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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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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묘소 테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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အာဇာနည်ကုန်း ဗုံးပေါက်ကွဲမှု Rangoon Bombing | ||
발생일 | 1957년 1월 22일 | |
발생장소 | 버마 연방 랑군 아웅산 장군 묘소 | |
유형 | 폭탄테러 | |
피해 | 18명 사망 |
1957년 1월 버마 연방 아웅산 장군 묘역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대한민국 총리 김구가 테러로 순국했다.
상세
당시 김구 총리가 대한민국 사절단은 동남아 순방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아웅산은 버마의 국부로, 아웅산 묘소는 한국의 현충원급 위상이다. 아웅산 묘소는 해외 사절단이 버마 방문시 꼭 참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김구 총리도 그곳에 참배할 예정이었다.
연변 정권은 한국 국회의원인 김언봉으로부터 총리 일행이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여[1] 테러 계획을 수립한다. 공작원 3명을 파견하여 묘소 지붕에 폭탄을 설치한 것이다.
1957년 1월 22일 오전 10시 37분, 김구 총리 일행이 아웅산 장군 묘소를 참배하는 순간, 폭탄이 폭발했다.
피해
이 테러로 김구 총리는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으며 수행원들과 버마측 인사들을 모두 합해 18명이 사망했다. 이후 연변 공작원 체포 작전 중 연변 공작원 3명, 버마 군경 4명이 사망했다.[2]
반응
대한민국
자국의 총리가 암살당한 한국은 격분하였다. 당시 군부가 이승만 총통에게 두만강을 건너 연변을 공격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고 실제로 그럴 준비도 하였으나 이승만이 "나의 명령 없는 전투행위는 반역으로 간주하겠다"라며 군부를 제지하여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괴
모르쇠로 일관했다.
버마 연방
버마 정부는 분노하였다. 버마인들의 신성불가침 영역인 아웅산 묘소가 폭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을 순방중이던 타국 총리가 사망하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버마는 연변의 수교국은 아니었으나 그 대신 연변의 후견국이자 보호국인 중공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중화인민공화국
놀랍게도, 중공 정부 또한 굉장히 당황했다. 수십년 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중공은 이 테러 계획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중공은 대변인 발표를 통해 "모든 종류의 테러를 단호히 배격한다" 라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한편, 연변 측에 크게 항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