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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흐 ==
| | {{재건}} |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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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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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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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답을 찾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 있고, 답을 잃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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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그 차이를, 스무두 번째 봄이 끝나갈 무렵에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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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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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쿠슈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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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벚꽃 잎이 흩날리고,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신입생들이 동아리 홍보 전단을 나눠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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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앞 분수에서는 햇살이 부서졌고, 강의동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각자의 미래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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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풍경 속에서 유독 조용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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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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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실의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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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은 그녀를 '황실의 보석'이라 칭송했고, 국민들은 그녀를 '국가의 얼굴'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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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한 번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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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라는 이름보다 먼저 따라오는 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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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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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언제나 보이지 않는 거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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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도 조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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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들도 말을 골랐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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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그녀를 힐끗 바라본 뒤 시선을 거두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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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게는 늘 사람들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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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곁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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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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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기 수강신청 화면에서 우연히 발견한 교양 과목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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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인간관계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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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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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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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는 가장 먼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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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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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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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강의실에서 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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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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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인간관계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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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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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의 첫마디는 칠판보다 먼저 학생들의 마음에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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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안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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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노트북을 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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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펜을 돌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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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아직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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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아무 말 없이 공책 첫 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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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질문을 그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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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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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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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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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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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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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고 차분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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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에 들어온 학생은 짧은 검은 머리에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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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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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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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에는 빈자리가 몇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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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은 비어있는 자리를 창자 두리번 거리다가 호노카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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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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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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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서로를 다시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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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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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수업은 플라톤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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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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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사랑을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동의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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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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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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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요. 행복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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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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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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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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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옆의 학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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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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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은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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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은 시작일 수는 있지만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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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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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려는 과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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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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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해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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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처음으로 옆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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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은 발표를 마친 뒤 괜히 연필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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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감 있게 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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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받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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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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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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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도 가방을 메려다 문득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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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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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이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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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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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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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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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아주 작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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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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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호노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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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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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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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한다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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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창밖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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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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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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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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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 더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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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괜찮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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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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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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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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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늘 호노카에게 먼저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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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호노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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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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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을 알아챈 것처럼 나츠메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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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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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두 사람은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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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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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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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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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읽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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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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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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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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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하게도 대화는 한 번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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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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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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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소로 돌아온 호노카는 공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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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에는 여전히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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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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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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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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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몇 달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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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문장 아래에는 전혀 다른 대답이 적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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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의 호노카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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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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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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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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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칠판에 단 한 줄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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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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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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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스크린에는 고대 그리스의 연회 그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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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에서 사랑은 하나의 정의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결핍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라 말하며, 또 누군가는 영혼을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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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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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번 과제는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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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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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두 사람이 함께 하나의 답을 만들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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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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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는 제가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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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터에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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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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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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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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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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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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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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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무심코 옆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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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역시 그녀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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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다 웃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안도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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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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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이 끝난 뒤 호노카가 먼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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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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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후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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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워 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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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비어 있었던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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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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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나츠메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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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웃음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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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쿠슈인대학교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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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이 높고, 오래된 나무 책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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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철학 서가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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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은 몇 번 읽어도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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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책을 넘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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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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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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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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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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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어려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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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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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답은 반칙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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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원래 반칙이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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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동시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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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학생들이 힐끗 바라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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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문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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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이렇게 마음 놓고 웃은 적이 언제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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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없었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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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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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를 시작하면 영화 이야기로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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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야기에서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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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에서 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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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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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어릴 때 어떤 아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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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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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많지는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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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부정 못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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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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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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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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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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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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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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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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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대답이 이상하게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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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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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비슷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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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믿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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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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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라면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먼저 다가올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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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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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사람은 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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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나츠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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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종이에 작은 글씨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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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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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받지 못할 때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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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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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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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를 위해 둘은 미술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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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교수는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 하나를 골라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추가 과제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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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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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오래된 유화 앞에서 나란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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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맞잡은 연인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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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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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얼굴을 안 그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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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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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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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기 자신을 그 자리에 넣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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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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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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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저 그림 속 두 사람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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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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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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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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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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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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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몇 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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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먼저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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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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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이 되자 둘은 캠퍼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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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은 어느새 절반쯤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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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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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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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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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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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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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말을 고르다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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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 핑계로 또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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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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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계가 없어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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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한마디에 호노카는 순간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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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로 들릴지 미처 깨닫지 못한 듯, 아무렇지 않게 앞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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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한 걸음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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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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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잎 하나가 나츠메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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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무심코 손을 뻗어 꽃잎을 떼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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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손끝이 아주 잠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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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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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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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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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호노카를 바라보다 작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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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따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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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짧은 한마디는 그날 밤 내내 호노카의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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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기숙사 책상에 앉아 과제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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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페이지에는 여전히 같은 질문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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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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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펜을 들었다가, 한참 동안 아무 글자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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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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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은 이제 철학이 아니라, 한 사람의 표정을 이해하고 싶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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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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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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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캠퍼스는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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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은 모두 져 버렸지만, 나무들은 더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 갔다. 학생들은 중간고사를 앞두고 도서관으로 향했고, 교정에는 처음보다 훨씬 편안한 웃음소리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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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도 어느새 이 풍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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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지만 달라진 것은 계절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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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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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문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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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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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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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처럼 셔츠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 차림, 어깨에는 낡은 캔버스 가방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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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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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도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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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색한 침묵은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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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란히 강의실로 들어가는 일도, 창가 자리에 함께 앉는 일도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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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무슨 내용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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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노트를 꺼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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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교탁 위에 놓인 책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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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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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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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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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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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판에는 두 단어만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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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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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T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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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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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사람을 '본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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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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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버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상대를 목적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만나는 '나-너'의 관계, 다른 하나는 상대를 수단이나 대상으로 바라보는 '나-그것'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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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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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생각보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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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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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친구에게 '오늘 힘들었어?'라고 묻는 이유가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해서라면 그것은 '나-너'입니다. 하지만 시험 자료를 얻기 위해 일부러 친절하게 다가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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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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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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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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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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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무심코 펜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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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만나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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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말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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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이 끝난 뒤, 교수는 새로운 과제를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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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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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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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일주일 동안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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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해석하지도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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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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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는 생각보다 타인을 거의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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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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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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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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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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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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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람은 처음부터 의미를 붙이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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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츠메는 누구를 관찰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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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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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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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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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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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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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도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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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표정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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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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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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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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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문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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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걸을 때 항상 상대의 보폭에 맞춰 걷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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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느린 사람과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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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빠른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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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는데, 오늘은 그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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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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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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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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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누군가가 말을 시작하면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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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마실 때는 늘 마지막 한 모금이 식을 때까지 천천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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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는 책장을 넘길 때조차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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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웃을 때는 눈부터 먼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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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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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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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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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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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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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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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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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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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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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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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차마 그 뒤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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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하면 나는 요즘, 자꾸 너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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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은 아직 마음속에만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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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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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기숙사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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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과제 제목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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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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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동안 빈 종이를 바라보던 그녀는 첫 문장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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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조용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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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줄을 하나 긋고 그 문장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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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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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관찰이 아니라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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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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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상대가 말을 끝낼 때까지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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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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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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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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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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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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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언젠가 사랑의 가장 조용한 시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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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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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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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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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가 나온 지 사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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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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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행동들이 이제는 자꾸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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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강의가 끝나면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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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의자를 원래 위치로 밀어 넣고, 창문이 열려 있으면 조용히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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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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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늘 그렇게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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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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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이유를 찾으려다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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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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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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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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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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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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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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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나츠메 역시 과제를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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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다른 학생을 관찰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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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회에서 늘 활발하게 웃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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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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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동아리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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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노트는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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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수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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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이해하고 싶은 사람을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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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나츠메의 시선도 한 사람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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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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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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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과제를 마친 둘은 캠퍼스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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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바람이 시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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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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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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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준비는 잘 돼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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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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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처럼 평범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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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지만 나츠메는 오늘 따라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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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면 호노카는 늘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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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와 마주쳐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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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이 떠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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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미소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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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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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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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잠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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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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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무리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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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한마디에 호노카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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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번 웃음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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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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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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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를 위해 둘은 각자 작성한 메모를 보여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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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망설이다가 노트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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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첫 줄을 읽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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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항상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늦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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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까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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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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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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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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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몰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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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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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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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번에는 나츠메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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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녀도 노트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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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첫 문장을 읽다가 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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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 번도 한숨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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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아래에는 또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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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창밖을 오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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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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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언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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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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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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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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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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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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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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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있고 싶었는데 내가 본 걸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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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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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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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조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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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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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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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누군가 알아봐 줬으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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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이 끝나자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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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초록 잎들이 흔들리는 소리만 둘 사이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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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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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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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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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저 호노카 곁에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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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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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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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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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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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늘 수업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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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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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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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지금은 네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보다, 네 옆에 있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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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처음으로 그 말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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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람은 반드시 말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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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침묵도 누군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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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날 해 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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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둘은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아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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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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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히려 지금까지 나눴던 어떤 대화보다도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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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문득 깨달았다.
| |
| | |
| 철학은 정답을 가르쳐 주는 학문이 아니라,
| |
| | |
| 누군가를 더 깊이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학문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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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츠메에게 머물러 있었다.
| |
| | |
|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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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기숙사 창문을 열어 두었다.
| |
| | |
| 늦봄의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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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책상 위에는 철학 과제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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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과제 제목은 간단했다.
| |
| | |
|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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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동안 펜을 들고만 있던 호노카는 천천히 첫 문장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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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상대가 말을 끝낼 때까지 절대로 끼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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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잠시 생각한 뒤 두 번째 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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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웃을 때는 눈이 먼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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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세 번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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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혼자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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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펜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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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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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는 과제를 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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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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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라는 사람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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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순간 오후에 있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 |
| | |
| "오늘은 네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보다, 네 옆에 있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서."
| |
| | |
| 그 말을 떠올리자 가슴 한쪽이 조용히 따뜻해졌다.
| |
| | |
| 호노카는 자신도 모르게 노트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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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첫 수업 날 적어 두었던 문장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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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그녀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 |
| | |
| 수업 첫날에는 철학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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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답을 찾으면 끝나는 질문이라고 믿었다.
| |
| | |
|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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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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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도서관에서 웃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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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미술관에서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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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핑계가 없어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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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짧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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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리고 오늘,
| |
| | |
|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 주던 따뜻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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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펜을 들어 질문 아래에 작은 글씨를 적으려다 멈췄다.
| |
| | |
| 아직은 쓸 수 없었다.
| |
| | |
| 정답을 적기에는 너무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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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녀는 대신 노트를 덮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 |
| | |
| "...아직은 모르겠어."
| |
| | |
| 창밖에서는 초여름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 |
| | |
| 하지만 그 질문은 바람보다 오래,
| |
| | |
| 호노카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아직 그녀는 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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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질문이 언젠가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 |
| | |
| 아직은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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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제4장===
| |
| 발견 이후의 선택
| |
| | |
| 6월의 캠퍼스는 어느새 초여름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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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빗물이 마른 운동장에서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고, 학생회는 중앙광장에 천막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도서관 앞 벤치에는 시험이 끝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고, 교정을 가로지르는 은행나무 잎은 햇빛을 받아 연둣빛으로 반짝였다.
| |
| | |
| 호노카는 창문을 통해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 |
| | |
| 나츠메는 아직 오지 않았다.
| |
| | |
| 평소라면 강의 시작 10분 전에는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있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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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늦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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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 |
| | |
| 강의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
| | |
| "...죄송합니다."
| |
| | |
| 조금 숨이 찬 목소리였다.
| |
| | |
| 나츠메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 |
| | |
| "괜찮아?"
| |
| | |
| 호노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
| | |
| 나츠메는 숨을 고른 뒤 미소를 지었다.
| |
| | |
| "오는 길에 어린아이가 넘어졌어."
| |
| | |
| "그래서?"
| |
| | |
| "무릎이 많이 까졌더라."
| |
| | |
| "병원은?"
| |
| | |
| "근처 보건실까지 데려다주고 왔어."
| |
| | |
| 그 말은 너무도 담담해서, 마치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흘러나왔다.
| |
| | |
| 호노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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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 |
| | |
| 누군가를 돕는 일이.
| |
| | |
|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일이.
| |
| | |
| 나츠메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해 보였다.
| |
| | |
| 그날 수업의 주제는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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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수는 책을 덮고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 |
| "오늘은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 |
| | |
| 칠판 위에 분필이 천천히 움직였다.
| |
| | |
| 사랑은 감정일까요, 결단일까요?
| |
| | |
| 학생들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봤다.
| |
| | |
|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 |
| | |
| "우리는 흔히 사랑을 '빠지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 |
| | |
| 그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 |
| | |
|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사랑을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 |
| | |
| 호노카는 문득 첫 수업이 떠올랐다.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처음에는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 |
| | |
| 하지만 이제는 그 문장이 이전과 다르게 들렸다.
| |
| | |
| 교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 |
| | |
|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우연일 수 있습니다."
| |
| | |
| "하지만 그 사람 곁에 머물기로 하는 것은 의지입니다."
| |
| | |
| "사랑은 감정만으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 |
| | |
| "사랑은 매일같이 내리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입니다."
| |
| | |
| 강의실은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다.
| |
| | |
| 호노카는 무심코 옆을 바라봤다.
| |
| | |
| 나츠메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 |
| | |
| 한 줄.
| |
| | |
| 그리고 또 한 줄.
| |
| | |
| 수업이 끝난 뒤.
| |
| | |
| "뭘 그렇게 열심히 적었어?"
| |
| | |
| 호노카가 물었다.
| |
| | |
| 나츠메는 노트를 덮으며 웃었다.
| |
| | |
| "비밀."
| |
| | |
| "또?"
| |
| | |
| "응."
| |
| | |
| "나만 비밀 없는 것 같네."
| |
| | |
| 나츠메는 잠시 생각하다가 노트를 살짝 돌려 보여 주었다.
| |
| | |
| 거기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 |
| | |
| '발견은 우연이지만, 곁에 남는 것은 선택이다.'
| |
| | |
| 호노카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 |
| | |
| 왠지 모르게 가슴이 조금 뛰었다.
| |
| | |
| "좋은 문장이네."
| |
| | |
| "교수님 말씀 듣다가 적어 본 거야."
| |
| | |
| "나는…."
| |
| | |
| 호노카는 잠시 말을 멈췄다.
| |
| | |
| "아직 잘 모르겠어."
| |
| | |
| 나츠메는 고개를 갸웃했다.
| |
| | |
|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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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우연인지, 선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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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잠시 침묵.
| |
| | |
| 나츠메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 |
| | |
| 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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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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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참 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 |
| | |
| "둘 다 아닐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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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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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처음은 우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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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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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다음부터는 서로가 만들어 가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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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 |
| | |
|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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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기숙사 방에서 혼자 차를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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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다가 책상 위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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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첫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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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첫 수업 날 적었던 문장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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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그녀는 그 아래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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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질문 옆에 아주 작은 화살표 하나를 그렸다.
| |
| | |
| 화살표 끝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 |
| | |
| "발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른다."
| |
| | |
| 펜을 내려놓은 호노카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 |
| | |
| 그녀는 아직 사랑을 정의할 수 없었다.
| |
| | |
|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 |
| | |
| 나츠메를 만난 이후,
| |
| | |
| 그 질문은 더 이상 철학 수업의 과제가 아니었다.
| |
| | |
| 그것은 어느새,
| |
| | |
|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 질문이 되어 있었다.
| |
| | |
| 그리고 오늘도,
| |
| | |
| 노트를 덮기 전 마지막으로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제5장===
| |
| 비가 오는 날에는
| |
| | |
|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는 정확했다.
| |
| | |
| 아침부터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가득했고, 빗방울은 강의동 창문을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 |
| | |
| 철학 강의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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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수는 우산을 접으며 학생들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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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 오는 날은 이상하게 철학을 이야기하기 좋은 날입니다."
| |
| | |
| "오늘은 철학자를 배우기보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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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수는 천천히 칠판에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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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는 왜 타인의 행복을 바라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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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펜을 든 채 잠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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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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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학생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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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좋아하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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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하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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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대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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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수는 마지막으로 나츠메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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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 학생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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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
| | |
|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게 되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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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말을 잠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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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삶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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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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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고개를 숙인 채 노트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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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한 문장이 이상할 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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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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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줄기는 더 굵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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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저마다 우산을 펴고 강의동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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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도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려다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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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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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 안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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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 현관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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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비를 바라보던 그녀의 머리 위로 검은 우산 하나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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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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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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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비 금방 그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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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예보는 저녁까지 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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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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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맞고 가면 감기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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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당연하다는 듯 우산을 조금 더 호노카 쪽으로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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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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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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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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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지만 이상하게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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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정을 절반쯤 지났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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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문득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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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의 왼쪽 어깨가 조금씩 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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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산은 대부분 자신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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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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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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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너 젖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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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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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안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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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우산 손잡이를 살짝 잡아 가운데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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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번에는 두 사람의 어깨가 동시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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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순간 둘 다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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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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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가 먼저 손을 놓으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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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가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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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대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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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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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지금이 더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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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빗방울이 우산 위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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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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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심장은 이유 없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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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를 피해 둘은 오래된 학생회관 카페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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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창가 자리는 거의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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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따뜻한 커피 두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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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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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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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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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커피잔을 감싸 쥔 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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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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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의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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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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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조용한 사람은 맑은 날을 좋아할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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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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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 오는 날은 세상이 조금 천천히 움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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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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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람 마음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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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그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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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 사람은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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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남들과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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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지만 그 다름이 이상하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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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카페를 나설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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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는 조금 잦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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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문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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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
| |
|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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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늘 교수님 질문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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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왜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바라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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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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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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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잠시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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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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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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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혹시 누군가를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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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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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동안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끝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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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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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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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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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좋아해서 행복을 바라게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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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녀는 호노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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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행복을 바라다 보니까 좋아하게 되는 건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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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말에 호노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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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날 밤.
| |
| | |
| 기숙사 방은 빗소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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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젖은 우산을 문 앞에 세워 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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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익숙한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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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첫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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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언제나처럼 그 문장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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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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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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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늘 처음으로 질문 아래에 또 한 줄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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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언제부터 사랑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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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펜을 내려놓은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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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 냄새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 |
| | |
|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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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늘 우산 아래에서 스쳤던 나츠메의 어깨.
| |
| | |
| 커피잔을 감싸 쥐던 따뜻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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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사람도... 지금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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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빗소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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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지만 호노카는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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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질문은 더 이상 철학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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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것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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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누군가를 향해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한 자신의 마음이었다.
| |
| | |
| 그리고 노트를 덮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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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녀는 마지막으로 속삭이듯 읽었다.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제6장===
| |
| 당신의 여름이, 나의 여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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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여름방학이 시작된 첫날.
| |
| | |
| 캠퍼스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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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의가 끝난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학생식당의 긴 줄도 사라졌다. 매미 소리만이 교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
| | |
| 호노카는 철학관 앞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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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후 1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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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약속 시간은 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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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조금 일찍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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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혼잣말을 하며 웃은 순간이었다.
| |
| | |
|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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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익숙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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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고개를 들자 흰 셔츠에 짙은 남색 린넨 바지를 입은 나츠메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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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햇빛을 등지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름 그 자체처럼 선명했다.
| |
| | |
| "방금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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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거짓말."
| |
| | |
| "왜?"
| |
| | |
| "호노카는 거짓말하면 시계를 먼저 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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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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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들켰네."
| |
| | |
| 나츠메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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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미안."
| |
| | |
| "괜찮아."
| |
| | |
|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둘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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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방학에도 철학 교수는 선택 과제를 하나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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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올여름 가장 기억하고 싶은 하루를 기록해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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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답도 없고, 형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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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저 하루를 기억하면 된다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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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그 과제를 보자마자 나츠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 |
| -> 혹시 이번 주 토요일 시간 있어?
| |
| | |
| 답장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 |
| -> 있어.
| |
| | |
| -> 어디 갈래?
| |
| | |
| 호노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 |
| | |
| -> 바다.
| |
| | |
| 전철은 해안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 |
| | |
| 창밖으로 푸른 바다가 반짝였다.
| |
| | |
| 호노카는 창가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
| | |
| '내년 여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 |
| | |
|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 |
| | |
| 이런 궁금증과 불안함은 과연 무슨 감정일까.'
| |
| | |
| 이내 그녀는 지금은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 |
| | |
|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던 나츠메는 호노카에게 물었다.
| |
| | |
|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해? 호노카."
| |
| | |
| 호노카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답했다.
| |
| | |
| "아무것도 아냐. 그냥 쓰데 없는 고민을 잠시 했을 뿐이야"
| |
| | |
| 나츠메는 그저 호노카를 보며 웃었다.
| |
| | |
| "괜찮아.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아있거든? 너는 말야. 행복 할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 |
| | |
| .
| |
| .
| |
| .
| |
| | |
| 바다는 잔잔했다.
| |
| | |
| 파도는 발목까지 와서 부서졌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 |
| | |
| 둘은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천천히 걸었다.
| |
| | |
| "어릴 때 바다 자주 왔어?"
| |
| | |
| 호노카가 물었다.
| |
| | |
| 나츠메는 고개를 저었다.
| |
| | |
| "거의."
| |
| | |
| "의외다."
| |
| | |
| "바다보다 산이 가까웠거든."
| |
| | |
| 호노카는 모래 위에 작은 조개껍데기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 |
| | |
| "예쁘다."
| |
| | |
| "줄까?"
| |
| | |
| "응?"
| |
| | |
| "기념으로."
| |
| | |
| 나츠메는 조개껍데기를 받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 |
| | |
| "잃어버리지 않을게."
| |
| | |
| 그 말은 조개껍데기만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 |
| | |
|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 |
| | |
| 둘은 방파제 끝에 나란히 앉아 차가운 음료를 마셨다.
| |
| | |
|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 |
| | |
| 호노카가 조용히 말했다.
| |
| | |
| "나츠메."
| |
| | |
| "응."
| |
| | |
| "우리 처음 만난 지 얼마나 됐지?"
| |
| | |
| "석 달쯤."
| |
| | |
| "석 달밖에 안 됐네."
| |
| | |
| 나츠메는 작게 웃었다.
| |
| | |
| "나도 가끔 이상해."
| |
| | |
| "뭐가?"
| |
| | |
|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은 느낌."
| |
| | |
| 호노카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 |
| | |
|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 |
| 노을이 수평선을 붉게 물들일 무렵.
| |
| | |
| 호노카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
| | |
| "나츠메."
| |
| | |
| "응."
| |
| | |
| "오늘 과제."
| |
| | |
| "응."
| |
| | |
| "나는 이미 쓸 수 있을 것 같아."
| |
| | |
| "뭐라고?"
| |
| | |
| 호노카는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 |
| "올여름 가장 기억하고 싶은 하루."
| |
| | |
| "...오늘?"
| |
| | |
| "응."
| |
| | |
| 나츠메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 |
| | |
| 이윽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 |
| "...나도."
| |
| | |
|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 |
| | |
| 말은 더 필요하지 않았다.
| |
| | |
| 그 침묵 속에는 그동안 함께한 계절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
| | |
| 돌아오는 전철.
| |
| | |
| 창문 밖으로 마지막 햇빛이 흘러갔다.
| |
| | |
| 호노카는 졸음에 겨워 고개를 살짝 숙였다.
| |
| | |
| 전철이 흔들릴 때마다 몸이 조금씩 기울었다.
| |
| | |
| 잠시 뒤.
| |
| | |
| 나츠메는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깨를 내주었다.
| |
| | |
| 호노카는 잠에서 깨지 않은 채 그 어깨에 기댔다.
| |
| | |
| 나츠메는 창밖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 |
| | |
|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 |
| | |
| 처음으로 그녀도 그런 바람을 품었다.
| |
| | |
| 그날 밤.
| |
| | |
| 호노카는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과제 노트를 펼쳤다.
| |
| | |
| 첫 장에는 언제나처럼 같은 문장이 있었다.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그녀는 손끝으로 그 문장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 |
| | |
| 그리고 오늘의 날짜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 |
| | |
| "어쩌면 사랑은, 한 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
| | |
| 잠시 후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 |
| | |
| 멀리서 여름 축제의 불꽃놀이 소리가 들려왔다.
| |
| | |
| 하늘에 피어오른 불꽃은 금세 사라졌지만,
| |
| | |
| 오늘 하루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 |
| | |
| 호노카는 노트를 덮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다시 읽었다.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이번에도 아직 답은 적지 않았다.
| |
| | |
| 하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 |
| | |
| 자신의 여름이,
| |
| | |
| 누군가와 함께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 |
| | |
|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이름은,
| |
| | |
|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적혀 있었다.
| |
| | |
| '''나츠메.'''
| |
| | |
| ===제7장===
| |
| 마음의 선택
| |
| | |
| 사람들은 계절이 지나간다고 말한다.
| |
| | |
| 하지만 호노카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 |
| | |
| 계절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남는 것이라고.
| |
| | |
| 누군가와 함께 웃었던 오후도,
| |
| | |
| 같은 우산 아래를 걸었던 장마도,
| |
| | |
| 바다 냄새가 묻어 있던 여름도.
| |
| | |
|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한 사람의 계절이 된다.
| |
| | |
| 그리고 그 계절의 이름은,
| |
| | |
| 언제나 누군가의 이름을 닮아 있었다.
| |
| | |
| 방학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삼 주가 흘렀다.
| |
| | |
| 가쿠슈인대학교는 놀랄 만큼 조용했다.
| |
| | |
| 강의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철학관 복도에는 학생보다 햇빛이 더 오래 머물렀다.
| |
| | |
| 도서관만은 예외였다.
| |
| | |
| 기말 과제를 끝내려는 학생들이 창가 자리를 하나둘 채우고 있었다.
| |
| | |
| 호노카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 |
| | |
| 하지만 노트는 한 시간째 같은 페이지에서 멈춰 있었다.
| |
| | |
| 첫 수업 날 적어 두었던 문장.
| |
| | |
| 그리고 종강 전 교수에게서 받은 마지막 과제.
| |
| | |
|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 |
| | |
| "지금의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 |
| | |
| 호노카는 펜을 손에 쥔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 |
| "...모르겠어."
| |
| | |
| 그녀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 |
| | |
| 사랑을 결핍이라 말한 플라톤도.
| |
| | |
| 사람을 '너'로 바라보라는 부버도.
| |
| | |
| 사랑은 선택이라고 말한 키르케고르도.
| |
| | |
| 하지만 정작 자신의 대답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 |
| | |
|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 |
| | |
| 나츠메
| |
| "도서관 2층 맞아?"
| |
| | |
| 호노카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 |
| | |
| -> "응."
| |
| | |
| 30초도 지나지 않아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 |
| | |
| "고생 많네."
| |
| | |
| 나츠메였다.
| |
| | |
| 짙은 남색 셔츠에 흰 면바지.
| |
| | |
| 햇빛을 받아 조금 밝아 보이는 짧은 머리.
| |
| | |
| 그리고 늘 메고 다니는 캔버스 가방.
| |
| | |
| 평범한 모습인데도 이상하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 |
| | |
| "진도는?"
| |
| | |
| 나츠메가 호노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 |
| | |
| "...0%."
| |
| | |
| "나도."
| |
| | |
|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
| | |
| 도서관 사서가 조용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자 둘은 급히 웃음을 삼켰다.
| |
| | |
| "...미안."
| |
| | |
| "...죄송합니다."
| |
| | |
| 도서관을 나와 복도에 선 둘은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 |
| | |
| "우리 정말 과제하러 온 거 맞아?"
| |
| | |
| 호노카가 말했다.
| |
| | |
| "글쎄."
| |
| | |
| 나츠메는 창밖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 |
| | |
| "호노카를 만나러 온 것 같기도 하고."
| |
| | |
|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 |
| | |
| "...어?"
| |
| | |
| "아."
| |
| | |
| 나츠메도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귀가 조금 붉어졌다.
| |
| | |
| "...그러니까."
| |
| | |
| "응?"
| |
| | |
| "혼자 쓰면 안 써질 것 같아서."
| |
| | |
| 호노카는 작게 웃었다.
| |
| | |
| "나도."
| |
| | |
| 거짓말은 아니었다.
| |
| | |
| 과제보다 먼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 |
| | |
| 그게 서로였다는 사실을, 둘 다 애써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 |
| "우리 밖으로 나갈까?"
| |
| | |
| 나츠메가 먼저 말했다.
| |
| | |
| "공부는?"
| |
| | |
| "안 되잖아."
| |
| | |
| "...그건 인정."
| |
| | |
| 둘은 도서관을 나와 교정을 천천히 걸었다.
| |
| | |
|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지만,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바람이 시원했다.
| |
| | |
| 매미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 |
| | |
| "이상하지."
| |
| | |
| 호노카가 말했다.
| |
| | |
| "뭐가?"
| |
| | |
| "방학인데 학교가 싫지 않아."
| |
| | |
| 나츠메는 웃었다.
| |
| | |
| "왜?"
| |
| | |
| "예전엔 학교는 수업 들으러 오는 곳이라고만 생각했거든."
| |
| | |
| "지금은?"
| |
| | |
| 호노카는 잠시 생각했다.
| |
| | |
| "...누군가를 만나러 오는 곳."
| |
| | |
|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둘 사이에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 |
| 나츠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 |
| 대신 아주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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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미소가 너무 다정해서, 호노카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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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을 한 바퀴 돌고 나자 작은 매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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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크림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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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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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바닐라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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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소다 맛을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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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 호노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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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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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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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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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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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급히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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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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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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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지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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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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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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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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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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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츠메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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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이 아주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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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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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숨도 쉬지 못한 채 호노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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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역시 손을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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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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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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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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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두 사람의 심장은 같은 박자로 조금 빨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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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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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잔디밭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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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 사이로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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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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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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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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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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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아쉬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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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눈을 감은 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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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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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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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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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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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끝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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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둘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뜻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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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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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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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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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이 여름을 조금 더 오래 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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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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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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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가 가방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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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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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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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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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는 두 장의 입장권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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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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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바로 그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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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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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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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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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입장권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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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이 나츠메의 옆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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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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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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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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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한마디에 나츠메는 안도한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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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웃음을 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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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문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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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은 이 사람의 웃는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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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오래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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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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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 방은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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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책상 위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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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에는 여전히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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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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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질문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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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처음으로 질문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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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 같은 계절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은, 발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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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이미 선택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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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을 내려놓은 호노카는 창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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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공기 속에서 매미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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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까지는 아직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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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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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주일이 그녀에게는 한 계절처럼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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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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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모두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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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이 찾고 있던 사랑의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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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책이 아니라 서로의 입술 끝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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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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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선택, 아니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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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이상한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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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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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숨겼을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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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외면했을 감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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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저녁의 바람 앞에서는 끝내 숨을 곳을 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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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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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에는 해가 지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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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마다 노란 등이 켜지고, 아이들은 손에 풍선을 든 채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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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약속 장소보다 십 분 먼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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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종이봉투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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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는 여름 바다에서 주웠던 조개껍데기를 넣어 만든 작은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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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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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고민해 직접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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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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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히 긴장한 채 숨을 고르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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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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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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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들자 나츠메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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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나츠메는 평소보다 조금 더 단정한 유카타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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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남색 바탕에 흰 물결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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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중성적인 분위기였지만, 그 모습은 여름 저녁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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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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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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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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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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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뒤, 나츠메도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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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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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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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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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두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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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호노카의 심장은 그 말 하나로 금세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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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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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사탕 하나를 나눠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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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유자 탄산수를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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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 게임에서는 둘 다 상품 하나 맞히지 못해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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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여름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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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둘에게는 처음 함께 보내는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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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풍경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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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완전히 저물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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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놀이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십여 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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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 끝은 다른 곳보다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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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사람들을 피해 강가 난간에 나란히 기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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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물 위로 축제의 등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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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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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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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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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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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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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과제는 아직도 끝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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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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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은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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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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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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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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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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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호노카라면 벌써 써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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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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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을 몰라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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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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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답을 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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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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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내 마음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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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조용히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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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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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첫 번째 불꽃이 하늘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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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터지기 전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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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은 점처럼 작았지만, 둘의 눈에는 선명하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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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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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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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수업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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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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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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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동시에 그 문장을 따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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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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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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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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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 계속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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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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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널 만난 게 우연이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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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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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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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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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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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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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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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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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계속 너를 만나기로 선택하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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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말을 끝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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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에 오래 숨겨 두었던 무언가가 조용히 흘러나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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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래서 이제는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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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나츠메를 똑바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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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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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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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로 좋아하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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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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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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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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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불꽃 하나가 밤하늘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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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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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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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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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빛이 강물 위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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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빛 사이에서 나츠메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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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눈가에는 작은 물기가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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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늦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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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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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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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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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참 전부터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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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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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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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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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첫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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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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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 말 한마디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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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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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웃으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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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눈물이 먼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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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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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츠메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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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날은 웃는 날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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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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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할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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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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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잡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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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노카는 말없이 자신의 손을 포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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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손끝이 맞닿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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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함께 걷던 봄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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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을 나누던 장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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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바라보던 여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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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모두 그 온기 속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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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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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은 여전히 둘에게 가장 편안한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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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놀이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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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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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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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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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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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쓸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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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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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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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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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호노카는 가장 먼저 책상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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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기 내내 함께했던 철학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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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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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의 자신이 적어 놓은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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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발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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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오래도록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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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질문 아래에 답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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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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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만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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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너의 곁에 머물기로 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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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가장 기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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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조용히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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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에서는 여름의 마지막 불꽃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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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이후로도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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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노카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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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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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여름이 되어 준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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