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개혁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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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공산주의 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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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동맹 진영 ]
주요 사건
2차 대전 후
(1945~1947)
제2차 국공내전(1945~1949) · 철의 장막(1945) · 라미공동위원회(1945~1949) · 슈트라서 독트린(1946, 냉전의 시작) · 유대인 강제이주 정책(쇼아, 1946~1949)
제1차 냉전
(1948~1969)
1948년 프랑스 혁명 · 팔레스타인 독립전쟁(1948) · 미텔 오이로파(1949~1955) · 티토-괴벨스 결렬(1949) · 그리스 내전(1950~1953) · 52년 체제(1952~1994) · 일본 위기(1954) · 베트남 전쟁(1955~1975) · 매카시즘(1955~1958) · 런던 혁명(1956) · 1956년 만주-몽골 위기 · 미중결렬(1956) · 베글라이터 쇼크(1957) · 우주 경쟁(1957~1975) · 쿠바 혁명(1958) · 쿠바 미사일 위기(1962) · W. 애버럴 해리먼 대통령 암살 사건(1963) · 문화대혁명(1968) · 베이핑의 봄(1968) · 에르하르트-호자 결렬(1968)
데탕트
(1970~1979)
닉슨 독트린(1969~1980) · 키싱거-웨이다오밍 회담(1971) · 프람-장제스 회담(1972) · 간디-닉슨 회담(1974) · 프람-닉슨 회담(1972) · 비아프라 전쟁(1973) · 칠레 혁명(1973) · 동벵골 독립전쟁(1973) · 프람-차우셰스쿠 결렬(1975) · 베트남 통일(1975) · 앙골라 내전(1975~2002) · 이란 혁명(1979) · 산디니스타 혁명(1979) · 그레나다 혁명(1979) · 로디지아 혁명(1979) ·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암살 사건(1980)
제2차 냉전
(1980~1986)
위구르 독립전쟁(1979~1989) · 미국-과테말라 전쟁(1980~1987) · 호네커 독트린(1980~1988) ·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암살 사건(1981) · 남아메리카 연쇄혁명(1982~1991) · 포클랜드 전쟁(1983) · 스리랑카 내전(1983~2006) · 블루스타 작전(1983) · 인디라 간디 대통령 암살 사건(1984) · 이 장벽을 허무시오(1985) · 흑묘백묘론(1986) · 이란-콘트라 사건(1986) ·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탄핵(1986~1987)
냉전의 종식
(1987~1991)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1986) · 부시 개혁(1986~1993) · 1989년 루마니아 쿠데타 · 서구권 혁명(1989) · 베이핑 항쟁(1989) · 영국 해체(1991, 냉전의 종식)
탈냉전 (1991~2008)
국제 기구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 OdNA

베를린 조약 기구
BVO | PdB
코민테른
군사 대결 구도
붉은 군대 vs 미군

개요

이 나라는 자유를 얻었으며,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점에서 해방되었다. 그것이 내가 이룬 모든 업적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 1993년 1월 19일 퇴임사에서

Bush reform (영어)

냉전 종식기, 미국조지 부시 대통령이 추구한 시장사회주의 정치경제 개혁 정책을 의미한다. 공식적으로는 1986년 부시 대통령의 취임부터 시작하여 1993년 그가 퇴임할때까지 진행되었으나, 1993년 부시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로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그 정책이 상당부분 계승되었다.

배경

미국의 심각한 불황

미국은 1946년부터 1991년까지 냉전의 한 축으로서 또다른 축인 라트 연방에 뒤지지 않는 부강한 경제강국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여러 이유로 쇠퇴하게 된다. 우선 외부적 요인을 보자면 1964년부터 1975년까지의 베트남 전쟁, 1980년부터 1987년까지의 미국-과테말라 전쟁으로 막대한 예산이 소모되었으며 전쟁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막대한 달러화 발행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결로 이어져 미국의 전후 경제적 패권을 상실하도록 했다. 더구나 두 전쟁 모두 공산주의 성향의 적군이 승리하며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타격을 입었다. 또 1980년대 니카라과, 과테말라,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친미 군부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는 남아메리카 연쇄혁명이 일어나며 미국은 지정학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1973년 이라크-시리아 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과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제2차 석유파동으로 미국의 경제는 소생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제1세계는 사회주의 경제 특유의 효율성에 입각하여 바쿠의 유전과 1979년 혁명으로 국유화된 페르시아의 유전을 통하여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경제계획을 수정하여 갑작스러운 유가 폭등을 저지할 수 있었다. 반면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던 미국과 서구권 국가는 급작스러운 유가 상승과 이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생산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임금이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에 놓였다.

강경파 레이건의 퇴진

1980년 전임 대통령의 사망으로 급작스래 대통령 직위를 승계받은 로널드 레이건은 시장자유주의와 반공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신봉자로, 케인스적 경제 정책을 주문했던 전임자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적 자유를 추구했다. 그러나 무한한 경쟁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특히 제조업이 몰락하며 미국은 제1세계에 공업면에서도 밀리는 결과를 맞이했다. 실업률의 폭등, 인종 갈등,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필수 복지 사업 예산이 삭감되며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었다.

이런 와중에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과테말라니카라과의 공산주의 정권을 퇴진시키기 위해 반공 정권에 불법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이 자금을 국제적 마약밀매와 적성국 페르시아로의 무기 수출로 확보했다는 이란-콘트라 사건이 터졌다. 민주당은 이를 이유로 레이건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후임자 조지 부시는 상대적으로 온건파에 속했기 때문에, 레이건의 정책을 상당부분 수정할 의향을 갖고 있었다.

서구권 혁명

1980년대 내내 남미에서 발생한 연쇄혁명과 1989년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서구권 혁명은 미국이 사회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더욱 촉진했다. 1986년 중간선거에서 미국 공산당미국 사회당의 연합이 처음으로 하원에서 50석 이상의 의석과 연방 상원의원 의석[1]을 확보하면서 주류 정치권의 불안은 커져갔다.

CIA 국장 출신으로 대공 방첩 업무에 능숙했던 부시는 덩샤오핑의 경제개혁 정책을 본따, 정치경제적으로 숨통을 틔워주고 냉전의 경직을 푸는 것만이 미국 노동자계급을 달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용

정치적 개혁

경제적 개혁

평가

긍정적 평가

(발자크의 위대함은) 귀족이자 왕당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몰락을 예견하면서 근대 시민 사회의 도래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인 점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부정적 평가

완전한 공유가 없는 부분적 국유화는 CIA식 관료주의에 불과하다. 인민은 부시가 그의 정체성까지도 개혁하기를 원하고 있다.
톰 헤이든 상원의원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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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린든 라로슈(일리노이, 미국 공산당), 버니 샌더스(버몬트, 미국 사회당), 톰 헤이든(캘리포니아, 미국 사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