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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개요 == | ||
{{ | {{인용문|배는 6시 15분에 도착했다. 차가운 나무판자 위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군중들은 배가 선착장에 닿는 것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은 듯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갔다. 선착장 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울리고 줄이 쳐졌다. 하지만 그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쌀자루를 떨어뜨린 남편, 옷보퉁이가 바뀐 딸아이들의 울음소리로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서로 부르고, 찾고, 꾸짖는 소리로 부두가 떠내려 가려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에 부딪치는 하얀 물보라가 까맣게 변했다.|김동리, 「부산항」 中}} | ||
[[ | [[조선전쟁 (당신들의 조선)|조선전쟁]]에서 패한 [[대한민국 (당신들의 조선)|대한민국]] 정부가 피난민 수십 만 명을 이끌고 1950년 9월 21일부터 약 2주간 [[제주도 (당신들의 조선)|제주도]]의 북제주군<ref>현재의 [[제주직할시 (당신들의 조선)|제주직할시]].</ref>로 수도를 옮긴 사건. | ||
'''단군 이래 최대 이주 | '''단군 이래 최대 이주'''라고 불릴 정도의 대규모 수도 이전 사건으로 2주간의 시간 동안 약 40만명<ref>정부 소속 선박에 탑승한 피난민의 총 수로 민간 선박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학계에선 총 수를 최소 50만명, 최대 '''75만명'''으로 보고 있다.</ref>의 부산 시민과 피난민들이 제주도로 내려왔으며 건물 한 채라도 [[조선 (당신들의 조선)|북괴]]의 손아귀에 들어가선 안된다는 취지 하에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시 (당신들의 조선)|부산]]의 관공서, 창고, 민가까지 모조리 불태워버려 이 당시 집을 잃은 이들의 수가 수천에 육박한다고 전해진다. | ||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제주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의 일부 부속도서를 제외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ref>그러나 당시 경상남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통영군마저도 1957년 [[거제 상륙작전 (당신들의 조선)|제2차 거제 상륙작전]]으로 인해 조선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되었다.</ref> 이 사건이 계가가 되어 이후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대만,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차례대로 공산화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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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의 방화로 불타고 있는 부산 시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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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민군의 부산 입성 === | === 조선인민군의 부산 입성 === | ||
== 결과 == | == 결과 == | ||
국부천제 이후 대한민국은 2,000만 | 국부천제 이후 대한민국은 2,000만 인구의 국가에서 순식간에 65만 남짓하는 인구<ref>이마저도 부산에서 온 피난민들까지 포함한 숫자이다.</ref>를 가진 조그마한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써 조선전쟁은 사실상 [[김일성 (당신들의 조선)|김일성]]과 [[조선 (당신들의 조선)|조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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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일 (화) 04:3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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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천제 國府遷濟 | Retreat of the Republic of Korea to Che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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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군수품을 운반하는 국군의 모습 |
개요
배는 6시 15분에 도착했다. 차가운 나무판자 위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군중들은 배가 선착장에 닿는 것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은 듯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갔다. 선착장 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울리고 줄이 쳐졌다. 하지만 그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쌀자루를 떨어뜨린 남편, 옷보퉁이가 바뀐 딸아이들의 울음소리로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서로 부르고, 찾고, 꾸짖는 소리로 부두가 떠내려 가려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에 부딪치는 하얀 물보라가 까맣게 변했다. 김동리, 「부산항」 中 |
조선전쟁에서 패한 대한민국 정부가 피난민 수십 만 명을 이끌고 1950년 9월 21일부터 약 2주간 제주도의 북제주군[1]로 수도를 옮긴 사건.
단군 이래 최대 이주라고 불릴 정도의 대규모 수도 이전 사건으로 2주간의 시간 동안 약 40만명[2]의 부산 시민과 피난민들이 제주도로 내려왔으며 건물 한 채라도 북괴의 손아귀에 들어가선 안된다는 취지 하에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관공서, 창고, 민가까지 모조리 불태워버려 이 당시 집을 잃은 이들의 수가 수천에 육박한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제주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의 일부 부속도서를 제외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3] 이 사건이 계가가 되어 이후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대만,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차례대로 공산화되었다.
배경
국부천제를 다루고 있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
9월 12일 마산 전투의 패배를 시작으로, 다부동 전투, 영천·신녕 전투에서 한미연합군이 크게 패하면서 대한민국의 생명선과도 같은 낙동강 전선은 9월 17일을 기점으로 조선인민군에게 완전히 돌파당하게 된다. 이 기세를 몰아 조선인민군은 달성, 함안, 군위, 영천, 대구로까지 입성하여 대한민국은 건국 3년만에 국가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당시 미군을 총지휘하던 월튼 워커 미8군사령관은 최후의 히든 카드로 남겨둔 New Korea Plan, 일명 신한국 계획의 실행을 이승만 정부에 제안한다.
과정
대이주
부산의 초토화
국군의 방화로 불타고 있는 부산 시내 |
조선인민군의 부산 입성
결과
국부천제 이후 대한민국은 2,000만 인구의 국가에서 순식간에 65만 남짓하는 인구[4]를 가진 조그마한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써 조선전쟁은 사실상 김일성과 조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영향
각종 매체에서
- 소설가 김동리의 작품 <부산항>이 개요에 서술한 인용문에서 보여지듯 국부천제 당시 부산항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