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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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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주의 雩南主義 | Unamis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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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창시자 | 김영삼 |
창시 시점 | 1975년 |
이념 | 고전적 우남주의 보수주의 시민국민주의 국가자본주의 (~1980s) 사회적 시장경제 (1990s~)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시민국민주의 |
성향 | 중도 ~ 우익[1] |
주요 정치인 | 고전적 우남주의자 이승만 김영삼 이회창 유치송 유승민 심상우 이만섭 오세훈 남경필 이운석 리제이싱 (논란 있음) |
표방 정당 | [2] (논란 있음) |
개요
우남주의(雩南主義)는 대한민국의 2대 총통 김영삼이 통치의 용이를 위해 만든 정치 사상이다.
역사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한국은 동아시아 전쟁의 승리로 남만주를 얻어낸 상태였다. 하지만 남만주는 한국에 반쯤만 속한 어정쩡한 상태인 만주 자치령이었고[3] 궁극적으로 주민들의 분리독립 요구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민국 국무원은 만주 주민들의 빠른 동화를 위해 한국과 만주의 공통 분모를 만들기 위해 만주에 한국 문화 전파를 장려하면서 만주 주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일부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김영삼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이승만의 후광 활용과 만주인 동화 정책의 선전을 위하여 체계적인 사상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기존에 이승만이 추진하던 정책들을 정리하여 만든 사상이 바로 우남주의다.
이승만은 우남주의가 만들어지는 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자기 호를 도용(?)한 김영삼에게 태클을 걸지도 않았다. 다만 김영삼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후에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 이름은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상세
고전적 우남주의
기본적으로는 온건 보수주의, 시민국민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정부 주도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한 서석준 정부와 김대중 정부 시기 1997년 경제위기 등을 겪으며 민국당 주류가 재정보수주의 성향을 띄게 되어 확대 재정 정책이 줄어들었고 불자인 유승민이 민국당 후보로 대선에서 승리하며 기독교 민주주의적 성향이 비주류화되었다.
주요 정치인: 이승만, 김영삼, 이회창, 신상우, 하순봉, 김영대, 이영수, 유승민, 류성걸, 라하연
신우남주의
1990년대, 기존의 우남주의는 새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신우남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이들이 심상우, 이만섭, 김영남이었다. 신우남주의자들은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시민국민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을 띄며, 약한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상가들도 소수이지만 있다.[4]
주요 정치인: 심상우, 이만섭, 김영남, 한병채, 홍석형, 오세훈, 정병국, 남경필, 왕성호, 이운석
하이난 특색 우남주의
하이난의 주석 리제이싱이 창시한 우남주의의 분파를 뜻하며, 비공식적인 명칭으로는 리제이싱-마르크스-무솔리니-폴포트-보카사-아민-백범-우남주의가 있다.
리제이싱은 "김영삼이 우남 선생의 위대한 뜻을 왜곡하였다"라며 자신의 저서 <하이난, 고치겠습니다>에서 카를 마르크스, 베니토 무솔리니, 폴 포트, 김구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우남주의를 주장했다. 그 내용은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에서 계급을 국가로 바꾼 것으로, 역사가 발전하는 원동력은 인민보다 국가를 우선시하여 지속시되는 정복전쟁으로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리제이싱은 무한한 정복을 지향한 원시 시대를 동경, 원시주의를 주창하였으며, 무솔리니의 인종적 투쟁론과 폴 포트의 원시 공산주의의 개념을 차용했다.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리제이싱은 자신이 하이난을 이끄는 영도자이자 중화대륙의 황제가 되어 동아시아 전쟁처럼 아시아를 구원해야함을 주장했다.
정작 리제이싱은 "카를 마르크스는 동독 사람이 아닌가요? 그 DDR에...." 라고 말하며 사상적 무지함을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