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는 안녕하시오? 동지도 알다시피 나는 외교관으로 독일땅에 있소. 요새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시끌벅적하오. 통일이니 뭐니 하는 소문이 퍼지고, 동지도 작금의 샤보프스키 회견을 보았지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요. 그런데 그 실수가 지금은 큰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 베를린에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고 있소.
보다시피 이제 우리의 세계가 무너져가는 것 같아 말로 다 못할 심정이오. 누구는 서로 끌어안고 울고, 누구는 장벽 위에 올라 고성을 지르고 있소. 나는 이런 시기에 우리가 걸어온 길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오. 우리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아니겠소?
우리가 혁명전사로 배웠던 것은 1911년 10월 우창에서 손중산 선생이 공화국을 세운 일이지요. 그때 진독수 선생과 리대조 선생 같은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노동운동에 투신하였소. 그러나 손중산 선생이 운명한 뒤 장개석이가 권력을 잡고 4월 12일 상해에서 반혁명을 일으켜 청방패거리를 내세워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였지요. 그 배후가 국민당과 장개석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오.
이 시기 코민테른과의 노선이 끊어지고 보구 노선이 약화되었으며, 리립삼 동지가 난창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소. 이후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강서 소비에트가 초공작전에 맞서 투쟁하며 이만오천리 장정을 단행한 것이 아니겠소?
그러나 섬서에 자리 잡은 뒤에도 투쟁은 계속되었소. 유격대를 조직하여 왜노를 몰아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반제국주의 기치 아래에서는 때로 국민당과의 협력도 견지하였소. 1945년 쏘련군의 만주 진주는 해방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지요.
이후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노선 차이, 장작림과 장학량 시기의 중동로 문제 등을 돌아보면 역사는 복잡하오. 고강 동지를 중심으로 만주 인민을 해방하던 시기 역시 그러한 격랑 속에 있었지요. 그 과정에서 만주는 많은 좌익 인텔리겐치아의 망명지가 되었소.
풍중운 동지가 10년간 국가를 부강히 이끌었으나, 지금 이 베를린 장벽이 흔들리듯 우리 시대도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소. 그러나 인민해방의 역사적 위업은 여전히 우리 어깨우에 있소. 나는 이 천리 타향에서 계속 버틸 것이니, 동지도 고토에서 힘써 주시오.
만주인민공화국의 영원불멸의 영광을 위하여.
1989년 11월. 베를린, 만주인민공화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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