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명로 (빌레펠트)

JoeyCharlesJohn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8월 7일 (수) 18:32 판
공지
| 빌레펠트 연재부
빌레펠트는 현재 노후문서재정비촉진사업을 진행중입니다. 현재 설정과 맞지 않는 문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명로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대한국 중추원의원
부산 동래 갑
제33대
박현희
34-52대
예명로
현직

틀:농무대신 (빌레펠트)


틀:군무대신 (빌레펠트)


틀:외무대신 (빌레펠트)


대한국 제37대 국방대신
예명로
譽明勞 | Ye "Charles" Myeong-ro
중추원의원
출생 1949년 5월 26일 (73세)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자택 부산부 동래구 명륜동 예씨고택[1]
부산부 동래구 낙민동 광림맨션아파트
현직 제52대 중추원의원
제?대 국방대신
재임 기간 제37대 농무대신
1997년 2월 11일 ~ 2000년 2월 19일
제31대 국방대신
2001년 11월 14일 ~ 2003년 7월 8일
제40대 외무대신
2004년 6월 20일 ~ 2005년 4월 30일
제37대 국방대신
2012년 4월 13일 ~ 2014년 8월 2일
제?대 국방대신
2022년 5월 16일 ~
링크 | |
[ 펼치기 · 접기 ]
부모 父 예위렴
母 리혜인
배우자 례인혜
자녀 슬하 2남 1녀
본관 의흥 예씨
학력 한성제국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한성제국대학 대학원 (정치외교학 / 석사)
한성제국대학 대학원 (정치외교학 / 박사)
한성제국대학 (윤리교육학 / 학사)
한성제국대학 대학원 (윤리교육학 / 석사)
한성제국대학 (농업경제학 / 학사)
병역 대한국 국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소속 정당
지역구 부산부 동래 갑
의원 선수 19
의원 대수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소속 위원회 국방위원회
경력 중등교사
영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34-52대 중추원의원 (부산 동래구 갑 / 자유민주당)
부산지키기위원회 위원장
자유민주당 기획위원 겸 제설부장
자유민주당 부대변인
자유민주당 정무위원
자유민주당 원내부총무
제37대 중추원 농무위원장
자유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자유민주당 원내총무
제37대 농무대신
제11대 자유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제31대 국방대신
제14대 난지도연구원 이사장
제40대 외무대신
제37대 국방대신
자유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자유민주당 상임고문
약칭
군사 경력
복무 대한국 육군
? ~ ?
최종계급 파일:대한제국군 병장.svg 병장 (대한국 육군)
주요 보직 -
주요참전 인도전쟁

개요

대한제국 보수의 살아있는 전설이였으나...

상세

비판 및 논란

어록

여러분 개들의 스승 예명로가 돌아왔습니다.
유세 中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영국의 날씨와 같이 우중충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식을 저는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친박 당원들이, 그것도 원내대표와 당내 최고의원을 위시한 여럿 의원과 함께 자유민주당을 탈당했다는 것입니다.
친박계 인사의 탈당 당시
노 총리, 처음에 정계에 입문할 당시에는 진보정당들 구심점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 하고 서민당을 표방하였습니다. 혁신을 부르짖고 탕평을 주장하였습니다. 중추원의원 시절까지만 해도 이러한 모습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총리 취임 후 노 총리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부동산 가격 낮춘다더니 오히려 올랐습니다. 그렇게 주장해왔고 당장에라도 시행할것같았던 세계화 정책은 "성급하게 추진해서는 안된다"로 미루었고,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있는 정치인의 실체는 부총리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총리였습니다.
노무현 당시 총리를 비판하며
겉으로 보기에, 이 공천 "개혁"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론에서 저것은 매우 바람직한 "개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론이 좋아도 실천이 안되면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실천이 안되면 그것은 모순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당이 그렇습니다.
자유민주당의 공천개혁을 비판하며
자, 정경환, 이 당의 대표 정 대표가 어디 나갔습니까? 대구 수성을에 나갔지요. 완전한 보수 강세 지역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 당선된적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정경환 대표, 얼마전까지만 해도 원산에서 원산시민들과 함께하겠다 하고 원산을 돌아다니며 그분들 가운데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대표 당선되고 총선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보수 강세 지역인 대구에 나갔지요. 그는 당원들의 반대...등 갖가지 변명을 대며 대구로 나갔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창원을 버렸습니다.
당시 자유민주당의 정경환 지도부를 비판하며
정상적 절차도 무시하고 당대표 직을 승계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말로만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하고 민심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쇄신은 듣기좋은 말과 보여주기식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걸 아실테지 않습니까?
이윤영 당시 자유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며
집권세력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때 국민들을 위해 행해지는것이 정권 교체입니다. 그리해야할 보수, 정권교체를 이룰 보수를 작금의 상황과 같이 만든것이 누구입니까? 정경환 지도부 아닙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자신들의 모순을 인지하지 못한채 우리를 공격하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를 방해했다고요? 예, 방해했지요, 보수를 망치는 행위를, 자기 계파만 키우는 모순을 막기 위해 저희의 온몸을 바쳤습니다.
우리 자유민주당, 원산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보지 않습니다.
47대 중원선 당시 원산부 을에 출마한 ㅇㅇㅇ 전 대표를 지원유세하며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3 - 정계입문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3 제34대 중추원의원 선거 부산 동래 갑 00,000 (00.00%)% 당선 초선
1985 제35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2선
1989 제36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3선
1989 제37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4선
1990 제38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5선
1993 제39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6선
1995 제40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7선
1998 제41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8선
2001 제42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9선
2003 제43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0선
2004 제44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1선
2006 제45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2선
2008 제46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3선
2010 제47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4선
2014 제48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5선
2014 제49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6선
2014 제50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7선
2017 제51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8선
2021 제52대 중추원의원 선거 00,000 (00.00%)% 19선

여담

  • 이승만 발음을 잘 못한다. 항상 리성만이라고 발음한다. 가끔 리숭만이라고 하기도 한다.

  1. 부산부 측에서 예명로 기념관 건립 명목으로 철거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