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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스트루펜 (빌레펠트)|슈토스트루펜]] | [[슈토스트루펜 (빌레펠트)|슈토스트루펜]]은 독일 제국군의 최정예 사단 편제로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 ||
아래 부대들 중 몇몇 부대들은 과거 명칭에 ST가 특별히 붙지 않았었는데 이들은 바게르만계 자원. 특히 항복한 동맹군들의 망명군들로 구성하여, 엄밀히 말해 정통 슈토스트루펜가 아닌 사단이었다. 단 외국에서 병력을 모집한 부대도 순수한 외국인이 아니라 해외 거주 독일인(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고 부른다.)으로 구성된 경우 ST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창설 초기엔 상당수가 외국인 소속이었다. 전후 외인부대 병사들의 입지가 커지며 외인부대 사단에도 ST 명칭이 붙게 되었다. | 아래 부대들 중 몇몇 부대들은 과거 명칭에 ST가 특별히 붙지 않았었는데 이들은 바게르만계 자원. 특히 항복한 동맹군들의 망명군들로 구성하여, 엄밀히 말해 정통 슈토스트루펜가 아닌 사단이었다. 단 외국에서 병력을 모집한 부대도 순수한 외국인이 아니라 해외 거주 독일인(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고 부른다.)으로 구성된 경우 ST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창설 초기엔 상당수가 외국인 소속이었다. 전후 외인부대 병사들의 입지가 커지며 외인부대 사단에도 ST 명칭이 붙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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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3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3 ST기갑사단<br>토텐코프 |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4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4 ST경찰 장갑척탄병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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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7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7 ST의용산악사단<br>프린츠 오이겐 |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8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8 ST기병사단<br>플로이안 가이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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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9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9 ST기갑사단<br>호엔슈타우펜 |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10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10 ST기갑사단<br>프룬츠베르크 |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11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11 ST의용장갑척탄병사단<br>노르트란트 |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12 | ! colspan="1" style="width:25%; background:#000; color:#fff;" | 12 ST기갑사단<br>카이저유겐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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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 사단의 출발부터 함께한 부대로 원래 그 창설 목적이었던 빌헬름 2세의 근위대로서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독일정부나 총사령부에 충성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 개인에게만 충성하는 사람만 받아들였다. 초대 사단장은 요제프 디트리히다. 1939년까지는 연대로서 베네룩스 전역 및 라인란트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1940년에 여단으로 승격하여 [[베를린 공방전 (빌레펠트)|베를린 공방전]]을 비롯한 동부전선에 참가한 후 1942년에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은 동서부를 오가며 격전지란 격전지는 다 누볐고, 전말에는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과 [[모스크바 전투 (빌레펠트)|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의 끝을 함께했다. 이후 베를린에 돌아와 다시 카이저의 경호임무를 맡은 사단은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독일의 해외 분쟁에 가장 많이 파견 되는 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사단 로고는 초대 사단장 디트리히의 이름이 열쇠를 의미하며 적진에 돌파구를 연다는 의미에서 열쇠를 부대 마크로 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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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페어퓌궁슈트루펜(Verfügungstruppen;전투부대)으로서 첫 편성되었고 [[베네룩스 전역]] 부터 참전한 부대이다. 연대에서 사단으로 개편되면서 돌격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울 하우서가 초대 사단장을 지냈다. 가장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ST 사단이고, 또한 ST 사단들 중 메이커 사단이라 인기가 높다.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과 튈 학살<ref>프랑스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생디칼리스트 저항군들이 다스 라이히 장병들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되었으며 이 때 독일군 장교가 생디칼리스트 저항군에게 생포당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장교 구출 및 보복으로 벌어진 학살.</ref>을 저질렀다. 알려진 학살이 전쟁 말기 프랑스 점령지의 대파르티잔 작전에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학살은 학살이지만, 이는 바로 밑의 2차 대전 당시의 토텐코프 사단의 잔혹한 학살행위들과 비교된다. [[포젠 전투 (빌레펠트)|포젠 전투]]를 비롯한 일부를 제외한다면 [[함부르크 공방전 (빌레펠트)|함부르크 공방전]]과 [[낫질작전]]을 포함한 대부분 서부전선에서 종군했으며 , [[바다사자 작전]]과 [[런던 전투]]에도 참가하며 서부전선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전후에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일본전쟁]]을 비롯한 [[이라크 전쟁]] 등에도 파병되며, 가장 많이 해외 파병을 가는 돌격대 사단 중 하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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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width:20%; background:#262424; color:#fff;" | [[파일:토텐코프.webp|90px]]<br>3 | ! colspan="1" style="width:20%; background:#262424; color:#fff;" | [[파일:토텐코프.webp|90px]]<br>3 ST기갑사단<br>''토텐코프''<br><small>(1939.10.16) | ||
| colspan="1" style="width:80%; color:#000; text-align: left;" | {{본문|3 | | colspan="1" style="width:80%; color:#000; text-align: left;" | {{본문|3 ST기갑사단 토텐코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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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ref>Stoßtruppen</ref> 토텐코프 연대(Totenkopfverbände)를 모태로 확장되었다. 해골은 돌격대 시절의 연대 마크이며 그대로 사단 마크가 되었다. 역시 대전 초반부터 참전한 부대이며, [[발트 전역]]과 [[베를린 공방전 (빌레펠트)|베를린 공방전]]을 비롯한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 [[모스크바 전투 (빌레펠트)|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이드라츠카야 연대 병사들을 즉결 처형한 슬루츠크 학살을 선보인바 있고, '''동부전선에서는 인종청소 수준으로 학살을 했다.''' 테오도어 아이케가 초대 사단장을 맡았다. 앞에서 언급한 헤르베르트 브루네거가 이 사단 출신이다. 대전차포 에이스 프리츠 크리스텐도 여기 출신, 전쟁 중 학살과 인종범죄에 가장 깊숙히 관련된 사단이나 전후 연합국의 전쟁범죄는 쉬쉬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처벌 받은 인원은 극히 드물다. 특이하게, 이 사단은 군복 오른쪽 카라에 SS 시겔문자가 아닌 해골 문양을 부착한다.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가하며 해외 파병이 잦은 3대 | 돌격대<ref>Stoßtruppen</ref> 토텐코프 연대(Totenkopfverbände)를 모태로 확장되었다. 해골은 돌격대 시절의 연대 마크이며 그대로 사단 마크가 되었다. 역시 대전 초반부터 참전한 부대이며, [[발트 전역]]과 [[베를린 공방전 (빌레펠트)|베를린 공방전]]을 비롯한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 [[모스크바 전투 (빌레펠트)|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이드라츠카야 연대 병사들을 즉결 처형한 슬루츠크 학살을 선보인바 있고, '''동부전선에서는 인종청소 수준으로 학살을 했다.''' 테오도어 아이케가 초대 사단장을 맡았다. 앞에서 언급한 헤르베르트 브루네거가 이 사단 출신이다. 대전차포 에이스 프리츠 크리스텐도 여기 출신, 전쟁 중 학살과 인종범죄에 가장 깊숙히 관련된 사단이나 전후 연합국의 전쟁범죄는 쉬쉬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처벌 받은 인원은 극히 드물다. 특이하게, 이 사단은 군복 오른쪽 카라에 SS 시겔문자가 아닌 해골 문양을 부착한다.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가하며 해외 파병이 잦은 3대 st 사단 중 하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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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가 일어나자 경찰 출신 자원 입대자들을 모아서 창설한 | [[제2차 벨트크리그]]가 일어나자 경찰 출신 자원 입대자들을 모아서 창설한 ST 경찰연대(SS Polizeiliche Solidarität)로 시작했다. 이후 [[엘자스 로트링겐 전역]]과 [[라인란트 전역]]에서 종군하던 중 [[바그라티온 작전 (빌레펠트)|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러시아가 라이히스팍트를 침공하자 동부전선에서 종군하였다. 쾨니히스베르크에 포위된 이후 사단으로 승격되었으며 포위 기간동안 쾨니히스베르크의 방위를 담당하는 주축 중 하나였다. 쾨니히스베르크가 해방된 이후엔 재편성을 받은 후에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했으며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에서 쾨니히스베르크의 복수를 했다. 경찰사단이라는 이름은 남아있으나 현재는 사실상 관련 없는 사단이다. 여담으로 대전기간 동안 운전면허를 소지한 사람이 많은 사단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자동차는 흔한 것이 아니었으나 사단은 경찰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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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width:80%; color:#000; text-align: left;" | {{본문|5 | | colspan="1" style="width:80%; color:#000; text-align: left;" | {{본문|5 ST기갑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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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 라이히 사단의 게르마니아 연대와 북유럽에서 입대, 또는 망명온 동맹국 군대로 편성된 부대이다.<ref>덴마크의 경우는 대부분 독일군으로 자원입대하는 이들이 주축이었고 스웨덴의 경우는 | 다스 라이히 사단의 게르마니아 연대와 북유럽에서 입대, 또는 망명온 동맹국 군대로 편성된 부대이다.<ref>덴마크의 경우는 대부분 독일군으로 자원입대하는 이들이 주축이었고 스웨덴의 경우는 스웨덴이 노르웨이 전선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부전선 파병군이 편입되는 경우였다.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적화된 노르웨이에서 탈출한 반공주의자들이 주로 입대했다.</ref> 외국인 출신 부대는 정예와는 거리가 먼 3류 취급을 받았으나, 이들은 같은 게르만 계열임과 동시에 용맹한 바이킹의 후손이라는 선전 덕분에 대우가 매우 좋았다. 창설 당시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싸웠다. 무장 친위대의 정예 부대인 동시에 종전끝까지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최종적으로는 차리진에서 러시아군의 방어부대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전후에도 한동안 북유럽인들만을 받는 외인부대였으나, 현재는 다른 인종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다. 여담으로 전장에서 수 많은 사람을 살린 것으로 명성이 높은 요제프 멩겔레가 이 부대의 군의관으로 잠시 복무했다. 그 시절의 동료들 말로는 '꽤 성실하고 괜찮은 친구'였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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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예사단 ==== | ==== 정예사단 ==== | ||
==== 해산 된 사단 ==== | ==== 해산 된 사단 ==== |
2024년 11월 21일 (목) 23:16 기준 최신판
공지 | | 빌레펠트 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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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슈토스트루펜은 독일 제국군의 최정예 사단 편제로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아래 부대들 중 몇몇 부대들은 과거 명칭에 ST가 특별히 붙지 않았었는데 이들은 바게르만계 자원. 특히 항복한 동맹군들의 망명군들로 구성하여, 엄밀히 말해 정통 슈토스트루펜가 아닌 사단이었다. 단 외국에서 병력을 모집한 부대도 순수한 외국인이 아니라 해외 거주 독일인(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고 부른다.)으로 구성된 경우 ST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창설 초기엔 상당수가 외국인 소속이었다. 전후 외인부대 병사들의 입지가 커지며 외인부대 사단에도 ST 명칭이 붙게 되었다.
슈토스트루펜의 전쟁 범죄는 상대적으로 추축군의 전쟁범죄에 비해 가려져 있었는데, 냉전기에 잠시 협상국에서 논의 되다가 금방 묻힌 이후 현대에 와서 다시 한번 슈토스트루펜 소속 병사들이 제2차 벨트크리그 동안 진행 했던 전쟁 범죄의 대한 진상규명이 논의 되고 있는 중이다.
종류
야전군급 부대
- 항목
- 6 ST기갑군
- 1 ST기갑사단 LSTFW/3 ST기갑사단 토텐코프/12 ST기갑사단 카이저 유겐트
- 카이척탄병사단/10공수사단[1]
- 11 ST기갑군: 펠릭스 슈타이너가 지휘관이었던 부대.
군단급 부대
- 항목
- 1 ST기갑군단
- 2 ST기갑군단
- 3 ST기갑군단
- 4 ST기갑군단[2]
- 5 ST산악군단
- 6 ST군단
- 7 ST기갑군단[3]
- 8 ST기갑군단[4]
- 9 ST산악군단
- 10 ST군단[5]
- 11 ST기갑군단[6]
- 12 ST군단[7]
- 13 ST군단[8]
- 14 ST군단
- 15 ST코자크기병군단[9]
- 16 ST군단[10]
- 17 무장군단[11]
- 18 ST군단[12]
사단급 부대
최정예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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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명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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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기갑사단 LSTFW (1923.11.09) |
자세한 내용은 1 ST갑사단 LSTFW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돌격대 사단의 출발부터 함께한 부대로 원래 그 창설 목적이었던 빌헬름 2세의 근위대로서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독일정부나 총사령부에 충성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 개인에게만 충성하는 사람만 받아들였다. 초대 사단장은 요제프 디트리히다. 1939년까지는 연대로서 베네룩스 전역 및 라인란트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1940년에 여단으로 승격하여 베를린 공방전을 비롯한 동부전선에 참가한 후 1942년에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은 동서부를 오가며 격전지란 격전지는 다 누볐고, 전말에는 바르바로사 작전과 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의 끝을 함께했다. 이후 베를린에 돌아와 다시 카이저의 경호임무를 맡은 사단은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독일의 해외 분쟁에 가장 많이 파견 되는 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사단 로고는 초대 사단장 디트리히의 이름이 열쇠를 의미하며 적진에 돌파구를 연다는 의미에서 열쇠를 부대 마크로 썼다. |
2 ST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1939.10.10) |
자세한 내용은 2 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ST 페어퓌궁슈트루펜(Verfügungstruppen;전투부대)으로서 첫 편성되었고 베네룩스 전역 부터 참전한 부대이다. 연대에서 사단으로 개편되면서 돌격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울 하우서가 초대 사단장을 지냈다. 가장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ST 사단이고, 또한 ST 사단들 중 메이커 사단이라 인기가 높다.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과 튈 학살[13]을 저질렀다. 알려진 학살이 전쟁 말기 프랑스 점령지의 대파르티잔 작전에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학살은 학살이지만, 이는 바로 밑의 2차 대전 당시의 토텐코프 사단의 잔혹한 학살행위들과 비교된다. 포젠 전투를 비롯한 일부를 제외한다면 함부르크 공방전과 낫질작전을 포함한 대부분 서부전선에서 종군했으며 , 바다사자 작전과 런던 전투에도 참가하며 서부전선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전후에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일본전쟁을 비롯한 이라크 전쟁 등에도 파병되며, 가장 많이 해외 파병을 가는 돌격대 사단 중 하나다. |
3 ST기갑사단 토텐코프 (1939.10.16) |
자세한 내용은 3 ST기갑사단 토텐코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돌격대[14] 토텐코프 연대(Totenkopfverbände)를 모태로 확장되었다. 해골은 돌격대 시절의 연대 마크이며 그대로 사단 마크가 되었다. 역시 대전 초반부터 참전한 부대이며, 발트 전역과 베를린 공방전을 비롯한 바르바로사 작전, 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이드라츠카야 연대 병사들을 즉결 처형한 슬루츠크 학살을 선보인바 있고, 동부전선에서는 인종청소 수준으로 학살을 했다. 테오도어 아이케가 초대 사단장을 맡았다. 앞에서 언급한 헤르베르트 브루네거가 이 사단 출신이다. 대전차포 에이스 프리츠 크리스텐도 여기 출신, 전쟁 중 학살과 인종범죄에 가장 깊숙히 관련된 사단이나 전후 연합국의 전쟁범죄는 쉬쉬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처벌 받은 인원은 극히 드물다. 특이하게, 이 사단은 군복 오른쪽 카라에 SS 시겔문자가 아닌 해골 문양을 부착한다.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가하며 해외 파병이 잦은 3대 st 사단 중 하나이다. |
4 ST경찰 기갑척탄병사단 (1941.9.21) |
자세한 내용은 4 ST경찰기갑척탄병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2차 벨트크리그가 일어나자 경찰 출신 자원 입대자들을 모아서 창설한 ST 경찰연대(SS Polizeiliche Solidarität)로 시작했다. 이후 엘자스 로트링겐 전역과 라인란트 전역에서 종군하던 중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러시아가 라이히스팍트를 침공하자 동부전선에서 종군하였다. 쾨니히스베르크에 포위된 이후 사단으로 승격되었으며 포위 기간동안 쾨니히스베르크의 방위를 담당하는 주축 중 하나였다. 쾨니히스베르크가 해방된 이후엔 재편성을 받은 후에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했으며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에서 쾨니히스베르크의 복수를 했다. 경찰사단이라는 이름은 남아있으나 현재는 사실상 관련 없는 사단이다. 여담으로 대전기간 동안 운전면허를 소지한 사람이 많은 사단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자동차는 흔한 것이 아니었으나 사단은 경찰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
5 ST기갑사단 비킹[15] (1940.11.20) |
자세한 내용은 5 ST기갑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스 라이히 사단의 게르마니아 연대와 북유럽에서 입대, 또는 망명온 동맹국 군대로 편성된 부대이다.[16] 외국인 출신 부대는 정예와는 거리가 먼 3류 취급을 받았으나, 이들은 같은 게르만 계열임과 동시에 용맹한 바이킹의 후손이라는 선전 덕분에 대우가 매우 좋았다. 창설 당시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싸웠다. 무장 친위대의 정예 부대인 동시에 종전끝까지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최종적으로는 차리진에서 러시아군의 방어부대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전후에도 한동안 북유럽인들만을 받는 외인부대였으나, 현재는 다른 인종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다. 여담으로 전장에서 수 많은 사람을 살린 것으로 명성이 높은 요제프 멩겔레가 이 부대의 군의관으로 잠시 복무했다. 그 시절의 동료들 말로는 '꽤 성실하고 괜찮은 친구'였다고 한다. |
정예사단
해산 된 사단
- ↑ 117경보병사단/356보병사단/710보병사단도 있었으나 해체 됨
- ↑ 7 ST기갑군단을 흡수했다.
- ↑ 1947년 4 ST기갑군단에 흡수되었다.
- ↑ 1949년 해산
- ↑ 북풍 작전 당시 배치되었던 14 ST군단을 바탕으로 창설되었다.
- ↑ 펠릭스 슈타이너가 지휘했던 부대
- ↑ 1946년 해산
- ↑ 1948년 해산
- ↑ 헬무트 폰 판비츠 장군이 지휘했던 코자크인 구성의 기병군단. 1945년에 기존의 육군 제1, 2 코자크 기병사단을 증편, 편입하여 창설되었다.
- ↑ 1946년 해산
- ↑ 대전초기에 헝가리인으로 구성된 제25, 26 무장척탄병사단을 통합지휘하기 위해 편성된 군단 1947년 해산.
- ↑ 1946년 해산
- ↑ 프랑스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생디칼리스트 저항군들이 다스 라이히 장병들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되었으며 이 때 독일군 장교가 생디칼리스트 저항군에게 생포당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장교 구출 및 보복으로 벌어진 학살.
- ↑ Stoßtruppen
- ↑ Wiking. 바이킹.
- ↑ 덴마크의 경우는 대부분 독일군으로 자원입대하는 이들이 주축이었고 스웨덴의 경우는 스웨덴이 노르웨이 전선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부전선 파병군이 편입되는 경우였다.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적화된 노르웨이에서 탈출한 반공주의자들이 주로 입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