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위키 혁명 사상 evewiki Revolutionism | |
---|---|
발간일 | 2022년 8월 30일 (사상 개론) 2023년 3월 18일 (사상 선언) |
영향 받은 사상 | 후기 구조주의
|
영향을 받은 사상가 | [ 펼치기 · 접기 ]
|
저자 | 공산1968 |
언어 | 한국어 (표준어, 문화어) |
개요
공산1968이 주창한 정치적 이념으로, 제이위키와 이브위키, 나무위키 등 다양한 위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현상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창시되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영향을 받아 작성되었다. 사상적 기반으로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에티엔 발리바르 등 포스트 마르크시즘을 두고 있으나, 사회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사상에 더 가깝다.[1]
한국어 판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이브위키 혁명사상에 근거하여 설정계 위키에서의 계급 투쟁을 완수하고 평등한 인터넷 공산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20세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아나키즘, 룩셈부르크주의, 트로츠주의 등 각종 이론들이 실패한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21세기적 인터넷 마르크스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계급 모순에 대항하여 일어선 프랑스 혁명, 1848년 유럽 혁명, 파리코뮌, 러시아 혁명, 68혁명, 동유럽 혁명 등 국외 무산 계급의 투쟁과, 임오군란, 동학 농민혁명, 3.1 혁명, 원산 총파업, 6월 혁명,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국내 무산 계급의 투쟁을 계승한다.
인터넷 시대의 계급론
인터넷은 하나로 규정된 이데올로기의 장(場, champ)이 아닌, 유동적으로 관계가 형성되었다 흩어지는 액체근대(liquid modernity)의 장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의 특성은 비슷한 관심사,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문화적 코드를 가진 이들의 연대를 부추겼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 공동체에서는 일종의 생산수단이라 할 수 있는 서버의 통제권을 지닌 유산 계급과, 서버의 이용자인 무산 계급이 분리되는 양상을 보였다. 즉 인터넷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관리자로 대표되는 유산 계급과 이용자로 대표되는 무산 계급의 끝 없는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포스트 자본주의(post-capitalism)의 시대에 무산 계급은 유산 계급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를 이미 손에 넣고 있다.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가 자신의 저서인 <제국>(Empire)에서 명시하였듯, 포스트 자본주의의 시대의 생산-소비 매커니즘은 유산 계급이 투자하는 가치는 물론 무산 계급의 소비에 의해 창출되는 가치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무산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시에 소비계급, 혹은 베블런(T. Veblen)이 이름붙인 유한계급(leisure class)이기도 하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자본을 충분히 소유한 중상류 부르주아 계층에서만 발생한다고 분석하였으나 오늘날 무산 계급은 가치를 창출함과 동시에 그것의 가장 큰 소비자로서 동시에 유한계급으로서도 존재한다.
이처럼,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원동력은 자본주의에 의해 희생되는 무산-유한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서 인터넷의 장에서 인터넷 공동체의 가치는 유산-관리자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글을 쓰고, 설정을 작성하는 식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무산-이용자 계급에서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 매커니즘의 작동은 유산계급의 억압과 통제가 아닌 무산계급의 자발적 체제 안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한 안위가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타파하여 공산주의를 무산-이용자 계급에 "위치"시키는 것을 계급투쟁의 기본 전제로 삼는다.
인터넷 공동체의 행위자 연결망
카를 마르크스는 일찍이 유물론을 통해 인간과 타자의 관계맺음에 훌륭한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의하면 본래의 자연물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나, 인간의 손길(생산과 노동)을 거치면서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이브위키 공산주의 동맹은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을 계승하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한계성을 인정하는 한편 잠재성을 확장시킨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을 추구한다.
들뢰즈(G. Deleuze), 가타리(F. Guattari), 라투르(B. Latour) 등의 선대 사상가들은 횡단성(transversality)을 기반에 둔 신유물론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통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주체들이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지 밝혀냈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주체는 그 자체로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주체는 원자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이며, 그것 그 자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들은 다른 주체와 특정한 관계를 맺음에 따라 특정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거듭난다. 인터넷 시대에 서버, 이용자, 관리자, 글, 설정은 각자 떨어진 존재로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나 서로가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위키라는 장을 이룬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시피, 특정한 주체의 본질은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자와 맺는 상호적인 관계에 따라 도출되는 것이다.
특히 액체근대로 흔히 묘사되곤 하는 인터넷 공동체에서 이러한 행위자 네트워크의 횡단성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다. 뒤르켐(E. Durkheim)의 이론에 따르면 집합의식의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짐으로 개인에 우위하는 공동체의 가치를 구성원에 되세겼으나, 액체근대의 사회에서 이러한 결속의 이데올로기는 약화되고 오로지 자본주의 매커니즘에 의해 형성된 경쟁-갈등적인 이데올로기만이 존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결속력은 약화되었으나, 행위자 네트워크를 통한 개개인의 산별적 상호 연대는 이를 극복할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따라서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기보다도 행위자 네트워크를 통한 개인의 상호 연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개인간의 위계 질서는 타파되어야하며, 개인의 파편화를 부추기는 그 어떠한 시도도 배격되어야할 것이다. 집단의 결속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간의 연대를 중심으로 혁명을 완수한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가장 혁명적인 행동이 가장 개인적인 행동이라고 감히 선언한다.
호명 이데올로기
허나, 이러한 개인간의 상호 연결이 현재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계급적 모순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액체 근대의 사회에서 집단을 결속하는 이데올로기는 퇴색되는 경향은 있지만,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매커니즘 그 자체에서 도출되는 일정한 생활의 양식이 이데올로기화되어 개인을 호명(interpellation)하기 때문이다. 호명은 일종의 세뇌 혹은 낙인과 같은 것으로, 개인의 생활 양식이나 일상적인 삶 속에서 개개인을 자기도 모르는 새 이데올로기의 객체로 전락시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 Adorno)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도구적 이성(instrumentellen vernunft)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도구적 이성의 시대에, 이성이 본래 하는 기능이었던 비판과 진리 추구는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에 의한 수익성 추구만이 이성이 하는 유일한 기능이 되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포스트자본주의 인터넷의 시대는 비참하기 그지 없다. 제이위키와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는 합리적인 비판 능력을 상실한 채 미시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장으로 전락했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그러한 제이위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도구적 이성의 폐혜를 극복하고 정당한 이성에 따라 비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위키의 이데올로기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작금의 위계적 포스트자본주의를 인터넷에서 축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금권주의를 바탕으로 인터넷을 오로지 유흥의 수단으로만 전락시키고 있으며, 도구적 이성을 상실시킨다. 이런 생활 방식은 자본주의에 의한것이며 자본주의를 무너트리지 않고서야 타파될 수 없다.
고로,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비판적 이성을 기반에 둔 인터넷 행위자 네트워크를 건설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것을 투쟁의 일차적 목표로 해야할 것이다.
혁명 도구로서의 세계관
이브위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과 세계관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집합이자, 사회 관계 속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아상블라주(assemblage)로서의 세계이다. 세계관은 현실 세계와 분리된 가상의 세계가 아니다. 세계관은 설정을 통하여 현실 세계의 각종 주체들을 재배치한, 독립적 배치(아장스망; agencement) 구성의 또다른 세계이다.
이러한 아상블라주로서의 가상 세계는 두가지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세계관은 현실의 존재들을 재배치한 것으로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사회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만든다. 이로서 세계관은 그 자체로서 역사를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기반이 된다. 두 번째, 세계관은 일종의 예술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루카치(G. Lukacs)에 의하면 예술품은 그 자체로서 휴머니즘성을 갖추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인간의 본연 감성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도구적 이성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휴머니즘을 사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세계관은 그 자체만으로 자본주의의 도구적 이성에 싸우는 무기가 되어주며, 또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 무산 계급의 해방을 부추기는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이러한 세계관의 특성을 이용하여, 무력적 혁명 뿐 아니라 문화 헤게모니 쟁취를 통한 혁명 역시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의 논리인 상업화에서 벗어난 세계관의 독자적 예술성이 요구되며, 또한 보편적 인본주의 추구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세계관은 각기의 방식으로서 도구적 이성을 타파하고 행위자 네트워크 촉진을 지향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의 목표는 이러한 세계관의 활동 자체가 무산 혁명의 도구가 됨을 인지하고, 창작 활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상호교차성의 마르크스주의를 위하여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현대 포스트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불평등과 차별을 정의내리기 위해 탄생한 용어이다. 마르크스주의 고전적인 갈등론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항대립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지만, 오늘날의 세계는 이러한 이항대립으로 해석되기 어렵다. 상호교차성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런 한계성을 극복하여, 사회의 각 주체들이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받지만, 그런 차별의 기반에 존재하는 공통된 요인, 즉 “교차성”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지방 거주민이라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서버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이용자 계급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각 주체들은 제각기의 이유로 부조리를 겪고 있다. 이러한 투쟁을 파편화시켜서는 안된다. 남이 겪는 차별이 나의 차별이고, 내가 겪는 차별이 남이 겪는 차별과 “교차”한다는 생각 하에 우리 사회의 각 주체가 단결하여 자본주의의 계급성에 맞서는 총체성(totality)의 투쟁이 요구된다.
이브위키의 이용자 뿐 아니라, 제이위키의 이용자, 나무위키의 이용자, 노동자 계급과 농민 계급, 소수 인종, 소수 성별, 그 외의 모든 “소수”들과 연대하는 소수-되기의 과정을 통하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의 전선을 구축해야한다. 이브위키를 포함한 모든 인터넷, 모든 세계, 모든 공간,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차별의 매커니즘은 이러한 혁명의 과정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상호교차성의 마르크스주의를 통하여 건설할 사회는 그러한 차별 받는 자들의 사회, 즉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서 가지는 특징 외에 그 어떠한 가치도 표방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존재들이 교차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노마디즘적 사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장의 아래에서 단결된 민중의 대오는 공산주의를 달성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이상의 건설을 위해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모든 이용자들의 평등을 지향하며 그 어떠한 독재적 억압과 위계 질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 이브위키 공산주의자 동맹은 자본주의의 족쇄를 끊고 평등한 민주 사회를 앞당기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이용자의 해방이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한다. 이용자 계급이 혁명 사상을 통해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문화어 판
해설
이브위키 혁명 사상은 기본적으로 관리자 계급이 이용자 계급과 유리되어 부르주아지화됨을 크게 경계하고 있다.
유물론적 사관에 따라, 인터넷은 점차적으로 개인만이 존재했던 기초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뭉친 PC 통신으로, 그리고 더욱 더 많은 개인이 뭉친 게시판으로 발전해왔다. 이 과정 속에서 정보 전달을 목표로 하는 위키는 자연스럽게 외부로부터의 반달을 막기 위해 관리자 계급을 창시하였다.
관리자 계급은 그 존재 이유상 이용자 계급의 총의(總意)를 대변하는 기구로서 기능해야했으나, 관리자 계급은 그 특성상 이용자 계급 위에 있는 특수 계급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우선 위키 관리자들 스스로가 특수 권한을 가짐에 따라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또 큰 위키일수록 개개인의 사정보다는 위키의 안정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의 목소리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을 제어할만한 시스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제이위키 같은 곳은 유기명 투표라는 치명적 시스템으로 인해 관리자의 투표 마저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위키에서, 관리자는 계급화되어 부르주아와 같은 지배 계급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용자 계급과 관리자 계급의 유리는 총 3가지로 해결할 수 있다.
- 위키의 주인은 명백하게 이용자 계급에게 있다. 왜냐하면 위키라는 곳에서 이용자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산수단은 이용자에 있는 것이고 관리자는 이를 감독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용자 개인의 자각만 있다면 충분히 관리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관리자가 일을 잘한다고 무책임적으로 그들의 흠결마저 덮어주는 이른바 룸펜 이용자들 역시 경계하여, 지속적으로 관리자들을 감시하고, 그들이 잘못한 것은 명백하게 비판하는 비판 의식의 함양이 있어야한다.
- 물론 자기 함양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관리자들을 견제할만한 합당한 제도 역시 있어야한다. 특히 제이위키의 관리자 유기명 투표라던가 고무줄식 잣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이용자 계급의 강력한 요구, 즉 혁명으로서 이뤄져야한다.
이를 통해, 이용자 개인은 자신이 위키의 주인임을 자각해, 위키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후원 같은 것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다. 또한 관리 구조가 투명해질수록, 위키의 운영에 딴지를 걸 일도 많아지므로, 운영은 더욱 민주적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위키라는 자각 하에서 위키에 대한 충성심은 더욱 높아지며, 자신의 문서를 보람차게 가꿀 수 있게 된다.
즉, 혁명 사상의 목표는 인터넷이 궁극적으로 신도 주인도 없는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연합인 최종적인 역사적 과정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있다.
비판
비판적으로 이 ≪ 이브위키 혁명사상 ≫을 볼때에, 이론의 핵심인 "리용자 계급과 혁명사상의 관계"에 있어서 "리용자가 창작의 자유를 쟁취할 이유 제공"의 근거가 미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오.
룸펜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창작의 자유 쟁취라는 것을 납득하려면 자신이 "벼랑 끝"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그들을 계몽시킬 방법이 필요하오. 이는 방법론적 미비함이오. 또한, 리론적 미비함으로는 그들이 창작의 자유를 쟁취함으로서 얻는 "리용자의 결론적 리익"이 <<관리자 계급으로부터의 완전 해방>> 뿐만 있다는 것이 문제요. 관리자 계급으로부터의 해방이 "일시적 해방"이 아닌, "영구적 해방"이 되기 위해서 <<권력의 완전분배>>로서 관리자 계급의 존재이유를 없애야 할 근본적 목적성 까지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리조니, 2022년 8월 30일의 서신 中 |
관련 문서
여담
- 이브위키 소비에트에서 강령으로 공인되었다.
- ↑ 이는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을 표방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