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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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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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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0대 대한공화국 내각수상 이승만 李承晩 | Syngman Rhee | |
출생 | 1875년 3월 26일 |
황해도 평산도호부 마산방 삼리 능안골 (現 황해북도 봉천군) | |
사망 | 1982년 4월 17일 (향년 107세)[1] |
황해북도 사리원시 국립사리원대학병원 | |
묘소 | 경성광역시 동작구 국립경성현충원 |
재임기간 | 제13대 내각총리대신 |
1923년 8월 10일 ~ 1924년 6월 19일 | |
제18대 내각수상 | |
1933년 8월 30일 ~ 1937년 11월 24일 | |
제20대 내각수상 | |
1938년 8월 2일 ~ 1940년 6월 22일 | |
서명 | |
링크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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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군이라고? 어림도 없다! 암! 암! 경성 함락 3일 전, 비상대책회의에서 |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경성은 안전합니다. 총리로서 남긴 최후의 연설에서. |
대한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제13, 18, 20대 총리를 지냈다.
상세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이미 대한제국 시절 때부터 촉망받고 있었으며 1930년대 대한제국의 공화국 전환에서 큰 역할을 해 제1공화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0년 남짓 유지된 1공화국에서, 무려 6년간 총리를 맡았다는 점에서 그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혼자 신의주로 도주하는 실책을 저질렀으며, 광복 이후에는 일민구락부를 창립하여 정치적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현재 그의 평가는 매우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자유대한정부에서 한국의 외교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는 점이 부분적으로 재평가받고 있긴 하다. 또 우리공화당 등 일부 정치세력은 그의 명예를 복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애
촉망받던 젊은 지식인
귀국과 국회의원 당선
제13대 내각총리대신 시절
공화국의 설립을 이끌다
제18, 20대 내각수상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2차대전 이후의 정치 활동
사망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현재까지도 이승만 전 총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공화당 등 소수의 극우 세력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국민을 버리고 도망친 무능한 총리로만 인식한다. 실제 2015년 KBS의 여론조사에서 대한공화국 최악의 인물로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런 류의 조사에서 1위는 1차 대전을 무리하게 일으켜 대한제국을 파멸에 이르게 한 이완용 전 총리가 확정으로 먹고 들어가며, 2위와 3위 자리를 각각 대책 없는 극우와 극좌의 대명사인 이승만과 박헌영이 겨룬다.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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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당 | 1911 - 1914 | 정계입문 |
무소속 | 1914 - 1920 | 노선 차이로 탈당 |
대한민주당 | 1920 - 1923 | 창당 |
대한국민당 | 1923 - 1934 | 당명 변경 |
1934 - 1940 | 신설 창당 | |
무소속 | 1940 - 1948 | 김창암에 의해 제명 |
1948 - 1955 | 창당 | |
1955 - 1961 | 흡수합당 | |
무소속 | 1961 - 1982 | 박정희에 의해 제명 정계 은퇴 |
선거이력
여담
- 김창암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이 2차 대전 당시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도주한 사건이 일어나자, 김창암은 격노해 이승만을 총리 자리에서 해임하고 조소앙을 새 총리로 임명했고 둘의 관계는 틀어졌다. 한참 뒤인 1953년, 김창암의 건강이 악화되자 이승만이 문병을 오며 둘의 관계는 겨우 회복되었으며, 김창암은 자유대한 망명정부에서 이승만이 외교적으로 노력한 점들을 인정하고 어느정도 용서하였다고 전해진다.
- 안창호와는 사이가 매우 나빴으며, 그 외에 박은식, 박헌영, 신채호 등과도 사이가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