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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order: none; vertical-align:top" | {{글씨 크기|16|'''갈라질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연방'''}}{{구분선}}대타협으로 이루어진 헝가리와의 이중제국 체제는 장장 50년간 이어져 왔지만 대전쟁은 그 체제의 한계를 여실 | | style="border: none; vertical-align:top" | {{글씨 크기|16|'''갈라질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연방'''}}{{구분선}}대타협으로 이루어진 헝가리와의 이중제국 체제는 장장 50년간 이어져 왔지만 대전쟁은 그 체제의 한계를 여실 드러내보였다. 표면적으로 이중제국은 대전쟁의 승리자이고, 광대한 영토를 가진 거대제국이었지만, 민족주의 열풍 아래 이중제국 내부에선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br><br> | ||
카를 황제는 제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 개혁을 집도하려 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개혁을 가로막은 것은 제국의 유지를 위해 타협한 헝가리인들이었다. 이중제국의 개혁은 피의 지출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도나우 위기와 헝가리 반란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제국은 그 피의 대가를 지출했다. <br><br> | 카를 황제는 제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 개혁을 집도하려 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개혁을 가로막은 것은 제국의 유지를 위해 타협한 헝가리인들이었다. 이중제국의 개혁은 피의 지출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도나우 위기와 헝가리 반란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제국은 그 피의 대가를 지출했다. <br><br> | ||
카를 황제의 최종개혁 끝에 제국은 새로운 체제를 맞이했다. 특정 민족을 위한 제국이 아닌 제국 내 모든 민족들을 위한 연방, 도나우 연방은 1940년의 첫해와 함께 수립됐다. 물론 개혁의 성공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새 연방이 선포되는 동안 이미 유럽에선 두번째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연방은 이미 그 불길에 뛰어든 후였다. 이듬해에는 러시아가 바그라티온 작전을 전개한 덕분에 영토의 상당한 부분이 점령되는 수모를 겪었다.<br><br> | 카를 황제의 최종개혁 끝에 제국은 새로운 체제를 맞이했다. 특정 민족을 위한 제국이 아닌 제국 내 모든 민족들을 위한 연방, 도나우 연방은 1940년의 첫해와 함께 수립됐다. 물론 개혁의 성공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새 연방이 선포되는 동안 이미 유럽에선 두번째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연방은 이미 그 불길에 뛰어든 후였다. 이듬해에는 러시아가 바그라티온 작전을 전개한 덕분에 영토의 상당한 부분이 점령되는 수모를 겪었다.<br><br> |
2024년 8월 1일 (목) 21:51 판
공지 | | 빌레펠트 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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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우리는 이 땅 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태양이 비추고 하얀 물결 넘치는 저 바다와 함께 있네 그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노래하리 |
하루가 만들고 에리아가 연재하는 세계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동맹국과 근대화에 성공한 한국을 다루는 세계관이다. 처음에는 하루 단독 세계관이였으나 적극적인 인재영입납치로 연재자 수가 대폭 늘어났다.
소개
사라예보의 총성은 세상을 영원히 바꾸었습니다. 두발의 총성은 곧 수십 수백의 총성으로 퍼져나갔고, 세계를 피로 물들였습니다.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에서 독일과 동맹국은 승리했고 팍스게르마니카를 이루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은 철저히 몰락했고 뒤이어 이어진 생디칼리즘 혁명은 기존의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고, 확산되는 생디칼리즘 혁명과 사빈코프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의 유행은 두번째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함락, 좌절, 그리고 위기 그들의 기세는 거샜으나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국 두 연합은 결코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았고 최종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망명자들의 귀환, 재편되는 세계질서. 공통된 적이 사라지자 두 세력은 다시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얼어 붙은 냉전의 시대, 칼터크리그로 이어졌습니다. 데탕트, 뜨거운 햇살 아래 눈은 녹는 법 입니다. 칼터크리그의 막이 내리고 새천년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뭇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달라진 세계, 어쩌면 우리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시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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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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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나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니벨 공세와 백일 전투의 실패는 프랑스 사회의 분열을 야기했고, 동부군까지 끌어모은 독일군의 총공세와 전선 후방에서의 생디칼리즘 혁명으로 인해 프랑스 제3공화국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은 이 전쟁을 아직 끝낼 생각이 없었으나 대륙에서 들려오는 연속된 패배 소식과 수십만의 관들은 영국의 전쟁 의지마저 꺾어버렸고 콩피에뉴에서 휴전 협정이 체결되며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동방에서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었다. 고종황제의 친독정책과 일본의 부산 기습으로 시작한 한일전쟁에서 한때 일본은 한성을 위협하며 승리에 근접했으나, 1918년에 이르러서는 경상도에서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노릇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협상국 각 국가들이 붕괴하자 일본 군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0월 공세를 전개했으나 공세의 대실패는 마지막 협상국 국가였던 일본마저 무릎 꿇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팍스게르마니카가 수립되었으나 그것은 하룻밤의 꿈에 불과했다. 프랑스, 영국, 일본 각지에서 연속적으로 혁명이 일어나며 생디칼리즘 정권이 수립됐고 반대파들은 머나먼 타지로 망명길을 떠났다. 러시아에선 사빈코프의 나치당이 정국을 장악하며 극단주의 열풍을 일으켰고 그 충격은 독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물론 이 새로운 흐름이 꼭 그들의 승리로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4차 발칸 전쟁에서 불가리아는 베오그라드 조약군을 물리쳤고, 미국내전에서 맥아더와 그의 연방정부는 무너진 국가를 수습했다.
1939년 9월 1일, 제3 인터내셔널이 라이히스팍트를 침공하며 두번째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41년 6월 22일에는 러시아를 필두로 한 모스크바 협약이 바그라티온 작전을 전개하며 동부전선을 열었다. 독일과 그 동맹 라이히스팍트는 이 공통된 적을 상대하기 위해 협상국과 핼리팩스 조약을 체결하여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한때 인터내셔널과 모스크바 협약, 두 세력은 승리에 근접했으나 이내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국 연합군에 서서히 밀려났고 6년간 이어진 전쟁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헤임달과 헤르모드 두 원자폭탄이 투하되며 끝을 맺었다.
협상국의 망명자들이 고국으로 귀환했으나 공통된 적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시적인 동맹은 다시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게 만들었다. 독일은 로마를 봉쇄하고, 영국과 프랑스 영토의 자신들의 점령군을 철군 시키지 않으며 불평등 조약을 들이밀었고 일본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일본의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한 한국은 동서로 일본을 분단하고 기어이 서일본을 지원해 일본전쟁을 일으켰다. 얼어붙은 냉전의 시대, 칼터크리그가 시작되었다.
인도전쟁과 남아프리카 전쟁, 치열하게 이어진 칼터크리그는 데탕트와 로마 장벽의 붕괴로 끝을 맺었다. 새천년의 시대가 열리고 각 국가들은 협력의 손을 내밀지만 칼터크리그의 잔재, 새로운 국제 문제들은 세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주요국가
대한국
진실로 백성에게 해 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흥선헌의대원왕 |
독일국
인생에 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신의 발자국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가 지나갈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투자락을 잡아채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도나우 연방
안정이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오스만 제국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튀르키예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스타파 케말 파샤 |
러시아
이 땅을 꾸준히 언제까지라도 사랑하라. 무엇이든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또 이 사랑의 열광과 환희를 맛보아라. 네 기쁨의 눈물로 이 땅을 적시기도 하며 너의 그 눈물을 또한 사랑하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미국
세상은 항상 용기있는 사람을 모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군중의 고함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역사만큼 오랜 싸움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용기는 역사를 이끌어 간다. 더글러스 맥아더 |
영국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사는 한 번밖에 죽지 않소. 윌리엄 셰익스피어 |
프랑스
내 생각에,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샤를 드골 |
동일본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말도 못하는 고생과 희생 위에 지금의 일본이 세워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키히토 |
서일본
저 간사한 관리들을 한 판 싸움으로 쳐 죽이고, 일본을 다시 한번 세탁해야겠소이다. 사카모토 료마 |
북중국(리워크 예정)
남중국(리워크 예정)
문서 목록
연습장
연습장:긴배
연습장:쿠리오/2
연습장:키네
연습장:찰스/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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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을 받은 매체
카이저라이히
칼터크리그
여담
열강국들의 시체를 뜯어먹는 일반적인 대한제국 세계관과 다르게, 빌펠 한국은 전성기인 국가들을 상대로 몇번이나 싸워 이긴다. 그래서 연재자인 에러는 빌펠 한국을 "영토는 엄청 크지 않아도 국가 전투력 자체는 이브 최강이 아닐까?" 평가하며 극동의 프로이센이라고 부르기도.
의도한 부분이 아니지만 분명 국뽕 세계관인데도, 남만주 한족 추방이라던가 일본의 통일 방해, 동맹 독일이 미국과 데탕트를 하는 시점에도 전쟁을 일으키는 등...만들 수록 한국이 분탕 국가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라인 하나는 기깔나게 잘타는 국가" "카라 아니었으면 전범국" "보통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면..." 드립이 오간다.
설정상 근대화의 공은 흥선대원군에게 가고 2차대전과 민주화는 의친왕에게 가게 되면서 고종의 업적이랄게 사라져 "동맹 잘 고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새끼"정도 취급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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