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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의 출발부터 함께한 부대로 원래 그 창설 목적이었던  빌헬름 2세의 근위대로서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독일정부나 총사령부에 충성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 개인에게만 충성하는 사람만 받아들였다. 초대 사단장은 요제프 디트리히다. 1939년까지는 연대로서 베네룩스 전역 및 라인란트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1940년에 여단으로 승격하여 [[베를린 전투]]를 비롯한 동부전선에 참가한 후 1942년에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과 [[모스크바 전투 (빌레펠트)|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의 끝을 함께했다. 이후 베를린에 돌아와 다시 카이저의 경호임무를 맡은 사단은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독일의 해외 분쟁에 가장 많이 파견 되는 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사단 로고는 초대 사단장 디트리히의 이름이 열쇠를 의미하며 적진에 돌파구를 연다는 의미에서 열쇠를 부대 마크로 썼다.
친위대의 출발부터 함께한 부대로 원래 그 창설 목적이었던  빌헬름 2세의 근위대로서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독일정부나 총사령부에 충성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 개인에게만 충성하는 사람만 받아들였다. 초대 사단장은 요제프 디트리히다. 1939년까지는 연대로서 베네룩스 전역 및 라인란트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1940년에 여단으로 승격하여 [[베를린 전투]]를 비롯한 동부전선에 참가한 후 1942년에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바르바로사 작전 (빌레펠트)|바르바로사 작전]]과 [[모스크바 전투 (빌레펠트)|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의 끝을 함께했다. 이후 베를린에 돌아와 다시 카이저의 경호임무를 맡은 사단은 [[인도차이나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독일의 해외 분쟁에 가장 많이 파견 되는 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사단 로고는 초대 사단장 디트리히의 이름이 열쇠를 의미하며 적진에 돌파구를 연다는 의미에서 열쇠를 부대 마크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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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width:20%; background:#262424; color:#fff;" | [[파일:다스라이히.webp|150px]]<br>2 SS기갑사단<br>''다스 라이히''<br><small>(19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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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페어퓌궁슈트루펜(Verfügungstruppen;전투부대)으로서 첫 편성되었고 [[베네룩스 전역]] 부터 참전한 부대이다. 연대에서 사단으로 개편되면서 무장친위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울 하우서가 초대 사단장을 지냈다. 가장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SS 사단이고, 또한 SS 사단들 중 메이커 사단이라 인기가 높다.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과 튈 학살<ref>프랑스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생디칼리스트 저항군들이 다스 라이히 장병들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되었으며 이 때 독일군 장교가 생디칼리스트 저항군에게 생포당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장교 구출 및 보복으로 벌어진 학살.</ref>을 저질렀다. 알려진 학살이 전쟁 말기 프랑스 점령지의 대파르티잔 작전에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학살은 학살이지만, 이는 바로 밑의 2차 대전 당시의 토텐코프 사단의 잔혹한 학살행위들과 비교된다. [[함부르크 공방전 (빌레펠트)|함부르크 공방전]]과 [[낫질작전]]을 비롯한 서부전선에서 종군했으며, [[바다사자 작전]]과 [[런던 전투]]에 참가하며 서부전선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전후에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일본전쟁]]을 비롯한 [[이라크 전쟁]] 등에도 파병되며, 가장 많이 해외 파병을 가는 무장친위대 사단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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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예사단 ====
==== 정예사단 ====
==== 해산 된 사단 ====
==== 해산 된 사단 ====

2023년 5월 24일 (수) 01:37 판

공지
| 빌레펠트 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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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무장친위대는 독일 제국군이 아니라 카이저의 근위대이지만 대규모 전력을 갖추고 있다.

아래 부대들 중 몇몇 부대들은 과거 명칭에 SS가 특별히 붙지 않았었는데 이들은 바게르만계 자원. 특히 항복한 동맹군들의 망명군들로 구성하여, 엄밀히 말해 정통 무장친위대가 아닌 사단이었다. 단 외국에서 병력을 모집한 부대도 순수한 외국인이 아니라 해외 거주 독일인(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고 부른다.)으로 구성된 경우 SS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창설 초기엔 상당수가 외국인 소속이었다. 전후 외인부대 병사들의 입지가 커지며 외인부대 사단에도 SS 명칭이 붙게 되었다.

무장친위대의 전쟁 범죄는 상대적으로 추축군의 전쟁범죄에 비해 가려져 있었는데, 냉전기에 잠시 협상국에서 논의 되다가 금방 묻힌 이후 현대에 와서 다시 한번 무장친위대 소속 병사들이 제2차 벨트크리그 동안 진행 했던 전쟁 범죄의 대한 진상규명이 논의 되고 있는 중이다.

종류

야전군급 부대

  • 항목
  • 6 SS기갑군
    • 1 SS기갑사단 LSSFW/3 SS기갑사단 토텐코프/12 SS기갑사단 카이저 유겐트
    • 카이척탄병사단/10공수사단[1]
  • 11 SS기갑군: 펠릭스 슈타이너가 지휘관이었던 부대.

군단급 부대

  • 항목
  • 1 SS기갑군단
  • 2 SS기갑군단
  • 3 SS기갑군단
  • 4 SS기갑군단[2]
  • 5 SS산악군단
  • 6 SS군단
  • 7 SS기갑군단[3]
  • 8 SS기갑군단[4]
  • 9 SS산악군단
  • 10 SS군단[5]
  • 11 SS기갑군단[6]
  • 12 SS군단[7]
  • 13 SS군단[8]
  • 14 SS군단
  • 15 SS코자크기병군단[9]
  • 16 SS군단[10]
  • 17 무장군단[11]
  • 18 SS군단[12]

사단급 부대

최정예 사단


무장친위대의 최정예사단
[ 펼치기 · 접기 ]
1 SS기갑사단
LSSFW
2 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3 SS기갑사단
토텐코프
4 SS경찰 장갑척탄병사단
5 SS기갑사단
비킹
6 SS산악사단
노르트
7 SS의용산악사단
프린츠 오이겐
8 SS기병사단
플로이안 가이어
9 SS기갑사단
호엔슈타우펜
10 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
11 SS의용장갑척탄병사단
노르트란트
12 SS기갑사단
카이저유겐트
부대명 비고

1 SS기갑사단
LSSFW
(1923.11.09)

친위대의 출발부터 함께한 부대로 원래 그 창설 목적이었던 빌헬름 2세의 근위대로서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독일정부나 총사령부에 충성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 개인에게만 충성하는 사람만 받아들였다. 초대 사단장은 요제프 디트리히다. 1939년까지는 연대로서 베네룩스 전역 및 라인란트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1940년에 여단으로 승격하여 베를린 전투를 비롯한 동부전선에 참가한 후 1942년에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바르바로사 작전모스크바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부전선의 끝을 함께했다. 이후 베를린에 돌아와 다시 카이저의 경호임무를 맡은 사단은 인도차이나 전쟁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독일의 해외 분쟁에 가장 많이 파견 되는 사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사단 로고는 초대 사단장 디트리히의 이름이 열쇠를 의미하며 적진에 돌파구를 연다는 의미에서 열쇠를 부대 마크로 썼다.


2 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1923.11.09)

SS 페어퓌궁슈트루펜(Verfügungstruppen;전투부대)으로서 첫 편성되었고 베네룩스 전역 부터 참전한 부대이다. 연대에서 사단으로 개편되면서 무장친위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울 하우서가 초대 사단장을 지냈다. 가장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SS 사단이고, 또한 SS 사단들 중 메이커 사단이라 인기가 높다.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과 튈 학살[13]을 저질렀다. 알려진 학살이 전쟁 말기 프랑스 점령지의 대파르티잔 작전에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학살은 학살이지만, 이는 바로 밑의 2차 대전 당시의 토텐코프 사단의 잔혹한 학살행위들과 비교된다. 함부르크 공방전낫질작전을 비롯한 서부전선에서 종군했으며, 바다사자 작전런던 전투에 참가하며 서부전선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전후에는 인도차이나 전쟁일본전쟁을 비롯한 이라크 전쟁 등에도 파병되며, 가장 많이 해외 파병을 가는 무장친위대 사단 중 하나다.

정예사단

해산 된 사단

  1. 117경보병사단/356보병사단/710보병사단도 있었으나 해체 됨
  2. 7 SS기갑군단을 흡수했다.
  3. 1947년 4 SS기갑군단에 흡수되었다.
  4. 1949년 해산
  5. 북풍 작전 당시 배치되었던 14 SS군단을 바탕으로 창설되었다.
  6. 펠릭스 슈타이너가 지휘했던 부대
  7. 1946년 해산
  8. 1948년 해산
  9. 헬무트 폰 판비츠 장군이 지휘했던 코자크인 구성의 기병군단. 1945년에 기존의 육군 제1, 2 코자크 기병사단을 증편, 편입하여 창설되었다.
  10. 1946년 해산
  11. 대전초기에 헝가리인으로 구성된 제25, 26 무장척탄병사단을 통합지휘하기 위해 편성된 군단 1947년 해산.
  12. 1946년 해산
  13. 프랑스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생디칼리스트 저항군들이 다스 라이히 장병들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되었으며 이 때 독일군 장교가 생디칼리스트 저항군에게 생포당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장교 구출 및 보복으로 벌어진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