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개헌

쿠리오 긴배 도프 공산1968
벨지엄 공차 DK Den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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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1차 개헌

상세

1956년 기준으로 이승만은 1948년 대선1953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재선 총통인 상태었다. 제헌헌법에 따라 총통의 3선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뻑(?)이 매우 심했던 이승만은 측근들에게 다른 이에게 그의 조국을 맡기기에는 아직 사회불안이 심해 걱정된다고 말하는 등 불안해했다고 한다. 다음은 김영삼의 증언.

안 되겠어. 나 말고는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이 아무도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계속 이 나라를 영도해야겠어.
이승만, 1956년 봄, 김영삼과 술을 마시며

물론 이승만이 권력욕이 많기도 했다.

그리하여 1956년 중순부터 여당인 민주국민당은 개헌의 필요성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개헌이 되어도 나이가 80도 넘은 자신이 연임을 하면 얼마나 더 하겠느냐고 말하며 장기집권이 개헌의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친민국당 언론들은 개헌에 반대하는 세력은 '애국적 민족주의자들'을 미워하는 친일반역자이자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했다. 민국당이 제출한 헌법 개정안에는 자유시장경제 채택이나 국민투표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었으나 메인은 총통 중임 제한 폐지였다. 야당 연합이 개헌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의석 수가 모자라 아무 효과도 없었다. 결국 1957년 3월 23일 개헌안이 민국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공성전까지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1957년 3월 23일 오후 3시, 여당인 민주국민당은 표결을 통해 총통의 중임제한규정을 폐지한 개헌안을 통과시킨다.

개헌 찬반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53.8% 대 반대 46.1%로 가헌안이 통과되었고 1957년 5월 15일, 총통 이승만이 새 헌법을 공포하면서 개헌이 마무리된다.

여담

김대중 당시 민주국민당(!) 의원이 의결을 막기 위해 의사봉을 숨겼으나 국회의장이 주전자 뚜껑으로 의사봉을 대신해 책상을 세 번 두드려 개헌안 통과를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