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개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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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건국 과정===
===건국 과정===
1911년, 중국 본토에서는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이 발생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중국의 전제군주제가 종말을 고하였다. 동시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강덕제 (개화)|푸이]] 역시 만 2세의 나이로 폐위되었다. 하지만 새로이 건국된 중화민국은 온갖 정치세력 및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1915년에는 대총통 위안스카이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화제국을 선포하는 홍헌체제가 발생했고, 1917년에는 장쉰(장훈)이 푸이를 다시 황위에 앉혀 군주제를 복원하려는 장훈복벽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군벌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신해혁명과 민국의 아버지인 쑨원이 1925년 사망하면서 중국은 더욱 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1911년, 중국 본토에서는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이 발생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중국의 전제군주제가 종말을 고하였다. 동시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강덕제 (개화)|푸이]] 역시 만 2세의 나이로 폐위되었다. 하지만 새로이 건국된 중화민국은 온갖 정치세력 및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1915년에는 대총통 위안스카이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화제국을 선포하는 홍헌체제가 발생했고, 1917년에는 장쉰(장훈)이 푸이를 다시 황위에 앉혀 군주제를 복원하려는 장훈복벽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군벌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신해혁명의 아버지인 쑨원이 1925년 사망하면서 중국은 더욱 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국의 정국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신해혁명 이후로도 여전히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던 복벽파는 실망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충성을 바치던 청나라는 이미 사라졌고 군주제를 복원하려던 장쉰의 장훈복벽까지 실패하였다. 1924년에는 북경정변을 통해 베이징을 장악한 펑위샹이 핍궁사건을 일으켜 청나라 소조정의 푸이가 궁에서 내쫓기는 상황에서도 복벽파는 닭 쫓는 개 마냥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만 했다.
중국의 정국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신해혁명 이후로도 여전히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던 복벽파는 실망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충성을 바치던 청나라는 이미 사라졌고 군주제를 복원하려던 장쉰의 장훈복벽까지 실패하였다. 1924년에는 북경정변을 통해 베이징을 장악한 펑위샹이 핍궁사건을 일으켜 청나라 소조정의 푸이가 궁에서 내쫓기는 상황에서도 복벽파는 닭 쫓는 개 마냥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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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만주는 지역 군벌들의 연합체인 봉천군벌이 지배하고 있었다. 만주에서는 중국 본토의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혹은 만주 지역주의 감정으로, 혹은 그저 자신의 권력 확대를 위해 만주 지역의 자치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일종의 연방제 담론인 연성자치론(聯省自治論)을 지지하였다. 연성자치론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원하던 중국국민당, 그리고 본토에 거점을 가진 다수의 군벌들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만주 지역의 연성자치론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중화민국 중앙정부의 만주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고 이는 만주의 자치론자들이 더 넓은 반경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한편 만주는 지역 군벌들의 연합체인 봉천군벌이 지배하고 있었다. 만주에서는 중국 본토의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혹은 만주 지역주의 감정으로, 혹은 그저 자신의 권력 확대를 위해 만주 지역의 자치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일종의 연방제 담론인 연성자치론(聯省自治論)을 지지하였다. 연성자치론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원하던 중국국민당, 그리고 본토에 거점을 가진 다수의 군벌들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만주 지역의 연성자치론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중화민국 중앙정부의 만주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고 이는 만주의 자치론자들이 더 넓은 반경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덕에 만주 문제에 더 깊게 개입할 수 있게 된 해외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 (개화)|한국]]이었다. [[갑신혁명 (개화)|갑신혁명]]을 통해 개화에 성공한 한국은 1차 극동전으로 [[비사부 (개화)|대련(비사)]]와 간도를, 제2차 극동전으로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얻어낸 상태였으나 더욱 적극적으로 북쪽을 향해 진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만주 지역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기를 원했는데 이는 반중앙정부 성향의 만주 자치론자들의 입장과 맞아떨어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만주 자치를 지지하는 만주 지역의 여러 군벌과 단체를 후원하였고 피후원 세력들은 각자가 가진 입장에 따라 한국 정부에 협조하였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덕에 만주 문제에 더 깊게 개입할 수 있게 된 해외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 (개화)|한국]]이었다. [[갑신혁명 (개화)|갑신혁명]]을 통해 개화에 성공한 한국은 1차 극동전으로 [[비사부 (개화)|대련(비사)]]와 간도를, 제2차 극동전으로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얻어낸 상태였으나 더욱 적극적으로 북쪽을 향해 진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만주 지역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력 약화를 원하던 한국 정부의 태도는 반중앙정부 성향의 만주 자치론자들의 입장과 맞아떨어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만주 자치를 지지하는 만주 지역의 여러 군벌과 단체를 후원하였고 피후원 세력들은 각자가 가진 입장에 따라 한국 정부에 협조하였다.


한국이 만주 자치론자들을 한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이용하려고 한 것과 별개로, 만주 자치론자들 사이에서는 만주의 자치 정도를 어느 정도로까지 확장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장징후이 (개화)|장징후이]], [[차이윈성 (개화)|차이윈성]] 등의 급진파는 한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펼쳤고, 반대로 장쭤린과 마잔산 등은 중화민국 체제 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하는 것을 선호했다. 결국 두 세력은 분화하였고, 급진파는 만주에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전만연합임시정부 (개화)|전만연합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한국이 만주 자치론자들을 한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이용하려고 한 것과 별개로, 만주 자치론자들 사이에서는 만주의 자치 정도를 어느 정도로까지 확장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장징후이 (개화)|장징후이]], [[차이윈성 (개화)|차이윈성]] 등의 급진파는 한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펼쳤고, 반대로 장쭤린과 마잔산 등은 중화민국 체제 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하는 것을 선호했다. 결국 두 세력은 분화하였고, 급진파는 만주에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전만연합임시정부 (개화)|전만연합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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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의 번영===
===전간기의 번영===
{| class="dark:bg-evewiki-020 dark:!text-white" style="float:left; 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100%; max-width:325px; border:1px solid #ccc; background:#F8F8F8;"
<table style="float:left; font-size: 10pt; margin:8px; width: 330px"><td style="border:1px solid #CCC; background:#F8F8F8; text-align:center" class="dark:bg-evewiki-020 dark:!text-white"><div style="margin: 4px 4px">[[파일: 푸이와 정샤오쉬.jpg]]</div><div style="margin: -5px 5px 1px"> 푸이(오른쪽)와 정샤오쉬 </div></td></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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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 <div style="margin: 4px 4px 0px 4px">[[파일:푸이와 정샤오쉬.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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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font-size: 10pt;" | 푸이(오른쪽)와 정샤오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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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건국전쟁 (개화)|만주건국전쟁]]의 승리로 만주는 난징의 중국 국민정부의 손아귀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났으나 만주국의 정체(政體)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푸이 (개화)|푸이]]와 [[정샤오쉬 (개화)|정샤오쉬]], [[한국 정부 (개화)|한국 정부]]는 군주정을 구상했으나 [[장징후이 (개화)|장징후이]]나 [[장스이 (개화)|장스이]] 등의 만주 토착 군벌들은 입헌공화정을 선호했다. 심지어는 군주정파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는데, 푸이는 청 제국의 완전한 복원을 원했으나 한국 정부는 만주 지역의 독립된 군주국을 구상했다. 푸이는 제정이 아니라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한국 정부가 군벌들을 설득하면서 만주국은 입헌군주정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만주국 헌법이 제정되먄서 전만연합임시정부가 해체되고 만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초대 [[만주 총리대신 (개화)|총리대신]]으로는 열성 복벽파인 정샤오쉬가 취임했다.  
[[만주건국전쟁 (개화)|만주건국전쟁]]의 승리로 만주는 난징의 중국 국민정부의 손아귀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났으나 만주국의 정체(政體)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푸이 (개화)|푸이]]와 [[정샤오쉬 (개화)|정샤오쉬]], [[한국 정부 (개화)|한국 정부]]는 군주정을 구상했으나 [[장징후이 (개화)|장징후이]]나 [[장스이 (개화)|장스이]] 등의 만주 토착 군벌들은 입헌공화정을 선호했다. 심지어는 군주정파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는데, 푸이는 청 제국의 완전한 복원을 원했으나 한국 정부는 만주 지역의 독립된 군주국을 구상했다. 푸이는 제정이 아니라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한국 정부가 군벌들을 설득하면서 만주국은 입헌군주정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만주국 헌법이 제정되먄서 전만연합임시정부가 해체되고 만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초대 [[만주 총리대신 (개화)|총리대신]]으로는 열성 복벽파인 정샤오쉬가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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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주인들의 불만이 거세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만주 정부 (개화)|만주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실시했다. 우선 최말단 행정구역인 촌과 향의 장을 관선제에서 주민 직선제로 변경하였다. 비록 여전히 상급 행정구역장은 중앙정부에서 직접 임명하고 촌향장의 후보는 정부에서 사전에 검증받는 한계가 있었으나 주민들의 민심을 합법적으로 분출하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와 농민의 생계 걱정을 덜기 위한 각종 복지정책이 실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한적인 농지개혁의 실시와 기초적인 노동법의 도입이 있다. 정샤오쉬의 신유교주의에 기초한 이러한 개혁은 민심을 다독이는 데에 성공했고 만주는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주인들의 불만이 거세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만주 정부 (개화)|만주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실시했다. 우선 최말단 행정구역인 촌과 향의 장을 관선제에서 주민 직선제로 변경하였다. 비록 여전히 상급 행정구역장은 중앙정부에서 직접 임명하고 촌향장의 후보는 정부에서 사전에 검증받는 한계가 있었으나 주민들의 민심을 합법적으로 분출하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와 농민의 생계 걱정을 덜기 위한 각종 복지정책이 실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한적인 농지개혁의 실시와 기초적인 노동법의 도입이 있다. 정샤오쉬의 신유교주의에 기초한 이러한 개혁은 민심을 다독이는 데에 성공했고 만주는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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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style="float:left; font-size: 10pt; margin:8px; width: 330px"><td style="border:1px solid #CCC; background:#F8F8F8; text-align:center" class="dark:bg-evewiki-020 dark:!text-white"><div style="margin: 4px 4px">[[파일: 만주군 고물포.jpg]]</div><div style="margin: -5px 5px 1px"> 훈련중인 만주군<ref>대전차포 사격을 훈련중이다.</ref> (1938) </div></td></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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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font-size: 10pt;" | 훈련중인 만주군<ref>대전차포 사격을 훈련중이다.</ref>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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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1월, 격무에 시달리던 [[정샤오쉬 (개화)|정샤오쉬]] 총리가 사망하였다. 후임 [[만주국 총리대신 (개화)|총리대신]]으로는 초대 외교대신이자 당시 [[만주국 민정장관 (개화)|민정장관]]이었던 [[셰제스 (개화)|셰제스]]가 임명되었다. 순대 미보유의 적극 지지자였던 전임자 정샤오쉬와는 달리 셰제스는 만주가 소련의 위협에 맞서고 [[한국 (개화)|한국]]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군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셰제스 내각은 같은 재무장론자였던 한국의 [[안창호 내각 (개화)|안창호 내각]]의 지지를 받아 전반적인 재무장 계획을 수립하였고, 국제연맹의 감시를 피해 [[만주군 (개화)|만주군]] 건설에 나섰다. 국제연맹 역시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만주의 군대 조직을 눈치챘지만 한국이 만주군의 조직이 소련 견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영국과 프랑스 등을 비밀리에 설득하면서 국제연맹 역시 만주군의 창설을 막지 못하였다.
1936년 11월, 격무에 시달리던 [[정샤오쉬 (개화)|정샤오쉬]] 총리가 사망하였다. 후임 [[만주국 총리대신 (개화)|총리대신]]으로는 초대 외교대신이자 당시 [[만주국 민정장관 (개화)|민정장관]]이었던 [[셰제스 (개화)|셰제스]]가 임명되었다. 순대 미보유의 적극 지지자였던 전임자 정샤오쉬와는 달리 셰제스는 만주가 소련의 위협에 맞서고 [[한국 (개화)|한국]]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군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셰제스 내각은 같은 재무장론자였던 한국의 [[안창호 내각 (개화)|안창호 내각]]의 지지를 받아 전반적인 재무장 계획을 수립하였고, 국제연맹의 감시를 피해 [[만주군 (개화)|만주군]] 건설에 나섰다. 국제연맹 역시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만주의 군대 조직을 눈치챘지만 한국이 만주군의 조직이 소련 견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영국과 프랑스 등을 비밀리에 설득하면서 국제연맹 역시 만주군의 창설을 막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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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내각====
{{본문|만주의 내각 (개화)}}
{{본문|만주국 국무원 대신각의 (개화)}}
{{만주국 국무원의 대신각의 구성 (개화)}}
 
만주국 국무원 대신각의는 만주국 국무원의 최고 정책결정조직이다. 주석과 부주석, 사무장, 일반위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총리대신이 주석을, 부총리대신이 부주석을, 민정대신이 사무장을 당연직으로 겸임한다. 일반위원은 국정대신과 흠차대신이 당연직으로 겸임하며, 최대 5인까지 총리가 위원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다. 현재 대신각의의 위원은 총 24인이다.<ref>주석 + 부주석 + 사무장 + 일반위원 21인(국정대신 11인 + 흠차대신 8인 + 기타 2인)</ref>
 
상정된 안건의 가부결은 투표로 결정하며, 전체 위원의 과반수 참석에 참석 위원의 돠반수 찬성으로 안건을 가결시킬 수 있다. 가부 표 수가 동일할 경우 총리대신의 결정에 따라 가부결이 결정된다.


====총리대신====
====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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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만주국 내각총리대신 (개화)}}
{{역대 만주국 내각총리대신 (개화)}}
{{이미지|류궈중 프로필.png|제22대 만주국 내각총리대신 [[류궈중 (개화)|류궈중]]}}
{{이미지|류궈중 프로필.png|제22대 만주국 내각총리대신 [[류궈중 (개화)|류궈중]]}}
{{인용문1|'''총리대신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내각을 대표한다.'''|만주국 헌법 제64조 (제5장 행정부}}
{{인용문1|'''총리대신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내각을 대표한다.'''|만주국 헌법 제64조 (제5장 행정부)}}
{{인용문1|'''총리대신은 의안을 입법원에 제출하고, 국무 전반에 대하여 입법원에 보고하며, 행정 각부를 지휘·감독한다.'''|만주국 헌법 제65조 (제5장 행정부)}}
{{인용문1|'''총리대신은 의안을 입법원에 제출하고, 국무 전반에 대하여 입법원에 보고하며, 행정 각부를 지휘·감독한다.'''|만주국 헌법 제65조 (제5장 행정부)}}


'''만주국 총리대신'''(Prime Minister of Manchuria, 滿洲國 總理大臣,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ᡳ ᡴ ᠵᡳᠩᡴᡳᠨᡳ ᡝᠵᡝᠨ <ref>'''발음 : ''' 만주 구룬 이 진키니 어전 (manju gurun i jinkini ejen)</ref>)은 만주의 행정수반으로, 만주 황제의 명을 받아 만주국 국무원과 내각을 통솔한다. 총리대신은 입법원에서 입법의원 과반의 득표로 선출되어 제정된 선출안이 추밀원에서 추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황제에게 제청되어 황제에 의해 임명된다. 임기는 4년이며 횟수 제한 없이 중임이 가능하다.
'''만주국 총리대신'''(Prime Minister of Manchuria, 滿洲國 總理大臣,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ᡳ ᡴ ᠵᡳᠩᡴᡳᠨᡳ ᡝᠵᡝᠨ <ref>'''발음 : ''' 만주 구룬 이 진키니 어전 (manju gurun i jinkini ejen)</ref>)은 만주의 행정수반으로, 만주 황제의 명을 받아 만주국 국무원과 내각을 통솔한다. 총리대신은 입법원에서 입법의원 과반의 득표로 선출되어 제정된 선출안이 추밀원에서 추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황제에게 제청되어 황제에 의해 임명된다. 임기는 4년이며 횟수 제한 없이 중임이 가능하다.


초창기에는 만주 황제와 한국 정부의 의사로 총리가 결정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입법원에 의해 총리가 선출되고 있다. 59년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총리 평균 재임기간이 2년 남짓할 정도로 총리가 자주 바뀌었지만 1997년에 59년 체제가 붕괴한 이후로는 조기총선의 횟수가 줄고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이 늘어나면서 총리가 덜 자주 바뀌고 체계가 안정화되어가고 있다.
초창기에는 [[만주국 황제 (개화)| 황제]]와 [[한국 정부 (개화)|한국 정부]]의 의사로 총리가 결정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만주국 입법원 (개화)|입법원]]에 의해 총리가 선출되고 있다. [[59년 체제 (개화)|59년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총리 평균 재임기간이 2년 남짓할 정도로 총리가 자주 바뀌었지만 1997년에 59년 체제가 붕괴한 이후로는 조기총선의 횟수가 줄고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이 늘어나면서 총리가 덜 자주 바뀌고 체계가 안정화되어가고 있다.


현임 총리대신은 보수정당인 [[협화당 (개화)|협화당]] 소속의 류궈중이다. 제32대 총리로, 2022년부터 재임중에 있다.
현임 총리대신은 보수정당인 [[협화당 (개화)|협화당]] 소속의 류궈중이다. 제32대 총리로, 2022년부터 재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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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정당 (개화)}}
{{만주의 정당 (개화)}}


*'''[[협화당 (개화)|협화당]]''': 만주의 우익 보수정당이자 집권여당. 59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창당되었으며 현존하는 만주의 정당 중 역사가 가장 깊은 정당이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수주의 성향이며 황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전통적인 친한, 친극동 외교를 지지하지만 그 정도에는 계파별 온도차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주의 성향과 친기업, 친복지 성향이 혼재되어 있다. 현재 주석은 총리대신을 겸하고 있는 [[류궈중 (개화)|류궈중]]이다.
*{{글씨 색|#007483|■}} '''[[협화당 (개화)|협화당]]''': 만주의 우익 보수정당이자 집권여당. 59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창당되었으며 현존하는 만주의 정당 중 역사가 가장 깊은 정당이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수주의 성향이며 황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전통적인 친한, 친극동 외교를 지지하지만 그 정도에는 계파별 온도차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주의 성향과 친기업, 친복지 성향이 혼재되어 있다. 현재 주석은 총리대신을 겸하고 있는 [[류궈중 (개화)|류궈중]]이다.
*'''[[신흥당 (개화)|신흥당]]''': 만주의 리버럴 정당이자 최대 규모의 야당. 포퓰리즘과 사회자유주의 성향을 띤다고 평가받는다. [[사회민주당(만주) (개화)|사회민주당]][[민본당 (개화)|민본당]], [[만주신당 (개화)|만주신당]] 탈당파가 창당했다. 잠시 집권에도 성공했으나 협화당에 밀려 실권했고 장시간 이어진 낮은 지지율과 수권 경험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씨 색|#ffaa00|■}} '''[[신흥당 (개화)|신흥당]]''': 만주의 리버럴 정당이자 최대 규모의 야당. 포퓰리즘과 사회자유주의 성향을 띤다고 평가받는다. [[사회민주당(만주) (개화)|사회민주당]], [[민본당 (개화)|민본당]][[만주신당 (개화)|만주신당]] 탈당파가 창당했다. 잠시 집권에도 성공했으나 협화당에 밀려 실권했고 만성적으로 저조한 지지율과 수권 경험 부족, 빈약한 지역조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정원탁 (개화)|실정원탁]]''':  
*{{글씨 색|#123EAB|■}} '''[[실정원탁 (개화)|실정원탁]]''': 만주의 봉천 지역주의, 우익 자유주의 정당이자 제2야당. 지방 분권과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외교 면에서는 만주의 전통적 외교 노선인 친한 정책을 지지한다. 현재 침체기를 겪고 있는 제1야당인 신흥당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만주신당 (개화)|만주신당]]''':  
*{{글씨 색|#008CE4|■}} '''[[만주신당 (개화)|만주신당]]''': 온건 보수주의 중도우파 정당이자 제3야당. 59년 체제 종언의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쩌리 신세가 됐다. 중앙정계에서 같은 우파 야당인 [[실정원탁 (개화)|실정원탁]]과 연대하고 있다.
*'''[[인민역량 (개화)|인민역량]]''':  
*{{글씨 색|#F54240|■}} '''[[인민역량 (개화)|인민역량]]''': 좌익 성향의 정당이자 제4야당. 한때 협화당과 1.5당제를 이루었던 [[만주농공당 (개화)|만주농공당]]의 직접적인 후계정당이다. 지금은 [[만주신당 (개화)|만주신당]]과 마찬가지로 쩌리가 되었으나 여러 노조의 지지로 지역기반은 꽤 튼튼한 편이다.
*'''[[몽민권익연합 (개화)|몽민권익연합]]''':  
*{{글씨 색|#8CA500|■}} '''[[몽민권익연합 (개화)|몽민권익연합]]''': 몽골계 소수민족 정당. 몽골계 만주인의 권리를 옹호하며 몽골족의 이익을 지지한다면 그 어떤 정당과도 손을 잡는다. 주 활동무대는 몽골인들이 많이 사는 만주 서부 내몽골 지역이다.
*'''[[만주애국회 (개화)|만주애국회]]''':
*{{글씨 색|#|■}} '''[[만주애국회 (개화)|만주애국회]]''': 극우 민족주의 정당. 강경한 민족주의와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띤다. 거의 모든 외부세력에 매우 적대적이며, 만주의 동맹국인 한국과의 협력에도 부정적이다. 2022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헌법재판부===
===헌법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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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참의부'''(滿州國參議府, ᠪᠣᠣ ᡤᡳᠰᡠᡵᡝᡵᡝ ᠶᠠᠮᡠᠨ<ref>'''발음 :''' 보오 기수러러 야문 (boo gisurere yamun)</ref> , Privy Council of Manchuria)은 만주 황제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명망있는 유력자와 원로 중 에 임명된다. 정원은 100명이며 전원 황제가 임명한다. 추밀원 의원의 임기는 10년이며 중임이 가능하다. 추밀원은 헌법재판관 후보를 선출하고, 입법원이 제정한 총리선출안을 황제에게 주청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만주국 참의부'''(滿州國參議府, ᠪᠣᠣ ᡤᡳᠰᡠᡵᡝᡵᡝ ᠶᠠᠮᡠᠨ<ref>'''발음 :''' 보오 기수러러 야문 (boo gisurere yamun)</ref> , Privy Council of Manchuria)은 만주 황제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명망있는 유력자와 원로 중 에 임명된다. 정원은 100명이며 전원 황제가 임명한다. 추밀원 의원의 임기는 10년이며 중임이 가능하다. 추밀원은 헌법재판관 후보를 선출하고, 입법원이 제정한 총리선출안을 황제에게 주청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황제의 하위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정치기관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문서에서는 황제의 하위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정치기관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참의부가 타국의 상원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보기도 하지만 참의부는 공식적으로는 황제의 자문기관일뿐 의회나 그에 상응하는 기관이 아니다.


====금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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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외교==
===한만관계===
===한만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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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관계===
===만오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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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0일 (일) 13:12 기준 최신판

만주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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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满洲国 |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 | State of Manchuria
만주 국기 (개화).png
국기 국장
万民协和 王道乐土
ᠰᠠᡵᠣᠸᠠ ᠨᡳᠶᠠᠯᠮᠠ ᡳ ᡨᠠᡳᡶᡳᠨ ᡝᡥᡝ ᡥᡡᠸᠠᠩᡩᡳ ᡳ ᠵ᠊ᡠᡵ᠊ᡥ᠊ᠠᠨ[1]
만민협화 왕도낙토
국가 만주국 국가
국화 고량화
국목 적송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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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자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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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아시아

동아시아, 북동아시아
수도 창춘 특별시
북위 125.323544°, 동경 43.817072°
최대 도시
면적 818,204 km2
접경국 중국, 한국, 녹우크라이나, 몽골, 소련
기후 냉대 습윤 기후

냉대 겨울 건조 기후, 스텝 기후 (서부 일부)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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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6,548만 명
인구 밀도 명/km2
출산율 1.40명
기대수명 75세
민족 구성 화족 64.0%
여진족 29.6%
몽골족 3.2%
한민족 2.0%
기타 2.2%
공용어 중국어, 만주어[2]
공용 문자 한자 (번체)
종교 국교 티베트 불교
분포 불교 87%
기독교 5%
기타 4%
무종교 4%
군대 만주군
페토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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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체제 단일 국가, 지방자치제
성급행정구 15개 성, 4개 특별시[3]
현급행정구 52개 시, 70개 현, 22개 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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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현능정제), 문민통제, 군주주권, 의원내각제, 단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 (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7.47점 | 결함 있는 민주주의
황제
(국가원수)
영화제
국가
요인
수상 류궈중
부수상 한창푸 / 농림상 겸임
마싱뤼 / 수위체신상 겸임
입법원장 멍훙웨이
대법원장
집권 여당 틀:민주건국회 (개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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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 경제
GDP
(명목)
$9,600억 | 세계 20위
1인당 $13,430 | 세계 63위
무역 수입 $1조 2,257억 증가
수출 $1조 3,592억 증가
예산 세입 $2,752억 감소
세출 $2,931억 증가
외환보유액 $317억 감소
국가부채 $4,636억 증가 (GDP 대비 48.3% 증가)
신용 등급 무디스 B2
S&P BB-
Fitch B+
통화 공식 화폐 만주 량 (兩)
ISO 4217 MCL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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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영화 (榮華)[4]
도량형 SI 단위
통행 방향 우측 통행
시간대 GMT+09:00 (MST)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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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1985년
수교국 79개 국가
대한수교 1931년 10월 24일[5]
주한외교공관 주한만주대사관 (한성)
평양만주총영사관
동래만주총영사관
--제주출장소
심주만주총영사관
여옥만주총영사관
ccTLD
.mc[6]
국가 코드
409, MC, MCR
전화 코드
+83
위치
파일:만주 위치 지도1 (개화).png

지도를 불러오는 중...

개요

만주국(满洲国, State of Manchuria)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상징

국기

오색황기
五色黄芪 | ᠰᡠᠨᠵᠠ ᠪᠣᠴᠣ ᠰᡠᠸᠠᠶᠠᠨ ᡤᡡᠰᠠ
지위 만주국의 국기
채택일 1927년 9월 20일
설계자 정샤오쉬
근거법령 만주국 헌법
비율 2:3

오색황기는 만주국의 국기로, 만주국 헌법을 통해 그 지위를 보장받는다. 만주의 초대 수상이자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정샤오쉬가 직접 디자인했다.

만주의 상징색이자 황제의 통치를 의미하는 노란색이 깃발의 아래쪽 절반을 채우고 있다. 윗부분의 우측 2/3는 적색, 청색, 백색의 선이 가로 방향으로 똑같은 비율로 칠해져있는데 이는 각각 용기, 고결, 정의를 의미한다. 정사각형 모양의 좌측 1/3은 의지를 상징하는 검정으로 칠해져있으며, 그 안에는 만주의 국장이 그려져있다. 국기 전반적으로는 황제의 통치를 기반으로(황색) 국가의 고귀한 가치들(적·청·흑·백)이 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장

난화어문휘
兰花御纹徽
지위 만주국의 국장
채택일 1928년 3월 19일
설계자 차이윈성
근거법령 만주국 헌법

난화어문휘는 만주국의 국장이다. 만주의 국화인 고량화와 만주 황실 상징인 보춘화[7]를 합친 것이다. 건국 초기에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난화어문휘가 사용되었지만 1940년대에 들어 현재의 형태로 고정되었다.

국가

만주국 국가
滿洲國國歌 |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 ᡠᠴᡠᠨ[8]
National Anthem of Manchuria
지위 만주의 국가
채택일 1928년 3월 15일
작사자 정샤오쉬
작곡자 불명
근거법령 만주국 헌법

만주국 국가는 만주국의 국가로, 만주국 헌법에 의해 만주국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가사는 황제에 대한 칭송을 주 내용으로 한다. 가사는 만주국 국기와 마찬가지로 정샤오쉬가 지었으나 작곡가는 불명이다.

만주국 국가
[ 가사 펼치기 · 접기 ]
중국어 神光開宇宙 表裏山河壯皇猷
帝德之隆 巍巍蕩蕩莫與儔
永受天祐兮 萬壽無疆薄海謳
仰贊天業兮 輝煌日月侔
번역본 신의 빛이 우주를 비추고 황제의 다스림은 산하를 튼튼히 하네
높은 황제의 덕은 어떤것과도 견줄 수 없네
영원히 하늘의 인도를 받으며 만수무강하리라
하늘의 성스런 일을 해낸다면 그 영광은 해와 달과 같으리

국색

노랑
御黄 | ᠰᡠᠸᠠᠶᠠᠨ | Royal Yellow
선정 기관 만주국립문화협회
헥스 색상코드 #FFC600
10진 색상코드 (255,198,0)

공식적인 것은 아니나 국기, 국장 등에서 공통적으로 노랑이 사용된다. 만주국립문화협회에서는 노랑색(#FFC600)을 국색으로 선정했다.

역사

건국 과정

1911년, 중국 본토에서는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이 발생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중국의 전제군주제가 종말을 고하였다. 동시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 역시 만 2세의 나이로 폐위되었다. 하지만 새로이 건국된 중화민국은 온갖 정치세력 및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1915년에는 대총통 위안스카이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화제국을 선포하는 홍헌체제가 발생했고, 1917년에는 장쉰(장훈)이 푸이를 다시 황위에 앉혀 군주제를 복원하려는 장훈복벽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군벌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신해혁명의 아버지인 쑨원이 1925년 사망하면서 중국은 더욱 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국의 정국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신해혁명 이후로도 여전히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던 복벽파는 실망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충성을 바치던 청나라는 이미 사라졌고 군주제를 복원하려던 장쉰의 장훈복벽까지 실패하였다. 1924년에는 북경정변을 통해 베이징을 장악한 펑위샹이 핍궁사건을 일으켜 청나라 소조정의 푸이가 궁에서 내쫓기는 상황에서도 복벽파는 닭 쫓는 개 마냥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만 했다.

만주를 쥐락펴락하던 봉천군벌

한편 만주는 지역 군벌들의 연합체인 봉천군벌이 지배하고 있었다. 만주에서는 중국 본토의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혹은 만주 지역주의 감정으로, 혹은 그저 자신의 권력 확대를 위해 만주 지역의 자치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일종의 연방제 담론인 연성자치론(聯省自治論)을 지지하였다. 연성자치론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원하던 중국국민당, 그리고 본토에 거점을 가진 다수의 군벌들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만주 지역의 연성자치론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중화민국 중앙정부의 만주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고 이는 만주의 자치론자들이 더 넓은 반경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덕에 만주 문제에 더 깊게 개입할 수 있게 된 해외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었다. 갑신혁명을 통해 개화에 성공한 한국은 1차 극동전으로 대련(비사)와 간도를, 제2차 극동전으로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얻어낸 상태였으나 더욱 적극적으로 북쪽을 향해 진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만주 지역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력 약화를 원하던 한국 정부의 태도는 반중앙정부 성향의 만주 자치론자들의 입장과 맞아떨어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만주 자치를 지지하는 만주 지역의 여러 군벌과 단체를 후원하였고 피후원 세력들은 각자가 가진 입장에 따라 한국 정부에 협조하였다.

한국이 만주 자치론자들을 한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이용하려고 한 것과 별개로, 만주 자치론자들 사이에서는 만주의 자치 정도를 어느 정도로까지 확장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장징후이, 차이윈성 등의 급진파는 한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펼쳤고, 반대로 장쭤린과 마잔산 등은 중화민국 체제 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하는 것을 선호했다. 결국 두 세력은 분화하였고, 급진파는 만주에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전만연합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만주 독립군 기관총부대 (1927)

하지만 임시정부 내부에서도 단순히 자치권을 획득하겠다던 이들이 갑작스럽게 만주의 독립을 외치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청 황실의 복원과 입헌군주국의 수립을 통해 청나라의 계승국이라는 명분을 주장하는 안이 채택되었고 한국 정부 역시 이에 호응하였다. 이에 만주임정과 한국 정부는 베이징 궁궐에서 쫓겨나 톈진 한국공사관에 기거하던 푸이에게 만주에서 세워질 새 국가의 국가원수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푸의는 자신이 황제가 되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하였고 비밀 경호를 받으며 톈진의 한국 조계에서 빠져나와 만주 잉저우에 상륙했다. 한편 정샤오쉬 역시 만주에 도착해 한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전만연합임시정부 비서장에 취임했다.

만주 각지에서는 장징후이, 시치아, 장스이 등 독립파 군벌들이 중국 국민정부와의 단절과 만주의 독립을 외치며 일제히 봉기하였다. 한국군 역시 6개 사단을 만주에 파견하였고, 만주 전역에서 충성파 봉천군벌과 독립파 간의 교전이 벌어졌다. 이를 만주사변 혹은 만주건국전쟁이라 부른다. 장쭤린의 봉천군벌은 한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만주독립군을 저지할 수 없었고, 전쟁 발발 수 개월만에 만주 전역이 독립파의 수중에 떨어지며 사변은 독립파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9] 전만연합임시정부는 창춘에서 만주국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전간기의 번영

푸이(오른쪽)와 정샤오쉬

만주건국전쟁의 승리로 만주는 난징의 중국 국민정부의 손아귀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났으나 만주국의 정체(政體)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푸이정샤오쉬, 한국 정부는 군주정을 구상했으나 장징후이장스이 등의 만주 토착 군벌들은 입헌공화정을 선호했다. 심지어는 군주정파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는데, 푸이는 청 제국의 완전한 복원을 원했으나 한국 정부는 만주 지역의 독립된 군주국을 구상했다. 푸이는 제정이 아니라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한국 정부가 군벌들을 설득하면서 만주국은 입헌군주정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만주국 헌법이 제정되먄서 전만연합임시정부가 해체되고 만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초대 총리대신으로는 열성 복벽파인 정샤오쉬가 취임했다.

리튼 조사단

중국은 만주 건국에 격렬히 반발했다. 중국 국민정부의 요청으로 국제연맹은 리튼 조사단을 구성하여 만주건국전쟁의 실체와 만주국의 성격을 조사하는 임무를 주어 극동으로 파견하였다. 만주 정부는 조사단 입국 불허를 저울질했지만 한국 정부가 입국금지는 중국이 제기한 억측을 시인하는 꼴이라고 지적하여 없는 일이 되었다. 만주 정부는 그 대신 리튼 조사단이 방문하는 곳마다 각종 행사와 간담회를 개최해 만주국의 자주성을 보여주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노력은 실패하였고 리튼 조사단은 만주국의 자주성이 결여됐다는 내용의 리튼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리튼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만주는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초대 외무대신 셰제스는 건국선언 직후 17개 주요국 정부의 앞으로 수교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전보를 발송했지만 답신을 보내온 나라는 없었다. 이튿날에는 장춘에서 열린 건국기념연회에 각국 영사를 초청했지만 참석한 사람은 한국 영사 뿐이었다. 심지어는 만주가 믿고 있던 한국 정부마저 외교적 상황으로 인해 즉시 수교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타진했다.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한 만주는 불안해졌다. 비록 당장은 중국이 분열되어 있기에 만주를 칠 수 없지만 언젠가 중국이 통일된다면 확장의 첫 번째 목표가 만주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군은 리튼 보고서 제언대로 철수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만주 외교라인은 한국에 연락해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이 이를 수락하면서 한만의정서가 비밀 협약의 방식으로 체결됐다.

한편 건국선언문에서 만주국의 건국은 "전제정치가 아닌 왕도정치를 위한 것"이라 발언한 총리 정샤오쉬는 한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그가 꿈꾸던 왕도낙토를 건설 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추진하였다. 외교적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에서 국가를 보존하는 길은 내실을 키우는 것 밖에 없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초등교육 의무화가 시행되었으며 그가 직접 유교적 이상을 담아 만주국 국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또한 여진인과 만주인이라는 개념이 각각 인종적 개념과 국민적 개념으로 분리하여, 여진족이 아니더라도 만주 국민들이 스스로를 만주인이라고 여기게끔 하는 만주 내셔널리즘적 선전과 교육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창춘 시내 (1933)

한편 한국으로부터 유입된 자본을 바탕으로 각종 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 역시 진행되었다. 1929년에는 건국전쟁으로 파괴되었던 철도가 100% 복구되면서 만주의 철도 시스템이 완전히 정상화되었다. 1930년대 만주의 철도 총연장은 한국 국영기업인 한만의 주도 하에 4천 km나 증가했으며 수도 창춘을 중심으로 봉천, 하얼빈, 무단장, 지린 등 주요 도시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었다. 철도 시스템의 발달은 만주의 경제성장을 촉진했으며 만주를 한국 경제권에 통합시켜 더 큰 시장을 형성하였다. 또한 새 나라의 수도로 간택된 창춘은 한국에서 막대한 자본이 몰려오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인구 17만의 소도시였던 창춘은 머지않아 한성, 도쿄와 함께 서양식 건물이 즐비한 아시아 굴지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만주의 경제는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빠른 회복과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농업이 큰 폭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한국에서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덕이었다.[10] 한국으로부터 수입된 각종 농기계로 농업이 상당부분 기계화되었고, 만주에서 직접 생산된 비료는 식량 생산량을 극대화하였다. 이외에도 광업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1930년대 초 만주의 연간 석탄생산량은 200만 톤 이상이었다. 이중 대부분이 한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일부는 각지의 화력발전소에 공급되어 만주 대도시들이 밤을 불빛으로 수놓았다. 전간기 당시 농업과 광업은 만주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이 되었다. 이외에도 임업, 방직산업, 유통업, 금융업 등이 크게 발달하였다.

전간기의 위협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하자 만주 경제 역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각국의 관세장벽이 높아지며 국제무역이 극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여러 열강은 블록경제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영국과 프랑스 등 전통적 서구 열강이 식민지와의 블록경제를 형성한 반면 한국은 만주, 녹오와 블록경제를 형성하였다. 상당한 양의 자원과 자본, 기술이 한국 블록 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짐에 따라 만주와 그 동맹국들은 파국만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주인들의 불만이 거세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만주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실시했다. 우선 최말단 행정구역인 촌과 향의 장을 관선제에서 주민 직선제로 변경하였다. 비록 여전히 상급 행정구역장은 중앙정부에서 직접 임명하고 촌향장의 후보는 정부에서 사전에 검증받는 한계가 있었으나 주민들의 민심을 합법적으로 분출하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와 농민의 생계 걱정을 덜기 위한 각종 복지정책이 실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한적인 농지개혁의 실시와 기초적인 노동법의 도입이 있다. 정샤오쉬의 신유교주의에 기초한 이러한 개혁은 민심을 다독이는 데에 성공했고 만주는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훈련중인 만주군[11] (1938)

1936년 11월, 격무에 시달리던 정샤오쉬 총리가 사망하였다. 후임 총리대신으로는 초대 외교대신이자 당시 민정장관이었던 셰제스가 임명되었다. 순대 미보유의 적극 지지자였던 전임자 정샤오쉬와는 달리 셰제스는 만주가 소련의 위협에 맞서고 한국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군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셰제스 내각은 같은 재무장론자였던 한국의 안창호 내각의 지지를 받아 전반적인 재무장 계획을 수립하였고, 국제연맹의 감시를 피해 만주군 건설에 나섰다. 국제연맹 역시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만주의 군대 조직을 눈치챘지만 한국이 만주군의 조직이 소련 견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영국과 프랑스 등을 비밀리에 설득하면서 국제연맹 역시 만주군의 창설을 막지 못하였다.

만주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요인은 비단 외부로부터만 온 것은 아니었다. 만주 내부의 불온세력도 만주의 미래를 위협하였다. 여전히 많은 만주인들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몇몇은 각종 단체를 만들어 반정부 활동을 하였다. 이들 중 급진적인 일부는 반군이 되어 관공서와 각종 주요시설을 공격하거나 주요 인사와 한국인이 대한 암살을 시도하였다. 1934년에는 교통대신 딩잔수가 한족 민족주의자의 손에 암살되었다. 또한 사회주의자들 역시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암약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반정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에 만주국 정부는 불만세력 중 온건파는 회유하고 급진파는 탄압하는 양면전술로 대응하였다.[12] 이 전술은 꽤나 유효하여 만주는 정부가 위태로워질 만큼의 불만세력 준동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으나 이들을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 하였다.

2차 세계대전

냉전

현대

경제

산업 구조

무역

주요 기업

  • 한만 그룹 : 만주 최대 규모의 기업집단. 1928년 한국 정부가 신생 독립국인 만주의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국가 자본으로 설립한 기업집단이다. 현재도 한국 자본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식품, 철강, 유통, 교통, 금융 등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만주 냥

현용 은행권 4종
현용 주화 3종

만주의 화폐 단위는 (兩, liang, ᠯᡳᠠᠩ)이다. 어감이 귀엽다. 사극에서 나오는 전통적인 화폐 단위인 바로 그 "냥"이다. 만주중앙은행에서 냥화 표기 화폐를 전량 발행한다. 주화에는 10냥, 50냥, 100냥 이렇게 3종의 동전이 있으며, 은행권에는 500냥, 1,000냥, 5,00냥, 10,000냥 이렇게 4종의 지폐가 있다. 지폐 모델은 500냥부터 차례대로 빙지, 잉찬리, 사오홍, 정샤오쉬이다. 동전 모델은 10냥부터 차례로 난화어문휘, 차이윈성, 건륭제이다.

과거에는 냥의 하위 단위로 문과 전이 있었으나 지속적인 인플레로 인해 쓰이지 않는 단위가 되었고 각각 1987년과 1949년에 폐지되었다. 1문은 1/100냥, 전은 1/10,000냥에 해당했다.

경제위기론

정치

만주국의 기본 정치 정보
세계자유지수 79점 | 자유로움
언론자유지수 73.64점 | 결함 있음
민주주의지수 7.47점 | 결함 있는 민주주의

만주는 황제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 의원내각제를 국가의 체제로 채택하고 있다.  총리는 단원제 형식의 입법원에서 선출되며 황제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내각을 대표한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 지방행정구역에도 지방의회가 존재한다.

2023년 기준 민주주의 지수는 7.47점으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 등급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자유지수는 총합 79점 '자유로움' 등급으로, 정치적 권리는 40점 만점 중 31점, 시민적 권리는 60점 만점 중 48점을 기록했다.

헌법

이 헌법은 만민협화와 왕도낙토의 정신으로 국가를 보위하고 국위를 선양하며 국부를 제고하고 대동에 이바지함으로써 위로는 지고하오시고 존귀하오신 황제 폐하를 받들고 아래로는 근면하고 충성스러운 신민을 보살피기 위하여 강덕 원년(1927년) 모월 모일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각계각층의 대표가 모여 제정한다.[13]
만주국 헌법 전문

만주국 헌법(满洲国宪法)

만주국의 기본법. 만주의 모든 법률의 토대가 되는 법이다. 원래는 '만주국 조직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될 예정이었지만 중도에 변경되어 현재와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입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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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입법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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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협화당
3NN석
야당

신흥당
1NN석

실정원탁
NN석

만주신당
17석

인민역량
11석

몽민권익연합
2석

몽민권익연합
2석
무소속 3석
재적 600석
만주국 입법원 의사당

만주국 입법원(滿洲國立法院, State Legislative Board of Manchuria[14])은 만주의 헌법기관이자 입법부이다. 만주의 법률을 제정, 개정, 폐지하며, 총리대신 선출안을 참의부에 제출할 수 있다. 회기는 4년이지만 총리대신에 의해 조기해산될 때가 잦아 실질적인 회기는 그보다 짧다. 원장 1인과 부원장 2인으로 이루어진 원장단이 입법원 회의를 주재한다.

입법원은 총 500인의 입법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법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50명은 전국비례로, 150명은 광역비례로, 300명은 절대다수 소선거구제 지역구로 선출된다.

대법원

국무원

만주국 국무원
국가행정조직
1성 10부 [ 펼치기 · 접기 ]
민정성
금융청 소방청 통계청
문교부 외교부 군무부
우정청 출입국청 국방청 방위장비청
사법부 재정부 교통부
공안청 검찰청 해경청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소비청 수요청 운송청 개발청 관광청
환경부 제궁부 국민근로부 산업자원부
수산청 농업청 여유청 산림청 이번원 경사원 광저원 영저원 근로중앙청 노동청 특허청 상공청 에너지청
만주국 국무원 중앙청사

만주국 국무원(滿洲國國務院, State Administrative Board of Manchuria)은 만주의 헌법기관이자 행정부다. 총리대신의 직속 보좌기관 역할을 하는 민정성과 여타 10개 행정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조직도와 부서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한국과 일본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

내각

틀:만주국 국무원의 대신각의 구성 (개화)

만주국 국무원 대신각의는 만주국 국무원의 최고 정책결정조직이다. 주석과 부주석, 사무장, 일반위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총리대신이 주석을, 부총리대신이 부주석을, 민정대신이 사무장을 당연직으로 겸임한다. 일반위원은 국정대신과 흠차대신이 당연직으로 겸임하며, 최대 5인까지 총리가 위원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다. 현재 대신각의의 위원은 총 24인이다.[15]

상정된 안건의 가부결은 투표로 결정하며, 전체 위원의 과반수 참석에 참석 위원의 돠반수 찬성으로 안건을 가결시킬 수 있다. 가부 표 수가 동일할 경우 총리대신의 결정에 따라 가부결이 결정된다.

총리대신


만주국 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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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정샤오쉬 셰제스 차이윈성 롼전둬 자오신보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류멍징 뤼룽후안 롼전둬 저우바오중 푸제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저우바오중 바오구안청 장옌칭 양이천 한광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자오더쥔 뤼핑 천쥔성 한주빈 쉬친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푸지후안 팡웨이중 원스전 쉬친 왕훙원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뤼푸위안 왕랸정 왕진샨 두칭린 리쉐융
제31대 제32대
우다웨이 류궈중
제22대 만주국 내각총리대신 류궈중
총리대신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내각을 대표한다.
만주국 헌법 제64조 (제5장 행정부)
총리대신은 의안을 입법원에 제출하고, 국무 전반에 대하여 입법원에 보고하며, 행정 각부를 지휘·감독한다.
만주국 헌법 제65조 (제5장 행정부)

만주국 총리대신(Prime Minister of Manchuria, 滿洲國 總理大臣,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ᡳ ᡴ ᠵᡳᠩᡴᡳᠨᡳ ᡝᠵᡝᠨ [16])은 만주의 행정수반으로, 만주 황제의 명을 받아 만주국 국무원과 내각을 통솔한다. 총리대신은 입법원에서 입법의원 과반의 득표로 선출되어 제정된 선출안이 추밀원에서 추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황제에게 제청되어 황제에 의해 임명된다. 임기는 4년이며 횟수 제한 없이 중임이 가능하다.

초창기에는 황제한국 정부의 의사로 총리가 결정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입법원에 의해 총리가 선출되고 있다. 59년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총리 평균 재임기간이 2년 남짓할 정도로 총리가 자주 바뀌었지만 1997년에 59년 체제가 붕괴한 이후로는 조기총선의 횟수가 줄고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이 늘어나면서 총리가 덜 자주 바뀌고 체계가 안정화되어가고 있다.

현임 총리대신은 보수정당인 협화당 소속의 류궈중이다. 제32대 총리로, 2022년부터 재임중에 있다.

정당

틀:만주의 정당 (개화)

  • 협화당: 만주의 우익 보수정당이자 집권여당. 59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창당되었으며 현존하는 만주의 정당 중 역사가 가장 깊은 정당이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수주의 성향이며 황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전통적인 친한, 친극동 외교를 지지하지만 그 정도에는 계파별 온도차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주의 성향과 친기업, 친복지 성향이 혼재되어 있다. 현재 주석은 총리대신을 겸하고 있는 류궈중이다.
  • 신흥당: 만주의 리버럴 정당이자 최대 규모의 야당. 포퓰리즘과 사회자유주의 성향을 띤다고 평가받는다. 사회민주당, 민본당만주신당 탈당파가 창당했다. 잠시 집권에도 성공했으나 협화당에 밀려 실권했고 만성적으로 저조한 지지율과 수권 경험 부족, 빈약한 지역조직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실정원탁: 만주의 봉천 지역주의, 우익 자유주의 정당이자 제2야당. 지방 분권과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외교 면에서는 만주의 전통적 외교 노선인 친한 정책을 지지한다. 현재 침체기를 겪고 있는 제1야당인 신흥당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 만주신당: 온건 보수주의 중도우파 정당이자 제3야당. 59년 체제 종언의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쩌리 신세가 됐다. 중앙정계에서 같은 우파 야당인 실정원탁과 연대하고 있다.
  • 인민역량: 좌익 성향의 정당이자 제4야당. 한때 협화당과 1.5당제를 이루었던 만주농공당의 직접적인 후계정당이다. 지금은 만주신당과 마찬가지로 쩌리가 되었으나 여러 노조의 지지로 지역기반은 꽤 튼튼한 편이다.
  • 몽민권익연합: 몽골계 소수민족 정당. 몽골계 만주인의 권리를 옹호하며 몽골족의 이익을 지지한다면 그 어떤 정당과도 손을 잡는다. 주 활동무대는 몽골인들이 많이 사는 만주 서부 내몽골 지역이다.
  • 만주애국회: 극우 민족주의 정당. 강경한 민족주의와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띤다. 거의 모든 외부세력에 매우 적대적이며, 만주의 동맹국인 한국과의 협력에도 부정적이다. 2022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헌법재판부

헌법재판부는 만주국의 헌법에 따는 여러 업무를 맡는다. 총리대신과 대법관 등의 고위공직자 탄핵권, 위헌정당 해산권, 위한법률 심사권 등을 권한으로 가지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헌법재판부는 총 9인의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참의부의 제청에 따라 만주 황제가 임명한다.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5년이며 중임은 불가능하다.

황제


만주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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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강덕제 경천제 건주제 영화제
제4대 만주국 황제 아이신기오로 사인
만주국은 지고하오시고 존귀하오신 황제 폐하의 다스림을 받는 입헌군주국이다.[13]
만주국 헌법 제1조 1항 (제1장 총강)
1. 만주국 황제는 국가의 원수이자 모든 신민의 통치자이다.
2. 만주국 황제는 불가침이며 모독당하지 않는다.
3. 만주국 황제는 만주국 국군을 통수한다.

만주국 헌법 제8조 (제2장 황제)

황실

황궁

아만황궁

황제 직속 기관

참의부

만주국 참의부(滿州國參議府, ᠪᠣᠣ ᡤᡳᠰᡠᡵᡝᡵᡝ ᠶᠠᠮᡠᠨ[17] , Privy Council of Manchuria)은 만주 황제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명망있는 유력자와 원로 중 에 임명된다. 정원은 100명이며 전원 황제가 임명한다. 추밀원 의원의 임기는 10년이며 중임이 가능하다. 추밀원은 헌법재판관 후보를 선출하고, 입법원이 제정한 총리선출안을 황제에게 주청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황제의 하위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정치기관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참의부가 타국의 상원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보기도 하지만 참의부는 공식적으로는 황제의 자문기관일뿐 의회나 그에 상응하는 기관이 아니다.

금위대

군주제 폐지 운동

사회

민족 구성

  • 여진족: 여진족은 전통적으로 만주에서 살아오던 민족으로,만주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18세기까지는 만주에서 다수민족의 지위에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한족의 대규모 만주 이주로 다수 민족의 지위를 상실했다. 이후 신헤혁명으로 인한 여진족 박해와 만주국 건국을 거치며 중국 본토의 여진인들이 대구모로 만주로 이주했고 그 비율이 다시 증가했다. 대부분의 여진족은 한족에 동화되어 평상시엔 중국어와 한자를 사용한다.
  • 한족: 한족은 중국계 만주인으로, 만주 전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18세기까지는 요령 지방을 제외한 만주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족은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나 19세기 들어서 한족의 만주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다수의 한족이 만주로 이주하였다. 이에 따라 한족은 토착민족인 여진족을 제치고 만주에서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 몽골족: 만주에서 세 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약 3.2%를 차지한다. 몽골인의 대부분이 만주 서부 내몽골 지방에서 거주한다. 몽골인의 평균 소득은 만주인 전체 평균보다 상당히 낮은데, 이는 몽골인이 주로 거주하는 서부 지역이 비교적 덜 발전된 저개발지역이고 다수의 몽골인이 육체노동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 한민족: 만주에서 네 번째로 많은 민족. 이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주로 이주하였다. 주로 창춘이나 묵던 등 남부 대도시에 거주한다. 만주 인구의 고작 2% 남짓을 차지하지만 풍부한 자본과 본국의 지원 덕에 만주 경제의 약 20%를 통제하는 부유층이다.
  • 기타: 슬라브인, 튀르크인, 유대인 등이 소수민족으로 있으나 소수에 불과하다.

만주인과 여진인의 차이

만주 건국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주인과 여진인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있었다. 비록 만주인의 사용빈도가 훨씬 높긴 하였지만 둘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일치하였다.

그 두 단어의 의미가 차이나기 시작한 것은 만주국 건국 이후였다. 만주인이라고 하먄 인종적 민족으로서의 만주인지 아니면 국가 만주의 일원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의 도입이 필요했다. 이에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정사오쉬는 만주인은 만주국의 국민이라는 의미로 두고 반쯤 사어(死語)가 된 여진을 부활시켜 인종적 민족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했다.

정리하자면 만주국 내에서는 만주인이 여진인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만주국 국민은 만주인이지만 모두가 여진인인 것은 아니다. 다 자세한 내용은 정샤오쉬 문서 참고.

교육

치안

기념일

문화

언어

요리

음악

영화

스포츠

군사

환경

춥다. 특히 겨울엔 더럽게 춥다.

겁나 춥다!!

외교

한만관계

만오관계

틀:만오관계 (개화)

만중관계

만소관계

각주

  1. 발음 : 사러파 니얄마 이 타이핀 어허 후왕디 이 주르한.
    번역 : 만민의 평화와 황제의 도리
  2. 중국어는 일상생활에서, 만주어는 국가의식에서 주로 사용된다.
  3. 하르빈, 창춘, 치치하르, 지린
  4. 서력기원과 독자연호를 모두 사용한다. 공문서에는 둘 다 쓰인다.
  5. 만주를 자국령이라 보던 중화민국의 눈치를 보다가 늦게 수교했다.
  6. mc인 모나코는 mn을, mn인 몽골은 mg를 쓴다
  7. 강덕제가 좋아하여 황싱 상징으로 선정되었다.
  8. 발음 : 만주 구룬 우쿤
  9. 장쭤린은 열차를 타고 퇴각하던 중 황고둔이라는 곳에서 열차 폭발로 사망했다.
  10. 한국 정부는 대공황으로 인한 불만을 달래기 위해 식량가를 가능한 낮게 유지하려고 하였고, 이를 위해 만주 농업에 투자해 싼 값에 식량을 수입했다.
  11. 대전차포 사격을 훈련중이다.
  12. 예를 들어 전후에 총리가 되는 저우바오중은 당시 온건파와 급진파의 중간에 위치해있어 정부로부터 회유와 수감을 반복당했다.
  13. 13.0 13.1 헌법의 나머지 부분과는 달리, 헌법 전문과 1장 총강에서는 황제에 대해 극존칭을 사용한다.
  14. 외신은 비공식 명칭인 Manchurian Parliament 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15. 주석 + 부주석 + 사무장 + 일반위원 21인(국정대신 11인 + 흠차대신 8인 + 기타 2인)
  16. 발음 : 만주 구룬 이 진키니 어전 (manju gurun i jinkini ejen)
  17. 발음 : 보오 기수러러 야문 (boo gisurere ya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