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아나 홍콩)

쿠리오 긴배 도프 공산1968
벨지엄 공차 DK Den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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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입법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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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55석

신민주동맹
42석

본토민주전선
13석
야당 44석

자유당
37석

인민연합
7석
무소속 1석
재적 100석
自由黨
약칭 自由, LP, Liberal
영문명 Liberal Party
슬로건 For The Livelihood Of The People
只爲了民生
전신 자유당 (1993년)
민주건항협진연맹
창당일 2014년 9월 26일
대표 펠릭스 청
부대표 스태리 리
사무원장 피터 시우
이념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연성 아태회의주의
온건 친서중국
스펙트럼 중도우파
입법의원 37석 / 100석 (37%)
구의원 126석 / 479석 (26.3%)
당색 청색 (#008CD2)
전체 당원 수 6만 4천 명 (2022년 6월 기준)
책임 당원 수 1만 명 (2022년 6월 기준)
청년조직 청년자유당 (Young Liberal Party)
국제조직 무소속

개요

홍콩의 온건 통합파 보수정당.

역사

자유당(1993)의 로고

자유당의 전신인 자유당(1993)은 1993년 온건 친서중국 통합파 정치인인 도널드 창(Donald Tsang)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정당이다.  이후 민건련, 공회연합회, 신민당 등 통합파 정당들과 통합파 정당 연합체인 인민공화연맹을 창설했으나 연맹 내에서 만년 제3 정당이었다.[1]

2014년 레기나 입 내란음모사건우산혁명이 일어나면서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한 인민공화연맹은 국면 전환을 위해 총리에 온건파이자 자유당 대표 펠릭스 청을 지명, 청은 최초의 자유당 출신 총리가 되었다. 한편 공회연합회와 신민당이 이적죄로 각각 자진해산, 강제해산되면서 인민공화연맹에는 자유당과 민건련,두 정당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민건련 쪽 인사들 일부도 사건에 일부 연루되자 민건련 내부에서도 자유당과 합당하여 이미지를 세탁해야한다는 여론이 커졌고 지도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자유당에 합당을 제안했다. 처음에 민건련은 1대1 합당을 원했으나 내란음모사건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 합당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던 자유당이 민건련에 더 큰 양보를 요구했고 양당은 신당 당명을 "자유당"으로 결정 자유당 우위의 합당에 합의했다.[2]

자유당 펠릭스 청 내각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내각 출범 당시의 지지도는 40%를 밑돌았고 정당 지지율에서는 신민주동맹이 자유당을 여유롭게 앞질렀다. 펠릭스 청은 자신과 자유당이 내란음모사건과 관련 없음을 연이어 주장하였으나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았다. 청은 입법원 해산 및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으나 자유당은 전체 100석 중 29석만을 얻어 대참패, 신민주동맹의 단독내각이 수립되면서 펠릭스 청 내각은 100일만에 막을 내렸다. 조기 총선이 결과적으로는 자폭이 된 것이다. 이에 청이 참패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당대회가 재신임을 의결하면서 청이 대표직에 복귀했다.

이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경제가 침체되자 자유당은 신민주동맹의 경제 정책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2020년 총선에서 37석을 얻어 이전 선거에 비해 선전했으나 원내 과반이 붕괴한 신민주동맹본토민주전선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집권에는 실패했다.

성향

온건 보수주의 정당이지만 사회 이슈보다는 경제 이슈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유당은 "민생제일주의"를 내세우고있는데, 이를 통해 홍콩의 최대 무역국인 서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필요성을 주장한다.  다만 인민연합과 같은 급진적인 친중 정당은 아니다.

역대 선거 결과

선거 의석 증감 지위
2016 총선
29 / 100 (29%)
감소12석 야당
(2당)
2020 총선
37 / 100 (37%)
증가8석 야당
(2당)



  1. 최대 정당은 민건련, 제2 정당은 공회연합회
  2. 다만 이로 인해 민건련 강경파가 탈당하여 구 신민당, 공회연합회의 잔존세력과 인민연합을 창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