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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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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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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전투 Battle of Britain Operation Homecoming[1]/great restoration[2] Die Schlacht am Festland von Großbritannien Unternehmen Seelöwe[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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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중 서부전선의 일부 | ||||||||||||||||||
날짜 | 1945년 2월 5일~1945년 4월 22일 | |||||||||||||||||
장소 | 브리튼 섬 전역 | |||||||||||||||||
결과 | 연합군의 승리 | |||||||||||||||||
영향 | 브리튼 연방의 패망 서부 전선의 종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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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전투에 대비하는 홈가드[4] |
개요
우리는 제도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탈환할 것입니다. 미래의 세대는 우리가 이곳에서 한 일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때야말로 우리 최고의 순간이었노라. 조지 5세의 생전 녹음 기록 |
그래, 빅 벤이 잘 보인다. 제1 팔슈름예거 사단 병사들의 무전 기록 |
제2차 벨트크리그의 막바지 연합국의 제3 인터내셔널의 대한 최후 공세이다. 아일랜드의 수복 이후 동부전선의 아우구스투스의 몰락 작전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진행됐다. 협상국의 귀향 작전과 라이히스팍트의 바다사자 작전을 얻어맞은 브리튼 연방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오스왈드 모슬리는 왕당파 반군의 런던 쿠데타로 사망하였으며, 쿠데타가 진압된 이후 정권을 넘겨 받은 모슬리의 최측근 존 스트레이치가 노팅엄에서 연합국에게 항복하여 브리튼 연방이 패망함으로써 39년 부터 6년동안 진행된 서부전선이 끝났다.
배경
1945년 서부전선의 상황
유럽전선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1945년의 상황은 추축국에겐 재앙 그 자체였다. 동부전선에선 라이히스팍트의 아우구스투스의 몰락 작전를 얻어맞은 러시아는 이제 수도 모스크바가 전선 도시가 된 마당이었고, 서부전선에선 브리튼 연방을 제외한 모든 인터내셔널 국가가 함락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간신히 붙들고 있던 아일랜드 마저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국의 연합작전으로 탈환 당했다. 브리튼 상공을 가득 메운 연합군의 공군과 독일의 V 로켓은 브리튼 연방의 모든 인프라, 도시, 산업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다.
연방군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는데, 한때 카이저마리네의 간담을 서늘게 했던 연방 함대는 진작 괴멸됐고 앞서 서술 했듯이 공군 또한 연합군의 폭격기를 요격하는 것 자체도 버거웠다. 육군 또한 프랑스 코뮌이 무너질 때 대부분이 유럽 대륙을 탈출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대부분의 정예 병력을 손실했고, 이미 2, 30대의 젊은 청년층은 모조리 군에 동원해버린터라 40대와 50대의 중년들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서 "홈가드"를 창설해 지역 방위 부대를 만들었는데, 명목상 17세에서 50대까지의 건장한 남성들을 동원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10살 밖에 안되는 어린 소년부터 70세를 넘어가는 노인. 그리고 장애인들과 여성들까지 모조리 동원한 상황이었다.[5]
아무튼 브리튼의 모두가 45년 초에 브리튼에 대규모의 협상국과 라이히스팍트 연합군이 상륙할 것이고, 곧 최후의 결전이 일어날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위치와 규모였는데 확실한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브리튼의 승리를 이야기 하지 않았다.
연합군은 이제 서부전선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앞두고 있었다. 라이히스팍트는 지난 대전쟁에 이어서 또다시 영국을 무릎 꿇리는 순간이었으며, 협상국은 드디어 영국 정부가 본토로 귀환하는 순간이었다. 브리튼 연방군은 이제 오합지졸이었고 마지막 한방만 내리치면 끝날터였지만 문제는 그 한방을 어떻게 내리치느냐였다. 브리튼 연방은 이제 패망을 앞두고 있었고, 그런만큼 악착같이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해안에 요새를 건설하고 모든 국민들을 전장에 내몰고 있었다. 브리튼에서의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극이 될터였지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겪고 있는 것처럼 참혹한 전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전쟁의 끝을 앞두고서 연합군은 이제 자국의 청년들을 더 이상 전쟁터에서 잃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적은 피해로 전쟁을 마무리 짓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