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총리대신 | |||
---|---|---|---|
[ 펼치기 · 접기 ] |
차이윈성 관련 틀 | |||||||||||||
[ 펼치기 · 접기 ]
|
만주국 제3대 총리대신 차이윈성 蔡運升 | Chai Winsyeng[1] | |
---|---|
출생 | 1879년 3월 22일 |
청나라 흑룡강성 하르빈 (現 만주국 하르빈 특별시) | |
사망 | 1959년 12월 31일 (향년 80세) |
만주국 장춘특별시 자택 | |
국적 | 청나라 → 중화민국 → 중화민국 → 만주국 |
직업 | 정치가, 관료, 외교관 |
재임기간 | 제3대 만주국 총리대신 |
1940년 7월 24일 ~ 1946년 1월 14일 | |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이제 여기 신만주의 아침은 밝았습니다. 침체와 우울, 혼돈과 방황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결연히 벗어나 근면협화의 국민으로 재기합시다.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세로써 국가를 중건하고 희망찬 우리의 새 역사를 창조합시다. 차이윈성,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 연설 |
만주의 제3대 총리대신. 제3차 극동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만주의 전시수상이었다. 전시에 보여준 여러 활약 덕에 현재까지도 만주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위인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는 그의 어록과 기행으로 더 유명하다.
생애
어록
24시간 근무를 강제할 수 있다니 너무 좋군. 실업부 차상 시절, 부하 직원들을 휴일 없이 3교대로 부려먹으며 |
나 때는 영하 20도여도 따뜻하다 하고 자고 그랬는데. 헤이룽장성 성장 시절, 겨울에 춥다고 불평하는 성청 직원에게 |
시신을 쓸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헤이룽장성 성장 시절, 백성들의 시신 매장에 반대하며 |
애국단을 만들어서 본때를 보여주자. 아니 애국심을 보여주자. 헤이룽장성 성장 시절, 백성들에게 애국심(물리)을 주입하며 |
꼬우면 형씨도 외교대신 하쇼. 외교부 대신 시절, 공손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
전국민이 매일 점심을 거르면 식량 소비량을 3할 줄일 수 있습니다. 실업부 대신 시절, 총리대신 정사오쉬에게 중식절약운동을 제안하며 |
다음 선거는 제가 정합니다. 총리대신 취임 직후 |
아가들은 몸집이 작으니 좀 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총리대신 시절, 3차 극동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피난민들의 식량 추가 제공 요청에 대답하며 |
조금씩 죽어나가고 있지만 괜찮네. 다른 군인들 투입시키면 되거든. 총리대신 시절, 전선의 병력 투입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
여러분, 이건 추위가 아닙니다. 영하 40도, 웃통 벗고 돌아다녀도 좋을 날씨죠. 총리대신 시절, 3차 극동전쟁으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가는 피난민 행렬을 다독이며 |
사진이 무슨 사이비 교주처럼 나왔네.[2] 총리대신 시절, 미국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
형씨는 대체 언제 죽을 셈이오? 참의부 의장 시절, 답답한 참의에게 |
평가
수훈
- 훈삼등용광장 (1928): 만주국 건국에 참여한 공으로 수여받았다.
- 훈일등통교장 (1934): 주한만주공사에 부임하여 한만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수여받았다.
- 훈일등주국장 (1938): 외교부 대신과 실업부 대신 등 고위 요직을 역임하여 수여받았다.
- 대충 높은 훈장 (1940): 만주국의 정부수반인 총리대신으로서 우방국인 녹우크라이나로부터 수여받았다.
- 갑신대수장 (1944): 만주국의 정부수반인 총리대신으로서 우방국인 한국으로부터 수여받았다.
- 대훈위 난화대수장 (1946): 총리대신을 1년 이상 역임하였기에 총리 퇴임과 함께 수여받았다.
- 대훈위 난화대수장 경식 (1959)추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수상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에 추서받았다.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1937 - 1957 | 창당 정계은퇴 | |
1957 - 1959 | 신설합당 사망 |
선거 이력
여담
- 컬러사진이 흔치 않던 시기에 컬러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상단의 프로필 사진으로, 1945년 미국 국빈 방문 중에 워싱턴 포트워스 사진관에서 촬영된 것이다. 이 덕에 차이윈성은 최초로 컬러사진을 찍은 만주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