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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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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총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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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연합 정상회의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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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제15·16대 총통 왕양 汪洋 | Wang Yang | |
출생 | 1955년 3월 12일 |
중화인민공화국 안후이성 추저우시 (중화민국 안후이성 추저우시) | |
국적 | 중화민국 |
직업 | 정치인 |
임기 | 중화민국 경제부장 |
2006년 6월 11일 ~ 2008년 1월 30일 | |
톈진직할시 시장 | |
2008년 4월 13일 ~ 2012년 4월 12일 | |
중화민국 총통 | |
2018년 4월 13일 ~ | |
아태연합 정상회의 의장 | |
2021년 7월 8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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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중화민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실용적 사회자유주의자로, 현재 중화민국 제15·16대 총통에 재임하고다.
생애
정계 입문 이전
1955년, 당시 중공령이었던 안후이성 추저우시에서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했던지라 고등학교를 못 다니고 식료품 공장에서 있을 하였으나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난징 과기대 경영대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했다. 졸업한 후에는 경제 관련 연구소들에서 근무하다가 1996년에는 41세의 나이로 동중국의 국책연구소인 중앙경제연구실 부주임이 되었다. 이 시기, 해외의 경제연구소 관계자들과 활발히 교류하였고, 당시 한국 정부 직속 경제수습위원회 위원이었던 유승민과 친분을 쌓았다. 왕양은 꾸준히 경제위기를 경고해왔는데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1997년 경제위기가 터지자 그동안의 인터뷰들이 발굴되면서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2000년, 중국 신민주당에 영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신민주당 정치인
2000년, 왕양은 신민주당 소속 입법원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4년에는 톈진을 지역구로 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입법의원 사퇴 후 후진타오 정부의 네 번째 경제부장에 임명됐고 2008년 지방선거에서 톈진직할시 시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경제부장직을 내려놓았다. 지선에서 왕양은 47%의 득표율로 국민당 후보를 꺾고 톈진직할시 시장에 당선되었다. 왕양은 기울어가던 톈진의 조선업을 소생시켰고 도시 재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를 토대로 왕양은 대권에 도전하였다. 신민주당 내에서의 경선에서 신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왕양의 상대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총통 리커창이었다. 선거 결과, 리커창에게 득표율 1.7% 차이로 패배했다.
왕양은 재기를 시도하며 입법원 의원에 당선된 후 신민주당 주석에 도전했고, 전당대회에서 당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왕양은 신민주당 주석으로 재임하며 당내 기반을 다졌고, 2018년, 또다시 대권에 도전하였다. 당내 경선에서 또다시 승리한 왕양은 중국국민당 후보 왕치산을 5% 득표율 차이로 따돌리고 마침내 총통에 당선되었다.
중화민국 총통
총통이 된 왕양은 정권 초기 부장(장관)들의 각종 비리로 고생하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왕양 정부의 방역 정책은 호평을 받았고 지지율이 크게 반등했다. 2021년에는 아태연합 정상회의 의장에 추대되었다. 왕양 정부는 서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코로나 사태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단행하였고 경제가 어느 정도 살아나는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예측과는 달리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인프라 투자 사업의 약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누적된 방역 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가중되었다. 이에 따라 차기 대선에서 낙선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였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왕양은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비판하며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서중국과의 관계 회복 노력을 소극적 태도로 전환하여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했고, 신승을 거두어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성공 직후 미국의 티모시 케인 대통령, 한국의 유승민 총통, 일본의 고노 다로 수상, 아무르의 게오르게 레이 총통 등과 전화회담을 했다. 유승민과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비판하는 공동선언을 하였고 러시아 선박의 동중국 항구 입항을 제한하는 등의 대러 제재를 강화하였다. 또 우크라이나에 약 2억 달러 어치의 물자를 지원할 것을 지시했다.
경제정책
사회정책
2022년 6월 경에 들어서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4주 연속으로 5만 명 미만으로 내려가자 국가방역위원회와의 회의 후 거리두기를 해제하고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외교·국방 정책
여담
- 대한민국의 유승민 총통과 친분이 있다. 1997년 경제위기 당시 양국 간의 통화 스와프 체결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처음 만난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있다고.
-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중앙일보 기자의 질문에 공자, 쑨원, 제레미 벤담, 그리고 김대중이라고 답했다.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0 - | 정계 입문, 입당 |
선거 이력
선거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락 | 비고 |
---|---|---|---|---|---|
2000 총선 | 전국구 (6번) | n표 (37.4%) | 당선 | 초선 | |
2004 총선 | 톈진 3선거구 | n표 (46.2%) | 당선 | 재선 | |
2008 지선 | 톈진직할시 | n표 (37.4%) | 당선 | 초선 | |
2014 대선 | 중화민국 | n표 (45.1%) | 낙선 (2위) | ||
2016 총선 | 톈진 3선거구 | n표 (52.6%) | 당선 | 3선 | |
2018 대선 | 중화민국 | n표 (50.8%) | 당선 | 초선 | |
2022 대선 | 중화민국 | n표 (47.7%) | 당선 | 재선 |
- ↑ 남부전구 육군 제12군단 제37보병사단 388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