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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회 친성화령계 | 성수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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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 1984년 4월 18일 (자유민주연합) |
명칭 변경 | 2007년 12월 13일 (영풍회) |
회장 | 성화령 / 7선 (67·69-74대) |
성향 | 중도~우파 |
정치적 이념 | 자유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
경제적 이념 | 경제적 자유주의 |
주요 정치인 | 임춘식 (회장) 성화령 (부회장) 이동미 (부회장) 오준경 (사무총장) 김재섭 (정책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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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진짜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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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회 2038년 슬로건 |
영풍회(永豊會) 또는 친임춘식계(親林春植系), 청구동계(靑丘洞系)는 자유당의 파벌로, 임춘식 전 부총리를 따르고 있다. 현재는 임춘식 전 부총리가 고령을 이유로 정계를 은퇴하며 수제자로 일컬어지는 성화령 의회원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었으나, 임춘식이 정계에 복귀하며 다시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 파벌의 전신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대신의 정치적 사상을 따르거나 지지하는 파벌인 자유민주연합으로, 과거의 별칭인 청구동계 또한 김종필이 거주했던 서울특별시 을지로구 청구동[1][2][3]에서 유래되었다.
2007년, 충청남도지사 퇴임 후 황해북도로 정치적 기반을 옮긴 임춘식 전 국무부총리대신이 자유민주연합이라는 명칭을 버리고[4] 파벌 명칭을 영풍회로 바꾸며 지금의 영풍회가 되었고, 이로 인해 충청 지역 의원들이 주를 이루던 계파는 북부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계파로 바뀌었다.
임춘식 전 부총리의 정계 은퇴 이후 성화령 의원이 회장을 맡으며 대를 이었으며, 임춘식 시절의 과격한 성향을 버리고 청년층을 공략한 우익 포퓰리즘 성향을 띠며 체질 변화에 성공하였다. 다만 성화령이 사법 리스크로 위기를 맞고 임춘식이 지속적으로 정계 복귀 의사를 드러내며 회장 교체론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결국 75대 총선을 전후해 성화령이 총선 출마를 위해 탈당 및 회장직 사퇴를 선언하며 임춘식이 복귀하게 되었다.
성향
우리 빼곤 모두가 얼치기 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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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전 회장 |
자유당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정부를 강조하고,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며 가족, 종교, 민족의 가치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또 청량회로 대표되는 현재의 자유당 주류가 내세우는 개혁보수 성향과 매우 대치되어 성소수자권리, 대규모이민, 페미니즘, 인종정의 관련 운동 등등 문화적 자유주의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편이다[5]. 한편 관세, 보호무역에 매우 우호적인 성향을 보이며 일본 등과의 무역 관계 재정립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2010년대까지만 해도 청년층들로부터 개틀딱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왔으나, 매우 강경한 반 페미니즘 성향을 보이며 2020년대부터 청년층들로부터 인기를 끌어왔다. 또한 임춘식 회장 특유의 거침 없는 막말이 강성 지지층 사이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며 2020년대 이후로 당내 제3파벌[6]이라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세현 독주 체제가 열리며 사실상 청량회를 제외한 계파들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영풍회는 반정세현 성향을 띠지 않은 채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활동을 이어나가 어렵사리 연명해나가고 있다.
타 계파와의 관계
청량회
성화정책연구회
역사
역대 회장
- 굵은 글씨는 국무총리대신을 역임한 인물임.
대수 | 이름 | 파벌 명칭 | 파벌 별칭 | 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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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김종필 | 자유민주연합 | 청구동계 | 1984년 4월 18일 ~ 1990년 3월 7일 |
2 | 임춘식 | 1990년 3월 8일 ~ 1998년 4월 27일 | ||
3 | 이완구 | 1998년 4월 28일 ~ 2007년 12월 12일 | ||
1 | 임춘식 | 영풍회 | 친임춘식계 | 2007년 12월 13일 ~ 2036년 10월 13일 |
2 | 이동미 | 2036년 10월 13일 ~ 2038년 6월 2일 | ||
3 | 성화령 | 친성화령계 | 2037년 6월 3일 ~ 2038년 2월 16일 | |
4 | 임춘식 | 친임춘식계 | 2038년 2월 16일 ~ 현직 |
구성원
원내 인사
- 임춘식 (황북 수안·곡산·신계 의회원 의원, 전 국무부총리대신)
영풍회 설립자이며, 정신적 지주로 여겨진다. 현재 정계에 복귀해 회장직을 맡고 있다. - 성화령 (평양 중·평천 의회원 의원, 전 외교대신)
영풍회 회장이다. 보수 성향의 청년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임춘식과 달리 온건한 보수 성향을 띠고 있다. - 이동미 (함북 온성·종성·경원 의회원 의원, 전 국방대신)
'임춘식 키즈'라 불리며 오래 전부터 임춘식의 후계자로 일컬어져왔으며, 임춘식의 정계 은퇴 이후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지지세를 키우는 데 실패, 세력 축소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 오준경 (황북 사리원 사원 의회원 의원)
영풍회 사무총장이다. 임춘식의 주변 지역구 의원이라는 인연으로 가입하게 됐으며, 임춘식의 측근으로 오랜 기간 함께해와 '임춘식의 심복'이라 불린다. - 김재섭 (서울 도봉 을 의회원 의원)
영풍회 정책위원장이다. 앤디 리가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시기에 그와 손절하고 청년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영풍회에 가입, 반페미 노선을 걸어 왔다. 현재는 중진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며 대변인을 맡고 있다.
원외 인사
비판 및 논란
여담
관련 문서
- ↑ 김종필 생전에는 한성부 청구동이었다.
- ↑ 청구동은 상도동과 동교동과는 달리 행정동상으로만 존재하며, 법정동 상으로는 신당동의 일부이다. 참고로 청구동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행정동명으로 쓰다가 이후 법정동명에 맞추어 신당4동으로 변경되었으며, 2013년부터 다시 청구동으로 환원되었다.
- ↑ 참고로 청구동 사저는 김종필이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초에 영풍철강에서 매입했다고 한다.
- ↑ 충청 기반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전국적인 파벌로 나아가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고 한다.
- ↑ 그러나 나경원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인 동맹을 맺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서로에게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 ↑ 당연히 영풍회를 능가하는 양대 파벌이 존재한다. 2010년대까지는 창조회·실용회가 각축을 벌여왔으며, 2020년대 이후로 세력구도가 바뀌며 정세현으로 대표되는 청량회와 나경원으로 대표되는 성화정책연구회가 경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