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빌레펠트)

공지
| 빌레펠트 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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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공화국
Українська Республіка
Ukrainische Republik
국기 국장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영웅들에게 영광을!
Слава Україні! Героям слава!
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
국화 해바라기, 유럽백당나무, 버찌
국조 홍부리황새(비공식)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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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1월 20일 건국
1918년~1934년 경제개발 4개년
1941년~194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1953~1958 우크라이나 문화대혁명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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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키이우
최대 도시
면적 825,333km²[1]
접경국 러시아
벨로루시아
자캅카스-볼가 연방 공화국
조지아
도나우 연방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2]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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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65,701,739명 (2024년)
인구 밀도 73명/km2 (2024년)
출산율 1.00명 (2023년)
기대수명 73세 (2020년)
민족 구성 우크라이나인 77%, 러시아인 17.3%, 벨라루스인 0.6%, 기타 5.1%
공용 언어 우크라이나어
종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분포 정교회(61%), 가톨릭(11%), 무교(9.5%)
자국군 우크라이나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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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특별시 30주, 1특별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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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이원집정부제, 단원제
민주주의 지수 7.82점 | 결함 있는 민주주의
대통령
(국가원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총리
(정부수반)
데니스 시미할
최고 라다 의장 루슬란 스테판추크
여당 인민의 종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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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명목)
$1조 5,942억/ 세계 16위(2024년)
1인당 $30,249/ 세계 37위(2024년)
GDP
(PPP)
$2조 8,051억 / 세계 15위(2024년)
1인당 $36,148 / 세계 36위(2024년)
무역 수입량 $2,866억(2020년)
수출량 $2,955억(2020년)
외환보유고 $3,610(2016년)
신용 등급 무디스 Aa3 (2021년 5월)
S&P AA- (2021년 4월)
Fitch AA- (2023년 3월)
공식 화폐 오이로파 (€)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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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도량형 SI 단위
시간대 UTC+02:00(서머타임 적용 시 UTC+03:00)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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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1917년 12월 21일
국제연합 가입 1945년 10월 24일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주한대사관 / 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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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한성부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로45길 21
ccTLD
.ua
국가 코드
804, UA, UKR
전화 코드
+380

개요

8K로 촬영된 우크라이나의 모습

우크라이나국(Українська Держава), 약칭 우크라이나(Українська)는 동유럽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수도는 키이우.

1917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독일에 의해 러시아에게서 독립했다. 신생 공화국인 우크라이나의 권력을 잡은 스코로파즈키는 경제개발 4개년 계획을 통해 유럽의 빵바구니로 부상한 우크라이나 경제의 근간을 다졌으나, 그의 정부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내부 민족 갈등을 비롯한 잡음이 끊이질 않았고, 1934년 스코로파즈키 본인이 암살 당하면서 무너졌다. 이후 1941년 러시아가 바그라티온 작전을 전개하며 제2차 벨트크리그에 뛰어들자 내부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던 우크라이나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이때 우크라이나 망명 정부를 이끈 바실 비시바니가 우크라이나의 영웅으로 급부상 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키이우 봉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내군의 저항이 지속되었으며 자유 우크라이나군과 독일군의 반격으로 44년에 우크라이나 서부가, 45년 초에 동부가 해방되었다. 전후 우크라이나는 돈-쿠반을 비롯한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의 거대한 영토를 할양 받았으나 오데사를 비롯한 루마니아 쪽의 영토분쟁 지역은 할양 받지 못했다. 이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루마니아 간의 국경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실 비시바니의 암살 이후 뱌체슬라프 프로코포비치가 당선되었으나 처참한 국정 실패로 민심을 크게 잃었고, 이는 러시아의 점령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 지하국의 일원으로 국내군을 이끌었던 극단주의자 스테판 반데라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반데라의 정부는 성공적인 전후복구로 동유럽의 강자로서 군림하고 있는 현재의 우크라이나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우크라이나인 민족 국가 형성을 위한 러시아 문화의 축출, 우크라이나 문화 형성이라는 목적의 우크라이나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그 영향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 오데사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인정했을 시 862.810km²
  2. 오데사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했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