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승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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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제국 용보.png 이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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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이왕 영왕 | 永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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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리 에이교쿠 ( |
출생 | 1891년 4월 10일 |
조센 번 간조 게이후쿠규 (現 조센현 게이조 조센현청) | |
사망 | 1968년 1월 10일 (향년 77세) |
대일본제국 조센현 게이조 게이조고쇼 | |
국적 | 대동아제국 |
능묘 | 상릉(商陵) |
재위 | 이왕 (추존) |
1926년 4월 27일 ~ 1945년 9월 1일 | |
이왕 (실재 재위) | |
1945년 9월 2일 ~ 1960년 1월 15일 | |
이상왕 | |
1960년 1월 16일 ~ 1968년 1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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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제3대 이왕. 선화제에 의해 책봉된 첫번째 이왕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첫번째 이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던 선왕들과 달리, 대동아전쟁, 극동전쟁 등의 사안들에서 적극적으로 일본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에서 대우받았고, 대동아제국이 건국된 이후 처음으로 이왕에 책봉되면서 대동아제국의 황실 내에서도 큰어른으로 우대받았다.
생애
마지막 다이묘의 아들
구 조센 다이묘 가문의 당주가 되다
대동아전쟁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대일본제국이 충돌한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당시, 그는 황실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문의 각종 보배들을 팔고 조센 리 다이묘 가문의 명의로 되어있는 여러 부동산들을 팔아가며 그 돈으로 전투기, 전차, 총기 등을 구입해 대일본제국군에 지원하였다. 또한 자신의 자녀들 역시 대동아전쟁에 참전시키게함으로서 대일본제국의 전쟁 수행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왕 책봉 이후
1945년 9월 2일 대동아제국 선포와 동시에 선화제로부터 이왕작위를 받으면서, 그는 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대동아제국 황제에 다음가는 의전 서열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말 뿐인 권력이었기에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조센현에 남아있는 옛 유물들을 수집하며 이를 정리하는 취미를 가졌다.
양위와 붕어
1959년 7월, 그는 이미 69세의 노구였기 때문에 더이상 정상적으로 왕위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아들인 리 신젠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생전에 퇴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960년 1월 15일 정상적으로 양위식이 진행되었으며 이후 8년간 그는 상왕으로서 재위하였다.
1968년 1월 10일,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어 숨을 거두니 그의 나이 77세였다.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개인사
평소 절도있는 행도와 예의바른 태도 등으로 인하여 어릴때부터 천무제, 의양제 등 대일본제국 황제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았고 일본어, 일본사, 무예 등 거의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커서는 조선 다이묘 가문 뿐만 아니라 일본 황실에도 "큰 어른"이 되었고 특히 자신보다 13살 어린 선화제와는 서로 호형호제하였다.
종교적으로 국가신토를 신봉하였다. 또한 조센의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무심한 태도를 보였고 일본의 문화에 더 큰 호감을 보였다. 하지만 말년에는 조센 지역의 고문서와 고서적들을 수집하는 취미 등을 가진 것으로 보아, 조센의 문화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