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근-현대 시기구분 논쟁을 간단히 알아보자
1. 1961년, 북한 과학원 력사연구소는 중간총화 과정에서 조선사(한국사)의 근대/현대 구분시기를 정하기로 했음.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론에 따르면 역사는 각각의 단계에 따라 발전하므로 봉건사회에서 벗어난 근대,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되는 현대를 나눌 필요가 있었기 때문.
2. 먼저 근대의 시발점으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음.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가 일어난 186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1876년,
갑신정변이 터진 1884년,
갑오개혁을 실시한 1894년 등 4가지 설이 나왔으나 최종적으로는 '민족해방투쟁의 원년' 이라는 의미를 가진 1866년이 채택되었음.
3. 반면 현대의 시발점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과 광복의 1945년 두 가지 설로 압축되었음.
이쪽은 1945년이 채택되었으나 절충안으로 1866 - 1919년까지를 '식민지 반봉건사회의 형성기' 로,
1920 - 1945년을 '반제반봉건투쟁의 시기' 로 정하여 3.1운동이 주요 역사적 분기점이라는 의미는 분명히 했음.
4. 약 1년간에 걸쳐 연구소 내에서 치열한 학술논쟁이 오가며 정리된 두 시기구분은 1962년 8월 20일, 역사학자 전석담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최종 확정되어 북한이 보는 근대의 시작은 1866년,
현대의 시작은 1945년으로 정리되었음.
5. 여기까지만 보면 의외로 북한답지 않은, 나름 민주적인 토론 절차를 거쳐 결정된 합당한 결과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6. 바로 몇년 뒤,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현대의 시작이 1926년으로 조정됨.
김일성이 소년 시절 자칭 제국주의 타도를 위한 조직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를 만들었다는 해가 1926년이었기 때문.
7. 즉, 김일성 우상화 앞에선 아무리 쟁쟁한 학자들이 머리를 쥐어짜서 내놓은 연구결과도 다 휴지조각으로 돌아갔던 셈.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름 저런 학술토론이 가능했으나, 그 이후엔 김일성 우상화가 모든 학문의 기준이 되며 전부 무의미해짐.
8. 1줄요약: 기승전 김일성!
출처: 김성보, 『북한 역사학계의 조선 근세사 시기구분 논쟁』,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 역사비평사, 2000.
교과서에서도 현재도 북한에서 가르치는 현대사의 시작은 김일성 우상화 기준인 1926년입니다.
에릭 홉스봄 통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