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펼치기 · 접기 ] |
- 연습장:Sindan:허브 · 종합
- 연습장:Sindan/1:민국 38/1
- 연습장:Sindan/2:민국 38/2
- 연습장:Sindan/3:민국 38/인물
- 연습장:Sindan/4:보관소
- 연습장:Sindan/5:카게사가시 - 빌펠
이 나라에 베랴시나[1]의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은 확실하다. 니콜라이 수슬로프, 사망 몇 시간 전인 9일 오후 4시에 신문사인 노바야 가제타(Новая Газета)에 기고한 마지막 칼럼의 말미에서. |
몽골 령도자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 |||||||||||||||||||||||||
---|---|---|---|---|---|---|---|---|---|---|---|---|---|---|---|---|---|---|---|---|---|---|---|---|---|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개요몽골의 제2대 대칸이자 제10대 젭춘담바 후툭투. 티베트 불교에서 정식으로 비구니계를 받아들인 이후 첫번째로 탄생한 고위 비구니이자 몽골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이다. 또한 최초의 몽골 출신 젭춘담바 후툭투이기도 하다.[5] 본래 2008년 전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환생으로 확인되었으나 보수적인 몽골의 사회상과 환생자인지에 대한 진실여부 그리고 여러 논란 등에 의하여 11년이 지난 2019년에 즉위하였다. 생애초기2003년 몽골 허브드주의 보얀트구의 시골에서 작가출신 아버지와 의사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에는 아버지의 슬하에서 주로 자랐으며 소수민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보얀트의 특성상 여러 민족 출신의 또래 아이들과 접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에 강에 빠져서 목숨을 잃을 뻔 한 적이 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오이라트족 남매가 구조해 준 경험이 있다고 하며 이런 경험은 향후 그녀의 소수민족에 대한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편 2001년 제9대 젭춘담바 후툭투이자 초대 대칸인 최끼 걀첸 칸이 그의 개혁 행보에 반발한 보수파 몽골인에게 암살당한 이후 몽골 정부 측은 새로운 젭춘담바 후툭투를 식별하기 위한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때 승려들이 새로운 젭춘담바 후툭투가 태어난 곳으로 점지된 보얀트구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는데[6] 370년 가량 젭춘담바 후툭투는 남자였고 전임 젭춘담바 후툭투 역시도 남자였기에 승려들은 당연하게도 차기 젭춘담바 후툭투 역시도 남자일거라 생각하고 일대의 남자 아이들을 수색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 3천 내외의 마을에서 아무리 뒤져도 젭춘담바 후툭투가 나오지 않자 식별단은 뱌쿠렌량화 칸의 마을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식별단은 처음에 바쿠롄량화 칸의 남동생인 히지리슬릉 묘렌보르후에게 선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유물을 가지고 가 식별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묘렌보르후가 아닌 그의 뒤에 서있던 바쿠렌량화 칸이[7] 선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반지를 식별해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승려들이 귀고리, 부채, 식기 등을 주자 모두 구별해내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전대 젭춘담바 후툭투와 같이 숟가락의 손잡이 부분을 송곳니로 깨무는 버릇이 발견되며 젭춘담바 후툭투의 환생으로 인정되었다. 즉위까지의 수난즉위 이후평가여담
대중매체에서어록둘러보기
|
아사드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 ||||||||||||||||||||||||||||||||||||||||||||
---|---|---|---|---|---|---|---|---|---|---|---|---|---|---|---|---|---|---|---|---|---|---|---|---|---|---|---|---|---|---|---|---|---|---|---|---|---|---|---|---|---|---|---|---|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개요
|
김촌정은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 ||||||||||||||||||||||||||||||||||||||||||||||||||||||||||||||||||||||||||||||||||||||||||||||||||||||||||||||||||||||||||||||||||||||||||||||||||||||||||||||||||||||||||||||||||||||||||||||||||||||||
---|---|---|---|---|---|---|---|---|---|---|---|---|---|---|---|---|---|---|---|---|---|---|---|---|---|---|---|---|---|---|---|---|---|---|---|---|---|---|---|---|---|---|---|---|---|---|---|---|---|---|---|---|---|---|---|---|---|---|---|---|---|---|---|---|---|---|---|---|---|---|---|---|---|---|---|---|---|---|---|---|---|---|---|---|---|---|---|---|---|---|---|---|---|---|---|---|---|---|---|---|---|---|---|---|---|---|---|---|---|---|---|---|---|---|---|---|---|---|---|---|---|---|---|---|---|---|---|---|---|---|---|---|---|---|---|---|---|---|---|---|---|---|---|---|---|---|---|---|---|---|---|---|---|---|---|---|---|---|---|---|---|---|---|---|---|---|---|---|---|---|---|---|---|---|---|---|---|---|---|---|---|---|---|---|---|---|---|---|---|---|---|---|---|---|---|---|---|---|---|---|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개요
일본국의 한국계 정치인. 제20·21대 히타시의원과 제18-21대 오이타현의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직 민선 제22대 오이타현지사 겸 녹색당 간사장이다. 생애초기1984년 1월 8일, 오이타현에서 영화감독 가네무라 쇼이치와 배우 다카다 히메[14]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가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히타시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2003년 지역공단에 의하여 히타시 서부지역에 화학폐기물이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역하천에 유출된 유독성 폐기물로 인하여 5명이 숨을 거두고 17명의 인원이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해당 공장측이 한화 5천만 원 가량의 벌금만을 지불하고 허무하게 끝이났다. 이에 자신의 이웃들이 응급실로 실려가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가네무라는 현정부의 폐기물 규제 강화와 공장측의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였다. 초기에 오이타현정부는 무시로 일관하였으나 당시 일본국 염세주의 영화의 거장이던 아버지 가네무라 쇼이치 감독이 5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아들의 텐트를 찾아간 이후부터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하였고 TV아사히를 선두로 일부 방송사들이 취재를 시작하자 부담감을 느낀 오이타현정부와 히타시정부는 관련 조례의 개정을 약속했고 공장측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약속하며 시위는 끝이나게 되었다.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된 가네무라는 이후로도 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하였고 2006년에 동년에 있을 통일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하였고 뒤이어 녹색당에 입당하였다. 전통적으로 사민당과 자유당이 양당제를 이루던[15] 오이타현에서 그의 가능성은 그렇게 높게 여겨지지 않았으나 당시 사민당 오이타현련의 내분으로 인하여 사민당 후보와 사민당계 무소속 후보가 동시에 출마하는 삽질 덕분에[16] 히타시의회 선거구에서 당선되게 되었다. 현지사 당선이전당선 이후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 특유의 "환경 문제에는 급진적이고 민생 문제에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며 차기 선거에서 낙선 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20년 히타시 토박이의 클라스를 보여주면서 시 하천의 오염문제를 해결하고 거리 미화 법안과 2008년 경제위기 당시 소상공인에 대한 시 차원의 지원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안정적인 입지를 갖게되었고 2011년 지방선거 당시 동일 선거구내에서 1위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재선 이후에도 여전히 서민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지역 내에서 높은 인기를 구사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가네무라는 오히타현, 그중에서도 히타시 내부에서만 알려진 전형적인 지역 정치인에 불과하였으나 선거 직전 일어난 일본인민공화국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반(反) 원전을 주장하던 녹색당과 가네무라 세이온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네무라 세이온은 그의 아버지인 가네무라 쇼이치 감독부터가 줄기차게 반 원전을 주장하던 인물이었고 본인 또한 후쿠시마 이전부터 원전의 위험성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덕에 사고이후 주가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여러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등의 행보를 보이며 체급을 급격하게 불려나갔고 그 체급으로 제18회 통일지방선거에서 오히타현의회 3인 선거구에 출마하여 3위로 당선되게 되었다.[17] 현의원으로써 가네무라는 당시 현지사이던 히로세 카츠사다의 경산성 사무차관 시절 원전 옹호를 강력하게 비판하였으며 현정부의 비호아래 오염 물질을 방출하던 공단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여 관련법안 통과를 주도하였다. 물론 오이타현 경제의 대부분을 지역공단이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오이타현 암환자 연합회"와 "공단 오염물질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등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함에 따라 여론 방어에 성공하였고 결정적으로 오염물질로 인한 피해 사례가 알려짐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수호함은 물론 지위를 높이는데에도 성공하게 되었다. 2018년 4월에 중국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원전 제로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여하였다. 2019년 제19회 통일지방선거에서 3인 선거구 내 1위로 현의원에 재선하였으며 직후 녹색당 간사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2022년 연초 자유당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대규모 비리사태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퇴임하고 중의원이 해산되자 2022년 중순에 있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본선에서 사민당과 민주당의 지지를 받아 두명의 야권 단일후보[18]중 한명으로 출마하였으나 정의당 후보에게 밀려 간발의 차이로 3위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동년 4월의 제20회 통일지방선거에서 다시금 현의원으로 출마해 종전보다 높은 득표율을 끌어내며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지역 정가에서 거론되는 오이타현지사 혹은 히타시장 출마설에 대하여 "현민을 위한 어떤 형태의 봉사도 가능하다."라는 상당히 애매한 발언으로 화답하였다. 2025년 사토 기이치로 현지사의 JSR 주식회사 관련 비리 의혹이 붉어지자 민주당, 사민당 현의원들과 더불어 사토 현지사의 사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직후 열린 현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자유당-공명당 단일후보가 승리를 거두며 정치적으로 내상을 입었다. 또한 2026년 9회 통일지방선거에서 본인은 당선되었으나 하야시 요시마사 총리의 인기를 업은 범 여권 후보들이 현의회에 대량으로 진출하고 사토 기이치로 현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타현, 그중에서도 히타시에서 20년 동안 활동한 지역 정치가인 자신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히타시 의회와 시장을 모두 야권인물로 당선시키는 등 건재함을 입증하였으며 교육조례 개정안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 등[19] 열정적인 정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8년 3월 21일 사토 현지사가 비리 의혹으로 인해 사임하자 6월에 있을 재보궐선거에서 차기 오이타현지사에 출마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동시에 치뤄지는 만큼 야권 공투가 총선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영향을 미칠것이라는 관측이 있기에 범야권 후보들과의 단일화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소수정당인 녹색당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민주당 등 거대 야당이 밀어주는 후보들에 눌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많았으나 상대 후보인 아다치 기요시를 11.08%p 차이로 넉넉하게 제치면서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는 이소자키 요스케 자유당 후보의 여러 논란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짐과 동시에 그의 발언들을 공격했고 교육혁신과 지역 공단들에 대한 온실가스 저감시설 의무화 및 설치비용 지원등을 공약하며 치열한 선거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51.3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91%를 얻은 이소자키 요스케 자유당 후보를 밀어내고 제36대 오이타현지사로 당선되었다. 제22대 민선 오이타현지사
논란2021년 도지코인 폭락사태 당시 일론 머스크 비하발언"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불로 다스릴 것" 한국계 日 정치인 도지코인 폭락에 망언 선거 이력
소속 정당
여담어록
둘러보기
|
장면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 ||||||||||||||||||||||||||||||||||||||||||||||||||||||||||||||||||||||||||||||||||||||||||||||||||||||||||||||||||||||||||||||||||||||||||||
---|---|---|---|---|---|---|---|---|---|---|---|---|---|---|---|---|---|---|---|---|---|---|---|---|---|---|---|---|---|---|---|---|---|---|---|---|---|---|---|---|---|---|---|---|---|---|---|---|---|---|---|---|---|---|---|---|---|---|---|---|---|---|---|---|---|---|---|---|---|---|---|---|---|---|---|---|---|---|---|---|---|---|---|---|---|---|---|---|---|---|---|---|---|---|---|---|---|---|---|---|---|---|---|---|---|---|---|---|---|---|---|---|---|---|---|---|---|---|---|---|---|---|---|---|---|---|---|---|---|---|---|---|---|---|---|---|---|---|---|---|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개요
|
역대 총리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 ||||||||||||||||||||||||||||||||||||||||||||||||||||||||||||||||||||||||||||||||||||||||||||||||||||||||||||||||||||||||||||||||||||||||||||||||||||||||||||||||||||||||||||||||||||||||||||||||||||||||||||||||||||||||||||||||||||||||||||||||||||||||||||
---|---|---|---|---|---|---|---|---|---|---|---|---|---|---|---|---|---|---|---|---|---|---|---|---|---|---|---|---|---|---|---|---|---|---|---|---|---|---|---|---|---|---|---|---|---|---|---|---|---|---|---|---|---|---|---|---|---|---|---|---|---|---|---|---|---|---|---|---|---|---|---|---|---|---|---|---|---|---|---|---|---|---|---|---|---|---|---|---|---|---|---|---|---|---|---|---|---|---|---|---|---|---|---|---|---|---|---|---|---|---|---|---|---|---|---|---|---|---|---|---|---|---|---|---|---|---|---|---|---|---|---|---|---|---|---|---|---|---|---|---|---|---|---|---|---|---|---|---|---|---|---|---|---|---|---|---|---|---|---|---|---|---|---|---|---|---|---|---|---|---|---|---|---|---|---|---|---|---|---|---|---|---|---|---|---|---|---|---|---|---|---|---|---|---|---|---|---|---|---|---|---|---|---|---|---|---|---|---|---|---|---|---|---|---|---|---|---|---|---|---|---|---|---|---|---|---|---|---|---|---|---|---|---|---|---|---|---|---|---|---|---|---|---|---|---|---|---|---|---|---|---|---|
여운형: 초대 민의원 2년 임기 끝나고 퇴임 |
- ↑ Бериящина, "베리야의 범죄"라는 뜻의 러시아어 단어로 문화대혁명을 의미한다.
- ↑ 몽골어로는 ᠵᠧᠴᠦᠨ ᠯᠣᠪᠠᠰᠤᠨ ᠢ ᠺᠠᠮᠫᠠ ᡀᠦᠨᠵᠦᠪ ᠴᠣᠺ ᠤᠢ ᠭᠧᠯᠫᠣ 이다.
- ↑ 2005년 출생, 2017년 사망
- ↑ 몽골어로는 자간 바담량화.
- ↑ 이전까지의 젭춘담바 후툭투들은 모두 티베트 태생의 티베트인이었다.
- ↑ 당시 점지된 풍경이 보얀트구에 위치한 "보얀트 강"이었다고 한다.
- ↑ 그녀의 집은 게르였으며 당연하게도 원룸이었다.
- ↑ 1960년 출생
- ↑ 1962년 출생, 1994년 사망
- ↑ 1966년 출생, 2009년 사망
- ↑ 1967년 출생
- ↑ 조선공산당 반란사태 당시 제3군의 사령관이었다.
- ↑ 기타리스트라고 한다
- ↑ 법적인 이름은 남편의 성을 따서 가네무라 히메이지만 활동명은 결혼 이전의 성인 다카다를 유지했다.
- ↑ 현대 일본에서 범 자유주의 계열을 대표하는 민주당은 이전에는 반미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이었고 지속적인 군비확충을 지지하였기에 올림픽 작전의 영향을 직격으로 맞은 오이타현에서 현재까지도 별 맥을 못추고 있다.
- ↑ 차후 이 사민당계 무소속 후보는 가네무라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
- ↑ 여담이지만 해당 통일지방선거에서 가네무라의 후임으로 히타시의원에 당선된 인물이 일전의 사민당계 무소속 후보(사민당에 복당함) 였다고 한다.
- ↑ 한명은 사민당 후보.
- ↑ 이 당시 본인도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둔 아버지로써의 면모를 보이며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 ↑ 민주당, 사회민주당 지지
- ↑ 종로구
- ↑ 종로구 을
- ↑ 단, 어릴 때 인천으로 이주해서 살았기에, 실질적 고향은 경기도 인천부(현 인천광역시)였다.
- ↑ 황상(凰顙)파 14세. 인동 장씨 31세.
- ↑ 주 교황청 대사 겸임
- ↑ 조선인민당 (1948. 5. 31. ~ 1950. 5. 30.).
- ↑ 한국독립당 (1950. 5. 31. ~ 1954. 5. 30.).
- ↑ 한국사회당 (1954. 2. 16. ~ 1956. 9. 20.).
- ↑ 한국독립당 (1956. 9. 21. ~ 1962. 9. 11.).
- ↑ 한국독립당 (1962. 9. 11. ~ 1965. 4. 16.).
- ↑ 한국독립당 (1965. 4. 16. ~ 1966. 3. 5.).
- ↑ 한국사회당 (1968. 8. 16. ~ 1979. 10. 26.).
- ↑ 한국사회당 (1979. 10. 26. ~ 1981. 1. 24.).
- ↑ 한국독립당 (1981. 1. 25. ~ 1989. 7. 4.).
- ↑ 한국독립당 (1989. 7. 5. ~ 1993. 1. 16.).
- ↑ 한국독립당 (1996. 1. 24. ~ 2000. 1. 23.).
- ↑ 한국사회당 (2000. 1. 24. ~ 2003. 2. 27.).
- ↑ 한국사회당 (2003. 2. 27. ~ 2007. 8. 18.).
- ↑ 한국독립당 (2007. 8. 19. ~ 2013. 3. 4.).
- ↑ 한국사회당 (2013. 3. 5. ~ 2014. 7. 13.).
- ↑ 한국독립당 (2014. 7. 14. ~ 2016. 3. 27.).
- ↑ 한국사회당 (2016. 3. 28. ~ 2019. 10. 22.).
- ↑ 한국사회당 (2019. 10. 22. ~ 2021. 9. 25.).
- ↑ 한국독립당 (2021. 9. 26. ~ 2023. 3. 18.).
- ↑ 한국독립당 (2023. 3. 18. ~ 2026. 4. 16.).
- ↑ 한국독립당 (2023. 4. 16. ~ 2027. 9. 3.).
- ↑ 한국사회당 (2027. 9. 4. ~ 2029. 5. 22.).
- ↑ 한국독립당 (2029. 5. 23.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