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의정대신 (설중매)

[ 소개 ]
매화 핀 진목정엔 잔설이 누웠는데
화사하게 웃는 설중매 담장 너머로 매향을 흩뿌리며
고운 자태 뽐내고 오가는 마실사람 눈웃음치며 유혹하네
김씨네가 살다가 도회로 가버린 초가지붕 용마루는 세월의 횡포 속에
사르르 녹아내렸고 마당에는 지게 갈퀴 쟁기대가리 홀태
써레 홍두깨 호미자루
잡살뱅이들이 널부러져 푸서리 속에 나뒹굴고 있네
조상의 숨결이 열려있는 초가삼간 설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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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의정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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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정부의 인장 의정대신 문장


대한제국 의정대신
大韓帝国 議政大臣
Chancellor of Korean Empire
현직 이관섭 / 제74대
취임일 인덕 4년 (2022년) 11월 10일
정당
관저 수상관저

개요

대한제국 의정대신(大韓帝国 議政大臣), 통칭 수상은 대한제국의 정부수반이자, 내각의 대표자이다.

대한제국은 대황제가 국가원수인 입헌군주국으로, 의정대신은 대황제의 신하로 여겨져 대신(大臣)이 붙는다. 대한제국 헌법에 따르면 '행정권이 속하는 내각(內閣)의 의장'으로 정의되어 있다. 공식 명칭은 의정대신이지만, 총리대신(總理大臣)으로도 부르며, 내각의 상(相, 대신) 가운데 가장 높은 수장이라는 뜻으로 수상(首相)이라고도 칭한다.[1] 또한 의정대신에 대해서는 각하(閣下)라는 경칭이 사용된다. 다만 황실 구성원에 대한 경칭(폐하, 전하, 저하)과는 달리 법적인 근거는 없다.

대한제국의 의정대신은 제국의회의원들 중에서 대황제의 지명에 의해 지명된다. 자격은 '제국의회의원' 뿐이지만[2], 보통은 민의원 의원 중에서 제1당의 총재가 지명되나, 대황제가 임의로 지명하기도 한다.

대한제국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보수 우위의 정치 구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역대 의정대신 가운데 좌파 계열 인사는 전무하다. 리버럴로 분류되는 인사도 매우 드물며, 선진국 가운데서 이렇게 보수 우위의 정치구도가 오랫동안 유지된 국가는 매우 드물다.

역사

의정대신의 전신은 조선의 대내사상과 영의정으로, 영의정이라는 명칭은 문하부 재신이 의정부에 통합된 1401년(태종 1) 당시 우정승(右政丞)이었던 이서가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임명되면서 처음 나타난다.

태종 연간(1401 ~ 1418)까지는 1414년(태종 14) 좌의정으로 바뀌는 좌정승(左政丞)이 여전히 수상이었고 영의정에게는 명목상의 결재권조차 없었다.

그러다 세종 연간(1418 ~ 1450)인 1436년(세종 18) 왕이 이조와 병조의 인사[銓選], 병조의 군사(軍事), 형조의 사형수 판결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에 대하여 먼저 의정부의 서명을 거치게 하였을 때, 고대 삼공의 모범을 따라 영의정도 좌우 의정과 함께 의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면서 처음으로 실질적인 재상이 되었다.

1466년(세조 12) 공식 명칭이 영의정부사에서 영의정[議政府領議政]으로 바뀌었다.

명종 연간(1545 ~ 1567)과 임진왜란(1592 ~ 1598)을 거치며 의정부가 유명무실해지고 대신 비변사가 점차 국정 전반을 담당하게 되자 영의정은 좌우 의정과 함께 정1품 자문관 도제조(都提調) 자격과 관료들의 우두머리라는 명목을 가지고 집권 붕당 또는 국왕의 명분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자리가 되었다.

이후 개국 503년(1873년) 3성 6부제 도입으로 영의정의 명칭이중서령(總理大臣)이 되었고, 개국 504년(1878년) 중서성과 문하성이 대내사성으로 통합되면서 대내사령(議政大臣)이 되었고, 1885년 대내사성과 상서성이 통합되어 내각으로 개편되면서 의정대신(議政大臣)이 되었다.

이 당시 의정대신의 임명은 대황제(大皇帝)가 하게 되며, 선출은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연수 시대부터 천경 시대 초기까지는 대황제가 임의로 임명하였으며, 천경 초중반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의회민주주의 도입을 선언한 이후 명목상 민의원의 추천을 받아 임명되었다.

이 무렵 의정대신의 실권은 명 태조 시기 대학사와 다를바가 없었다. 대한국 국제에는 내각이나 의정대신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으며, 의정대신은 "다른 대신들과 동등한 지위의 수석대신으로서 대황제를 보필하는 존재"로 정의되었다.

이후 대한제국 헌법(大韓帝国 憲法)을 제정함에 따라 일반적인 의원내각제의 총리와 역할이 유사해졌다.

선출

전후 대한제국에서 의정대신의 자격은 제국의회의원 중에서 제국의회의 과반수 의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 정해져 있다. 이 밖에 관습적으로는 집권정당의 총재이며, 당원에게 의정대신의 자격이 부여되었다고 인정된 자여야 한다. 대황제가 의정대신 후보를 제청한뒤, 양원의 동의를 얻어[3] 대황제가 의정대신에게 임명장[4]을 수여한다. 물론 현대 입헌군주제 국가가 다 그렇듯 대황제의 제청과 임명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의정대신은 민의원(하원)에서 최대세력을 차지하는 정당의 당수, 혹은 연립 여당 가운데 하나의 당수가 지명된다. 지명 시 요건을 제국의회의원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귀족원(상원) 의원이 의정대신에 취임할 수도 있으나, 귀족원 의원이 의정대신ㅇ; 된 사례는 신헌법 제정 이래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임기

세계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대한제국 헌법에 의정대신의 임기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헌법에서는 제국의회의원 총선거를 하고 다시 제국의회의 소집이 있을 때까지는 내각이 총사직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법제국 유권해석에 따르면 다시 제국의회에서 의정대신을 지명할때 까지 내각의 총사직을 연기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함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론적으로 의정대신의 임기는 제국의회의원 총 선거 이후 제국의회의 소집을 할 때까지 최장 4년을 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새로 소집된 제국의회에서 재선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재선만 된다면 계속 의정대신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정치적인 사정상 임기가 지극히 단임 의정대신도 나타날 수 있다.

의정대신의 임기가 이런 식이므로 이론적으로는 영구집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당의 당수 자리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임기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의정대신 임기에 제한이 있다. 또한 의정대신은 정년이 존재하지 않지만, 소속 정당에 제국의회의원 정년제가 있다면 사실상 제한이 분명히 있다. 다만 대한제국의 경우 고령의 다선의원이 많은 편이라 이론적으론 80대 의정대신도 가능하다.

권한

  • 대한제국 의정대신은 내각의 수장으로 일반적으로 의원내각제 총리 등과 동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타국의 의원내각제 총리들의 실권이 비교적 강한데 비해 의정대신은 실권이 상당히 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 대한제국 의정대신은 국가 의전서열 n위이다. 그 뒤로 귀족원/민의원 의장과 최고재판소 장관 등이 뒤따른다. 10위밖에 안 되는 이유는 그 앞을 대황제와 황족들, 대훈위 금척대수장 수훈자들이 선행하기 때문.

입법권 (제국의회)

  • 의정대신은 일반적으로 내각의 수장인 동시에 입법부 정당 중 가장 큰 세력의 총재이기 때문에 제국의회의 수장이자 마찬가지로 다수당 중진 출신인 귀족원의장, 민의원의장들을 비롯해 제국의회 다수당인 집권여당 및 연립여당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때문에 그 외 야당들로부터는 견제가 상당한 편. 특히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내각질의응답 시간에 야당 의원의 공세에 의정대신이 고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권 (내각)

  • 대한제국 내각의 수장이지만, 각료의 임명과 파면은 의정대신의 권한이 아니다. 다만 의정대신이 대황제에게 각료 후보자 임명을 주청(奏請)할 수는 있다. [5]
    • 대황제가 윤허할 경우, 국무대신의 파면과 셀프 겸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의정대신은 이론적으로 모든 대신을 파면하고, 자신이 다른 모든 대신의 업무를 겸임하는 일인내각(一人内閣)을 만들 수 있다.[6]
    • 구헌법 시절에는 의정대신과 대황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군신 불일치) 의정대신이 대황제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실패하면 그 내각은 총사퇴하는 것이 이른바 헌정의 상도(憲政의常道)였다.
  • 민의원에 대해서 해산의 전권을 의정대신이 가지고 있다. 대한제국 헌법 제 7조에는 "대황제는 다음 각 호의 대권을 지닌다."라고 되어 있지만 대황제의 대권은 역사적으로 형식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경각부의 "각의 결정 없이 해산할 수 없다"고 제한이 되어 있기는 하나 이론적으로는 각의에서 해산 서명을 거부하는 대신이 있어도 의정대신이 파면하고 자신이 겸임한 채 서명할 수 있으므로 의정대신에게 전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 대한제국 경찰(大韓帝国警察)은 중앙의 대한제국 경찰청한성경시청 및 한성부를 제외한 각 도도부의 경찰본부로 분할되어 운영되는 자치경찰제이다. 때문에 의정대신은 대한제국 경찰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권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지만. 경찰을 통제하는 국가공안위원장 임명권(공안위원장은 국무대신의 일원이다.)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는 경찰청을 통한 경찰력을 통제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공권력 순서는 의정대신-> 공안위-> 경찰청-> 경시청/도부현 경찰본부이다.
  • 대한제국 경찰청- 특별소속
  • 한성 경시청 및 각 도도부 경찰본부 - 지방 소속

정보부

대한제국 의정대신이 이끄는 대한제국 내각정보회의는 구성이 이러하다. 아래 조직들은 정보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며. 제국군와의 정보공유 관계가 매우 조밀하게 운영되고 있다.

기타 사항

수상관저

급여

2017년에 주호영 전 의정대신은 2억 1,979만 9,000원을 수령했다(세전). 그 외에도 직급보조비 월 3,200,000원이 추가로 지급된다.

전용기와 전용차

생존 중인 전직 의정대신

자연사 이외 사유로 사망

불명예 퇴진 (내각불신임결의)

역대 대한제국 의정대신 목록

칭제 이전

연수 시대

광형 시대

대흥 시대

건무 시대

성녕 시대

인덕 시대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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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는 대신(각료)의 경우도 똑같아서 법무부의 수장인 법부대신은 法相(법상), 외부의 수장인 외부대신은 外相(외상), 통위부의 수장인 통위대신은 統衛相(통위상) 등으로 줄여 부른다.
  2. 즉 명목상으로는 현임 당수가 아니어도 현직 귀족원·민의원의원이면 대황제에 의하여 의정대신 지명이 가능하다는 것.
  3. 민의원은 민의원 의사당에서, 귀족원은 귀족원 의사당에서 투표를 따로 치른다.
  4. 대황제의 친필 서명 및 인장(어압 어새 봉)이 들어가고, 물러나는 의정대신이 부서한다.
  5. 새로이 국무대신을 입명할 경우에는 대황제의 친임을 받아야 하는데, 타국의 각료들에 대한 국왕의 임명이 명목에 불과하다면, 대한제국에서는 대황제가 의정대신이 주청하는 인사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국무대신 인사를 대황제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
  6. 물론 실제로 혼자서 노는 건 아니고, 임시 대리/대행을 발령하여 내각 기능을 조성하며 대개 내각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시기에 정도만 유지되나 마음먹고 작정하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