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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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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전투 Battle of Kaesong 個性の戦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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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중 41년 추계 공세의 일부 | ||
날짜 | ||
1941년 9월 22일~1942년 2월 16일 | ||
장소 | ||
대한제국, 개성 및 임진강 일대 | ||
교전국 | 대한국 | 일본인민공화국 |
지휘관 | 안중근[1] 김홍일[2] 이범석[3] |
우메즈 요시지로[4] 이무라 조[5] |
병력 | 52만 6천명 | 81만 2천명 |
피해규모 | 총 사상자 약 39만명 | 총 사상자 약 45만명 |
결과 | ||
대한제국의 결정적 역전승 | ||
영향 | ||
대한제국이 임진강 이북을 사수함 한국전선 반격의 시발점 |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피난가는 피난민 |
개요
개성전투는 1941년 9월 22일 부터 1942년 2월 16일까지 개성을 비롯한 임진강과 예성강 전역에 걸쳐 진행되었던 전투이다. 김홍일의 지휘 아래의 대한제국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을 함락 시키려는 일본인민공화국군을 격퇴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일본군의 추가적인 진격을 저지, 이후 반격의 계기를 만들어낸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서론
개성 전투는 아시아 전선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군에 의해 약 300년만에 한성이 함락 당한 대한제국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었고, 안중근의 계획대로 북한 지역에서 군을 재편하고, 반격의 구심점을 만들어내려면 안중근 라인의 사수. 즉, 임진강과 개성의 수비는 매우 필수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성의 함락은 크게 축하할 일이었다. 허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렀다. 아직 북쪽의 상당한 지역에서 한국군은 버티고 있었고, 밤낮 없이 가동되는 압록강 벨트의 무수한 군수공장들이 한국군을 빠르게 재무장 시키고 있었다. 특히, 한국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상 41년이 지나기 전에 한국을 끝장내기는 어려웠으나, 전쟁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시킬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일본군은 개성을 향한 총공세를 진행했다.
끝내 대한제국군이 예성강으로의 병력지원을 성공 시키고, 개성을 사수하여 일본군을 임진강 남쪽으로 철수 시키면서 개성 전투는 대한제국의 대승으로 마무리 되었다. 긴 전투에서 피해만 누적되고 오히려 임진강 이남으로 철수한 일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 대한제국을 향한 추가적인 공세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개성 전투가 대한제국군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대한제국은 안중근의 계획대로 북한 지역에서 군을 재편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반격의 구심점이 됐다.
배경
파죽지세의 일본군
함락된 한성
너무 넓고, 너무 적다
양측의 상황
대한제국군의 준비
일본군의 준비
41년 추계 공세의 시작
치열한 임진강 전역
아시아의 드레스덴
동장군의 도래
이범석의 역습
철퇴 작전
일본군의 철수
결과
영향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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