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
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공화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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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 <div style="margin: -5.0px -9.0px">{{small| | | colspan="4" style="border:none;" | <div style="margin: -5.0px -9.0px">{{small|지역별 결과 (1차 / 결선)<ref>지도를 마우스 클릭하여 1차 투표 결과와 결선 투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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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차}} | ||
== 개요 == | |||
2007년 5월 6일 치러진 [[대한공화국 (리좀)|대한공화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 |||
== 배경 == | |||
[[제31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리좀)|31회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지지 기반을 확보한 [[노무현 (리좀)|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의회 지지 기반이었던 한인사회당의 초, 재선 의원들은 정무감각이 크게 뒤떨어졌고, 지휘부는 우유부단했다. 결국 각 의원들이 통합된 행동 없이 개인 플레이만을 추구하며 당은 분열되었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굴러갈리가 없었고 총리가 1년마다 교체되는 혼란상에서, 사회당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박근혜 (리좀)|박근혜]]와 [[이명박 (리좀)|이명박]]이라는 두 거물급 대선 후보가 공화당을 이끌고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지지율을 올린다. | |||
2006년 연말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타협으로 이명박이 총리로서 내치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외치를 맡기로 한 사실상의 동거정부 협상 직후, [[김한길 (리좀)|김한길]]이 이끄는 사회당 내 비노파가 집단탈당해 사회당은 과반 의석을 상실했고 뒤이어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도 사회당을 탈당하면서 사회당은 제1당 유지조차 어려워졌다. 과반을 얻은 의회 내 반 노무현파는 [[김근태 (리좀)|김근태]] 총리에 대해 불신임을 상정해 통과시켰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제1야당 당수인 이명박을 울며겨자먹기로 총리로 임명한다. |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친노파 전원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김한길을 위시로 한 비노계가 모두 사회당에 재입당했고 사회당은 1당 지위를 수복하였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인사로 여겨진 [[고건 (리좀)|고건]] 전 서울시장을 후보로 선출하나 지지율은 매우 저조했다. 한편 전 대통령 선거에서 출마한 [[이회창 (리좀)|이회창]] 국무총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야합,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며 충청권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 (리좀)|자유선진당]]을 창당해 중도보수 노선을 내걸었으며, 노동계 인사인 [[권영길 (리좀)|권영길]] 전 노동부장관 역시 무소속 출마를 타진하며 유례 없는 4자 구도가 성립되었다. | |||
== 후보자 경선 == | |||
=== [[공화당 (리좀)|공화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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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background: #0065B3; color: #fff; line-height: 160%;" | <div style="margin-top: 3px;">'''{{글씨 크기|14|제13회 대통령 선거 공화당<br>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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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33%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이름 | |||
! width=22% style="background:#eee; color:#000;" | 득표수 | |||
! width=20.5%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순위 | |||
|-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계파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득표율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비고 | |||
|- | |||
! rowspan="2" style="background: #0065B3; color: #FFF;" | <div style="margin: -0px -9px">{{글씨 크기|16|1}} | |||
| '''[[박근혜 (리좀)|박근혜]](朴槿惠)''' | |||
| '''113,565''' | |||
| '''1위''' | |||
|- | |||
| '''친박''' | |||
| '''84.18%''' | |||
| style="background:gold; color:#000;" | '''당선''' | |||
|- | |||
! rowspan="2" style="background: #4CA537; color: #fff;" | <div style="margin: -0px -9px">{{글씨 크기|16|2}} | |||
| [[변종률 (리좀)|변종률]](卞宗率) | |||
| 15,498 | |||
| 2위 | |||
|- | |||
| 사회당 탈당파 | |||
| 11.49% | |||
| 낙선 | |||
|- | |||
! rowspan="2" style="background: #333; color: #fff;" | <div style="margin: -0px -9px">{{글씨 크기|16|3}} | |||
| [[원희룡 (리좀)|원희룡]](元喜龍) | |||
| 5,847 | |||
| 3위 | |||
|- | |||
| 소장파 | |||
| 4.34% | |||
| 낙선 | |||
|- | |||
! rowspan="2" style="background: #0095DA; color: #fff;" | <div style="margin: -0px -9px">{{글씨 크기|16|4}} | |||
| [[이명박 (리좀)|이명박]](李明博) | |||
| colspan="2" rowspan="2" | 사퇴<br>([[박근혜 (리좀)|박근혜]] 후보 지지) | |||
|- | |||
| 친이 | |||
|- | |||
| rowspan="3"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계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유권자 수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416,280 | |||
| rowspan="3"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투표율<br>32.74% | |||
|-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투표 수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136,301 | |||
|-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무효표 수 | |||
| style="background: #eee; color:#000;" | 1,391 | |||
|} | |||
경선 시행 전에 이명박 총리가 총리직 유지에 대한 친박파의 지지를 전제로 대통령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고, 따라서 승자는 사실상 박근혜로 확정되었다. [[변종률 (리좀)|변종률]], [[원희룡 (리좀)|원희룡]] 등 당내 좌파가 이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고 박근혜가 1차 투표에서 '''85%'''를 단독으로 득표해 후보로 선출되었다. 사실상 선거 전부터 승자가 정해져있었으므로 투표율도 30%대로 매우 저조했다. | |||
== 여론조사 == | == 여론조사 == | ||
{{Graph:Chart | {{Graph:Char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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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 = 2006-12-30, 2007-01-02, 2007-01-03, 2007-01-05, 2007-01-10, 2007-01-12, 2007-01-14, 2007-01-15, 2007-01-16, 2007-01-18, 2007-01-20, 2007-01-21, 2007-01-22, 2007-01-25, 2007-01-27, 2007-01-30, 2007-02-01, 2007-02-03, 2007-02-06, 2007-02-08, 2007-02-11, 2007-02-13, 2007-02-15, 2007-02-18, 2007-02-21, 2007-02-25, 2007-02-28, 2007-03-02, 2007-03-04, 2007-03-11, 2007-03-12, 2007-03-15, 2007-03-17, 2007-03-20, 2007-03-22, 2007-03-24, 2007-03-25, 2007-03-27, 2007-03-31, 2007-04-02, 2007-04-04, 2007-04-05, 2007-04-09, 2007-04-11, 2007-04-13, 2007-04-15, 2007-04-17, 2007-04-20, 2007-04-22, 2007-04-24, 2007-04-25, 2007-04-27, 2007-04-28, 2007-04-30, 2007-05-01, 2007-05-02, 2007-05-06 | | x = 2006-12-30, 2007-01-02, 2007-01-03, 2007-01-05, 2007-01-10, 2007-01-12, 2007-01-14, 2007-01-15, 2007-01-16, 2007-01-18, 2007-01-20, 2007-01-21, 2007-01-22, 2007-01-25, 2007-01-27, 2007-01-30, 2007-02-01, 2007-02-03, 2007-02-06, 2007-02-08, 2007-02-11, 2007-02-13, 2007-02-15, 2007-02-18, 2007-02-21, 2007-02-25, 2007-02-28, 2007-03-02, 2007-03-04, 2007-03-11, 2007-03-12, 2007-03-15, 2007-03-17, 2007-03-20, 2007-03-22, 2007-03-24, 2007-03-25, 2007-03-27, 2007-03-31, 2007-04-02, 2007-04-04, 2007-04-05, 2007-04-09, 2007-04-11, 2007-04-13, 2007-04-15, 2007-04-17, 2007-04-20, 2007-04-22, 2007-04-24, 2007-04-25, 2007-04-27, 2007-04-28, 2007-04-30, 2007-05-01, 2007-05-02, 2007-0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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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2Title= 이회창 | | y2Title= 이회창 | ||
| y2 = 51, 53, 52, 53, 55, 52, 53, 55, 56, 55, 53, 53, 51, 54, 53, 53, 52, 51, 50, 50, 49, 47, 48, 49, 50 | | y2 = 51, 53, 52, 53, 55, 52, 53, 55, 56, 55, 53, 53, 51, 54, 53, 53, 52, 51, 50, 50, 49, 47, 48, 49, 50, 50, 49, 48, 46, 46, 44, 42, 41, 39, 40, 41, 41, 40, 39, 38, 39, 40, 39, 38, 39, 39, 40, 41, 40 | ||
}} | }} | ||
==== 고건 vs 박근혜 ==== | ==== 고건 vs 박근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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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4일 (화) 21:18 기준 최신판
공산1968 | 리조니 | Arrondissments | 레스 어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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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화국의 주요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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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대통령 선거 第13回大統領選擧 | ||||||||
---|---|---|---|---|---|---|---|---|
지역별 결과 (1차 / 결선)[1]
| ||||||||
| ||||||||
투표율 | 1차 66.83% ▼ nn.nn%p 결선 63.52% ▼ nn.nn%p | |||||||
선거 결과 | ||||||||
후보 | ||||||||
1차 투표 | ||||||||
21.99% 9,400,740 |
35.32% 15,100,170 | |||||||
결선 투표 | ||||||||
40.28% 16,130,932 |
59.72% 23,916,805 | |||||||
당선자 | ||||||||
공화당 박근혜 |
개요
2007년 5월 6일 치러진 대한공화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배경
31회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지지 기반을 확보한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의회 지지 기반이었던 한인사회당의 초, 재선 의원들은 정무감각이 크게 뒤떨어졌고, 지휘부는 우유부단했다. 결국 각 의원들이 통합된 행동 없이 개인 플레이만을 추구하며 당은 분열되었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굴러갈리가 없었고 총리가 1년마다 교체되는 혼란상에서, 사회당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박근혜와 이명박이라는 두 거물급 대선 후보가 공화당을 이끌고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지지율을 올린다.
2006년 연말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타협으로 이명박이 총리로서 내치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외치를 맡기로 한 사실상의 동거정부 협상 직후, 김한길이 이끄는 사회당 내 비노파가 집단탈당해 사회당은 과반 의석을 상실했고 뒤이어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도 사회당을 탈당하면서 사회당은 제1당 유지조차 어려워졌다. 과반을 얻은 의회 내 반 노무현파는 김근태 총리에 대해 불신임을 상정해 통과시켰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제1야당 당수인 이명박을 울며겨자먹기로 총리로 임명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친노파 전원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김한길을 위시로 한 비노계가 모두 사회당에 재입당했고 사회당은 1당 지위를 수복하였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인사로 여겨진 고건 전 서울시장을 후보로 선출하나 지지율은 매우 저조했다. 한편 전 대통령 선거에서 출마한 이회창 국무총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야합,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며 충청권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을 창당해 중도보수 노선을 내걸었으며, 노동계 인사인 권영길 전 노동부장관 역시 무소속 출마를 타진하며 유례 없는 4자 구도가 성립되었다.
후보자 경선
공화당
제13회 대통령 선거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계파 | 득표율 | 비고 | |
1
|
박근혜(朴槿惠) | 113,565 | 1위 |
친박 | 84.18% | 당선 | |
2
|
변종률(卞宗率) | 15,498 | 2위 |
사회당 탈당파 | 11.49% | 낙선 | |
3
|
원희룡(元喜龍) | 5,847 | 3위 |
소장파 | 4.34% | 낙선 | |
4
|
이명박(李明博) | 사퇴 (박근혜 후보 지지) | |
친이 | |||
계 | 유권자 수 | 416,280 | 투표율 32.74% |
투표 수 | 136,301 | ||
무효표 수 | 1,391 |
경선 시행 전에 이명박 총리가 총리직 유지에 대한 친박파의 지지를 전제로 대통령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고, 따라서 승자는 사실상 박근혜로 확정되었다. 변종률, 원희룡 등 당내 좌파가 이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고 박근혜가 1차 투표에서 85%를 단독으로 득표해 후보로 선출되었다. 사실상 선거 전부터 승자가 정해져있었으므로 투표율도 30%대로 매우 저조했다.
여론조사
결선투표
박근혜 vs 이회창
고건 vs 박근혜
- ↑ 지도를 마우스 클릭하여 1차 투표 결과와 결선 투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