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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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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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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공방전 Battle of Drensden Битва при Дреннсдене Die Schlacht bei Dresd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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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중 동부 전선의 일부 | ||
날짜 | 1942년 8월 21일~1943년 2월 2일 | |
장소 | 독일국 작센 왕국 드레스덴 | |
결과 | 독일제국의 결정적 역전승 | |
영향 | 동부전선 전세의 변환점 독일군 반격의 시발점 나치 러시아국이 독일 완전 점령 계획을 포기하게 됨 | |
교전국 | ||
독일제국 도나우 연방 우크라이나 |
러시아국 세르비아 루마니아 왕국 그리스국 크로아티아 독립국 | |
병력 | ||
117만 명 | 132만 명+지원군 | |
피해규모 | ||
총 사상자 95만명 | 총 사상자 103만명(포로 9만 1000명 포함) | |
지휘관 | ||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에리히 폰 만슈타인 |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파괴된 드레스덴 |
개요
드레스덴 전투는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독일의 드레스덴 일대에서 벌어졌던 독일제국군과 러시아 국방군 간의 전투이다.
독러전쟁에서 가장 거대했던 전투 중 하나로, 규모면에서 포젠 전투가 가장 규모가 큰 전투였다면 드레스덴 전투는 최대규모의 사상자를 낸 전투이다.
서론
드레스덴 전투의 전개 |
드레스덴 공방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엘베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인 드레스덴은 베를린 방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고, 만약 러시아군에게 함락된다면 베를린 남부의 방위가 위태롭게 됨은 물론이고 바이에른으로 향하는 길이 활짝 열리기에 독일군 입장에선 반드시 사수해야하는 도시였다.
한편 나치 러시아는 베를린 공방전에서의 패배로 바그라티온 작전이 중단되었고, 벨로루시 전선군이 심각한 손실을 입고 말았다. 이로인해 러시아군은 베를린 재공격을 회의적으로 보았고, 베를린을 다시 공격한다는 계획을 뒤엎는다. 그 대신에 베를린 남부와 보헤미아 방면을 점령하여 독일의 남은 동맹군과 방어선을 붕괴 시키어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천왕성 작전을 구상하였으며 겨울이 끝나고 1942년 여름이 되어 작전을 실행하였다.
보리스 사빈코프에게 드레스덴이라는 도시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 이 도시는 엘베 강의 주된 산업 도시였고, 점령한다면 바이에른으로 진군하는 러시아군 좌익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빌헬름 2세도 이 점을 알고 있었고, 총을 들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천왕성 작전이 실행되고 러시아군이 작센으로 진군하자 독일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러시아군의 측면 포위로 인해 제대로된 방어선의 구축은 실패하였다. 그나마 바그라티온 작전 때와는 달리 전력의 결정적인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러시아군은 드레스덴으로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기 시작했으나, 독일군의 격렬한 저항에 무려 3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엄청난 피해를 내며 도시 점령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이렇게 벌어준 시간 동안 독일군은 점점 러시아군과 대등한 수준의 병력을 확보했고 마침내 11월 19일, 청색 작전을 통해 러시아군의 측면을 보호해주던 루마니아군을 분쇄하고 도시에 있던 러시아군 54만여명을 포위하는데에 성공한다. 러시아는 공중보급을 통해 포위된 병력을 살릴 방법을 구상했으나 곧 포기하고 최대한 독일군에게 저항해 그들을 묶어두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1943년 2월 2일 드레스덴의 러시아군은 최종적으로 독일에게 항복하게 된다.[1]
이 전투는 러시아의 독일 침공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키고 전세를 뒤바꿨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러시아군의 병력과 자원은 이미 드레스덴에서 지나치게 소모되었고 더는 독일군을 압도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군은 초기의 패배를 딛고 이 전투를 기점으로 러시아군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942년의 동부전선
최초전개
천왕성 작전과 제2차 브레슬라우 전투
독일군의 대응
모스크바 협정군의 공격
시 외곽의 전투
생쥐 전쟁(Латвийская война)
독일군의 반격
묻겠다, 제군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 |
Ich frage euch: Wollt ihr den totalen Krieg? Wollt ihr ihn, wenn nötig, totaler und radikaler, als wir ihn uns heute überhaupt noch vorstellen können? 제군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만약 필요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총력적인 전쟁이 되기를 원하는가? |
드레스덴의 함락이 임박하자, 괴벨스는 한가지 "쇼"를 준비했다. 1942년 10월에 독일은 함부르크까지 밀고온 인터내셔널군을 간신히 격퇴하고 브레멘과 라인강 일대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아프리카 집단군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간신히 승리하고 수에즈 운하를 사수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상황은 열악했다. 거기다가 동부전선은 아직까지 베를린이 크게 위협 받고 있었으며 만약 드레스덴이 함락 된다면, 바이에른까지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이었기에 전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상황이 이럼에도 독일은 아직까지 총력전 체제로 제대로 돌입하지 못했다. 슈페어의 군수개혁 계획은 독일 여성들의 전면적인 생산 라인 투입[2] 군수산업의 전면적인 재편, 포로들의 노동 등등...융커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야기가 많았고, 빌헬름 2세 또한 상당히 주저했다.
이 시점에서 OHL의 청색작전을 전해들은 괴벨스는 스포츠 궁에서 연설을 준비했다. 그는 드레스덴을 비롯한 각 전선에서의 장병과 특히 부상병들, 그리고 미리 정해둔 지점에서 박수쳐줄 배우들을 모았다. 괴벨스는 베를린 스포츠 궁전에서 여전히 전황이 어려움을 알리면서, 독일이 패배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시에 생디칼리스트들과 러시아 슬라브족에게 패배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모든 국민이 목숨을 바쳐 전쟁을 지원해야한다고 선전했다.
연설은 큰 효과를 봤다. 독일은 곧바로 슈페어의 계획대로 군수개혁을 진행, 총력전 체제에 돌입했으며 수 많은 군수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전선의 병사들에게도 이는 큰 호응을 얻었으며 사기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은 이렇게 총력전 체제에 돌입하면서 청색작전 진행에 필요한 신규 병력을 모을 수 있었다.
청색 작전
러시아군의 대응
작전 발동
항공 보급의 실패
후반 전개
토성 작전
러시아군은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하자 유능하다고 판단된 장교들을 비행기로 탈출시키기 시작했다. 러시아군 수중의 마지막 비행장인 드레스덴 공항에서는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려는 광란의 쟁탈전이 벌어졌고, 장교들은 비행기에 올라타려고 뇌물을 주고 매수하려고 들기도 했다. 장교들만 빼온 것은 아니고, 부상병들, 열등한 게르만-유대인들에게 강간당하는 수모를 막는다며 사빈코프가 직접 철수시킬 것을 명한 간호사 등 여성 보조원들, 도하 작전 지원을 위해 왔다 할 일이 없어진 흑해함대 하천함대 소속 해군 장병 등 일부도 운좋게 철수 행렬에 합류해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드레스덴 공항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에 대해서 러시아 내에서는 드레스덴 같은 좌파 영화가 매도한 것이라는 반발도 있었으나 OPT에서 제작한 드레스덴 전투 다큐멘터리 및 다수의 참전자 수기를 보면 드레스덴 공항은 살기 위한 온갖 수가 동원되는 아비규환이었단 증언들이 많이 나온다. 현재도 드레스덴 공항과 기타 비행장에서는 많은 러시아군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아예 사단 예하 부대는 남겨두고 사단장과 참모장교, 기타 중요 인물 몇몇만 탈출시킨 경우도 있었다. 기병사단에서 개편되었기 때문에, 제복에 기갑 병과를 뜻하는 상징이 아닌 기병 병과의 상징을 단 것으로 유명한 6기갑사단이 대표적이다. 부대 자체는 드레스덴에서 전멸했으나, 참모진 등을 수송기편으로 빼와 후방에서 그들 및 구 6기갑사단 출신 타 부대 전출자나 회복된 부상병 등을 모아 재창설했다. 물론 대다수는 신병들이었다. 하지만 사단장인 미하일 콘스탄티노프 소장은 다른 부하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종전 후 러시아군 재창설 후 육군 소장으로 임관했고 퇴역 후 국가두마 의원까지 되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공중 봉쇄로 이렇게 어렵게 탄 비행기편마저 사실 안전하지 못했다. 전술된 바와 같은 독일군의 악착같은 공중공세와 대공포화로 인해, 러시아군은 드레스덴 전역에서 수송기 488대, 승무원은 1천 명 이상을 상실했다. 천신만고 끝에 수송기에 탑승하고서 하늘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비행장이 수중에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러시아군 보헤미아 전선군의 수중에 있던 마지막 비행장인 드레스덴 공항에서는 1943년 1월 23일, 수송기들이 이륙을 준비하던 중 활주로에 독일군들이 난입하는 바람에 공포에 질린 탑승객들이 마구잡이로 비행기에 매달리다 떨어지고, 심지어 이륙하던 수송기가 독일군의 전차포에 맞아 격추되는 아비규환과 대혼란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날 드레스덴 공은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그와 동시에 러시아군 장병은 4성장군 로코솝스키부터 말단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라도 드레스덴을 탈출할 길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러시아군의 항복
항복 이후 포로로 끌려가는 러시아 보헤미아 전선군 장병들 |
1943년, 해방된 드레스덴[3] |
소러시아의 테러리스트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지. -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항복이라는 말은 절대 쓰지 마라. 우리 군대가 보급품을 받을 수 없어서 공격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희생이라고 해야 한다. - 보리스 사빈코프 |
결과
기타
말말말
이후 독일 육군에 끼친 영향
이후 러시아 육군에 끼친 영향
참전한 한국군 병사들
양측의 편제
모스크바 협정
우크라이나 전선군
갈리치아 전선군
보헤미아 전선군
지원군
루마니아 왕국군
세르비아 왕국군
그리스군
크로아티아 의용군
라이히스팍트
제국군 총사령부
드레스덴 방위 사령부
독일 제국군 제6군
독일 제국군 4기갑군
지원군
도나우 연방군
자유 우크라이나군
관련 작품
어록
드레스덴에서는 7초에 한 명씩 러시아군이 죽고 있습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7초. 방금 또 한 명이 죽었습니다. 독일군 선전방송 |
어제 개가 필사적으로 엘베 강을 수영해서 건너는 걸 보았다. 가장 강인한 동물도, 가장 단단한 돌도 이 곳에선 버틸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버틸 뿐이다. 어느 신원미상의 러시아군 |
묻겠다, 제군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만약 필요하다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전쟁을 원하는가?(중략)묻겠다. 제군은 이 땅(조국)의 군단으로써, 투쟁의 제국군을 카이저와 함께 뒷받침하며, 어떠한 운명의 결과에도 굴하지 않고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이 투쟁을 해나갈 준비가 되었는가?(중략)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폭풍이여, 떨쳐 나가라! 괴벨스 당시 선전부 장관의 총력전 연설, 이 연설 이후 청색작전이 시작됐다. |
"드레스덴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 "아버지, 우리 군이 러시아 놈들을 포위 했습니다. 드레스덴에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전쟁은, 전쟁은 이길 수 있겠느냐?" "염려마세요 아버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그럼 됐다." 빌헬름 2세와 빌헬름 3세의 마지막 대화. 빌헬름 2세의 유언이기도 하다. |
- ↑ 전투에서 살아남아 포로가 된 12만 명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독일에 억류되어 전후 복구 사업에 강제 동원되다가 최종적으로 1955년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들은 채 4만여 명 밖에 되지 않았다.
- ↑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군이 심각한 피해를 입자 베를린 공방전 시점부터 독일 여군도 투입되긴 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젊은 여성들에 국한된 이야기였고 규모도 소규모였다. 여군들이 전면적으로 투입된 것도 총력전 연설 이후부터다.
- ↑ 전투 막바지의 모습과 항복하는 로코솝스키 원수와 그 참모진,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장병들의 모습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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