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오케 고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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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승천
파일:일본 정부 문장3.png 역대 대동아제국 합동참모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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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제국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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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수
1884 천무제
1905 의양제
1930 숭녕제
1934 선화제
1987 옹희제
1994 지순제
1996 원풍제
2016 단공제
2019 선치제
정이대장군
1884
1900
1910
1920
1930
1940
1950
1960
1970
1990
1980
2000
2010
2020
사카모토 료마
가쓰라 다로
구로다 기요타카
미나미 지로
사이토 마코토
야마시타 도모유키
도이하라 겐지
스즈키 데이이치
츠지 마사노부
미나모토 겐지
히카루 고이치
오카자키 유바이치
스즈키 센이치로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육군 원수
1886
1904
1912
1934
1944
1983
2000
2020
야마가타 아리모토
노기 마레스케
데라우치 마사타케
야마나시 한조
마쓰이 이와네
고노 히로타카
아사카 노무타로
히라오케 고지로
해군 원수
1898
1913
1940
1957
1993
사이고 주고
도고 헤이하치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에다 미츠쿠니
오구라 사다스케
공군 원수
1942
1954
1986
2009
2021
오니시 다키지로
우타다 아레자와
모리 오토보마치
이토 마쓰노부
가와바타 겐타로
우주군 원수
2021 다카노 요시마사
황제 · 정이대장군 · 전쟁대신
대동아제국 제91대 부총리대신
대동아제국 제53대 합동참모의장
히라오케 고지로
平桶子次良 | ᡥᠠᡴᠰᡝᠨ ᠊ᡟ᠊ᡠᠯᡤᡝᠣᠰᡭᡳᠨ
본명 히라오케 고지로 (平桶 (ひらおけ)子次良 (こじりょう))
학센 율루거신 (ᡥᠠᡴᠰᡝᠨ ᠊ᡟ᠊ᡠᠯᡤᡝᠣᠰᡭᡳᠨ)
출생 1996년 6월 11일 (25세)
대동아제국 만슈 기쓰린현 가카무치
국적 대동아제국
재위 진왕
2020년 10월 5일 ~
(1년 2월 3주 6일, 453일)
재임 대동아제국 전쟁대신
2019년 11월 12일 ~ 2020년 1월 5일
대동아제국 정보대신
2019년 11월 12일 ~
대동아제국 합동참모의장
2020년 1월 1일 ~
대동아제국 총무대신 (부총리대신)
2020년 1월 1일 ~
작위 장창공(長昌公)2020
진왕(秦王)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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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호 홍도경문위무대왕
(弘道經文緯武大王)
부모 히라오케 신지로
히라오케 고토유키
신체 177cm, 65kg
학력 류바시 학원 (졸업)
니시쿄 사관학교 (졸업 / 11기)
혈통 만주계 야마토인
종교 티베트 불교무종교 (국가신토)
소속 정당 틀:제국유신당
약력 대동아제국 전쟁대신
대동아제국 정보대신
대동아제국 총무대신
대동아제국 합동참모의장
제국유신당 부총재
군인 정보
임관 니시쿄 사관학교 (11기)
복무 대동아제국군
2011년 12월 17일 ~
계급 육군 원수
보직 대동아제국 합동참모의장
병과 보병
파벌 개혁파

개요

대동아제국의 정치인, 파시즘 사상가. 제53대 합동참모의장이자 제91대 총무대신(부총리대신)을 역임하였다.

상세

선치제에 못지 않은 책략가 스타일의 정치인으로, 15세에 입대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쳐 23세에 중장에 올랐고 선치 반정 때에도 만슈와 조센 지역 군인들을 이끌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선치 반정 당시 개혁파 군부의 수장이었으며 선치제 즉위 이후에는 선치제의 숙청 명령을 군에 하달하여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재도 선치제에 다음 가는 실질적인 권력 서열 2순위로[1] 국정 운영 전반을 막후에서 조정하고 있다. 선치 반정 당시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동아제국 최초로 평민 출신의 왕작 서임자가 되었다.

또한 개혁파 군부의 기반이 되는 파시즘 이론을 21세기의 현실에 맞게 다듬은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 사상적으로 개혁파 군부는 히라오케 고지로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정치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히라오케 고지로가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생애

유년기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1996년 6월 11일 만슈 지역 기쓰린현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은 그렇게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는 평범한 평민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한다. 이후 2008년 군 교육을 받기 위해 만슈를 떠나 조센현 모토야마시에 위치한 니시쿄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2011년 졸업하여 군에 입대하였다.

군인 시절

2011년 니시쿄 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소위로 복무를 시작하였다. 만슈 지역의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유능한 능력을 여러번 보인 결과, 진급이 굉장히 빨랐는데, 2012년 대위로 진급하였고, 1년 이후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2014년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2016년 준장, 2017년 중장으로 진급하여 유례가 없는 초고속 승진 루트를 밟았다. 특히 군사 작전 수행 능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대신 체술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 내부에서의 정치에서 상당한 능력을 보였는데, 자신에 반대하는 군인들은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배제시키는 한편 다른 군인들을 자신에게 동참하게 하여 점차적으로 만슈와 조센 지역의 군을 자신의 편으로 끌여들었다. 이후 자신의 파시즘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파 군부를 조직하여 군의 주류였던 보수파 군부의 중년 장교들과 대항하는 청년 장교파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 파벌에는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아이신가쿠라 류자키 등 후일 선치 반정으로 정부의 요직을 참여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히라오케 고지로 자신도 선치반정 이후 정치계의 실세로 군림할 수 있었다.

선치 반정 당시

자신의 휘하 부하로 있던 다테바야시 류노스케선치제의 개인 호위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다테바야시 류노스케의 중제로 선치제와 만났고, 선치제를 개혁파 군부로 끌어들이는데까지 성공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군사 정변을 기획하면서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아이신가쿠라 류자키, 가와바타 겐타로, 다카노 요시마사와 함께 핵심 책무를 맡았으며 그중에서도 선치제와 더불어서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조정하는 리더의 역할을 맡았다.

2019년 선치 반정이 일어났을때 만슈와 조센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자신의 군대를 이동시켜 손쉽게 정부군을 제압하였고 만왕 아이신가쿠라 스즈메까지 포로로 잡는데 성공하였다. 전선이 일본 열도 내에 한정되었을때 현장 지휘는 가와바타 겐타로에 맡겼으며 자신은 만슈와 조센, 그리고 지나 지역에서 잔존 보수파 군부를 진압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9년 11월 정부군이 항복한 이후 그는 임시적으로 전쟁대신, 정보대신의 직을 맡았고, 2020년 1월 전쟁대신직을 다테바야시 류노스케에게 넘겨주고 정보대신의 직은 유임되었다. 또한 합참의장직을 부여받았고, 계급은 중장에서 원수로 승진, 신분도 평민에서 공작으로 상승하였다.

2020년 10월,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원수와 함께 선치 반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을 인정받아 왕작에 봉해졌으며 이는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이다.[2]

신정부 내에서의 활동

현재

성향

선치제와 같은 두뇌파, 리더형 정치인으로 사실상의 내각 내 1인자로 활동하면서 지난 2년간 여러가지 치적을 남겼다. 전반적인 성향은 호전적이면서 개혁적이다. 온건한 팽창론자의 대표주자로 소련에 대한 압박을 중시한다.

반면 모든 황국신민들이 같은 권리를 누려야한다는 일부 개혁파 인사들의 의견에는 부정적이며 더 나아가 민중들의 정치 참여 역시 거부하는 엘리트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반황실적 사상에도 반대하며, 이를 탄압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나 정보대신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제국 내의 거의 모든 사상범들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며 일부 황실 회의적인 보수주의자들까지 처벌하고 있다.

강력한 군정 통치 지지자이자 군국주의자이다. 대장대신 역시 충분히 군인이 맡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경제에 있어서 중요한건 참모이지 리더라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문민통치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치제다테바야시 류노스케의 지시로 대장대신은 관례대로 문민 관료에게 돌아갔다.

사상가로서

대동아제국은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와 같기 때문에 개인의 의사는 물론 정부 기관의 의사, 기업의 의사 역시 중요하지 않다. 대동아제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곧 대동아제국이라는 하나의 존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의사를 존중하기보다는 이를 조정하고 통합하여 단일된 목표를 지향케함이 더욱 효율적이다. 따라서 민중들은 자발적으로 상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상부는 더 위의 상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구조가 이뤄져야 전체 사회의 발전이 있을 수 있다.
(...)
모든 황국 신민들이 황제 아래에서 단결하며, 정부는 그런 신민들 위에 군림하며 통치한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 황제가 일정 부분 관여하면서, 황제는 정부가 내린 결정을 신민들에게 아래로 하달하여 강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위하여 황제에게 절대적이고 무한한 권력이 부여되어야하며 이에 대한 불충은 사회 계약 자체에 대한 위반으로 간주해 엄중히 처벌한다. 하지만 황제는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조직이자 기관이며 국가보다 위에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인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의 절대적인 권한은 상하 수직관계를 통한 국가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존재이다.
(...)
경제 체제는 국가에 완전히 귀속되어야하고 기업 자체도 국가 정부와 황제의 의사에 거역하는 사적인 활동을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된다. 모든 기업들을 국유화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을 정부 아래에 복종시키면서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제2의 정부기관으로 둘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결속 역시 국가 발전에 필요한 것으로, 단결된 노동자들은 국가 그 자체를 위하여 봉사하며 이러한 흐름에 거역하는 소수를 배제시킨다. 이를 통하여 노동자는 기업에 복종하고, 기업은 국가에 복종한다. 국가 정부는 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기업에 하달하며 기업은 다시 이를 노동자에게 하달한다. 노동자는 명령에 따라 생산하고, 기업이 생산한 생산물을 바탕으로 국가의 경제가 발전한다. 이러한 상하 관계의 확립을 통해 국가 전체의 진보가 이루어진다.
(...)
그렇기 때문에 화족 제도나 신민들을 민족에 따라 나누는 인종차별적인 제도 역시 무의미하다. 모든 존재는 곧 대동아제국이라는 하나의 존재를 위하여 존재하는 작은 세포 조직들이고 그 사이에 차별을 두는 것은 비효율을 야기한다. 더군다나 황제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존재하는 이상, 다른 모든 차등과 구별은 무의미하고 반황실적이다. 국가의 밑에 있는 모든 존재는 철저히 능력을 중심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아야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발전에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일부 소수 반항자 혹은 능력 부족자에 대한 배제는 신분제와 인종 차별의 유무와는 별개로 당연시되어야하며, 이는 찬반으로 가를것도 없는 국가 발전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요쇼이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황제 만세, 의회 만세, 군정 만세를 외치기 이전에 대동아제국 만세를 외쳐야한다.
<제국의 형성>, 2017

대표적인 파시즘 사상가이자 국가사회주의자(National Socalist)이다. 기타 잇키의 황도파 정신을 21세기의 현실에 맞춰 변형하여 개혁파 군부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17년 출간된 <제국의 형성>은 그의 초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이다. 이 책은 군부에 의하여 황제 모독적이라는 이유로 출간 정지를 당했고 그 역시 군부의 감시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들은 대동아제국의 청년 장교들 사이는 물론 민중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공감을 얻었으며, 이는 선치 반정에서 그의 사상을 내걸은 개혁파 군부가 집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단히 파천황적인 사고관을 가진 인물이다. 신분제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였고 황제 역시 절대적으로 군림해야하지만, 국가 기관에 가까운 존재라는 개념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건한 공화파로 분류되었다.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통제와 계획 경제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견지한다. 외교적으로는 팽창주의와 민족주의를 표방한다. 특히나 사회 발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민족에 따라 신분을 나누는 행위를 혐오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민족에 상관 없이, 그리고 신분에 상관 없이 개인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주의적인 사회를 주창했다.

황제보다도 국가를 우선시해야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까지 할 정도의 극렬한 파시스트였으나, 2017~8년 선치제와 만난 이후에는 황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누그러졌고[3] 비교적 현실적인 의제를 반영해 자신의 이론을 누그러트렸다. 부총리로서 행한 정책들은 그의 정치적 사상에 비해 의외로 온건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일 뿐이고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이념을 관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평가

긍정적

부정적

개인사

여담

  • 선치제를 거의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지지한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선치제 역시 뛰어난 책략가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개혁파 군부를 이끌때나 자신의 이념을 정립할때나 성향은 온건한 공화주의에 가까웠지만, 선치제와 만난 이후에는 완전한 강경 황실주의자로 선회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강경한 황실주의는 어디까지나 기관으로서의 황제를 의미한다. 황제에 전권을 부여하기보다는 정부의 결정을 아래로 하달하는 체제를 여전히 신봉하고 있다. 히라오케 고지로와 선치제 두명은 서로를 깊게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서로 합의하여 국정을 이끌고 있다.
  • 본래 대부분의 만슈 출신 군 장성과 마찬가지로 티베트 불교를 믿었었다. 하지만 선치제를 만난 이후에는 티베트 불교를 계속 믿으면 황제 숭배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종교를 버리고 국가신토로 개종하였다. 이렇게 된 시점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2019년 8월 전후라고 한다.
  •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별개로 성격은 매우 착하고 친절하다고 한다. 일단 한번 친해지면 자신이 필요로 할때까지는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고 도와주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연을 끊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단호해서 한번 안친해지면 되돌릴 방법이 없이 무서워진다고. 이 점은 선치제와 많이 비슷하다.

각주

  1. 계급 상 더 높은 다테바야시 류노스케는 선치제의 호위역할이기에 실권은 히라오케 고지로가 가지고 있다.
  2. 다테뱌아시 류노스케는 남작가 출신이다.
  3. 다만 이는 선치제에 대한 사적인 호감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문호스트레이독스 文豪ストレイドッグス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フョードル・ドストエフスキー

모티브: 기타 잇키 北一輝 이시와라 간지 石原莞爾 오카와 슈메이 大川周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