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대황제 (설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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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매화 핀 진목정엔 잔설이 누웠는데
화사하게 웃는 설중매 담장 너머로 매향을 흩뿌리며
고운 자태 뽐내고 오가는 마실사람 눈웃음치며 유혹하네
김씨네가 살다가 도회로 가버린 초가지붕 용마루는 세월의 횡포 속에
사르르 녹아내렸고 마당에는 지게 갈퀴 쟁기대가리 홀태
써레 홍두깨 호미자루
잡살뱅이들이 널부러져 푸서리 속에 나뒹굴고 있네
조상의 숨결이 열려있는 초가삼간 설중매
"설중매"는 "현대까지 대한제국이 존속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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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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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와티니 영국 영연방 왕국 오만
들라미니 왕조 윈저 왕조 볼키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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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덕천항효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노로돔 시아모니
쿠웨이트 태국 통가
사바 가문 짜끄리 왕조 투포우 왕조
나와프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라마 10세 투포우 6세

틀:군주의 호칭 (설중매)



대한제국 대황제
大韓帝国 大皇帝 | Emperor of the Empire of Korea
현직 이연 / 제6대
즉위 2017년 11월 27일
연호 인덕 (人德)
초대 고조 장황제 이엽
경칭 성상(聖上) / 폐하(陛下) / 성상 폐하
관저 경복궁 (법궁)[1]

경희궁 (이궁)
대황제기[2]

개요

大韓帝国은 萬世一系의 大皇帝가 国法에 따라 統治한다。
대한제국은 만세일계의 대황제가 국법에 따라 통치한다.
대한제국 헌법(大韓帝国憲法) 제1장 대황제(大皇帝) 제1조

대황제(大皇帝)는 대한제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칭호이다.

현재 대한제국의 황제는 2018년 4월 27일, 제6대 황제로 즉위한 인덕황제이며, 연호는 인덕(人德)이다.

본래는 조선의 국왕이었고, 한청전쟁의 승리 이후 1895년 환구단에서 칭제하고 하여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칭제 이후 대한국 국제에 따라 막강한 전제권력을 향유하였으나, 현재의 대한제국 헌법에서는 '만세일계로써 영구히 군림'하고 '통치권을 총람'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과 달리 대황제는 국사 전반에 대한 실질적 거부권이 있어 제국의회에서 통과된 사안을 거부할 수 있다. 이건 고종가 1972년 대한제국 헌법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을 모방하여 제정한 것과, 기존부터 황제가 국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던 한국의 정치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모방한 결과, 대황제는 제국의회가 극한 대치로 수상을 뽑지 못하거나, 전쟁 상황, 국가재난과 같은 비상시에는 칙임 내각을 구성하는 게 가능하다. 심지어 대황제는 내각을 선출할 때 국무대신 개개인에 대한 인준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다. 덕분에 대한제국 내각 인사에 대황제의 마음에 안 드는 인사가 뽑히면 승인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취임을 못하게 막는다.

또한 재판관 임명권이나 의회의 해산권, 법률 거부권[3]이 있는 등 권력이 막강한 편이다. 전 세계 군주들의 권한이 날이 갈수록 축소되는 와중에도[4] 한국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군주의 권한이 제약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영국의 BBC에서는 이걸 두고 한국이 사실상 전제군주제 국가라며 깠다. 심지어 2012년에 KBS에서 성상의 법안거부권을 폐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되었으나 80%에 가까운 반대 의견이 나오고, 국민들이 폐하께서 법률 거부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고 황제를 지지했다. 공화제를 포함하여 현존하는 모든 상징적 국가원수들을 모아보아도 상징적 직위치고는 권한이 가장 많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한국 황제의 권한을 프랑스 대통령과 비견하였다.

칭호

대황제의 외국어 표기법은 각 나라별로 상이한데, 일본어 발음은 '황제(皇帝)'의 한자 음독인 'コテイ (Kōtei)'. 영어로는 흔히 'Emperor of Korea'로 옮긴다. 영미권 말고도 다른 국가에서도 황제 칭호를 붙이는데 일례로 태국에서는 자국 군주는 그냥 라자(왕)라고 부르면서도 대황제에 대해서는 마하라자(황제)라고 칭한다. 일본 제국, 청나라,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인도 제국 등 다른 황제국의 황제들이 모두 격동의 20세기를 거치며 사라져버린 오늘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황제(Emperor)로 불리는 군주[5]이다.

현대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대황제를 언급할 때는 '황제(皇帝)'나 '성상(聖上)' 혹은 폐하를 붙여 '황제폐하(皇帝陛下)'라고 하며, 대한제국의 뉴스나 신문사에서는 거의 '대황제폐하(大皇帝陛下)'라고 한다. 또는 줄여서 폐하(陛下). 간혹 옛날식 명칭인 나라님 혹은 임금님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성상(聖上)이나 황상(皇上)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건 재위 중인 임금을 부르는 말로 옛 중국에서도 자국 임금에 대해 쓰던 말이다. 일상적으로 대황제를 언급할 때는 대부분 '폐하 혹은 성상'이라고만 한다.

서구권에서는 'Emperor', 즉 황제로 불리며, 공식 직함에 황제를 의미하는 “황(皇)”이 들어가는 지위로는 전 세계에서 천황, 교황과 함께 단 셋 뿐인 직함이다. 물론 이것도 동양 한정이고 서양에서는 교황을 원래 '파파'라고 불렀으며 여기에는 '황제'나 '군주'라는 의미는 들어 있지 않다(교황 참조)는 점에서, 전 세계에서 매우 희박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사전적 의미로 따지면 대한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인받는 제국이라고 볼 수 있다.

어원

황제라는 칭호는 진시황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사기》의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왕(王)을 대신해서 천하의 지배자를 지칭하기에 적합한 명칭을 올리도록 이사(李斯)를 비롯한 신하들에게 요구했다. 이에 신하들이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 중에 가장 존귀한 것은 태황(泰皇)이라면서 태황이라는 호칭을 바치자, 이를 거절하고 태황의 황과 신을 뜻하던 제를 붙여 직접 만든 것이 황제(皇帝)라고 한다.

황(皇)과 제(帝)는 상나라 때부터 군주를 가리키는 어휘이긴 했으나 보통은 신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옥황상제나 기독교 신의 번역어로 중국에서 사용되는 상제(上帝)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황제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위대한(皇) 하느님(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의미이다.

역대 대황제


대한제국 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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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

역사

황제대권

대한제국 헌법 제1장 대황제

제4조 대황제는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한다.
제5조 대황제는 제국의회의 승인으로써 법률을 제정한다.
제6조 대황제는 법률을 재가하고 반포, 집행을 명한다.
제7조 ① 대황제는 제국의회를 소집하고 개회, 폐회, 정회 및 민의원의 해산을 명한다.
② 민의원 해산 후 1년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민의원을 해산할 수 없다.
제8조 ① 대황제는 공공의 안전을 지키거나 또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국사 전반에 필요한 비상조치를 행한다. 이 경우 제국의회는 소집되며, 민의원은 비상권한의 발동기간 중에는 해산될 수 없다.
② 대황제는 전항의 조치를 행한 사유가 소멸하거나 제국의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당 조치를 승낙하지 아니하는 경우, 혹은 해당 조치의 해제를 요구할 때 지체없이 이를 해제한다.
제9조 대황제는 행정상 필요한 여러가지 칙령을 반포할 수 있다. 다만, 칙령으로써 법률을 개할 수 없다.
제10조 대황제는 국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각 행정기관의 제도와 문관, 무관의 봉급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으며, 문관과 무관을 등용하거나 파직할 수 있다.
제11조 대황제는 법률에 의하여 제국군을 통솔하며 편제를 정하고 계엄령을 내리거나 해제할 수 있다.
제12조 대황제는 선전포고, 강화講和,를 비롯한 여러 제반 조약을 체결한다.
제13조 대황제는 작위와 훈장을 비롯한 여러 명예를 내리거나 빼앗을 수 있다.
제14조 대황제는 죄 지은 자를 용서하거나 복권復權시킬 수 있다.

위상

대한 사민들은 황실을 존경하는 것을 넘어 굉장히 경외시한다. 전국에 황제의 어진영이 붙어져 있지 않은 곳이 없고, 법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것을 떠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황제를 비난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대부분의 사민들 황실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깊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정치인을 비방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법에서 욕하지 말라 해서 못하는게 아니라 대한사민 대부분이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74조에 따라 황제에 대한 모독죄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며, 속지주의, 속인주의에 근거하여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해외에 거주하는 대한의 외교관도 문관 신분으로 대한제국 법률의 지배를 받는 만큼 황제를 비난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의를 게을리 했다가 추밀원 감찰국에 이를 발각되면 신분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황제주권설과 황제법인설

대한제국 헌법에서는 주권과 관련한 조문이 전무하다. 이는 1972년 개헌 당시 주권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격론으로 인한 것이다. 당시 고종은 헌법을 개정하며 통치권(주권)은 법인인 국가에 있으며, 대황제는 그러한 국가의 최고 기관으로서 다른 기관의 도움을 얻어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학설인 황제기관설이나, 국민주권설에 관한 근거 조항을 추가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반면 제국의회와 내각은 젊은 황제의 파격적인 주장에 대경실색하며 당대까지도 여전히 주류 학설이던 황제주권설을 강하게 옹호하며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고종은 주권에 관한 조항을 헌법 본문에는 삽입하지 않되, 칙유에서 "주권을 영구적으로 그대 사민들에게 의탁한다'며 선언하고, 헌법 반포 칙유를 근거로 최고재판소를 움직여 국가의 주권은 본래 대황제에 있으나 이를 사민들에게 영구적으로 의탁하며, 대황제는 국가의 최고 기관으로써 행동한다는 황제법인설을 주류 학설로 만들어 버린다.

다만 대한의 극우 세력은 여전히 대황제를 국가기관으로 내세우는 것을 넘어 황제주권설을 강력히 주장하며, 이를 위한 개헌을 주장한다. 물론 신 헌법을 만든 주체의 손자가 황위에 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주장은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

논란

대한제국은 여전히 다른 군주국에 비해 매우 강력하게 대황제와 황실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고 평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한다. 이는 단순히 인간적, 역사적 평가 뿐만 아니라 웃음의 대상이 되는 풍자와 패러디등 일체가 터부시 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서 황실은 사실상 예외로 인정 받으며, 황제에 대해 논할 상황에서는 상당한 경례를 지켜서 폐하의 업적이나 은덕만을 칭송해야 한다.

본래는 삼사에서 왕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 이를 바로잡거나, 왕의 언행에 대해 전반적으로 의견을 내는 간쟁, 성균관 유생들이 전국의 유생을 대표하여 상소로 올리는 유소가 왕을 견젤하였으나, 영조의 탕평책으로 대표되는 당파 벗기 운동은 반발이 지나가자 결국 유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했으며 결국 성균관은 단순한 학업의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당연하게 조선 후기로 갈 수록 유소 및 권당의 횟수는 줄어들었으며, 경조 때는 안동김씨 세도의 입맛에 맞는 유소 권당이 일어났으나 경조가 이를 외면하고, 고조 시기까지 혼란스러웠던 정세속에서 여러차례 권당이 벌어졌지만. 고조대부터 성균관이 경학원으로 격하되고 서양식 학문을 가르치자 유소는 사라졌고, 어일신의 일환으로 삼사가 폐지되자 사실상 대황제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대한제국의 관료제는 대황제에게 철저히 집중되었다. 대황제가 실수를 한다면, 그건 성상을 잘못 보필한 신하들의 죄라는 대원칙 아래 내각을 비롯한 행정기관이 올리는 모든 서류를 대황제가 직접 결재하며 추밀원은 중간에서 행정의 컨트롤을 책임진다. 그 결과 대한의 행정은 실제론 실권이 미비한 내각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반면, 실제 권력자인 대황제와 추밀원은 아무 책임을 묻지 않게 되었고, 정책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일체의 비판 조차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대한에는 형법상 침방률과 같은 황실에 대한 불경죄 조항이 형법에 존재하며 실제로 과거에는 이를 근거로 처벌을 받은 사람이 존재하였으나, 고종 즉위 이후 이를 사실상 사문화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에서는 공공연하게 당연시 되는 사적제제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우 각종 극단주의 단체로부터 협박과 테러 살해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며, 경찰 또한 폐하를 능멸한 자들에 대한 보호를 외면하기에 대한제국에서 정상적으로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대한제국을 제외하고 아직 왕실이 존재하는 영국이나 노르웨이, 스웨덴, 정말, 화란, 백이의 등 유럽의 입헌 군주제 국가들은 국왕과 왕실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상당히 자유로운 데 비하여[6][7] 대한제국에서는 대황제에 대한 신성불가침성이 매우 강력하다. 물론 황족 개개인의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민들은 상당수 있지만 대황제와 국체 자체를 모욕하는 것은 대한제국 내에서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황족들에 대한 비판은 약간 느슨한 편이다.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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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적으로 대황제의 법궁은 경복궁이지만, 법궁인 경복궁은 한옥이 대다수라 생활하는 데 있어서 불편하기에 인덕황제는 경복궁에 기거하지 않고 태손 시절 사용하던 이궁인 태서궁에서 기거하며 집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향후에는 아예 태서궁을 국왕의 공식 거주지로 지정하고, 경복궁은 법궁이 아니라 의례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조부 고종도 말년의 생전퇴위 이후에는 덕수궁과 한경군 시절 사용하던 잠저인 한경궁에서 거주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공간으로는 경복궁이 사용되고 있다.
  2. 가운데 문양은 금빛 이화 문양을 띠고 있는 대한제국 황실의 인장으로, 관습법상 대한제국의 국장이기도 하다.
  3. 오늘날 내각제 국가에서 국가원수(군주나 대통령)가 거부권이나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가원수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독자적으로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거부권은 사실상 행사하지 않으며, 의회해산은 정부수반(총리)이 사실상 해산을 결정하고 국가원수가 이를 최종 확인만 해주는 역할을 하거나,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이 있을 때만 국가원수가 해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4. 스웨덴 왕국은 1974년 국왕의 작위 수여권을 비롯한 그나마 남은 형식상 권력마저 모조리 박탈했고, 네덜란드 왕국도 베아트릭스 여왕 시절에 왕권이 크게 축소되었다.
  5. 일본의 왜제도 영어로는 Emperor라고 불리기도 하나, 통상적이나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영문 표기는 Mikado of japan이다.
  6. 일례로 영국에서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로 개편하자"는 목소리를 줄기차게 주장한다. 이런 경향은 정도의 차이일 뿐 화란, 노르웨이, 스웨덴, 정말 같은 다른 유럽의 입헌 군주국들도 마찬가지이다.
  7. 다만 서반아는 예외. 서반아에서는 래퍼 파블로 하셀이 왕실과 경찰을 비판했다가 징역형에 처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럽의 입헌 군주국치고는 왕실에 대한 비판을 금기로 여기는 경향이 제법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