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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가을에 펼쳐진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인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의 결과로 동부전선 러시아군의 주력인 벨라루스 방면군이 완전히 붕괴했고, 이에 따라 러시군은 폴란드와 벨로루시에서 철퇴하여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독일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벌어진 독일군의 남부 공세 때문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도 물러났고, 이때 독러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동맹국이었던 루마니아와 그리스는 독일과 강화를 맺고 독일군 측으로 돌아서서 러시아군을 공격하였다(몰다비아 전쟁). 이러한 동부전선의 붕괴와 함께 설상가상으로 극동에서는 대한제국군과 미군이 러시아 극동지방에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여 순식간에 시베리아 철도를 따라 우랄 산맥으로 접근했다. | 1944년 가을에 펼쳐진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인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의 결과로 동부전선 러시아군의 주력인 벨라루스 방면군이 완전히 붕괴했고, 이에 따라 러시군은 폴란드와 벨로루시에서 철퇴하여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독일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벌어진 독일군의 남부 공세 때문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도 물러났고, 이때 독러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동맹국이었던 루마니아와 그리스는 독일과 강화를 맺고 독일군 측으로 돌아서서 러시아군을 공격하였다(몰다비아 전쟁). 이러한 동부전선의 붕괴와 함께 설상가상으로 극동에서는 대한제국군과 미군이 러시아 극동지방에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여 순식간에 시베리아 철도를 따라 우랄 산맥으로 접근했다. | ||
독일군은 1944년 겨울을 끝으로 공세를 중지하고 재편성에 들어갔다. 이는 [[베를린 전투]] 이후의 반격 작전과 제3차 프라하 공방전에서 강박감에 의해 공세종말점을 억지로 넘어가면서까지 진격을 고수하다 알렉산드르 | 독일군은 1944년 겨울을 끝으로 공세를 중지하고 재편성에 들어갔다. 이는 [[베를린 전투]] 이후의 반격 작전과 제3차 프라하 공방전에서 강박감에 의해 공세종말점을 억지로 넘어가면서까지 진격을 고수하다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가 이끄는 러시아군에 역습당해 참패하고 탈환한 영토를 다시 빼앗긴 전훈에 따른 것이었는데 문제는 사빈코프가 이것을 가지고 전세를 오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동부전선에서는 우리 러시아군이 독일군을 패퇴시켰으니까 극동전선에서 대한제국군과 협상군만 패퇴시키면 러시아는 다시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급 문제로 진격이 둔화된 극동의 대한제국군과 협상국 연합군에 공세작전을 계획했다. | ||
이것은 상당히 도박적인 작전이었는데 당시 전격전으로 무자비한 파상 공세를 펴던 독일에 맞서고 있던 동부전선의 정예 기갑 부대를 빼내어 투입했기 때문에, 당시 동부전선의 총책임자였던 총참모장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사빈코프에게 항의했다. 심지어 크라스노야르스크 대공세가 실시되기 전에 러시아국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렉산드르 보즈네센스키 마저도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동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보즈네센스키는 일반인이라 군사적인 것은 잘 몰랐지만 동부전선은 중요했는데 사빈코프의 전략은 동부전선의 방어를 포기하고 극동전선에 올인한 셈이며 이게 성공했다면 제2제국의 수명이 조금은 더 연장될 수 있었겠지만 초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제공권도 없었고 보급을 노획으로 해결한다는 말도 안되는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 러시아군은 참패했고 공세가 실패한 극동전선 뿐만 아니라 이미 붕괴된 동부전선에 더욱 더 거대한 전력 공백을 초래했다. | 이것은 상당히 도박적인 작전이었는데 당시 전격전으로 무자비한 파상 공세를 펴던 독일에 맞서고 있던 동부전선의 정예 기갑 부대를 빼내어 투입했기 때문에, 당시 동부전선의 총책임자였던 총참모장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사빈코프에게 항의했다. 심지어 크라스노야르스크 대공세가 실시되기 전에 러시아국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렉산드르 보즈네센스키 마저도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동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보즈네센스키는 일반인이라 군사적인 것은 잘 몰랐지만 동부전선은 중요했는데 사빈코프의 전략은 동부전선의 방어를 포기하고 극동전선에 올인한 셈이며 이게 성공했다면 제2제국의 수명이 조금은 더 연장될 수 있었겠지만 초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제공권도 없었고 보급을 노획으로 해결한다는 말도 안되는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 러시아군은 참패했고 공세가 실패한 극동전선 뿐만 아니라 이미 붕괴된 동부전선에 더욱 더 거대한 전력 공백을 초래했다. | ||
2023년 5월 6일 (토) 03:48 판
| 공지 | | 빌레펠트 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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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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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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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공방전 Battle of Berlin Осада Москвы Strategische Offensive in Moska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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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벨트크리그 중 모스크바 공세의 일부 | ||||||||||||||||||
| 날짜 | 1945년 4월 16일~1945년 5월 2일 | |||||||||||||||||
| 장소 | 러시아 모스크바 | |||||||||||||||||
| 결과 | 독일의 모스크바 점령 | |||||||||||||||||
| 영향 | 사빈코프 러시아의 멸망 유럽전선 종결 라이히스팍트 4개국의 러시아 분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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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항복 소식을 들은 베를린 시민들 |
개요
| 바르바로사 작전과 드네프르 돈 공세, 그리고 모스크바 공세의 전개. |
| 슬라브 학살자들의 소굴, 앞으로 50km 독일군 전차의 낙서 |
제2차 벨트크리그의 막바지였던 1945년 5월 독일군이 사빈코프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함락한 전투이다. 러시아의 보즈드였던 보리스 사빈코프는 모스크바 함락이 임박하자 자살했고 사빈코프에 의해 후임 러시아 대통령에 임명된 해군 원수 네스토르 모나스티료 제독을 수반으로 하는 카잔 정부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다. 안톤 데니킨 대장이 대한제국을 배제하고 항복 문서에 서명하자 대한제국의 이의제기로 표트르 브란겔 육군원수가 모스크바에서 대한제국 포함 안중근 원수 앞에서 항복 서명을 했다.
배경
1944년 가을에 펼쳐진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인 바르바로사 작전의 결과로 동부전선 러시아군의 주력인 벨라루스 방면군이 완전히 붕괴했고, 이에 따라 러시군은 폴란드와 벨로루시에서 철퇴하여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독일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벌어진 독일군의 남부 공세 때문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도 물러났고, 이때 독러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동맹국이었던 루마니아와 그리스는 독일과 강화를 맺고 독일군 측으로 돌아서서 러시아군을 공격하였다(몰다비아 전쟁). 이러한 동부전선의 붕괴와 함께 설상가상으로 극동에서는 대한제국군과 미군이 러시아 극동지방에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여 순식간에 시베리아 철도를 따라 우랄 산맥으로 접근했다.
독일군은 1944년 겨울을 끝으로 공세를 중지하고 재편성에 들어갔다. 이는 베를린 전투 이후의 반격 작전과 제3차 프라하 공방전에서 강박감에 의해 공세종말점을 억지로 넘어가면서까지 진격을 고수하다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가 이끄는 러시아군에 역습당해 참패하고 탈환한 영토를 다시 빼앗긴 전훈에 따른 것이었는데 문제는 사빈코프가 이것을 가지고 전세를 오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동부전선에서는 우리 러시아군이 독일군을 패퇴시켰으니까 극동전선에서 대한제국군과 협상군만 패퇴시키면 러시아는 다시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급 문제로 진격이 둔화된 극동의 대한제국군과 협상국 연합군에 공세작전을 계획했다.
이것은 상당히 도박적인 작전이었는데 당시 전격전으로 무자비한 파상 공세를 펴던 독일에 맞서고 있던 동부전선의 정예 기갑 부대를 빼내어 투입했기 때문에, 당시 동부전선의 총책임자였던 총참모장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사빈코프에게 항의했다. 심지어 크라스노야르스크 대공세가 실시되기 전에 러시아국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렉산드르 보즈네센스키 마저도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동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보즈네센스키는 일반인이라 군사적인 것은 잘 몰랐지만 동부전선은 중요했는데 사빈코프의 전략은 동부전선의 방어를 포기하고 극동전선에 올인한 셈이며 이게 성공했다면 제2제국의 수명이 조금은 더 연장될 수 있었겠지만 초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제공권도 없었고 보급을 노획으로 해결한다는 말도 안되는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 러시아군은 참패했고 공세가 실패한 극동전선 뿐만 아니라 이미 붕괴된 동부전선에 더욱 더 거대한 전력 공백을 초래했다.
한편 러시아군의 극동 공세에 당황한 극동 대한제국군과 협상군은 압력을 덜기 위해 독일군에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개시해 줄 것을 요청했고 독일군의 위력을 과시하고 싶던 빌헬름 3세는 흔쾌히 이에 응해 공세를 개시했다. 그러는 한편 전쟁 종결의 거대한 상징이 될 모스크바 점령의 영광과, 러시아의 분할 점령을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대한제국 라이히스팍트 4개국에게 모두 넘길 것을 요구했다. 전쟁 기간 동안 협상군이 입은 인명피해도 적진 않았지만 독일군을 비롯한 팍트군 및 독일인들의 어마어마한 피해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었고 협상군의 지휘관들은 전후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더 이상의 많은 희생자를 내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에 이에 동의했다. 이러한 양측의 이해에 따라 모스크바 공략은 독일군의 몫이 되었다. 러시아 극동을 순조롭게 진격하던 대한제국과 협상군은 카잔에서 약간 떨어진 예카테린부르크와 우랄 산맥에서 진격을 멈추었다. 이것이 러시아 전선에서 대한제국군과 협상군의 마지막 활동이었다.
이후 모자이스크 전투 직전까지의 상황은 드네프르-돈 공세 문서 참조.
전투
| 모스크바 대공세 직전, 괴벨스를 비롯한 독일 내각과 중부집단군 병사들. |
모자이스크 전투
포위되는 모스크바
러시아국의 최후
유럽전선의 종결
| 베를린에서 알린다. 독일 정부의 발표를 전한다.
중부전선군 사령관인 독일제국의 하인츠 구데리안 원수가 남부전선군 사령관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의 도움을 받아 치열하게 진행된 시가전 끝에 모스크바를 지키는 러시아군을 괴멸 시키고, 그리고 바로 오늘 5월 2일 러시아의 도시이자 수도인 모스크바를 완전히 점령했다! 러시아 제국주의와 러시아의 침략의 중심부인!모스크바 함락 방송. |
어록
| "증오가 아주 깊어졌다. 전쟁을 끝내고 싶어졌다. 우리를 죽이려 한 저들을 전멸시키자. 저들을 없애자. 1명도 빠짐없이!" 독일군 '일리아스 슈타이너' |
| "절망적이다. 모두들 아무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다." 니콜라이 바투틴 대장, 모스크바 수비 방어선을 시찰한 후 |
| "독일군이 이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는 1시간이 걸릴 것이다. 허술한 방어선의 꼬락서니를 본 독일군이 55분 동안 웃으며 뒹굴다가 5분 안에 깨끗이 거덜내 버릴 것이니까..." 전투 당시 러시아군 사이에 퍼진 농담 |
| "모든 병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현재의 참호에서 최후를 맞으라.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슬라브 민족도 사라진다." 보리스 사빈코프 |
|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우크라이네, 벨로루시,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모든 땅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전우여, 우리가 해냈소!"' 독일군 종군기자, 오스카 하르트만, "전쟁의 해들(Die Jahre des Krieges, Years of the war)" 중 |
| 승리의 날이여. 이를 위해 얼마나 멀리 달려왔던가.
승리를 위해, 불타버린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이날을 위해 우리 모두 장렬하게 싸워왔네. 유럽의 반을, 천하의 반을 큰 걸음으로 달려왔네, 이날을 위해 우리 모두 장렬하게 싸워왔네!독일 군가 <승리의 날>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