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게스코인세실

파일:팍스 브리타니카3.png

파일:대영제국 황제기사.png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Britannian Imperial Knigh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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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 제9대 황제기사
메들록의 게스코인세실 백작
4th Earl Gascoyne-Cecil of Medlock
본명 헨리 데이비드 로이드 게스코인세실 경
Sir Henry David Lloyd Gascoyne-Cecil
출생 77년 8월 10일 (23세)
일본국 에친스웰 포트 에드워드
국적 파일:브리타니아 제국 국기.png 브리타니아 제국
파일:브리타니아령 일본 국기.png 일본국
임기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조지 5세)
98년 7월 11일 -
작위 메들록 백작 (Earl of Medlock)
기사경 (The Lord Knight)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Imperial Knigh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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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리처드 게스코인세실
구로사와 유카코
신체 182cm, 78kg
종교 황제교
학력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졸업)
혈통 웨일스계 영국인, 일본계 영국인
군인 정보
임관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복무 황제 폐하의 제국군
93년 -
계급 원수
보직 메들록 기사경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병과 기병, 보병

개요

Melius est omnia simul urere quam tardius evanescere.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번에 불타는 것이 낫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군인. 조지 5세황제기사직을 맡고 있으며 황제 폐하의 제국군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다.

상세

명목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권력 서열 1순위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이지만, 현재 상태에서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인 헨리 게스코인세실이다. 내각, 사법부, 입법부, 군대, 정보부 등 모든 정부 기관이 게스코인세실 경의 손에 닿는 위치에 있어, 현 황제인 조지 5세조차 멋대로 게스코인세실에 반기를 들기가 어렵다. 즉 브리타니아 제국 역사상 1인으로서는 가장 큰 전제 권력을 잡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 이후 이어진 신냉전 체제 하에서 슬럼프를 겪던 브리타니아 제국의 체제에 매스를 댄 인물이다. 21세의 나이로 황제기사에 올라서 수많은 기성 정치인들을 조지 5세 황제의 막강한 신임 속에서 숙청하고 권력 장악을 감행하였다. 내각의 권력을 대폭 축소하고 전제 정치적인 면모를 부활시켰으며 동시에 군국주의적인 정책을 추구하였다. 또한 제3세계 국가에 대한 내정 간섭과 국제적인 공작, 대소련 도발 등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외교도 이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를 뛰어넘는 막강한 권력과 정치적 장악력 때문에 정적들과 반대자들로부터 독재자, 제2의 크롬웰, 호국경 요구자 등 부정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신냉전의 공포 속에서 과감히 체제에 손을 대고 있는 행보 때문에 민중들로부터의 지지는 막강하다. 이런 점에서 카이사르의 행보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세실 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생애

스코틀랜드-웨일스 출신의 군소 귀족 가문인 게스코인세실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리처드 게스코인세실은 일본 귀족의 먼 친척인 구로사와 유카코와 결혼하여, 일본 가나가와 요코하마의 요코스카 조계(영국인 거주지)에서 헨리 게스코인세실을 낳았다. 이후 리처드 게스코인세실이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헨리 게스코인세실은 임페리얼 캐피톨 인근의 교외 도시인 해먼튼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게스코인세실 가문이 기본적으로 귀족 가문인데다가 사업을 통해 부유했기 때문에 헨리 게스코인세실은 어린 시절 전혀 부족함이 없이 자랐으며, 명문 귀족 군사학교인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에 91년 입학해 기사경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신체 능력이 매우 형편없었으나 지략과 전쟁전술학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필기 시험에서는 언제나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고 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태자의 기사로서

후일 조지 5세가 되는 윌리엄 조지 어터슨 화이트로이드과 게스코인세실이 처음 만난 것은 94년의 일로 이때 게스코인세실은 제국군에 입대하여 기사 임명을 코 앞에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보통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 후계자들은 후계자 교육 외에 1년간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에서 기초적인 군사 교육을 받으므로, 이 당시 윌리엄 조지 어터슨 화이트로이드는 14세의 나이로 막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에 입학한 참이었다.

만남 자체는 두명이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굉장히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게스코인세실은 조지 5세가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태자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조지 5세도 황태자 대우에 지쳐있던 면이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화이트로이드가 아닌 다른 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기사경 작위를 받기 직전이었던 게스코인세실은 조지 5세에게 이것 저것 군사적인 지식을 알려주며 학업을 도움으로서 친교를 맺었다.

95년 게스코인세실이 기사경 작위를 받고 "게스코인세실 경"이 된 그날에 조지 5세는 자신이 브리타니아 제국 황태자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황제가 되면 자신의 황제기사가 되어달라고 말했다. 게스코인세실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또 상황 파악을 잘 하지 못하여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조지 5세가 "지금까지 날 황태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해준게 너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조지 5세의 기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95년 12월 23일 게스코인세실 경은 조지 5세의 기사로 서임되었다.[1]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황제기사의 난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친위 쿠데타에서 중심에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일개 기사에 지나지 않던 헨리 게스코인세실은 브리타니아 제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황제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자이자 1인 독재자가 되었다. 이를 두고 헨리 게스코인세실을 브리타니아의 카이사르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숙청과 권력 장악을 통한 1인 독재 체제의 수립

98년 조지 4세가 붕어함에 따라 황위 계승 1순위였던 윌리엄 조지 어터슨 화이트로이드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직에 오르자, 황태자의 기사였던 게스코인세실 경도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직에 올랐다. 이에 따라 게스코인세실 경은 브리타니아 제국 내 권력 서열 2위에 오르게 되었다.

어린 나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이를 비웃듯이 황제기사직에 오르자마자 과감히 브리타니아 제국의 권력 구도에 매스를 댔다. 조지 4세 치세는 리더십의 부재, 쓰이지 않는 절대권력, 파벌과 암투에 둘러싸인 정치판, 특권을 지키려는 언론과 의회, 정치에 간섭하는 황제의 측근과 총독들로 인해 정치가 점점 퇴조하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대단히 경멸, 혐오하였던 헨리 게스코인세실 경은 정보부를 직속으로 두고 있는 황제기사의 권력과, 조지 5세 황제로부터 받는 무한한 신임을 이용하여 숙청을 감행했다. 제국은행장,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부 장관의 부정부패 혐의가 공개되어 황제에 의해 직위에서 해임되었고, 중화제국 총독, 법무장관은 권력의 사적 이용을 이유로 황제에게 해임안을 건의하여 숙청했다.

이렇게 숙청된 자리는 자신들의 측근들을 꽂아놓도록함으로서 브리타니아 제국의 권력을 장악했다. 황제기사직에 오른지 1년 뒤에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에 따라 민주당의 당수이자, 강력한 근황파인 뉴트 제이콥슨이 총리직을 잡게 되었는데, 민주당의 당수 경선과 총선에서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개입하기가 힘든 언론들은 직접 국가 위해 정보 유포를 통해 폐간하거나 협박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또한 부정축채 및 민권탄압, 권력 남용 등의 혐의가 있는 귀족들을 정보부를 통해 잡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340명의 귀족이 사형 선고를 받고 173명이 실제 집행까지 이르는 전례가 없는 일이 일어났다. 프레더릭 3세의 62년 치세동안 단 2명만의 귀족만이 처형당했는데반해 173명 귀족의 사형은 선고부터 집행까지 단 3개월만에 이뤄졌다. 직위를 상실하거나 좌천되는 식으로 숙청된 귀족들까지 합치면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비공식적으로 암살된 귀족들의 수도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황제기사였던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도 좌천되거나 구속 혹은 사형당할뻔 했는데, 조지 5세의 반대로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의 숙청만큼은 좌절되었다는 말도 있다.

내각, 의회, 언론, 군대 등이 전부 게스코인세실 경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공작을 통해 황제기사 측에 맞지 않는 인물은 황제의 이름을 빌려 마음대로 쳐내는 행보로 인하여 게스코인세실 경의 권력은 프레더릭 3세에드워드 7세의 최전성기,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명목상의 권력 1순위는 조지 5세였지만 브리타니아 제국을 구성하는 조직 대부분이 게스코인세실 개인의 손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 1순위는 게스코인세실 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이정도로 강한 권력의 황제기사는 없었다.

군사/외교 정책

본연의 업무인 군사정책에 있어서도 성과를 거두었으며, 브리타니아 제국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고 더러운 군사/외교 정책이 추구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소련의 유럽 침공으로 인해 성립된 신냉전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제3세계 국가를 수중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제3세계 국가들을 영국의 편으로 돌리는데에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전혀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필요할때는 무력을 사용하는 수준의 내정간섭이 이뤄졌고, 공포와 힘을 이용한 제3세계 국가 압박이 이뤄졌다.

군사 증강 정책 역시 이뤄졌는데, 4.5세대 MBT 개발과 다목적 고기동장비의 양산을 지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랜슬롯 C의 양산형과 4.5 세대 MBT 갤러해드 3이 100년 개발되었다.

소련에 대해서도 대단한 수준의 공작과 도발이 이뤄졌다. 중화제국과 소련간의 국경에 군부대를 증강하여 소련을 압박하는 한편, 유사시에 구 브리튼 제도와 이탈리아 반도를 통해 유럽을 3개월만에 탈환하는 작전을 평민원과의 질의에서 공개하는 등[2] 소련과의 대전쟁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였다. 소련과의 전쟁에 대해 어느정도 부정적이었던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전 황제기사와 달리, 소련과의 전쟁은 만약 해야한다면 막을 수 없고, 핵 무기를 이용한 전쟁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대가를 치뤄서라고 유럽 대륙을 제국의 치하에 두어야한다는 말을 했다.

이 과정에서 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와 마찰을 겪기도 하였으나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싸움이 안되었던 국무부는 게스코인세실 경에게 굴복하고 장관이 3명이나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브리타니아 제국 개혁 정책

권력 장악 이후 시행되고 있는 단계로, 귀족들의 권한 축소, 평민원을 비롯한 제2계급 정치 개입 기구의 증설, 신분제에 기댄 특권 폐지와 제3계급 폐지 등 기존 신분제를 완전히 엎는 수준의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아직은 시행되지 않고 있고, 게스코인세실 경 스스로도 3년이나 5년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기에 불확실하나, 이 개혁을 통해 수많은 귀족들과 정치인들이 갈려나가고 대영재국의 정치가 뿌리 채 뒤집힐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성향

독재자의 성향이 다분하며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최측근까지 숙청하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황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형이나 좌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제법 믿을만하고, 능력도 되는 인사들에게는 장관직과 총독직을 주는 등 채찍 뿐만 아니라 당근도 확실하다. 보통 한번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잘 내치지 않는 편이다. 능력은 되지만 믿을만하지 않은 사람들도 가끔이지만 등용하는 편이고, 믿을만하지만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보좌를 하게 하는 식으로 사람을 다뤄 권력 장악력이 매우 높다.

전임자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가 소련의 유럽 침공으로 인하여 시작된 신냉전 시기에 소련이 성장하지 않도록 적당히 견제하면서 세계 정세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였다면 게스코인세실은 좀 더 공격적인 스타일의 군사 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련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을만큼 적극적으로 타국의 정세에 개입하는 편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에서 월권 행위를 적당히 하라는 항의를 보낼정도로 군사 정책과 더불어 외교 정책도 자주 사용한다.

각종 더러운 뒷공작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의 직속 기관인 브리타니아 제국 비밀안보부에 의한 암살, 도청, 감청이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재직 시절에 비해 10배로 늘었고 나머지 4개의 정보 기관인 브리타니아 제국 통신안보부, 브리타니아 제국 보안정보국, 브리타니아 제국 국가치안국, 브리타니아 제국 국방보안국도 매우 민첩하게 돌아가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5대 정보기관이 브리타니아 제국 치안부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에게도 정보를 공유할 의무가 있는데, 게스코인세실의 황제기사 임명 이후 제국군과 국무부의 갈등 때문에 정보 교류가 줄어들었다. 다만 이후 전쟁부와 국무부의 장관들과 수뇌부를 대거 숙청한 이후 자신의 입맛대로 개조해버리면서 현재는 각 정부 부처와 큰 트러블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와 내각이 황제 기사 측에 항복한 것에 가깝다.

평가

비판

대중적으로는 인기가 좋지만 아무래도 귀족들을 향한 대숙청과 전제 권력을 등에 업은 공포정치로 인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면이 많다. 본래 브리타니아 제국은 군대와 내각이 파워밸런스를 이루고 있었고, 군대를 대표하는 황제기사와 내각을 대표하는 총리가 서로를 견제할지언정 서로의 권력에는 터치하지 않는 것이 불문률이었는데, 게스코인세실 경은 그런 금기를 어기고 바로 내각의 장관진에 매스를 대고 외무부와 전쟁부, 귀족부와 같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부서의 수뇌부를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로 내각의 힘을 약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총선거는 물론이고 각 정당의 경선과 평민원 선거에까지 정보부를 통해 개입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당선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국가 정치의 기본인 견제와 균형이 단 2년만에 와해되어버렸다는게 비판의 핵심이다.

언론이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변질되버렸기 때문에 이를 정리한다는 명목은 정당해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았을때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평민원의 권한까지 제한하고, 스스로 평민원의 선거에도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최종적인 목표는 귀족의 특권 폐지와 제국의 번영이 아닌 권력 장악이라는 사적인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자신에 대항하는 정치인들을 대하는 것도 비판점인데, 일단 부패 공무원이면 정보부를 이용해 영원히 정치계에서 퇴출시키고, 부정부패나 권력 남용과 같은 범죄에 관련이 되어있지 않다면 무력을 이용해 협박을 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의 민주주의는 원래부터 그리 수준높지 않았지만 게스코인세실 경의 독재 체제 구축 이후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대중적인 인기

민주주의의 파괴자, 21세기의 크롬웰, 살인과 뒷공작의 기사와 같은 부정적인 별명이 많지만 이와 별개로 대중적인 인기는 정말 최상이다. 긍부정 평가 여론조사가 이뤄지는 정부 공무원들 중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100년 여론조사 기준으로 제2계급 시민의 42%, 제1계급 시민의 59%만이 내각을 신뢰한다고 밝혔으나, 같은 조사에서 황제기사는 제1계급에서 60%, 제2계급에서 94%를 기록했다. 제1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대숙청에도 불구하고 1계급에서 호의적인 평가가 높았으며 특히 제2계급에서는 부정 평가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정치 상태를 1인 독재로 만들어놓았다는 비판이 있긴 하나 애초에 민주주의라는것도 제1계급에 한정된 것이었고, 게스코인세실 경이 브리타니아 제국 평민원을 견제하긴하지만 내각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권위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부정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민의를 무시하고 암투와 부패로 점철된 제1계급의 이익 기구나 다름 없던 내각과 참사원, 귀족원을 쓸어버리고 대숙청을 통해 제국의 혁명적인 개혁을 이끌어낸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만약 황제에 대한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면, 황제보다도 더 높은 지지도가 나올 수 있다는 추측이 있을 정도다.

그 외에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미소년이라 얼굴이 상당히 잘생기기도 했고, 연설 능력도 상당해서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없는게 더 이상하다는 분석이 있다.

능력

전쟁전술학과 전쟁의 지략 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고전 전쟁 전술학서들을 읽는게 취미라고 한다. 스스로 전술학에 대해서 연구하고 쓴 글도 꽤 되며, 논문도 썼다. 실전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군사 전략을 군사 자체로만 쓰지 않고, 정치 공작과 함정이 마구 포진된 외교술을 곁들여 쓰는 것을 전쟁 전략의 최고 덕목으로 삼고, 이를 실행해오고있다. 이 때문에 군사 정책에 있어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대체로 전략을 세우는 능력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평을 듣는다.

전쟁 뿐만 아니라 권력을 다루는 수준이 거의 예술의 경지다. 중앙 정치계에 있어서, 절친한 친구가 조지 5세라는 점을 빼고 전혀 연고가 없던 21세 청년이 단 2년만에 브리타니아 제국의 정치 판도를 죽고 죽이는 귀족들간의 암투판에서,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1인 독재 체제로 만들어냈다. 조지 5세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게스코인세실 경 개인의 지략과 능력이 없었다면 이 수준의 독재 권력 쟁취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권력을 얻는 것 뿐만 아니라 유지하는 능력도 탁월하여, 언론플레이와 측근들을 향한 당근을 이용해서 정적들을 끝 없이 제거하고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는 걸로 넘어 더욱 확장시키곤한다. 탁월한 연설 능력과 미형의 얼굴 때문에 선동 능력이 정권 장악 능력만큼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측근들을 장기말로 여기는 태도 때문에 믿지 않는 측근들은 다 쓴 걸레처럼 버리지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들은 장관, 총독 직을 나누어주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아군을 많이 만들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까지 통째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와는 별개로 신체 능력이 매우 형편 없다고 한다.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재학 당시 실기 시험에서 거의 전부 최하위권 성적을 받았으나, 필기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기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지 5세에게는 전적이 1승 13패이며 50대인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에게도 단 한번도 이긴적이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군인이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서는 신체 능력이 꽤 된다. 단지 브리타니아 제국 군대의 통수권자라는 사람이 너무나 약해서 주목을 받는 것일 뿐이다.

여담

  •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플라톤의 "국가론" 그리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라는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 일본 요코스카 조계 출신이기 때문에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 산 기간은 2년 정도로 매우 짧다.
  • 전쟁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독일어와 라틴어를 배워서 독일어는 원어 수준으로 할 줄 알고, 라틴어는 해독이 가능한 수준으로 한다. 중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지만, 조지 5세가 황제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중화제국 황제의 언어도 배워야한다며 억지로 (직접)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 역사덕후적인 면모가 있다. 로마와 독일, 중국의 역사에 대해 거의 책을 쓸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다른 분야에서 지식은 없는건지 수학을 특히 매우 못해서, 가계부를 쓸때 169 X 3을 169 + 169 + 169라는 식으로 계산하는 매우 황당한 모습을 보인적도 있다고 그의 학교 시절 친구가 증언했다.

외모

미소년이다. 제법 젊기도 하고(23세) 미형의 얼굴과 안대 때문에 개인에 대한 인기도 상당하다. 민중들로부터 얻는 높은 지지도에는 이런 이유도 존재한다. 스스로는 이런 인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며, 얼굴은 아무래도 조지 5세가 자신보다 낫지 않냐는 입장이다.

왼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데,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건 아니고, 선천적으로 왼쪽 눈의 시력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추가적인 시력 손실을 막기 위해 가린 것이라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눈을 쓰는게 정말 중요할때만 안대를 잠깐 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니발 게스코인세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안대 때문에 더 멋지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사생활

대단히 검소한 인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조지 5세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이트로이드궁, 아일스버리궁, 자금성에서 조지 5세와 동거하고 있지만 입궁하기 이전에는 임대 방에서 살며 정부 기관으로 출퇴근하였다. 부패할 수 없는 자(Incorruptible)라는 별명은 대중 뿐만 아니라 그를 경계하는 귀족들까지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의 제2계급에서의 압도적인 인기에는, 이런 귀족 출신임에도 귀족들의 사치에 비판적이고 스스로 귀족적인 삶을 살지 않으려는 노력이 반영되었다.

취미 생활도 독서와 산책, 체스, 글쓰기 정도이고, 돈이 되는 취미는 좋아하는 것이더라도 최대한 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냥과 같은 귀족들의 스포츠 역시 구시대의 산물이며 민중의 고혈을 짜먹는 것이라고 멀리해오고 있다. 여자 관계도 깔끔한데 아예 사귀어본 여자가 없다고 한다.

성격

개인적으로 청렴한것과 별개로 성격은 거의 인간 말종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매우 계산적이고 차가워서 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인간 관계가 거의 없고 친구라고 할만큼 친근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조지 5세를 포함해 5명이 안된다. 이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을 장기말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듯하다.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친구"라도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바로 처형장에 보내곤 한다. 이 때문에 그와 멀리서 일한 사람들로부터는 찬양을, 가까이 일한 사람들한들로부터는 경멸을 받았다. 이 점은 과거 황제기사 직으로 고려되었다가 인간성 문제로 짤린 조지 S. 패튼과도 비슷하다.

또 실제로는 매우 호전적이면서 전혀 호전적이지 않은 행동, 즉 앞뒤가 다른 태도로 인해 남이 예상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잦다. 앞에서는 조용히 넘어가지만 뒤로는 숙청을 지시하는 식이다. 조지 5세와 자신과 꽤 친근한 관계였던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와, 자신을 어릴때 지켜봤던 가문중 하나였던 윌럼 가문에도 눈 깜짝 안하고 숙청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적들에게는 "앞에서 웃는 암살자" 등의 부정적인 별명이 붙여졌다.

인간 말종인듯한 모습과는 달리 자신과 매우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는 친절히 대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조지 5세가 심리적으로 게스코인세실에 무한히 의지하는게 설명이 안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업무 외에 일로 그를 대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게스코인세실 경을 알기 힘들지만 긍정적인 인물로 평했다.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정치 성향

그가 시행하는 정책과 걸맞게, 정치 성향은 급진적인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자신이 추구하는 대개혁에는 좌우가 없다는 식의 논리로 최대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려하지 않지만, 발언을 모아보면 사회주의나 공화주의와 같은 이론에 어느정도 심취해있는게 아닌가라는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조지 5세는 게스코인세실 경과의 가까이 지내면서, 어느정도 과격한 면이 있더라도 사회주의자나 공화주의자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평범한 정도보다 조금만 더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귀족 출신이지만, 귀족 제도를 대단히 혐오한다. 귀족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특권에 기대어 나라를 주무르는 모습을 상당히 안좋게 보는듯하다.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로서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5세와의 관계

단순한 군신 관계 혹은 친구 관계 이상이라는게 중론이다.

게스코인세실 경이 전제 군주나 다름 없는 전무후무한 수준의 권력을 휘두르는건 개인의 인기와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지 5세의 지지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 지 의문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와 사회부, 치안부에서 어마어마한 수준의 클레임이 들어옴에도 조지 5세는 이를 모두 물리치고 자신의 기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다. 황제기사를 위한 관저가 따로 있음에도 아예 동거를 하며 자신을 상시 지키게한것도 조지 5세이다.

이 때문에 향간에는 게스코인세실 경이 화이트로이드 황가의 숨겨진 자식이기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고, 두명이 동성애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다. 동성애가 기본적으로 선천적으로 발휘되는 특성인데, 프레더릭 3세도 사실상 동성애자였음을 생각해보면 이쪽도 말이 된다는 소리도 있다. 물론 황실부에서는 이를 말도 안되는 소리로 일축하고 있지만 어느정도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으로 가장 적절해보이는 설명은 "이전까지 황제의 자식, 화이트로이드 황조의 계승자, 황태자, 황제, 국왕 정도로만 여겨졌던 조지 5세를 처음으로 인간 그 자체로 대해준 것이 게스코인세실 경이기에 심리적으로 의지한다"이다. 게스코인세실 경도 조지 5세만큼은 아니지만, 조지 5세를 자신의 주군으로서 크게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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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국장.png 파일:영국 정부 문장 반전.png
브리타니아 제국 제정회의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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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제국 황제
조지 5세
제국황무직
황제기사 황부장관
헨리 게스코인세실 앤드루 오길비
중대국무공직
총리
뉴트 제이콥슨
재무장관 국무장관 전쟁장관 내무장관
피터 더글러스 제이슨 베일리해밀턴 리처드 오언 토머스 에시크로프트
내각 장관
국정조정장관 법무장관 귀족장관 사회장관
스펜서 위틀스버크 줄리언 리어본 베스 블레이크 조너선 엘모어
복지장관 기술장관 교육장관 보건장관
사이먼 워버튼 이언 리치 피터 오스틴 로버트 핵스모건
안보장관 치안장관 무역장관 상공장관
퍼거스 노플러 앨린 스미스 개러스 오브라이언 올리버 페리어존스
자원장관 문화장관 통신장관 건설장관
대니스 버니어모건 피터 호언촐런 리처드 프라이스 덩컨 메이엄
교통장관 노동장관 농무장관 환경장관
루스 맥페이든 어널드 허드슨 그레이엄 코긴스 코널 트레벌라이언
비내각 제정회의 참석자
참사원장 귀족원장 평민원장 사법원장
리처드 버스위슬 토머스 엘런존스 필 레퍼드 레이너드 블런
제국은행장 중화제국 총독 인도제국 총독 캔터베리 대주교
레너드 에스페런드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조지 허버트 화이트로이드 윌리엄 로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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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이건 세간에 잘 알려져있는 얘기고 실제로는 조지 5세 스스로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게 사실상 정설이다. 게스코인세실 경은 기사 서임 전부터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 및 귀족의 수구성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조지 5세 앞에서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지 5세 본인도 배후가 조지 4세의 측근으로 의심되는 아버지의 급사 사건으로 기성 체제에 큰 분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와 능력 부족으로 복수를 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게스코인세실의 높은 지략을 본 조지 5세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를 등용한게 아니냐는 설이다.
  2. 당연히 세부 사항은 군 기밀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매우 대강적인 계획만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