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 세이코 (본능):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라두 (토론 | 기여)
132번째 줄: 132번째 줄:
[[2007년]] [[후쿠다 야스오 (본능)|후쿠다 야스오]]가 [[자유민주당 총재 (본능)|자민당 총재]] 및 총리로 선출되며 후쿠다 집행부에서 당 홍보국장에 취임한다. 또한 노다의 전임 홍보국장은 [[고이즈미 키즈 (본능)|고이즈미 키즈]] 중 한명으로 우정민영화에 찬성한 자객후보였던 [[가타야마 사츠키 (본능)|가타야마 사츠키]]였다. 가타야마의 경질 및 노다의 기용은 직전에 발족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본능)|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의 [[이마무라 마사히로 (본능)|이마무라 마사히로]], [[모리야마 히로시 (본능)|모리야마 히로시]]의 부대신 기용과 마찬가지로 [[우정조반조 복당 문제 (본능)|우정조반조의 복권]]의 상징적인 모습이였다.  
[[2007년]] [[후쿠다 야스오 (본능)|후쿠다 야스오]]가 [[자유민주당 총재 (본능)|자민당 총재]] 및 총리로 선출되며 후쿠다 집행부에서 당 홍보국장에 취임한다. 또한 노다의 전임 홍보국장은 [[고이즈미 키즈 (본능)|고이즈미 키즈]] 중 한명으로 우정민영화에 찬성한 자객후보였던 [[가타야마 사츠키 (본능)|가타야마 사츠키]]였다. 가타야마의 경질 및 노다의 기용은 직전에 발족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본능)|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의 [[이마무라 마사히로 (본능)|이마무라 마사히로]], [[모리야마 히로시 (본능)|모리야마 히로시]]의 부대신 기용과 마찬가지로 [[우정조반조 복당 문제 (본능)|우정조반조의 복권]]의 상징적인 모습이였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내각 (본능)|후쿠다 야스호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ref>과학기술정책, 식품안전, 소비자, 우주개발담당.</ref>에 임명되었고 [[아소 내각 (본능)|아소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같은 달 [[사고미 부정전매 사건 (본능)|사고미 부정전매 사건]]이 발생하자 소비자 행정 담당대신으로 피해를 당한 어린이집에 달려가 사과하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같은 해 10월 [[곤약 젤리]]를 [[영유아]]나 [[고령자]]의 목에 걸려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던 것을 보고 곤약 젤리를 생산하는 만나라이프에 리콜을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판매 금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 말했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내각 (본능)|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ref>과학기술정책, 식품안전, 소비자, 우주개발담당.</ref>에 임명되었고 [[아소 내각 (본능)|아소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같은 달 [[사고미 부정전매 사건 (본능)|사고미 부정전매 사건]]이 발생하자 소비자 행정 담당대신으로 피해를 당한 어린이집에 달려가 사과하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같은 해 10월 [[곤약 젤리]]를 [[영유아]]나 [[고령자]]의 목에 걸려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던 것을 보고 곤약 젤리를 생산하는 만나라이프에 리콜을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판매 금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 말했다.


[[2009년]] [[8월 15일]] [[아소 다로 (본능)|아소 다로]] 총리를 포함한 다른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 (본능)|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가운데, 각료 중 유일하게 참배를 실시했다. '국무대신'의 직함으로 기장해 사인으로서 참배했다고 설명했다. 아소 내각 말기 [[소비자청 (본능)|소비자청]] 발족에 따라 '소비자 행정을 통일적·일원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획 입안 및 행정 각부가 소관하는 사무의 조정'을 담당하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맡았다.
[[2009년]] [[8월 15일]] [[아소 다로 (본능)|아소 다로]] 총리를 포함한 다른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 (본능)|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가운데, 각료 중 유일하게 참배를 실시했다. '국무대신'의 직함으로 기장해 사인으로서 참배했다고 설명했다. 아소 내각 말기 [[소비자청 (본능)|소비자청]] 발족에 따라 '소비자 행정을 통일적·일원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획 입안 및 행정 각부가 소관하는 사무의 조정'을 담당하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맡았다.

2026년 8월 18일 (화) 01:20 판

이 문서는 본능의 공식 문서입니다. 본능 연재자 외 수정을 금지합니다.
자유민주당 총재
[ 펼치기 · 접기 ]
노다 세이코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일본국 중의원 의원 (기후 1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4대
노다 세이코
제45대
시바하시 마사나오
제45대
시바하시 마사나오
제46-51대
노다 세이코
현직
일본국 제64대 우정대신
제29대 자유민주당 총재
노다 세이코
野田聖子 | Noda Seiko
출생 1960년 9월 3일 (65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현직 자유민주당 총재
제51대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기후 1구 지부장
재임기간 제64대 우정대신
1998년 7월 30일 ~ 1999년 10월 5일
내각부특명담당대신 (식품안전·과학기술정책)
2008년 8월 2일 - 2009년 9월 16일
제20-21대 총무대신
2017년 엄월 준식일 - 2021년 3월 21일
내각부특명담당대신 (남녀공동참획)
2017년 엄월 준식일 - 2021년 3월 21일
내각부특명담당대신 (저출산대책·남녀공동참획·지방창생)
2021년 3월 21일 - 2022년 8월 10일
링크 | | | |
| |
[ 펼치기 · 접기 ]
가족 진외조부 시마 도쿠조[1]
할아버지 노다 우이치[2]
아버지 시마 미노루[3]
배우자 노다 후미노부[4], 아들[5]
신체 160cm
학력 덴엔쵸후 후타바 여자고등학교 (자퇴)
미시간주 존스빌 하이스쿨 (졸업)
조치대학 외국어학부 (비교문화학과[6] / 학사)
정당 자유민주당
파벌 번촌정책연구소[7] → 무파벌
지역구 (구) 기후 1구기후 1구
의원 선수 12 (중)
의원 대수 40[8], 41, 42, 43, 44, 45[9], 46, 47, 48, 49, 50, 51
약력 제국호텔 직원
기후현의원
중의원 의원
우정정무차관
제64대 우정대신 (오부치 내각 / 오부치 제1차 개조내각)
내각부특명담당대신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 / 아소 내각)
내각부특명담당대신 (아소 내각)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제21-22대 총무대신 겸 내각부특명담당대신 (후쿠시마 내각 /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자유민주당 간사장대행
내각부특명담당대신 (후쿠시마 내각 /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내각부특명담당대신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스가 내각)
자유민주당 총재

개요

위대한 최성자 총재님과 함께 자민당 성공시대를 열어나가자!

일본의 정치인. 현 자유민주당 총재.

생애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야와타 제철 직원의 사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야와타 제철이 신일본제철로 합병되며 유치원 시절 도쿄로 오게 되어 덴엔쵸후 후타바학원[10]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 고등학교는 중퇴. 이때 동급생을 이지메를 시켜서 중퇴했다는 괴문서가 돈 적이 있다. 학교에 허락받지 않은 원동기 면허가 있었다고도 하고, 이외 여성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본인은 나름 "발산하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많아 미국으로 떠났다"고 밝히는 등, 오죠사마[11]학교와 맞지 않는 기질이었던 듯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시간주 존스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조치대학 외국어학부 비교문화학과(現 국제교양학부)를 졸업한 뒤, 제국호텔에 입사해 프론트, 해외영업 업무 등에 종사했다. 1984년 조모 히카루의 사망 이후 조부 노다 우이치의 양녀가 되어, 원래의 성씨였던 '시마(島)'에서 조부의 성씨인 '노다(野田)'로 성씨를 바꾸었다. 왜 조부와 성이 다르냐고 하면, 아버지인 시마 미노루가 노다 우이치의 장남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외조부인 시마 도쿠조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계입문

1987년 기후현의회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해 최연소 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정치경력이 전무했던 그녀가 현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은 기후현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꼽힌다. 할아버지 노다 우이치는 이케다 하야토, 후쿠다 다케오와 함께 대장성의 3전(大蔵省の3田)로 묶일 정도의 위계였다.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할아버지의 지반이었던 (구) 기후현 1구에 출마했지만 자민당의 공천도 받지 못하고 낙선했다. 그러나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재출마해 '중의원에도 자민당 여성의원을!'을 공약으로 내걸어 3위로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제2차 하시모토 내각에서 우정정무차관[12]이 되었고,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제46대 우정대신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나이 37세로 남녀 통틀어 역대 최연소 우정대신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1999년에는 자민당 국회대책부위원장에 취임했으며, 2000년에는 자민당 정무조사부회장, 자민당 필두 부간사장에 취임하는 등 당의 여러 직책을 맡았다.

자민당 이당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추진하여 정부제안으로 상정한 우정민영화법에 반대했다. 이로 인해 우정민영화 반대파의 수장으로 급부상하였다. 한편 잡지 『경제계』와의 인터뷰에서 "민영화에 반대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다케나카 플랜에 대해서 안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개혁이라는 말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를 생각한 진정한 개혁을 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자민당 기후현련은 집행부회·상임총무회 합동회의를 개최하고 현련규약을 개정한 후 당 공인 없이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노다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회의에서 법안에 찬성한 가네코 카즈요시가 반론했지만, 이에 대해 "현련은 일치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지방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국회의원이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2005년 치뤄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우정민영화법안에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자민당의 공인을 얻지 못하고 고이즈미가 자객 후보로 공천한 사토 유카리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당선되며 5선에 성공했다. 당선 이후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자 후원회 간부나 기후현의 자민당 소속 지방의원들로부터 노다도 법안에 찬성하기를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에 노다는 다시 제출된 우정민영화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10월 자민당 당기위원회가 노다에게 이당권고를 의결하며, 자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이 되었다.

이후 2006년 아베 신조 총리의 의향에 따라 우정조반조의 복당이 검토되어, 12월 복당했다. 복당에 대해서는 "우정민영화 법안에 찬성한다" 등의 각서를 받아 후미에[13]라고 불렀다. 노다는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기 떄문에 그 행위가 변절로 불리며 여러 방면으로 비난 받았다.

2007년 후쿠다 야스오자민당 총재 및 총리로 선출되며 후쿠다 집행부에서 당 홍보국장에 취임한다. 또한 노다의 전임 홍보국장은 고이즈미 키즈 중 한명으로 우정민영화에 찬성한 자객후보였던 가타야마 사츠키였다. 가타야마의 경질 및 노다의 기용은 직전에 발족한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이마무라 마사히로, 모리야마 히로시의 부대신 기용과 마찬가지로 우정조반조의 복권의 상징적인 모습이였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14]에 임명되었고 아소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같은 달 사고미 부정전매 사건이 발생하자 소비자 행정 담당대신으로 피해를 당한 어린이집에 달려가 사과하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같은 해 10월 곤약 젤리영유아고령자의 목에 걸려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던 것을 보고 곤약 젤리를 생산하는 만나라이프에 리콜을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판매 금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 말했다.

2009년 8월 15일 아소 다로 총리를 포함한 다른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가운데, 각료 중 유일하게 참배를 실시했다. '국무대신'의 직함으로 기장해 사인으로서 참배했다고 설명했다. 아소 내각 말기 소비자청 발족에 따라 '소비자 행정을 통일적·일원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획 입안 및 행정 각부가 소관하는 사무의 조정'을 담당하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맡았다.

이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사토 유카리는 다른 지역구로 전출하였으나, 선거구에 남은 사토의 후원회는 노다를 지원하지 않고 대립 정당인 민주당시바하시 마사나오를 지원했다고 여겨진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압승하며 자민당 의석이 극감하였고 보수 왕국으로 여겨지던 기후현에서도 자민당은 소선거구에서 2석만 가져가게 되었다. 노다는 현직 각료이지만 소선거구에서 시바하시에 패해 낙선하였으나 석패율제로 구제되어 비례대표로 야당이 된 자민당에 돌아온다.

임신·출산

불임치료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으로 미디어에 여러분 언급 됬다. 2005년에 시험관 시술에 의한 수정란이 동결된 상태에 있다고 보도되었다.

2010년 5월에 미국에서 난자를 제공 받아 시험관 시술을 실시해 임신한 것을 8월 하순 주간 신초에서 자신의 수기로 밝혔다. 2011년 1월 6일 중증장애가 있는 남아를 출산한 것을 발표했다. 이 때, 노다는 자신의 자궁 적출을 피할 수 없었고,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이라 밝혔다. 2월 사실혼 관계였던 전 야쿠자 남성과 1월 18일에 혼인한 사실과 남성이 성을 바꾼 사실을 블로그와 수기로 공포했다. 동시에, 쓰루호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이유가 자신이 후계자 딸로서 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밝혔다.

아이는 임신 17주 시점에서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발견되었으며, 태어나면서 심장 질환을 안고 0세에 뇌경색이나 식도 폐쇄증이 발병하여 9번의 수술을 거쳐 2013년 퇴원했다. 이때 자식이 입원 중이던 시절 자신의 후원회 400명이 2개 반으로 나뉘어 한국 여행을 했을떄 남편과 친모를 데리고 합류하였는데, 그 사이 자녀가 폐렴에 걸린 것 등으로 비판 받았다. 여담으로 이때의 방한때 양국에서 본인이긴 한데 암튼 닮은골 정치인으로 여겨졌던 최성자 한나라당 의원과 만나 한일관계에 대해 심도깊은 대화를 다누기도 했다.

'야당' 자민당

2012년 11월 21일 자민당 기후현련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중의원 해산에 따른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할 의지를 표명하였다. 동년 12월 16일 이전에 패배했던 시바하시를 낙선시키고 7선 고지에 올랐다. 그해 12월 25일에는 총무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2014년 9월 3일 자민당 임원 인사로 인해 총무회장을 퇴임하였으며, 12월 14일 시행된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8선에 올랐다.

2015년 9월 2015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제1야당의 총재를 무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이다"라며 "지금, 내 마음은 '의를 보고 하지 않으면 용하지 않는 것은 용기 없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출마의욕을 보였다. 또한 은퇴한 코가 마코토 전 간사장의 지원도 있었고, 전 참의원 부의장 오츠지 히데하사가 추천인이 될 의향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인 20명이 모이지 않아, 출마를 단념하게 된다.

'야당' 자민당의 수장

정치적 성향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자유민주당 1987 - 2005 정계 입문
무소속 2005 - 2006 이당[15]
자유민주당 2006 - 복당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7 제11회 통일지방선거 기후현의회 자유민주당 - (-%) 당선 (-위) 초선[16]
1990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구) 기후 1구 무소속[17] 58,587 (8.2%) 낙선 (9위)
1993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자유민주당 95,734 (13.7%) 당선 (3위) 초선[18]
1996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기후 1구 70,799 (37.10%) 당선 (1위) 재선
2000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0,425 (52.35%) 3선
2003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92,717 (51.42%) 4선
2005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무소속 96,985 (42.82%) 5선
2009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자유민주당 99,500 (44.45%) 낙선 (2위)
석패율제 당선
6선
2012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90,164 (49.93%) 당선 (1위) 7선
2014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82,434 (57.45%) 8선
2017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3,453 (64.51%) 9선
2021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3,805 (62.54%) 10선
2024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0,226 (67.47%) 11선
2026 제5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90,249 (55.81%) 12선

여담

둘러보기


  1. 일본휘발유 회장, 한신전철 사장, 도요쿠니 화재보험 사장, 오사카 증권거래소 이사장 등 수많은 기업을 당대에 일궈낸 실업가로 당시 오사카 최고의 자산가. 말년에는 대공황의 여파로 재산이 감소일로를 걷고 자신은 증권거래법 위반 및 배임, 횡령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병사하였다. 노다 세이코의 아버지인 노다 미노루는 본래 외손자이지만 양자로 받아들여 시마 미노루가 되었다.
  2.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법률학과(영법학) 출신, 대장성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대장차관, 일본전매공사 부총재를 역임하고 기후현 선거구 참의원 의원, (구) 기후현 제1구 9선 중의원 의원, 건설대신, 경제기획청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79년 제35회 중의원 총선 낙선을 끝으로 정계를 떠났다. 시마 도쿠조의 차녀 시마 히카루와 결혼했다. 부인이 사망한 뒤 자신의 손녀인 시마 세이코를 양녀로 받아들여 노다 세이코가 되었다. 가문 족보가 조금 복잡하다.
  3. 노다 우이치의 장남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외조부인 시마 도쿠조의 양자가 되어 성을 시마로 갈았다.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후 야와타제철과 그 후신인 신일본제철에서 근무하였다.
  4. 재일 한국-조선인
  5. 2011년생. 불임 치료를 받다가 체외수정으로 남편의 정자와 백인 여성의 난자를 수정시켜 얻은 아이인데, 장애가 있다고 한다.
  6. 현재는 국제교양학부로 분리되었다.
  7. 2003년 12월 탈퇴했다.
  8. 중선거구제 시절 (구) 기후 1구.
  9. 석패율 비례대표
  10. 덴엔초후라는 위치에서 보이듯 부잣집 아가씨들이 다니는 명문 가톨릭계 사립여학교로, 마사코 상황후, 미치코 태상황후도 다닌 학교이다.
  11. 유복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귀하고 곱게 자라난 여자.
  12. 중앙성청개편으로 우정정무차관이 자치정무차관, 총무정무차관과 합쳐져 현재는 총무대신 정무관으로 재편되었다.
  13. 에도막부 시기 금교하던 기독교의 신자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 예수상을 밟게 했다.
  14. 과학기술정책, 식품안전, 소비자, 우주개발담당.
  15.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로 이당.
  16. 1990.? 사직 (39회 중원선 출마)
  17. 당적은 자유민주당
  18.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