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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 우위의 국가인 대한공화국에서, 국민원은 참사원에 대하여 권한에 있어 우위를 가진다. [[참사원 (리좀)|참사원]]은 상원임에도 헌법과 지방분권에 관련된 법 전반을 제외한 법을 제외한 모든 법에 관해 의무심사권한이 없으며, 국민원이 요청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법을 심사할 수 있다. 참사원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되는 것이 아닌 한, 총리를 비롯한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권 역시 국민원에 있으며, 총리 임명 투표도 전적으로 국민원에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참사원에는 행정관료나 정치계 원로가 출마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국민원에는 현직 정치인이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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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7일 (목) 23:31 판
공산1968 | 리조니 | Arrondissments | 레스 어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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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원 國民院 | National Assembl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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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대 국민원 (2023.03.22 ~ 202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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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하원 | |
개원 | 1899년 7월 17일 (대한제국 의정원) 1930년 12월 1일 (대한공화국 국민원) | |
전신 | 대한제국 의정원 | |
국민원장 | 서영교 (, 4선) | |
재무관 | 윤호중 (, 6선) | |
박병석 (, 8선) | ||
윤진년 (, 11선) | ||
김선동 (, 4선) | ||
구성 | 577 의석 (569석 국내 선거구, 8석 해외 선거구) | |
• 평등사회연합 (291석) [ 펼치기 · 접기 ] | ||
선거제도 | 전 의석 소선거구제, 결선투표제 | |
첫 선거 |
의정원 | 제1회 의정원 의원 총선거 (1897년 2월 11일) |
국민원 | 제10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1933년 8월 20일)[1] | |
최근 선거 | 제36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2023년 3월 12일) | |
최근 선거 | 제37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2027년 6월 20일) | |
의사당 | 경성특별시 중구 국민원 의사당 (석조전 서관) | |
공식 홈페이지 | # |
개요
국민원(영어: Natioal Assembly, 프랑스어: Assemblée nationale 아상블레 나쇼날[*])은 대한공화국의 하원에 해당하는 기능을 맡는 입법기관이다. 정원은 전원 소선거구제로 선출되는 577석이며 임기는 최대 5년이다.
하원 우위의 국가인 대한공화국에서, 국민원은 참사원에 대하여 권한에 있어 우위를 가진다. 참사원은 상원임에도 헌법과 지방분권에 관련된 법 전반을 제외한 법을 제외한 모든 법에 관해 의무심사권한이 없으며, 국민원이 요청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법을 심사할 수 있다. 참사원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되는 것이 아닌 한, 총리를 비롯한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권 역시 국민원에 있으며, 총리 임명 투표도 전적으로 국민원에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참사원에는 행정관료나 정치계 원로가 출마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국민원에는 현직 정치인이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
대한제국 시절에는 양반들의 의회였던 중추원에 대항하는 기관으로 일반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입법 기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되었고, 따라서 1895년 대한제국 중추원은 가 75표, 부 17표로 대한제국 의정원 설치를 의결하였다. 이로서 1897년 2월 제1회 의정원이 개원하게 되었으며, 당시 정원은 50석이었다.
대한제국 시대 때 까지만 하더라도, 보통선거가 실시 되기 전이었고, 대부분의 권한이 중추원에 있었던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2] 체제였기에 의정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기존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대두되면서, 정권을 잡고 있던 대한민주당[3]의 주도로 의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들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1930년 국체투표를 통해 황정과 동시에 중추원이 폐지되면서, 의정원의 명칭 역시 국민원으로 바뀌었고, 권한 상으로도 국민원으로 권력 교대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국민원의 권한을 극대화시킨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은 공산주의자, 온건좌파, 온건우파, 극우파 등 여러 원내 정치세력의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1961년 5월 위기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원이 가지고 있던 막대한 권한을 대통령, 정부 등에 분산시키고, 지방분권을 담당하는 상원인 참사원을 설치하여 국민원의 제왕적 권한을 약화시켰다.
의사당
중구에 위치한 국민원 의사당 |
국민원 의사당은 1910년 완공된 덕수궁 석조전 서관 건물로, 참사원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는 동관과 붙어있다. 본래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제가 거처하는 건물이었으나, 황정이 폐지되면서 용도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석조전 건물은 의사당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협소하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부터 1950년까지 대대적인 증축 공사를 거쳐 현재의 건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의원들이 사무실로 쓸 공간이 없어, 대부분은 덕수궁 곳곳에 위치한 별관을 사무실로 이용한다고...
사무처
국민원장은 프랑스와 동일하게 원내1당의 원내대표가 맡는다.
산하 위원회
선거
역대 구성
※ 개원 당시를 기준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