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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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관련 문서
Union der Sozialistischen Räterepubliken
라트 연방의 방첩 · 정보 기관
비밀국가경찰
(1924~1952)
국가보안부
(1952~ )
국가보안부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표어 당의 방패와 검
(Schild und Schwert der Partei)
국가 라트 연방
소속 라트 연방 사회민주당
라트 연방 내무부
창설 1952년 2월 8일
(비밀국가경찰에서 조직 승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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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FSRR
베를린 10963 제르진스키거리 8
장관
(내무장관 겸임)
올라프 숄츠 (Olaf Scolz)
국장 이리나 슬레차크 (Irina Slezák)
부국장 아브라힘 베나비츠 (אבראהים בענאװיץ)
소속 인원 약 650,000명[1]

개요

그들은 우리를 미워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바라는게 아니다. 오직 공포만을 바랄 뿐이다.
내무장관 하인리히 힘러

국가보안부(독일어: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미니스테리움 퓌어 슈타츠지셔하이트[*]), 줄여서 슈타지(독일어: Stasi)는 라트 연방방첩 기관정보 기관이다. 슈타지는 국가(Staat)와 보안(Sicherheit)의 약자이다.

히브리어로 국(局)을 의미하는 모사드(히브리어: המוסד)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역대 국장과 고위 간부 중 유대인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애칭이 붙었다.

역사

1949년 그레고어 슈트라서 서기장의 사망 이후, 최고지도자 직위에 오른 괴벨스는 대대적인 국가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을 중단하고 대테러를 공식적으로 종결했으며, 정치범들을 대거 석방했다. "오인된" 숙청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권력에서 밀려났는데, 이는 슈트라서 정권 시기 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한 비밀국가경찰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1952년, 괴벨스는 비밀국가경찰이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처리과정을 통해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며, 이에 따라 비밀국가경찰을 해체하고 새로운 방첩기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52년 2월 8일 게슈타포를 계승하여 설치된 방첩기관이 슈타지이다.

1952년 초대 국장으로 에리히 밀케(Erich Mielke)가 지명되었다. 기존 비밀경찰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잠깐 체코의 서기장으로 발령받았다가, 이후 내무장관(1965~1968)으로 등용되었다. 밀케는 기존 하이드리히와 힘러의 인사들을 배제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경쟁자였던 하이드리히, 제르진스키, 힘러의 권한을 줄이고 싶었던 괴벨스의 의중이었다.

1950년대에는 전세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뒷공작을 주도했다면, 195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체제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국외 혁명 수출보다도 국내 방첩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68년 이전에는 국민 175명 당 협력자 1명이라는, 175:1 수준의 높은 감시망을 갖추고 세계 최대의 방첩기구로서의 위용을 드러냈다. 그러나 1968년 문화대혁명을 통해 국가보안부의 관료주의가 비판받기 시작했고, 일부 국가보안부 소속 관료들은 대학생들에 의해 자아비판을 하기도 해야했다. 헤르베르트 프람 서기장에 의해 내무장관으로 지명된 한스 디트리히 겐셔 내무장관은 국가보안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고, 기존에 존재했던 국가보안장관 직위를 철폐하고 내무부 산하로 국가보안부를 통합시키고 국가보안부 장관 직위를 내무장관이 당연직으로 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겐셔의 개혁은 국가보안부의 역량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야기했고, 뮌헨 올림픽 참사의 주범을 제거하기 위한 "신의 분노" 작전에서 민간인을 테러범으로 헛지목해 살해하는 "릴레함메르의 참사"가 일어난 후로 국가보안부의 위상이 공산권 내에서도 크게 떨어져 한때는 북유럽 정보망이 붕괴 직전까지 간적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리히 호네커는 서기장의 직속 권한을 이용해 내무장관에 에리히 밀케를 임명해, 내무장관과 국가보안국장 직위를 일시적으로 통일시켰다. 다시 권력을 잡은 밀케는 1988년까지 국장 겸 장관 직무를 보면서 미국과 영국 등 제국주의 진영을 상대로 한 고강도의 정치공작을 주도해, 서구권 혁명을 유도하였다.

1991년 밀케가 무려 39년만에 국장 직위에서 퇴임한 후, 온건파 샤브타이 샤비트가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샤비트 국장은 니콜라스 네메트 서기장의 지지자였고, 그의 재임 기간 도중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다. 영장 없는 수색을 금지시켰고, 범죄 혐의자에 대한 고문을 폐지했으며, 내부 방첩국을 축소시켰다. 2002년 취임한 마이어 다간 국장은 국제적인 수준의 공작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내부 개혁을 추구했다.

2024년 브와디스와프 레빈슨 국장의 퇴임을 통해, 첫 여성 국장이자 밀케 이후 최초의 非유대인 국장인 이리나 슬레차크가 국장으로 지명되었다.

산하 조직

  • 사무국 (Sekretariat)
  • 홍보부 (Abteilung für Öffentlichkeitsarbeit)
  • 제1총국 (Erste Generaldirektion) - 대외 첩보 담당 부서
    • 제1부 (1. Abteilung) - 미국, 잉글랜드 담당.
    • 제2부 (2. Abteilung) - 미국을 제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 담당.
    • 제3부 (3. Abteilung) - 중국 담당.
    • 제4부 (4. Abteilung) - 인도 담당.
    • 제5부 (5. Abteilung) - 중동 지역 담당.
    • 제6부 (6. Abteilung)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륙 담당.
    • 제7부 (7. Abteilung) - 중동, 중국, 조선, 인도, 동맹국 외 아시아 대륙 담당.
    • 제8부 (8. Abteilung) - 이탈리아 등 동맹국 담당.
    • 제9부 (9. Abteilung) - 스웨덴, 조선 및 중립국 담당.
  • 제2총국 (Zweite Generaldirektion) - 대내 방첩 담당 부서
  • 제3총국 (Dritte Generaldirektion) - 붉은 군대 내 방첩 담당 부서
  • 제4총국 (Vierte Generaldirektion) - 산업보안 및 교통 방첩 담당 부서
  • 제5총국 (Fünfte Generaldirektion) - 수색 및 외부감시 담당 부서
  • 제6총국 (Sechte Generaldirektion) - 주요 요인 보호 및 경호 담당 부서
  • 제7총국 (Siebte Generaldirektion) - 반공화국 방첩 담당 부서 1991년 조직 개편으로 연방헌법감시청으로 독립 및 업무 이관. 따라서 1991년 이후 제7총국은 없다.
  • 제8총국 (Achte Generaldirektion) - 암호 해석 및 보안통신 담당 부서
  • 제9총국 (Neunte Generaldirektion) - 회계 및 서류 담당 부서
  • 분석부 (Abteilung für Analyse)
  • 조사부 (Abteilung für Ermittlungen)
  • 인사부 (Abteilung für Personalwesen)
  • 법무 대응부 (Abteilung für rechtliche Reaktion)

역대 국장


국가보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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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

국가보안부 청사 전경.

현재의 청사는 2000년 새로 지은 것으로 공포의 지형학(Topographie des Terrors)이라는 악명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생각보다 건물이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밖으로 드러난 건물이 전체 면적의 10%도 되지 않는다! 건물이 정확하게 몇층까지 지하로 뻗어져있는지는 기밀 사항이며, 따라서 건물이 어느정도 크기인지도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다. 밖으로 튀어나와있는 건물과 그를 둘러싼 광장 지하 전체가 청사의 일부라고 추정될 뿐이다.[3]

기존 청사는 1937년 건축했으며, 1995년까지 사용하였다. 역사 유적으로 남겨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철거가 결정되었고, 5년간의 공사를 통해 현재의 건물이 지어졌다. 청사 건물 앞에 놓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유명하다. 이른바 철의 펠릭스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외부 방문객들은 지상 건물만 방문이 허용되며, 지하 건물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상시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여담이지만 건물 지하에 있는 시설에는 온갖 종류의 소문이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1999년 사망한 미국 전임 대통령 빌 클린턴이 사실은 슈타지에 납치되어 지하 감옥에 갇혀있다던지, 국가보안부 지하 20층에 핵전쟁을 대비한 당 주요 인원들의 전용 벙커가 있으며 베를린부터 포츠담 외곽까지 지하통로와 비밀 철도로 연결되어있다는 소문까지 가지각색이다.

여담

  • 역대 8명의 국장 중 6명이 유대인일 정도로 유대인의 비중이 높은 기관으로 손꼽힌다.[4] 다른 부서와 달리 국가보안부는 유대인 쿼터가 상대적으로 널럴한 것도 한 이유이고 유대인 SAR이 예전부터 테러에 취약했기 때문에 방첩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이 보기


  1. 정확한 숫자는 법적으로 기밀이다.
  2. 사회주의 법 특성상 금융범죄에 엄격해서 그렇다. 자세한 것은 라트 연방/사법 문서 참조.
  3. 베를린의 지질 자체가 상당히 물렁하여, 위로 크게 건물을 올리는것보다 땅을 파는게 더 수월하면서 기밀 유지에 좋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건축을 했다고 한다.
  4. 붉은 군대에 폴란드인이 많고, 외무부에 네덜란드인에 많은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