에 황제가 실망하다. 민심 또한 김홍집에게 고개를 돌리고 당내분란이 심화되자 김홍집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다. 헌정회가 역대급 참패를 거두고 외무대신 출신의 이완용이 총리에 취임하다.
- 연해주를 노리며 러시아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던 한국과 그냥 러시아를 개패고싶던 영국과의 합의점이 도출되며 한영동맹이 체결되다. 한국에 대한 야욕으로 러시아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가지던 일본은 지붕만 쳐다보다.
- 1902년 제국헌정회가 분당되다. 김홍집을 중심으로한 온건개화파가 일제히 탈당하여 민정당을 창당하다. 이에 이완용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자유당으로 당명을 바꾼 개화당이 승리를 거두다. 민정당과 헌정회의 대결에서는 민정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헌정회는 구석으로 찌그러지다.
- 1903년 이완용 총리가 황제와의 대담 이후 의회를 해산하다. 직후 열린 총선에서 자유당이 이상할정도로 크게 압승을 거두다.
- 1905년 자유당의 부정선거 의혹이 폭로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한성이 마비되다. 이완용 총리가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황제가 역으로 총리 이완용을 해임하고 자체권한으로 의회를 해산하다. 직후 열린 총선에서 자유당이 한성에서마저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 민정당이 집권하다. 이완용 총리는 일본으로 도주하다.
- 같은해 제국노동자협회가 창당되다. 직후 열린 총선에서 인천, 동래를 비롯한 대도시와 공단지역에서 승리를 거두다.
- 동시에 한화신민당이 창당되다. 직후 열린 총선에서 남만주 지역에 할당된 30석 중 20석을 모조리 휩쓸면서 최대 승자가 되다.
- 제국헌정회가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꾸다. 직후 민정당의 연립정권에 참여하여 경부대신을 차지하다.
- 1907년 은행 패닉이 발생하다.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잠시 국내 시장이 침체되다.
- 1909년 4월 23일 근대화를 이끈 익조 태황제가 심장마비로 붕어하다. 의회가 자동으로 해산되고 안정을 바라던 민심에 힘입어 민정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다.
- 같은해 4월 28일 고종 화황제(청류제)가 즉위하다. 국내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이 입헌군주제의 길을 걷게되다.
- 1911년 6월 의정총리대신 한규설이 의회가 가결시킨 학부법 개정안에 반발하여 총리직을 사임하다. 새로운 총리에 이용익이 옹립되다.
- 1911년 10월 신해혁명이 발발하다. 내각에서 북만주 지역에 군사파병을 고려하였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다. 특히 한화신민당에 의해 의회가 마비되는 진풍경이 펼쳐지다.
- 1912년 중화민국이 건국되다. 신해혁명에서 우왕좌왕하던 대한제국, 결국 별 다른 소득을 얻지는 못하다.
- 1913년 이용익 내각이 선후대차관 사건에 연루되다. 이에 야당들이 비도덕적이라며 극한으로 반발하자 역으로 의회를 해산하다. 선거결과 과반에 미달했지만 신민당의 도움으로 정권연장에 성공하다. 신민당, 경부대신과 더불어 학부대신까지 차지하다.
-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다. 한영동맹으로 한국이 동맹국에 선전포고하나, 이때를 노린 일본이 동맹국에 가담해 한국을 공격하다. 제1차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다.
- 뭐 대충 밀고밀리다. 전쟁 파트는 전적으로 에러에게 넘겨 에러가 분노하다.
- 1918년 1차 대전이 종전되다. 일본 역시 처참히 패배하여 항복하면서 한국에서의 총성이 멈추다. 일본은 대마도, 대만을 한국에 할양하고 류큐를 해방하며 구주를 비무장화시킴으로서 치욕의 항복을 하다. (배상금은 덤이다)
- 대만에는 남방총독부가 설치되다. 류큐는 왕국으로 독립하였으나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사실상 한국의 괴뢰국이 되다.
- 전쟁이 종전되며 의회가 해산되다. 워낙 대한제국이 크게 이긴지라 자유당의 전쟁광 선거전략이 처참히 실패하면서 민정당이 압승을 거두며 재집권하다.
- 1919년 3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조약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다. 규모가 너무 거대하여 일본과 한국 양국 모두 당황하다. 하지만 한국이 씹고 일본 당국이 이들을 공화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몰아 진압해버리면서 유야무야되어 버리다.
- 자유당이 너무 가혹한 처사라며 배상금 축소를 주장하다. 하지만 내각이 이를 씹고 또 의회를 해산하면서 자유당은 또 패배하다.
1920년대~
- 1920년 2월 4일 대한제국 의회가 의정부가 제출한 국제연맹 가입안을 가결시키다.
- 같은해 2월 28일 대한제국이 시베리아 출병을 감행하다. 연해주와 러시아령 만주 일대가 대한제국에게 넘어가다.
- 같은해 3월 5일 ㅈ선일보가 창간되다.
- 1922년 8월 노동자협회와 자유당이 공동으로 발의한 소학교 무상교육안이 가결되다. 문맹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다.
- 1923년 5월 6일, 임성 사건이 발발하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와 인질범들의 협상이 꼬일대로 꼬여 열강이 개입하고 나서야 풀리자 의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추락하다. 결국 임성사건이 종료된 다음날 이용익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다.
- 같은해 열린 조기 총선에서 자유당-사민당 연합이 승리하다. 1주일간의 연정 협상 끝에 사민당 의장이던 조소앙이 부총리를 맡고 남궁억 자유당 총재가 총리에 취임하다.
- 취임 직후 남궁억 총리가 주일제국군, 주유제국군을철군하다. 이에 불복한 군 내 극우파 인사가 7월 13일 한성역에서 조소앙 총리를 저격하려 시도하나 실패하다. 이는 차후 군 내 극우파의 대대적인 숙청의 명분이 된다.
- 1924년 현재 한성중앙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인 한성제국대학이 설립되다.
- 같은해 9월 13일 직봉전쟁이 발발하다. 이에 제국군을 북만주에 파견해 봉천군벌을 집어삼키고 만주의 지배권을 인정받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으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선거에서 패배한 자유당이 발작을 일으켜 실행되지 않다.
- 1925년 4월 17일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공산당이 창당되다.
- 같은해 같은날 남궁억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자유당 총재자리에서 사임하다. 뒤를 이어 취임한 이동녕 총리가 정국 안정화를 이유로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한번 연정이 승리하다.
- 같은해 5월 5일 본토에 거주하는 25세 이상의 모든 남성(대마도, 대만, 청도, 노령, 사할린인 포함)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다.
- 같은해 여름 을축년 대홍수가 터지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던 의정부는 시작부터 레임덕에 걸리다.
- 1926년 4월 5일 공산주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수원 경무청에 폭탄을 던져 8명이 죽고 5명이 다치다. 이를 근거로 자유당이 치안유지법을 제안하다.[1]
- 1926년 5월 28일 같은 연정인 사민당과 민정당, 심지어 총리인 이동녕마저 반대하는 상황에서 자유당이 신민당의 도움으로 치안유지법을 통과시키다. 이에 이동녕 총리가 사임 의사를 표했으나, 어째서인지 황제가 불허하다.
- 같은해 6월 10일 치안유지법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성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다. 같은날 사민당이 연정 탈퇴를 선언하고, 사민당과 민정당이 함께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다. 자유당 의원들이 단체로 이동녕 총리를 찾아가 계엄령 선포를 건의하나, 총리가 의회를 해산시켜버리다.
- 결국 열린 총선에서 자유당이 단 20석 밖에 얻지못하는 대참패를 당하다. 자유당의 텃밭에는 사민당이 자리를 잡았고 민정당이 압승을 거두다. 이떄부터 사민당과 민정당의 양당제가 시작되다.
- 사민당과 민정당이 합의하여 민정당 내 중도파던 안창호가 총리에 취임하다. 하지만 의정부가 조용히 치안유지법 관련 사안을 넘겨버리면서, 치안유지법이 1970년 국제 개정 전까지 살아남다.
- 1927년 2월 15일 민의원 내 민정당-사민당 의원들의 정책협의체인 신간회가 결성되다. 이들이 안창호 총리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다.
- 같은해 2월 16일 한성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하며 제국 내에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다.
- 같은해 5월 28일 안창호 총리가 1차 산동 파병을 결정하고 제국령 청도의 군 증강을 실시하고 산둥 내 일부 지역을 점거하다. 해당 군사들은 9월에 이르러서야 철군한다.
- 같은해 11월 5일 장제스-안창호 회담이 열리다. 안총리는 장제스를 극진히 대접했으나, 국민혁명 지원 부탁에 만주영유권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되다.
- 같은해 12월 30일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이자 제국 최초의 지하철인 한성 지하철 1호선의 한성역-청량리역 구간이 개통되다.
- 1928년 1월 16일 조선공산당 간부 10여명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지다. 조선공산당, 현재 태화도인 북해총독부로 본부를 옮기다.
- 같은해 4월 19일 최초의 한성 시내버스의 운행이 시작되다.
- 1929년 1월 13일 원산지역에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제 적용을 요구하는 대규모 파업이 시작되다. 사민당은 파업에 동참하고 지지하였으나, 민정당은 강경진압을 결정하다. 세계 각지, 심지어 남포와 인천, 동래등으로 파업이 번질 조짐까지 보였으나 3월을 기점으로 역량이 꺾이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하다.
- 같은해 3월 요동 / 서간 / 동간으로 단순화 되어있던 남만주 지역의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다. 이 과정에서 듣도보도 못한 지자체명이 생기다.
- 같은해 7월 대한제국군과 소련군이 노령부분 국경지대에서 소규모 교전하다. 양측이 사상자를 냈지만 양측의 합의로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다.
- 같은해 10월 24일 미국 증권가에서부터 대공황이 시작되다. 28일에 다시 상승세를 보였으나, 다시 폭락하여 대공황이 전세계로 번지기 시작하다. 이미 원산 대파업을 강경진압하여 지지세가 꺾인 안창호 의정부, 레임덕이 가속화되다.
1930년대~
- 1930년 1월 5일 안청호 총리가 담화에서 경제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의회해산을 약속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16일, 의회가 해산되다.
- 같은해 1월 30일 열린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하며 승리하다. 민정당은 예상대로 패배했으나, 안창호 총재가 신속히 사임하고 새인물로 교체한 덕분에 40% 이상을 건지며 예상외로 선전하다. 자유당은 뭐...
- 같은해 2월 10일 민의원에서 사민당 의장 조소앙이 총리로 지명되어 당선되다. 하지만 사민당 역시 답이 없는건 똑같아 지지율은 바닥을 돌다.
- 1931년 1월 1일 민의원이 일본에 대한 배상금 유예안을 가결시키다.
- 같은해 3월 제국은행이 파산하며 대공황이 가속화되다. 이로인해 조소앙 총리는 사실상 실권을 잃고 바지사장이 되었으며, 여운형 탁지대신 겸 의정부총리대신이 실권을 잡다.
- 같은해 9월 18일 일본군이 기습적으로 중국의 하이난을 점령하다. 하지만 일본과의 추가적 충돌을 원치않았던 한국은 대만의 지배권을 재확인하고 이를 묵인하다.
- 같은해 11월 8일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가 대한제국으로 망명하다.
- 1932년 4월 8일 조선공산당이 사회민주당 한성부관장과 사회민주당 안국지구당 관장을 포함한 한성지역 당직자들을 습격하여 7명을 사살하다.
- 같은해 7월 28일 한성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자와 그 가족들, 이른바 급료부대가 연금삭감에 항의하며 가두시위를 벌이자 안중근와 김좌진이 군 병력을 투입하여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로인해 조소앙 총리는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장났고, 여운형이 8월 15일 전권부총리대신이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전면에 서다.
- 1933년 1월 1일 여운형 부총리가 신경제정책을 실시하여 경제를 부흥시키겠다 약속하다. 또한 민의원을 1년 이내에 해산하여 해당 정책에 대한 심판을 받을것을 약속하다.
- 같은해 1월 8일 조소앙 총리가 사민당 의장직에서 사임하다. 또한 몇일 뒤 열린 임시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여운형을 사민당 의장으로 옹립하다.
- 같은해 2월 14일 여운형 전권부총리가 만주지역 개발계획에 서명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2일 대경유전이 발견되다. 대경유전을 비롯한 만주지역의 대규모 개발과 한반도 내 대규모 사업으로 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들다.
- 같은해 10월 29일 문화부 제국언어청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작하여 반포하다.
- 같은해 11월 4일, 의회가 해산되다. 여운형 부총리를 전면에 내세운 사민당과 이시영 전 법부대신을 전면에 내세운 민정당이 격돌하다. 결과적으로 신경제정책이 효과를 보임에 따라 호감을 얻었던 사민당이 아슬아슬하게 승리하다. 하지만 여운형은 정국의 안정을 이유로 본인의 총리 취임을 거부하고 조소앙을 유임시키다.
- 1934년 3월 1일 일본의 괴뢰국인 하이난 국가정부가 건국되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1차대전 당시 조약문을 재확인하고 하이난 국가정부를 승인하다.
- 같은해 4월 3일 신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총리직속 증권거래특별위원회가 설립되다.
- 1935년 1월 9일 의정부가 총리직속 공공사업촉진위원회를 설립하다. 이 덕분에 의정부의 신경제정책이 탄력을 받으며 더욱 대규모 사업들이 실시되다.
- 같은해 10월 1일 조소앙 총리가 의회해산 및 사임을 선언하다. 신경제정책 덕분에 경제가 회복됐다는 인식이 강했기에 민정당의 강경야당행보는 표를 얻지 못했고, 여운형의 사회민주당이 넉넉한 승리를 거두면서 집권하다. 또한 드디어 여운형이 의정총리대신으로 취임하다. 전권부총리라는 해괴한 직책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다.
- 1936년 3월 7일 비무장지대인 규슈에 일본군이 군대를 주둔시키다. 전쟁을 피하고자했던 내각에 의해 용인되고, 일본의 폭주가 가속화되다.
- 같은해 7월에서 9월 사이 병자년 포락으로 강원도 지역이 큰 피해를 입다. 이에 독일국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주독대한제국대사관을 통해 3만원의 성금을 보내다.
- 같은해 8월 9일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손기정이 금메달, 남승룡이 동메달을 획득하다. 이는 대한제국 역사상 첫번째 국제대회 메달이였다.
- 1937년 7월 7일 룽예자오 사건이 일어나다. 대한제국 의정부는 해당 사건 중재를 위해 중국과 일본의 타협안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이 타협안을 엎어버리면서 결국 중일전쟁이 발발하다.
- 같은해 8월부터 중일전쟁으로 대한제국 경제가 흔들거리고 민정당의 대여공세가 강화되자 점차 대한제국 역시 전쟁 준비를 해야한다는 여론이 우세를 이루다. 의정부는 경제회생이 우선이라며 군비증강설을 일축했으나, 김창암 민정당 총재를 비롯한 야당에서는 제2차 한일전쟁론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며 군비 증강을 주장하다.
- 1938년 1월 3일, 여운형 총리가 대정부질의에 참여하여 전쟁광이 틀렸음을 증명하겠다며 의회해산을 약속하다. 얼마 뒤인 1938년 1월 23일, 여운형 총리가 황제에게 의회해산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고 황제가 이를 재가하면서 의회가 해산되다.
- 같은해 2월 7월 치루어진 총선에서 8년 사민당 의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감+전쟁에 대한 공포 등등이 반영되면서 김창암 총재가 이끄는 민정당이 승리를 거두다. 다만 그리 압도적인 격차는 아니였기에 신민당, 한화신민당과 연립의정부를 출범시키다.
- 같은해 6월 13일 내각에서 대대적인 군비증강을 발표하다. 또한 일본을 견제하기위한 해군부 창설을 총리가 직접 제안하였으나, 육군과 야당의 반대로인해 무산되다.
- 1939년 7월 4일 김창암 총리가 "겨울이 오기 전에, 여름이 가기 전에 노령을 대한제국으로 만들라"라는 총리령을 내리면서 노령의 행정·정치·사법적 대한제국화가 시작되다. 이에 소련이 또 급발진을 하고 다시 한번 산발적인 교전이 일어나다.
- 같은해 9월 1일 독일국이 백색상황을 시작함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다. 요건 뭐 에러가 알아서 하겠지.
- 같은해 9월 3일 대한제국이 중립을 선언하는 한편, 김창암 총리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시경제체제로의 전환을 호소하다.
1940년대~
- 1940년 1월 8일 고종 화황제가 붕어하다. 전 신민이 눈물을 흘리며 비추를 누르다. 한편 황제의 붕어에 따라 의회가 자동으로 해산되면서 총선이 치뤄지게 되다.
- 같은해 1월 29일 치루어진 총선에서 집권 민정당이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다. 황제 붕어 총선인 만큼 워딩을 자제하고 분위기를 낮춘 민정당과 다르게 정권심판 프레임만으로 선거를 치루려고한 사회민주당이 패배했다는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편 이 총선은 전쟁 전의 마지막 총선으로 다음총선은 이로부터 6년 뒤인 1946년 치뤄지게 된다.
- 같은해 2월 11일 성명개명령이 발효되면서 대만총독부와 북해총독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한국식 이름이 강제되다.. 이를 거부할수 있었지만 사회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았다.
- 같은해 9월 17일 김창암 의정총리대신의 요청으로 제국익문사가 총리직할로 이동되다. 황제의 권한이 점차 축소되다.
- 같은해 11월 18일 잠시 정치는 접고 은둔 생활을 하던 조소앙 전 총리가 여운형계를 비판하며 삼균주의를 제창하다. 더불어 민족자결주의를 확장하여 비슷한 민족이 동등한 위치에서 민주적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공영주의를 주장하며 사회민주당을 한화신민당 외 노령인 민족정당을 합친 독립사회당으로 재편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까였다.
- 같은해 12월 7일 진주만 공습과 부산 공습이 일어나다. 이것도 에러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군사는 모른다.
196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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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오 황제시대
틀:역대 대한제국 황제 (오도루프)
개요
대한제국의 제6대 황제.
2021년 11월 10일 아버지인 공빈제가 췌장암 투병 중 사망하면서 2021년 11월 15일에 35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즉위 당일인 11월 15일, 김무성 의정부가 임시 각료회의를 열어 새로운 연호를 양평(良平)로 결정했다. 양평 시대는 2022년 1월 1일 0시부터 시작되었으며, 전례에 따라 양평제로 불릴 예정이다.
여담
- 동생인 경환공주와 동일하게 태어날때부터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금발머리와 벽안을 가지고있다. 이로인해 국내외적으로 어머니인 수경귀황후가 서양인과 불륜을 통해 나은 자식이라는(...)루머가 돌았으나 수십차례의 검사를 통해 완벽한 루머로 밝혀졌다. 오히려 본인은 이로 인해 이득을 보고있는데, 상당한 동안에 훈남인데다가 황제라는 타이틀에 금발벽안을 가지고 있어 서양권에서의 인기가 꽤나 높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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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시절 황태자비 안씨[2]와 데이트를 즐기는 양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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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자 시절부터 소탈한 모습으로 상당히 화제가 되었었다. 작성 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다.
노회찬
틀:역대 대한제국 의정총리대신 (오도루프)
킹무성
틀:역대 대한제국 의정총리대신 (오도루프)
대한제국 제35대 의정총리대신 김무성 金武星 | Kim Moo-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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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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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출생일과 나이 (오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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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동래시 용당동 (現 경상남도 동래시 남구 용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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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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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영등포방 여의도동 대우트럼프월드1차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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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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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상임고문 제53대 민의원 의원 민정당 동래시 제7선거구 지역위원장 김영삼민주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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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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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대 의정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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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9일 ~ 2021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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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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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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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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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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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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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용주, 어머니 강신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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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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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김문희, 형 김창성[6], 김남성[7][8] 남동생 김남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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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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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옥[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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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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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1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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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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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국민학교 (졸업) 경남중학교 (졸업) 중동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경영학 /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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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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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법명: 인득)[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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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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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민정당 (오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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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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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무회 (최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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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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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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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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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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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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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동래시 제7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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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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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 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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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상구
틀:역대 대한제국 의정총리대신 (오도루프)
대한제국 제34대 의정총리대신 윤상구 尹商求 | Yoon Sang-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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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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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출생일과 나이 (오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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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안국방 삼청동 (現 한성부 종로방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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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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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영등포방 여의도동 대우트럼프월드1차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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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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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상임고문 제53대 민의원 의원 민정당 아산시 지역위원장 해위 윤보선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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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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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대 의정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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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9일 ~ 2021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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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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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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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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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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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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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윤보선, 어머니 공덕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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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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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누나 윤완구, 윤완희 남동생 윤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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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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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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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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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1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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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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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hool for the Talented and Gifted (졸업) 시러큐스대학 건축학과 (학사·석사)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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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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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예장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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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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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민정당 (오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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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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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무회 (최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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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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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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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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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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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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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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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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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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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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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中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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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
노무현
틀:역대 대한제국 의정총리대신 (오도루프)
대한제국 제29대 의정총리대신 노무현 盧武鉉 | Roh Mo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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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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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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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30 (現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봉하로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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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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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향년 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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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군 물금읍 경남동래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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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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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35 (본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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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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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대 의정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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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9일 ~ 2006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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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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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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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노씨[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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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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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판석, 어머니 이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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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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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 노영현, 차형 노건평 누나 노영옥 이복누나 노명자 이부누나 김선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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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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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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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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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노건호, 딸 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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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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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대창국민학교 (졸업 / 35회) 진영중학교 (졸업)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 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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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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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종교 (무신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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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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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사회민주당 (오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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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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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정치연구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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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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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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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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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1, 42, 43, 44, 45, 46,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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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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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시 제9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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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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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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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틀:역대 대한제국 의정총리대신 (오도루프)
대한제국 제27대 의정총리대신 정주영 鄭周永|Chung Ju-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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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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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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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 (現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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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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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21일 (향년 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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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송파방 풍납동 한성중앙병원 (現 한성부 송파방 풍납동 한성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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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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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의정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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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30일 ~ 1996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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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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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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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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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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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봉식, 어머니 한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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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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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정인영, 정순영, 정세영, 정신영, 정상영 여동생 정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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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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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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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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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정몽필 차남 정몽구 삼남 정몽근 장녀 정경희 사남 정몽우 오남 정몽헌 육남 정몽준 칠남 정몽윤 팔남 정몽일 차녀 정정인 삼녀 정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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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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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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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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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종교 → 개신교 (예장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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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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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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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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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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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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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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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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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통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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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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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cm, 72kg, O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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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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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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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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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峨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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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관악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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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카게사가시의 시간은 2024년 1월 1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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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과거의 족쇄를 끊고 저 흉악무도한 자들을 파멸시키자 제31대 총선 당시 자유투쟁당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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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진리대학
옴진리풀동네대학교 옴眞理풀동네大學校 AUMSHINRI FULLTONGNA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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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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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耳(천이) · 他心(타심) · 宿命(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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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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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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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진리를 선교할 세계대표 진리 특성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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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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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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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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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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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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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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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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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 4년제 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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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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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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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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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빈라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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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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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초월세계진리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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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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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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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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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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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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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명 (2023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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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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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명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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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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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명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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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본역량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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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재정지원 미선정 대학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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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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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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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각주
- ↑ 하지만, 그저 추정될뿐이며, 당시에는 자작극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을정도로 민심이 안좋았다.
- ↑ 현 장운황비
- ↑ 함남 정평문중(定平宗中) 74세 회(會) 항렬.
- ↑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무신론자라고 밝혔다.
- ↑ 삼현파(三賢派) 22세손, 수로 70세손 '坤'자 항렬이지만 남동생 김남곤씨와는 다르게 항렬자를 쓰지 않는다. 다만 족보명은 김무곤(金武坤)이다. 아버지인 김용주는 수로 69세손 '容'자 항렬이고 아들인 고윤(본명은 김종민)은 수로 71세손 '鍾'자 항렬이다.
- ↑ 前 전남방직 회장.
- ↑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 ↑ 누나와 형들은 아버지의 전처 소생이며, 김무성 본인과 동생은 아버지의 후처 소생이다.
- ↑ 崔陽玉. 1957년 12월 4일생. 전주 최씨로 최치환 전 공보실장의 딸이다. 직업은 피아니스트이며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피아노페다고지학과 부교수이자, 한국음악협회의 부이사장이다.
- ↑ 2020년에 잠깐 사랑제일교회에 출석하였으나, 개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 광주군계 매죽와공파 31세 ○현(鉉) 항렬..
- ↑ 공식적으로 무종교지만, 종교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시절에는 봉하마을 집 근처의 절 정토원에서 주로 공부했다고 전해지며, 이 때 불경도 틈틈이 외웠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인 문재인을 불교적 용어인 도반(道伴)으로 칭하기도 했고, 이후 변호사 시절에 정신적 지주라고 불리는 송기인 신부와의 인연으로 당시 송기인 신부가 주임 신부로 시무하였던 부산 당감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 때문인지 신앙 생활은 커녕 성당에 몇 번 가지도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대통령 시절에는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프로필에도 '무교'라 적혔지만, 불심이 깊은 영부인을 따라 해인사를 방문하는 등 불교적인 활동을 몇 번 한 적은 있었다. 참고로, 사망하기 직전에도 사시를 공부했던 봉화산 정토원에서 위패에 예를 표하기도 했으며, 장례식 때 해인사의 스님들이 조문을 오기도 했다.
- ↑ 현 국민참여연구원
- ↑ 현재 기준으로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지만 애초에 그 시기는 무학도 많던 시기였다. 이후 고려대, 서강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 ↑ 동래공파-주부공파 30세 섭(燮) 항렬.
- ↑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명을 한자가 아닌 한글로만 표기할것을 고집한 최초의 원내정당이다. 다만, 보다시피 순한글이 포함되어있었진 않았다.
- ↑ 당지도부부터 의원들까지 대다수가 한성중앙대생이거나 한성중앙대 졸업생이였기에 한성중앙대 관악캠퍼스 코앞에 당사를 임대하여 사용하였다.
- ↑ 창당 직후부터 문화적으로 당대 주류 좌파정당들보다 자유로울것을 주장했으며, 제3차 자유투쟁 이후 신좌파적 노선이 완전히 확립되었다.
- ↑ 국제 개헌을 통해 황제의 권한만 축소하자는 온건파부터 황실 폐지를 주장하는 대한공산당 출신 인사까지 폭넓게 분포하였다. 다만, 후자의 경우 당 밖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 ↑ 휴학생 144명 미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