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회합회 (개신)

현재 레이와 개신은 2031년 8월 31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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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삼회합회
(さん) (かい) (ごう) (かい)

주도세력 열풍회 (구)
평화헌법연구회
트레센 향우회
이유 개신당내 권력질서 개편에 따른 좌파의 단결
결과 열풍회 (신) 으로 흡수합병
대표자 열풍회 회장 미야미즈 미츠하
평화헌법연구회 회장 니시미야 쇼코
트레센 향우회 회장 키타산 블랙

개요

첫째, 열풍회평화헌법연구회 그리고 트레센 향우회열풍회로 흡수합병한다.
둘, 합병됨에 따라 각 계파의 구성원은 열풍회에 참여한다.
셋, 모든 의원들은 새로운 계파에 참여한다.
넷, 모든 정책 및 의사결정에 있어 모든 의견에 경청하는 범진보 계파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다섯, 민주주의의 역량의 총 단합을 위하여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당과 단체 개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동참을 호소한다. 그러나, 새로운 계파에 참여하지 않는 어떠한 개인, 정파나 단체라도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
まず、熱風会平和憲法研究会トレセン香友会熱風会に吸収合併する。
二、合併すると、各派閥のメンバーは熱風会に参加します。
三、すべての議員は新しい派閥に参加します。
四、すべての政策および意思決定において、すべての意見に耳を傾ける汎進歩の派閥になるようにする。
五、民主主義の能力の総団結のために私たちと意志を共にするすべての政党と団体個人に文豪を開放し、参加を呼びかける。しかし、新しい派閥に参加しないいかなる個人、政派や団体でも議会民主主義を信奉する限り、対話と妥協で政治発展のため緊密に協力する

삼회합회( (さん) (かい) (ごう) (かい))는 개신당 내의 진보파벌인 열풍회평화헌법연구회, 그리고 이미 해산되었으나 남아있던 트레센향우회가 연합하여 열풍회로 계파를 합병한 사건이다.

배경

2020년 개신당의 창당 이후 개신당 내 계파는 무수히 많은 계파들이 생겨나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후 내부적인 통폐합이 이루어지며 좌우와 중도와 극단을 나누어 15개 남짓하게 남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2022년이 우익이 득세하는 분위기가 되고, 23년과 24년부터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레이와 정책연구회와 그 정책연구회의 분신이면서도 전국적인 계파인 개신퍼스트회의 등장, 바다를 보는 모임의 득세, 신잔의 죽음, 아카 쿠레나이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진보계파 열풍회의 해산과 나구모 시노부의 몰락과 스파르타쿠스의 모임의 등장, SOS단의 수장 스즈미야 하루히가 확실한 대권주자가 되고 마도카가 여성천황이 되는 등 온갖 정치적인 사건사고와 변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점점 규합하는 개신당내 우익들에 비해 분열된 개신당내 좌파들은 그 위치가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1]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다가오는 제2차 개신당 전당대회열풍회에겐 큰 부담이었다. 따라서, 좌익계열의 계파들이 연합하여 강한 세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점점 퍼지고 있었고, 아케미 호무라가 천황의 황후가 되고 프린츠 오이겐이나 블라디레나 밀리제와 같은 우익정치인들이 득세할수록 점점 위기감은 고조되었다, 따라서 전당대회에서 대반격을 위해 원래 정책노선이 비슷했던 열풍회평화헌법연구회가 처음 중진들이 모여 처음 논의를 시작하였고, 논의가 진행되던 도중 트레센의 해산 이후 남은 진보성향의 의원모임인 트레센 향우회가 참여하며 3회 합회의 틀이 갖추어졌고, 2023년 7월경 세 계파의 중진들이 연합회의를 개최하며 대외적으로 삼회합회가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서, 혁신진영 3개 계파중 나머지 계파인 패트레이버의 모임(현재의 스파르타쿠스)나구모 시노부가 거절하면서 합회 대열에서 이탈하였고, 적녹회는 당시까지 존재하였으나 아카 쿠레나이가 합회 거절의사를 밝혔다. 이후 2024년은 대격변이 있었다. 적녹회가 갑자기 붕괴하고 개신퍼스트회가 창설되고, 나구모 시노부가 대외에서 물러나고 스에히로 아나스타샤와 같은 신규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네르프의 붕괴론이 점점 더 제기되어오고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2024년 마도카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한것이다. 이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개신당에선 천황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고, 혁신 진영에서는 통일된 입장으로는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우익에서 입장이 명확하여 분열된것과 달리 좌익은 이미 분열된 상태에서 천황제를 얼마나 동조하고 인정하는지가 서로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입장이 충돌하며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민적인 신뢰가 점점 우익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3개 계파는 합회를 결정하고선 어떻게 합회할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였고, 1년에 가까운 논의는 제2차 개신당 전당대회의 성적을 저조하게 만들었으나, 결국 열풍회의 흡수합당이 결정되며 범진보적 계파 설립이 성사되었다.

전개

모든 논의는 2022년 후반기에 거슬러 올라간다. 개신당의 창설 이후 초반에 조금 더 우세하던 좌파 개신당 세력(이하 좌익블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우파 개신당 세력(이하 우익블록)에 열세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이는 여러 사건이 있었으나, 일단 당대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었던 총리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나 22년 정국에서 주요인물인 블라디레나 밀리제, 그리고 아케미 호무라 당시 법무대신인 사토 일레이나, 그리고 어떤 일상의 연구회미사카 미코토[2],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유우키 아스나[3]와 같은 중진들이 다수인데 반해 좌익 개신당엔 열풍회엔 호시코시 지로, 조금 인지도가 떨어지는 니시미야 쇼코적녹회의 수장이던 아카 쿠레나이. 그리고 안티가 많은 패트레이버의 모임나구모 시노부가 좌익블록의 대표주자들이었다.

하지만 제1차 소류 개조내각에 들어서자 상황은 달라진다. 개신당 자체의 세력은 분명히 강화되었으나 우익블록이 내각의 과반을 차지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열풍회레이와 정책연구회, 그리고 어떤 일상의 연구회와 내각과 상임위원회 분배에서 갈등을 보이며 좌익이 다소 뒤쳐지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비록 좌익세력이 개신당 자체의 설립에 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이는 당시까지는 비약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2023년 정국에 들어선 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보수에게 있어서 큰 사건으로 여겨질만한 것은 미사카 미코토미사카 미코토 성상납 사건으로 징계를 받는 등 도덕적 해이로 인한 개신당 보수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곧바로 같은 보수파벌인 레이와 정책연구회네르프와 같은 보수파벌이 스스로 쇄신을 말하며 미사카 미코토를 담궈버리는 바람에 분위기 환기에 성공시켜 노를 젓지 못하였다.

또한 사토 일레이나오사카도의 도지사로 간것 또한 보수에겐 여러 변수중 하나로 작용했다. 더불어 유우키 아스나성매매 논란까지 터지며 전체적으로 보수에게 좋은 뉴스는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온건보수와 달리 극우는 성장하였다. 바다를 보는 모임블라디레나 밀리제가 보수세력에서 부상하고, 날이 갈수록 샤프트아케미 호무라카나메 마도카의 인지도는 오르고 있었다.

물론 2023년엔 온건좌익에겐 별 뉴스가 없었으나 좌익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나구모 시노부의 사건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다. 당시 극좌는 몰락 직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몰리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극우의 성장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몇몇 인물들이 있었고, 평화헌법연구회열풍회는 한배를 탄다는 정치적 동맹을 사실상 맺게 되었다. 이는 현재의 합병에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2024년에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일상의 연구회 붕괴

미사카 미코토를 중심으로 있던 거대계파 어떤 일상의 연구회미사카 미코토 성상납 사건으로 붕괴하고 후신으로 일본 청춘단이 등장하는 일이 있었다. 트레센처럼 한순간에 공중분해되기보단 2022년에 미사카 미코토가 실각되고 2024년까지 천천히 하락세를 걷다가 결국 2024년 인력 유출과 하락세를 견디지 못하고 해산하게 된 것이다.

미사카 미코토가 당시 당내에서 2인자로 불리며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것에 비해 순식간에 침몰하듯 무너지자 계파는 점점 부서져갔고, 이로서 온건보수와 보수본류파의 입지가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신잔의 갑작스런 사망

2024년, 7월에 마츠카제 신잔의 부고가 있었다. 좌익의 거두로서 개신당내 페미니즘과 정치원로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 한순간에 가버리자, 트레센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트레센은 이후 우익과 좌익으로 갈라졋고, 계파 내 중진들중 사일런스 스즈카를 필두로 아그네스 타키온, 멘하탄 카페가 우익계파로 이적하였고, 키타산 블랙과 그녀를 따르는 몇 인물만이 신잔의 유지를 이어 좌익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때 지금의 트레센 향우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로서 거대계파중 하나였던 트레센이 붕괴하자 정치구조에 다시 한번 큰 변화가 찾아왔고, 트레센에서 유출된 인원중 상당수가 우익블록에 가담하며 점점 저울추는 기울어지고 있었다.

소류 개조내각에서 우파 개신당의 과반 입각

제1차 소류 내각은 보수진영 13명, 진보진영 11명으로 거의 엇비슷하게 내각에 참여하고 있었다.[4]하지만 개조내각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보수 19명과 진보 12명으로 격차가 매우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된것은 특명담당대신직이 늘어간 것도 있지만 보수가 진보를 행정부에서 앞질르게 되었다는것에서 큰 사건이었다.

상임위원회나 개신당 당직자는 진보인사와 보수인사가 꽤 균등하게 분배된 편이었고, 제1차 소류내각까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각에서 저울추가 기울어지자 점점 진보세력에게 있어서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보수에게 밀린다는 주장이 비약이 아니라 진실이 되어버린 첫번째 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사토 일레이나의 오사카도지사 출마

호리코시 지로사토 일레이나오사카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에 책임을 져야 한다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법무대신이란 중책을 맡고있었던 사토 일레이나를 중앙정계에서 끌어내기 위한 수 였다.

사토 일레이나는 이에 응수하였고, 곧 의원직을 사임하고 오사카도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지로의 계획대로면 낙선하는거였고, 실제로 당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토 일레이나가 선거에 당선되면서 오히려 그쪽에 거점을 마련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적녹회 붕괴

멀쩡하게 있던 혁신계열 계파인 적녹회가 2025년 결국 붕괴하게 되었다. 그 이유로는 아카 쿠레나이의 탈주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 쿠레나이는 일방적으로 계파를 해산하고선 당을 탈퇴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이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으로 떠난 아카 쿠레나이를 추적했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적녹회에선 중진들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2025년 계파는 사멸하였다.

호리코시 지로의 도쿄도지사 출마

호리코시 지로는 책임론으로 사토 일레이나의 주장에 도쿄도지사에 출마하였고, 열풍회의 당권을 미야미즈 미츠하에게 넘기고선 출마하였다.

이는 호리코시 지로가 중앙정계에서 물러나면서도,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선

우파의 수적우위

카나메 마도카천황 즉위

제2회 개신당 전당대회

결과

결과적으로, 삼회합회로 참의원 18석, 중의원 56석의 명백한 대형파벌로 진화하는데 성공하였고, 좌파의 맹주로서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상대적 수적 열세에서 단결된 힘으로 사실상의 우위를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확실히 키보토스를 제외하곤 혁신파 모두를 흡수한 것이 되었다.[5] 또한 지역적 기반인 도카이 이외의 전국적인 계파가 된 것 또한 큰 발전이다.

다만, 세개의 계파가 합쳐진만큼 계파 내 정치는 당분간 매우 혼란스럽다. 합의에 따라서 계파의 회장은 미야미즈 미츠하 총무대신이 맡게 되었으나, 기존의 니시미야 쇼코키타산 블랙같은 주역들, 그리고 기존의 중진인 유키노 유카리부겐빌리아 바이올렛과 같은 인물들 또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새로운 열풍회 회칙 제정에 있어서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다.

평가

  1. 정확히는 혁신계열의 계파들.
  2. 당시까지 미사카 미코토는 당내 2인자로 여겨질정도로 중대한 인물이었다.
  3. 처음에 이미지가 좋았다. 하지만 미사카 미코토처럼 성에 관련한 도덕적 해이로 이미지가 나락을 찍었다.
  4. 정치성향이 보수, 진보로 딱 나눠지지 않는 인물들을 제외하면 약 보수 9~10명과 진보 7~8명 정도이다.
  5. 스파르타쿠스의 모임시뮬라크르 연구소는 혁명파로 구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