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


제1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1]
2022년 5월
1회 중선
1917년 N월
2회 임중선
투표율 140% ▲14.4%p
선거 결과
width=100%
정당 지도자 의석 비율
서재필 31석 62.0%
박제순 10석 20.0%
황현 3석 6.0%
무소속 - 6석 12.0%

1.개요

대한민국의 첫 중추원 의원선거. 제1회 중추원 의원을 선출했다. 한국 욕사상 최초로 민쥬적 방법으로 공직자를 선출한 사례다.

2.배경

1884년 갑신혁명으로 구성된 개화정부는 자유민주적 선거를 통한 의회인 '중추원'을 구성하여 의회민주주의의 도입을 공언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전란과 백성들의 개화 사상에 대한 반발, 그리고 개화정책의 추진을 위한 권력집중에 대한 필요로 인해 개화정부는 중추원의 구성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1898년부터 개화정부는 백성이 의회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를 확인할 겸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했다.[2] 이후 4년마다 치러진 선거를 통해 개화정부는 미흡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성하였다.

1902년에는 처음으로 임시중추원 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임시중추원이 구성됐으나 이는 사실상의 과두정 기관으로, 현대적 의회와는 거리가 먼 조직이었다. 개화정부와 임시중추원은 여러 차례의 초안 변경을 거쳐 1913년에 마침내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였고 이듬해인 1914년에 첫 중추원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3.선거제도

  • 선거구
    제1회 총선의 선거제는 50석 전체에 대한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로, 전국을 유권자수애 비례한 50개의 선거구로 나누어 각 선거구에서 의원을 1인씩 선출하였다. 대부분의 의석은 후술할 선거권 부여 대상의 한정으로 인해 도시 지역에 집중되었다. 50석 중 35석은 도시 지역에, 15석은 농촌 지역에 배정되었다.
  • 선거권
    선거권은 대한민국 국민 중 매년 5원 이상의 직접세를 국가에 납부하는 20세 이상의 남성에게 부여되었다. 피선거권은 대한민국 국민 중 매년 10원 이상의 작접세를 국가에 납부하는 25세 이상의 남성에게 부여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과 중산층 이하의 국민에게는 참정권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전체 성인의 약 4%만이 선거권을 가졌다.

4.결과

선거 결과, 개화당은 전체 50석 중 31석을 얻어 압도적 과반을 확보하였다. 특히 도시 지역의 35석 중 31석을 당선시켜 도시 지역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농촌 지역구에서는 단 한 석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따라 개화당은 제2차 서재필 내각을 단독으로 구성하여 출범시켰다.

보수당은 총 10석을 당선시켜 제1야당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도시 지역에서 35석 중 4석을, 농촌 지역에서 15석 중 6석을 확보했다.

성리학 전통주의 정당인 대성회는 농촌 지역에서 3석을 확보하였으나 도시 지역에서는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한편 농촌에서는 지역 유지 출신의 무소속 후보들이 6명 당선되었다.

5.여담

6.각주

  1. 실질적으로는 1911년에 치러진 제6회 임시중추원 의원 선거
  2. 도급이 아닌 군급의 행정구역에서만 실시되었으며, 군의회의 의원만을 선거하였다. 군의회에게는 군판리 선출권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