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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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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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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Zweiter Weltkrieg World War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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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 | |
장소 | 남극을 제외한 전세계 | |
원인 | 제1차 벨트크리그 패배에 대한 복수심을 비롯한 국수주의와 생디칼리즘 | |
결과 |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국의 승리 제3 인터내셔널, 모스크바 협정의 패망 | |
영향 | 초강대국 미국의 등장과 독일의 패권 유지, 칼터크리그 체제 수립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국의 세계 양분 탈식민주의의 대두 UN 창설 핵무기의 등장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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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약 4000만명 이상 | 약 7000만명 이상 | |
피해규모 | ||
연합군 사망자 1600만명 민간인 사망자 3100만명 이상 |
추축군 사망자 2100만명 민간인 사망자 1200만명 사망 | |
지휘관 |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프랑스 코뮌이 독일제국에게 엘자스-로트링겐 반환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발송하며 시작됐다. 제3 인터내셔널과 모스크바 협정을 필두로한 추축국과 이에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군을 필두로한 연합국이 맞서면서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다.
1차 벨트크리그 이후 20년 만에 두번째로 일어난 세계대전으로,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자 최악의 전쟁으로 손꼽힌다.
서론
Paris, France, 1 septembre 1939 Le gouvernement de la Commune de France informe, par l'intermédiaire de son ambassadeur à Berlin, que suite à la demande de retour adressée à la France, aucune réponse satisfaisante n'a été reçue. Ainsi, le gouvernement de la Commune de France se trouve dans l'obligation de protéger ses droits et ses intérêts par la force des armes. Dans cette optique, chaque pays doit se fier à ses armes et à sa force. En conclusion, le gouvernement de la Commune de France annonce être en état de guerre avec le gouvernement de l'Empire allemand. 프랑스 파리, 1939년 9월 1일 프랑스 코뮌 정부는 주 베를린 프랑스 코뮌 대사를 통해 1939년 9월 1일 귀국에 통보한 요구에 대해 귀국이 만족스러운 회답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코뮌 정부는 스스로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도록 강요받은 상태에 놓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국은 무기와 힘에 의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코뮌 정부는 독일 제국 정부와 전쟁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통보한다.조르주 발두아 프랑스 노동정책위원장의 대독일 선전포고 |
제2차 벨트크리그는 1939년 프랑스 코뮌의 독일제국 침공을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일전쟁 시작설과 같은 소수의견도 있지만 아르헨티나 전쟁이나 스페인 내전은 근본적으로 국지전으로서 대리전에서만 국한된 반면 독일제국 침공은 라이히스팍트 전체가 제3 인터내셔널에 선전포고를 하게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열강 간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공격 측이었던 추축국 진영은 프랑스 코뮌, 브리튼 연방, 러시아국, 일본인민공화국 4국이 이끌었으며, 방어와 반격 측이었던 연합국 진영은 독일제국, 오스트리아, 대한제국, 캐나다, 알제 프랑스 정부, 미합중국 6국이 이끌었다. 애초부터 사실상 연합국에 비해 추축국은 상대적으로 국력이 부족했고 제3 인터내셔널의 생각보다 선전의 효력이 빨리 사라지자 추축국은 전쟁 초반부(1939년-1942년 초)의 빠른 승세 이후 정체되었으며, 특히 독일이 끝까지 버티는 것에 성공함과 동시에, 내전에서 수습한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개입이 결정타가 되면서 빠르게 몰락했다.
연표
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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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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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전선
제2차 벨트크리그의 주요 전선은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다.
- 서부전선
- 동부전선
- 아시아·태평양 전선
참전국
연합국
라이히스팍트
협상국
추축국
제3인터내셔널
모스크바 협정
전후
독일
독일제국 German Empire |
본토의 피해가 사실상 전무했던 1차 세계대전과 다르게, 2차 세계대전에선 독일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독일이었기에, 독일이 전후 세계 패권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독일은 급진적인 전후 재건 정책을 통해 라인 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의 피해로 인해 식민지 해방을 피할 수는 없었고, 독일은 서서히 식민제국을 해체했다. 이 과정에서 독연방이라는 국제기구를 창설하여 옛 피식민지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 독일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독일의 주도 아래에 UN을 창설하여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고, 복지 국가론에 따라서 사상 처음으로 복지 국가 개념이 실현되는 등 독일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미국이 주도하는 협상국과의 정치적 대립이 시작되며 칼터크리그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