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전

[논설] 그리스도교의 평화세계가 위기를 맞다.

2024.06.10.

논설 - 그리스도교의 평화세계가 위기를 맞다

 

  세계 2차대전 이후 그리스도교는 질서잡힌 세계 아래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재건되는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교는 가상한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그리스도교는 양차 대전을 겪으며 현실적 문제에 봉착하였다. 문명의 위기,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결, 신학적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그리고 르네상스와 이성주의에 맞선 신중심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의 변증과 호교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이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사실 해결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들이었다. 문명의 위기에 있어선 세계각지의 경제적-사회적인 차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이념대결은 비록 끝났으나 지금에 와선 선교와 문명을 싣어나르던 세계의 바닷길이 서서히 좁아지고 있다. 설령 열려있을 때에도 철의 장벽은 무너졌으나 종교를 막아서는 쇄국적 행동들은 세계 곳곳에서 관촬되었다.

 

  신학적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는 이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원만하게 합의되어가고 있는듯 싶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거의 없으며, 이는 세게의 주류 신학교가 마찬가지이다. 이를 교단적으로 용인하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적 견해를 포용하는 입장에서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총신대학교와 같이 다소 보수적이고 신학적으로 개방성이 적은 학풍까지는 아직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분도 보인다. 자유주의는 하나님-전지전능하며 그 누구에게도 의하지 않는 존재자-에게 죄악이라고 여기는 보수적 신앙관의 사람들도 아직은 많지만 학게에서는 널리 받아들이고 있다.

 

  신학이 신앙까지 내려가기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기 때문에, 너무 서두를 것도 없을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변증과 호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엔 과학이라 여기는 실증주의, 이성주의와의 대결 구도였다면 지금은 기독교, 더 나아가 아브라함계통 종교로써의 독립성을 추구하는 길을 가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발맞추는 교회는 절망에 빠진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써 그 가치를 입증하고자 부단히 노력중이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다시 주춤하고 있다. 최근의 창조과학과 유신진화론으로 인한 갈등의 산물인 서울신학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인 박영식 교수가 해임되었고, 명성교회나 금란교회와 같은 목회자의 세습을 막고자 하는 움직임은 다시 멎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그리스도교는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초국가적 존재로써 움직이지 못한다는 현실적 증거로써 작용하고 있다. 교회가 올바른 질서에서 점점 혼미해지고 사회에 대해서 자본과 욕망으로 인해 점점 축소되어가고 있는것이다.  이 모든것은 그리스도교가 지금껏 누려온 평화세계는 반대로 독이되어 그리스도교의 위축과 부패가 깊어지고 있는것이다.

 

  LGBT가 교회의 일치성에 여러 잡음을 낸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현상을 끝까지 없다고 거부하는 것도 올바른 행태가 아니며 이들을 포용하지 않는것 또한 개방된 공동체가 맞는지에 대해서 의심해야 할 것이다. LGBT와 같은 논쟁에 비해 기아나 이단-사이비와 같은 사교, 교인 수평이동이나 이탈, 목회자의 범죄, 닫힌 공동체 등과 같은 현실적이며 당장 목전에 둔 주제들을 심도깊게 살피지 못한것은 분명한 교회의 잘못일것이다.

 

  혹자는 LGBT나 진화론, 자유주의에 타협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본질은 교회가 특정인들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공교회주의 질서가 무너졌으며 부흥과 번영에만 매진한 나머지 성숙한 공동체주의와 성도들의 교통을 위한 건강한 영성적 훈련이 미진하게 된것이다. 이는 청년이 없다고 소리치는 자성적 목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말씀을 통한 번영과 거목양성, 세계선도를 주도하겠다고 말하는 교회는 많으나 스스로를 개선할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는 고린도전서에서 스승은 많으나 아비가 없다고 하는것만같다.

 

  남들을 가르치려고만 하지 품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복음은 시대정신을 지니고 끊임없이 시대에 발맞추어 해석되고 실천되어왔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교회는 이제 용광로에서 나온지 너무 오래되어 차갑게 식고 말았다. 교회는 다시금 스스로를 망치질하여 올바른 공동체로 회복해 그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때이다.

 

리조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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