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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br>일본 사회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br>제1대 일본공산당 총무 수석 간사<br>제1대 일본인민공화국 정부수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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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7일 (금) 22:3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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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일본인민공화국 정부수석 아라하타 칸손 荒畑 寒村 | Kanson Arahata | |
---|---|
출생 | 1887년 8월 14일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에이라쿠정[1] | |
사망 | 1981년 3월 6일 (향년 93세) |
교토제일적십자병원 | |
재임기간 | 제1대 일본인민공화국 정부수석[2] |
1924년 3월 2일 ~ 1938년 9월 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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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의 정치인, 작가, 노동운동가이자 일본 공산당의 초대 당수였다. 본명은 아라하타 카츠조(荒畑 勝三).
다이쇼 공황 시기 일본의 노동 운동을 이끌었으며, 2.26 사건 이후 결국 일본이 내전 상태에 접어들자 초대 정부수석을 맡아 일본 내전에서 적군을 승리로 이끌고 일본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이후 내전을 수습하고 일본에 생디칼리즘을 정착 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서서히 토쿠다 큐이치와 군부를 필두로 한 당내 급진파에게 휘둘리기 시작하다가 복건 출병과 중일 전쟁을 필두로한 일본의 폭주를 막지 못했고, 끝내 8월 종파사건으로 실각하여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벨트크리그에 뛰어든 일본이 제2차 한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끝내 전쟁에서 패배하며 자신이 건국한 국가가 패망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후 극동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회부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 아니라는 점이 인정되어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며 징역 30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와 일본 전쟁으로 인해 5년 후 출소하였다.
이후 일본 사회당을 창당하는 등 서일본에서 생디칼리즘 부흥을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정계에서 은퇴,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이어가다가 93세의 나이에 폐기종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일본 내전 자체 부터 자신이 원하던 방법이 아니었고, 일본에 낙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급진파를 억제하지 못하고 실각했으며, 결국 자신이 만든 국가의 폭주와 패망 그 이후 분단과 서일본과 동일본의 전쟁까지 바라본 여러모로 안습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