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

미국이 한국전쟁을 지원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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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가지임.

 

I. 헨리 월리스

첫번째는 헨리 A. 월리스(Henry A. Wallace)가 대통령직을 물려받는 것임. 1944년 대선은 미국 정치의 터닝포인트라고 불리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 몇달만에 죽고 부통령이 자리를 승계받기 때문임. 이때 기존 부통령은 헨리 월리스였지만 루스벨트는 월리스를 미워했던 당내 중진들 눈치를 봐서 러닝메이트를 트루먼으로 교체함. 그리고 루스벨트가 뒈짓하고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음.

 

월리스와 트루먼 둘 다 뉴딜 정책을 지지하는 좌파였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향이긴 함. 하지만 트루먼은 냉전에 있어 굉장한 반공주의, 즉 트루먼 독트린을 추구했음. 반면 월리스는 극단적인 평화주의를 추구했고 소련과 유화, 냉전 반대를 지지했음. 올리버 스톤은 아예 "월리스가 그때 부통령 자리를 지켰다면 미사일도 핵폭탄도 없었다"라고 했을 정도임.

 

그런 월리스가 집권하면 자연스럽게 소련, 중공 등에 유화적인 태도로 나올 수 밖에 없음. 당연히 국민당은 응 폭망, 그리스도 응 폭망, 한국도 폭망. 그나마 월리스는 한국전쟁 파병은 마지못해 지지하긴 했음. 하지만 그가 속한 진보당은 한국전쟁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내걸었고 그를 당에서 출당시키게 됨. 이정도로 월리스와 그의 지지층은 매우 친 공산주의적 입장이었음.

 

이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의회가 여기에 따라줄거냐는거지. 왜냐하면 1946년 중간선거에서 극렬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젊은 하원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거든. 예를 들어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조셉 매카시("매카시즘"의 어원)

그리고 민주당 내에서도 제임스 이스트랜드, 팻 매케런, 시어도어 빌보 등 공화당과 별 다를바 없는 보수반공 성향을 보인 의원이 상당했음을 인지해야함.

월리스가 계속 친공산주의 하기에는 의회에서 그걸 승인을 안할거고, 1948년 대선에서 짤리는건 확정임. 그나마 듀이면 다행이지. 이 시나리오에서, 1948년 대선에서 듀이가 낙마하고 밥 태프트(Bob Taft)나 해럴드 스타센(Harold Stassen) 같은 더욱 강경한 반공산주의자가 공화당 후보가 되어 이분들로 대통령이 교체될 수 있음을 감안해야함.

 

II. 밥 태프트
극좌 월리스보다 더 유력한 시나리오는 극우 밥 태프트임. 이분은 성에서 알 수 있듯 파오후 쿰척쿰척 대통령으로 유명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아들임.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을 역임했고 1940년, 1944년, 1948년, 1952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모조리 공화당 경선에서 떨어진 비운의 인물임. 하지만 현재 공화당의 보수적 모습을 만든 "공화당 우경화"의 시초로 잘 알려져있음.

더 흥미로운건 이 사람이 극렬 반공주의자였지만 극렬 "고립주의자"이기도 했다는 거임.

이 사람은 트루먼의 한국전쟁 파병을 *위헌*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극렬한 고립주의자였고, 한국전쟁 파병에 매우 회의적이었음. 이 사람의 요지는 트루먼이 정식으로 의회에 파병 요청을 해야했는데 그냥 지 멋대로 "이건 전쟁이 아니라 특별 작전이에요~" ㅇㅈㄹ하는 꼼수를 써서 파병을 했다는 거임.

1950년 겨울 이후 한국전쟁 여론이 나빠지자, 밥 태프트는 대놓고 한국전쟁을 "트루먼의 전쟁" 드립치며 하루빨리 전쟁 종결하고 지원 끊어야한다고 난리쳤음.

이 사람의 주장은 공산주의는 나쁘지만 이름도 모르는 거렁뱅이 나라 돕지 말고 우리끼리 잘살자는 거임. 그 점에서 트럼프랑 꽤 비슷한 면도 있음. 그래서 UN가입도 반대했음.

 

이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당시 공화당 내에서 국제주의가 점점 힘을 얻고 있었다는거임

1945년을 기점으로 듀이 같은 사람도 고립주의에서 국제주의로 노선을 전환했음. 심지어 전통적 고립주의자의 대표격이었던 아서 반덴버그는 "모든 고립주의자는 진주만에서 쳐 뒤졌음 ㅅㄱ"이라며 배신을 때리고 말년 전부를 국제주의와 UN 가입에 헌신했음.

그래서 좀 더 유력하게 시나리오를 만들자면, 톰 듀이가 매우 아슬아슬하게 1948년 대선에서 이겼다고 하면 됨. 애초에 듀이도 태프트 무시 못함. 1952년 아이크도 태프트 무시 절대 못해서 그 사람 상원 원내대표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똥꾜쇼했는데, 듀이는 태프트를 더더욱 무시 못하지.

듀이가 태프트 눈치 보며 갈팡질팡 할 동안, 북한군이 매우 빠르게 신속하게 전쟁을 끝내면 됨. 그게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임.

 

III. 6.25에서 북한이 이긴 후 미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충 태프트든 듀이든 월리스든 1952년 대선 절대 못이김.

1951년 단기공황과 한국전쟁에 대한 피로감으로 트루먼조차 지지율이 20%대로 내려갔음. 여기에 한국전쟁에서 지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그냥 개박살나는거임.

그럼 1952년 대선의 대진표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화당에서는 보수 강경파가 듀이의 재출마를 좌절시키고 나갔을 가능성이 높음. 듀이는 경선 컷, 아니면 불출마 선언. 트루먼 1952와 상황 똑같음.

해럴드 스타센 전 미네소타 주지사나 밥 태프트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음. 맥아더는 한국전쟁의 패장이니까 못나갔겠지?

 

민주당에서는 W. 애버럴 해리먼(W Averall Harriman) 전 소련대사가 나갔을 가능성이 제일 높음. 이 사람은 1952년 대선에서 트루먼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던 인물이고, 강경 반공주의자이자 외교전문가로 한국전쟁 패전시 제일 선거 공략하기 좋은 인물임.

스티븐슨은 못나옴. 얘는 매카시즘 반대했거든. 리처드 러셀이나 에스테스 키포버도 가능성이 없음. 

 

본선은 어떻게 됐을까?

1952년 대선까지만 하더라도 뉴딜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압도적이었고, 밥 태프트든 해럴드 스타센이든 듀이보다 비호감도가 훨씬 높았음. 당장 1952년 대선 때 스티븐슨 민주당 후보 측에서 "아이젠하워는 태프트 따까리입니다!!"를 광고로 내보냈을 정도임.

그래서 뉴딜을 지지하는 좌파이자 반공주의자라 국민적 정서에 맞는 애버럴 해리먼이 정부 심판론을 등에 업고 압도적으로 이길 것임.

그 뒤부터는 상상임. 개인적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이후의 대진표는 1956년 얼 워런(공) vs 해리먼(민, 승) / 1960년 닉슨(공, 승) vs 케네디(민) / 1964년 닉슨(공, 승) vs 린든존슨(민) /  1968년 헨리 캐벗 로지(공) vs 휴버트 험프리(민, 승) / 1972년 넬슨 록펠러 vs 휴버트 험프리(민, 승) / 그 다음부터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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